2012 백제 문화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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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탑의 아름다움 (종합)

탐방 과제 : 미륵사탑과 정림사탑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고층누각(高層樓閣) 형식의 목탑을 비교적 충실하게 모방한 석탑이다. 현재 6층까지 남아 있지만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 결과 원래 9층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거대한 규모, 배흘림 기둥, 3단으로 된 지붕돌 받침, 1층 탑신의 출입문, 약간 도톰하고 살짝 들린 지붕돌의 표현 등이 특징인데, 당시 유행한 목조건물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기도 하다. 이 탑은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높이 총 23m정도, 초층탑신 폭 약 7.5m)에서 백제 무왕 시기의 경제력과 문화 수준을 보여준다. 단단하고 오래 가는 화강암을 이용해 백제 풍토에 맞는 탑을 만들려고 한 것에서 백제인의 실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을 충실하게 모방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여러 가지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 구조가 석탑으로는 너무 복잡했고, 많은 수의 부재(部材)를 사용한 데다가 엄청난 석재(石材)의 무게 때문에 붕괴의 위험이 컸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길을 제시한 것은 부여의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다. 복잡한 목조건물의 구조가 간결하게 요약되고, 탑의 규모는 미륵사지 석탑에 비하여 작아지나, 높이 솟은 느낌(상승감)을 주기 위해 1층 탑신을 크게 올렸다. 2층 탑신부터는 미륵사지 석탑보다 체감률을 높여 훤칠한 느낌을 준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대단히 우아하고 세련된 멋을 갖추고 있어 7세기 백제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탑은 상승감을 주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힘이 없고 안정감이 부족하다. 이는 신라의 3층석탑 양식과 비교해 기단부가 낮고 좁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경주 분황사 석탑의 넓은 기단부와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석탑의 독특한 구조와 지붕돌의 특징은 뒤에 충청도 지역에서 유행하는 고려시대 석탑의 효시가 된다. 백제의 석탑 양식은 660년 백제가 망함으로써 더 이상의 발전을 보지 못하고, 통일 후의 신라석탑과 고려 시대의 백제계 석탑에 이어진다.

출전 : 이창호 석사학위논문, ?신라 탑파와 그에 대한 교육?, 1994

미륵사지 석탑의 특성

1. 목조탑의 가구수법을 가장 충실히 모방, 번안한 것이다.
2. 거의 모든 부재가 각기 다른 별석으로 조립되었다.
3. 체감률이 완만하다.
4. 고려척을 사용하였으며 주간의 1/10을 기본단위로 하여 조형 계획을 세웠다.
5. 규모가 가장 크다.
6. 사서에 건립 시기를 알 수 있는 관련기사가 나타난다.
7. 품(品)자형 삼원 가람이지만 각각의 원에 있어서는 일탑 일금당 형식이다.

■ 기단부
1. 하층기단이 극히 간단히 표현되고 상층기단이 뚜렷하게 구성된 초기적 이중기단이다.
2. 초석과 계단을 갖춘 목조건축의 기단형태이다.
3. 동탑의 기단 형태로 보아 갑석에 부연이 없다고 판단된다.

■ 탑신부

1. 탑파 건축으로 내부공간을 의도한 십자형 통로가 있다.
2. 기둥 모양으로 탑신을 방 3칸으로 나누었다.
3. 초층의 우주에 민흘림을 나타내었다, 따라서 탑신전체가 상촉하관(上促下寬)의 오금을 이루었다.
4. 초층의 구성에 있어 초석, 고맥이돌, 벽석, 문선대, 창방, 평방 등을 갖추어 목조 가구 형식을 이루었다.
5. 초층 중앙칸에 문설주가 있고 문짝을 달았던 흔적이 뚜렷하다.
6. 창방과 옥개받침 사이에는 공포가 있어야 할 위치에 수평의 벽석이 있다.

■ 옥개부
1. 옥개받침은 3단 및 4단의 역 사다리꼴이며 상하 2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다.
2. 옥개받침의 층단 형태는 수평이 아니라 완만한 경사를 이루었다.
3. 옥개석은 얇고 넓은 판석형석재로 여러 매로 조립하였으며 처마석보다 추녀석이 커서 모서리 부재를 강화한 느낌이다.
4. 옥개석은 처마선이 수평을 이루다가 추녀부분에 이르러 가벼운 반전을 한다.
5. 추녀석 윗부분에는 납작하고 두툼한 우동을 표현하였다.
6. 2층 이상은 탑신 괴임대를 설치하였다. 이는 옥개석의 긴 돌출부를 위에서 누르는 역할을 하고 얕은 탑신고를 보강한 듯하다.
7. 옥개석의 크기가 기단보다 커서 낙수면이 기단의 밖이다.

정림사지 5층석탑의 특성

1. 시원적인 목조탑의 형식에서 탈바꿈하여 본격적인 석탑으로 정형화된 모습을 갖추었다.
2. 시원탑에서 복잡하게 구성되었던 부재들이 생략되거나 간단하게 정리정돈 되었다.
3. 모든 부재가 각기 다른 별석재로 되었다.
4. 체감률이 다소 급하다.
5. 고려척을 사용하였다.
6. 후대 백제계 석탑의 전형이 되고 있다.

■ 기단부
1. 초층기단이 지극히 소략된 초기적 2중기단이다.
2. 기단 주위의 외곽석과 보석의 흔적이 보인다.
3. 지대석과 지석이 확실히 갖추어졌다.
4. 시원탑인 미륵사지 석탑에서 있었던 초석과 고맥이돌, 창방, 평방, 벽석, 문비, 십자형통로가 없어졌다.
5. 기단의 갑석이 두껍고 경사가 없다.

■ 탑신부
1. 1칸의 5층탑으로 그 규모가 줄어들었다.
2. 우주에 민흘림이 있다. 따라서 상촉하관(上促下寬)의 오금기법이 보인다.
3. 면석을 2매석으로 하고 있다.

■ 옥개부
1. 옥개받침은 각형과 사릉형의 2단으로 하였는데 각각이 별개의 석재이다.
2. 옥개석을 이루는 선이 우아한 곡선이다.
3. 옥개석은 ?字형 8석, 田字형 4석으로 구성 조립되었다.
4. 비교적 두꺼운 각형의 탑신괴임석재가 있다.
5. 옥개석의 처마석은 직선으로 추녀석은 곡선으로 이어져 맨 끝에서는 가벼운 반전을 이룬다.
6. 옥개석의 상부에는 단면이 호형인 내림마루, 즉 우동이 있다.
7. 옥개석의 폭이 기단갑석의 폭보다 넓다.
8. 옥개석 낙수면 단부의 절단석이 수직선을 이룬다.

출전 : 미륵사지유물전시관,  [사진특별전 백제 양식 석탑], 2005. 12, pp.194,197-198

화려했던 백제의 숨결을 느끼다

천지일보 2010년 08월 31일 (화) 14:12:41 박수란 기자 union@newscj.com

화려했던 백제의 모습과 몰락하는 백제의 모습을 함께 지켜봤을 정림사지 5층석탑. 백제의 마지막 123년을 보낸 곳 사비, 즉 부여에는 우리나라 석탑의 시작이 되는 처음 양식인 국보 제9호 정림사지5층석탑이 있다.

정형화되지 못한 다른 석탑에 반해 정림사지 5층석탑은 반듯반듯한 미와 1층부터 5층까지 비례가 완벽해 세련되고 완숙한 미를 보여준다. 백제의 상징이며 백제탑의 완성인 이 탑은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탑의 모습도 다르게 보인다.

정림사지5층석탑 바닥에 보면 제일 예쁘게 보이는 곳이라 쓰여진 뷰포인트가 있다. 그곳에서 보면 한국여인의 버선코처럼 살짝 올라간 탑의 모서리 부분이 아름다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멀리서 보면 자칫 왜소해 보여도 앞으로 다가갈수록 그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탑이다.

하지만 이 탑에는 아픔이 서려있다. 나당연합국에 패망한 부여는 불바다로 변했고 그로 인해 탑의 화강암이 검게 그을려 그 흔적이 남아있다. 또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승리를 자축하고 그 기세를 뽐내기 위해 탑의 1층 몸돌에는 '대당평제국비국(위대한 당나라가 백제를 평정하고 기념으로 탑에 새긴 글)'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애달픈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정림사지 5층석탑은 정림사지박물관 옆에 위치하고 있다. 정림사지박물관은 백제 시대 중 가장 화려했던 사비 시기의 불교 유적 등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출전 : 미륵사지유물전시관,  [사진특별전 백제 양식 석탑], 2005       이전 위로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