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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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2001년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2학년 학생이 제 홈페이지에서 사진을 일일이 찾아서 살펴보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하여, [한국 문화사] 게시판에 올린 내용을 정리하여 성심여고 홈페이지의 성심게시판에 올렸던 것입니다. html 문서로 재편집하고, 빠졌던 내용을 보충하였습니다.

2001년 7월 1일 오후에, 이창호 적음.
2002년 6월 29일, 수정 보완함.


내용 선정 기준 : 고등학교 국사 (상) (교육부 발행, 1996) pp.157~162의 고려 시대의 건축, 조각, 공예, 서화

1. 봉정사 극락전

3000. 안동 봉정사 극락전

고려 12,3세기경(1363년 중건), 정면 3간 측면 4간, 주심포계 맞배지붕, 국보 제15호, 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봉정사.

1972년 수리 때 상량문 발견, 1363(공민왕 12)년에 중건. 학계에서는 12세기 말이나 13세기 초의 건물로 추정. 단청은 매우 고형이고 색조도 장중. 흙벽에는 본래 벽화가 있었다. 1972년 수리 때 벽화는 분리되었고, 외부 단청은 개칠하였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 문화재청 사진

안동 봉정사 극락전 동쪽 측면. 문화재청 사진

2. 부석사 무량수전


2990.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고려 12,3세기경(1376년 중건), 정면 5간 측면 3간, 주심포계 팔작 지붕, 국보 제18호,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

기와를 얹는 목조 건축은 중국은 한나라 때, 우리 나라는 삼국 때 등장. 고구려 고분 벽화, 탑파 등 목조건축을 본딴 석조 건축, 토기, 금속공예품 등을 통해 짐작은 할수 있으나, 현존하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랜 것은 고려시기의 것이다.

고려 시기의 목조 건축물로는 남북한 합쳐 약 10 여점 정도. 남쪽 것으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풍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예산 수덕사 무량수전, 강릉 객사문, 영천 거조암 영상전이 있다. 일본에는 7세기의 것이 존재, 중국은 당 이래 원까지의 건물이 150점 가량이나 남아 있으니 이것으로도 전란이 거듭됐던 우리 나라의 피맺힌 역사가 상기되지 않을 수 없다.

1919년 해체 수리 때 발견된 묵서명에, 1376(우왕 2년)년 왜구의 병화를 입어 중건했다는 기록이 발견, 보통 중건보다 100∼150년을 앞선 건물로 추정. 병화로 인한 중건이므로 이 말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으나, 학자들이 법식이나 기법을 분석 13세기경의 것으로 추정. 주심포계 팔작 지붕. 배흘림이 강하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두산세계대백과엔싸이버 사진

3. 수덕사 대웅전

3010. 예산 수덕사 대웅전

고려 12,3세기경, 정면 3간 측면 3간, 주심포계 맞배지붕, 국보 제49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앞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안에서 봐도, 주심포계 맞배지붕의 단정하고 깔끔하며 조촐한 아름다움이 그지없다. 1937년부터 4년간 해체 수리.벽화를 모사하는 중에 백분으로 씌여진 1528년에 단청을 개칠했다는 기명 발견, 내면의 본래 밑그림 발굴.

이 벽체를 분리하는 중에 1308(충렬왕 34)년 중건의 묵서명 발견. 원위치의 벽화들은 그후 방치되어 흙더미로 변해 버렸는데, 광복 이후에는 아예 없어져 버렸다. 때문에 지금 대웅전을 찾는 사람들은 벽면마다 벽화가 있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모른채, 내부 부재에 남아 있는 고색창연한 단청에서 옛스러움을 맛볼 뿐. 게다가 지금은 중창을 거듭해서 수덕사 대웅전은 뒷전에서 차가운 냉대를 받으며 서 있다.

예산 수덕사 대웅전. 두산세계대백과엔싸이버 사진

4. 석왕사 응진전

자료 없음

5. 개풍의 현화사 7층 석탑

2445. 개성 현화사 7층석탑

고려 1020년, 8.64m, 개성직할시 장풍군 월고리 현화사지, 북한 국보급 문화재 41호.

경기도 개풍군 영남면 현화리(현재의 북한의 행정지명으로는 개성직할시 장풍군 월고리)의 현화사지에 있는 고려 시대의 칠층석탑. 높이 8.64m로 북한의 국보급 문화재이다.

현화사지에는 이 칠층석탑 외에 당간지주·비·석교 등이 있으며, 석등은 일제 강점기에 서울로 이전하여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화사는 1018년(현종 9)에 창건되었으며, 이 탑은 1020년에 건립되었다.

방형(方形) 평면의 탑이며 1단의 기단부와 7층의 탑신과 상륜부로 되어 있다. 탑의 높이는 8.64m로서 고려 석탑 중에서는 큰 편에 속한다. 기단부는 네 모서리와 기단부 각 면의 한가운데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돌 사이에 장방형으로 다듬은 돌들을 벽돌처럼 쌓아 만들었다.

기둥돌 위에는 세 단의 받침을 가진 넓고 편평한 두꺼운 갑석을 놓았다. 기단부를 이렇게 처리한 것은 희귀한 예에 속한다. 기단부의 한 변은 3.9m에 이르고 7층으로 된 탑신은 위로 올라가면서 체감법을 사용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

매층의 탑신 밑에는 2단의 굄을 마련하였고 탑신 네 모서리에는 우주(隅柱)를 천각하여 나타냈고 탑신의 각 면에는 연화형 안상(眼象)을 조식하고 이 안상 속에 불상을 정교하게 장식하였다.

불상의 형태는 석가상·사천왕상·나한상들이다. 옥개석들은 전체적으로 얇은 편이고 처마는 깊으며 상하연은 양쪽으로 비교적 심하게 휘어 올라 있다. 옥개석 밑에는 2단씩의 낮은 처마받침을 두었다.

정상에는 네모난 노반과 복발(覆鉢)이 있고 그 위에 육각형의 석물을 올렸는데 앙화나 보개로 추정된다. 규모가 크고 전반적으로 수법이 굵직하면서도 세부에 있어서는 정교하며, 탑 전체와 각부의 부분이 조화를 이루는 균형잡힌 걸작이다.

개성 현화사 7층석탑
6. 오대산 월정사 팔각 9층 석탑


2450. 평창 월정사 8각9층석탑

고려 11세기, 높이 15.15m, 국보 제48호,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월정사.

고려 시대에 새로이 유행한 다각 다층탑. 고려 시대에 일반 형태인 방형을 벗어난 6각, 혹은 8각의 석탑이, 또 3층, 혹은 5층을 벗어난 중층의 탑이 널리 유행. 이 탑 외에도 금산사 6각 다층탑, 평양 영명사 8각 5층탑, 평남 대동의 광법사 8각 5층탑, 평북 영변 보현사 8각 13층탑 등이 있다. 학계의 중론은 아니지만 고구려의 청암리 사지 석탑과 비교해 볼 때 고구려 옛 지역의 고구려 문화 부활의 현상이 아닌지. 삼국 시대에 강릉, 오대산 지역, 대개의 강원도 지방은 고구려의 영향권이었으므로.

평창 오대산 월정사 8각9층탑

7. 경천사 10층 석탑


3210. 경천사탑

고려 1349년, 1350cm, 국보 86호, 원래 경기 개풍군 광덕면 경천사지, 현재 경복궁.

우리 나라의 탑 양식과는 달리 려말 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석탑. 1층 탑신 이맛돌에 '지정 8년 무자'라는 명문이 있어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있다. 탑의 원위치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중연리 경천사지였으나, 일제 침략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불법 반출되었다가 다시 반환되었다. 때문에 지대석은 결손되고 없다. 이 석탑은 전부재가 회색의 대리석으로 그 구성은 기단부 위에 탑신과 상륜부가 건조되었는데 각부는 평면과 부재의 구조 등에서 특수한 양식과 수법을 보이고 있다.

상륜부는 단조로운 형식으로 구성되었는데 원형의 평면으로 노반과 연구문형의 복발과 앙련으로 된 앙화가 있고 그 위에 보탑형과 보주가 있다. 우리 나라의 상륜 형식과는 다른 원나라 의 라마적 수법을 엿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목조 건축물의 각부를 모각하고 또 각부에 불,보살상을 빈틈없이 배치하여 그야말로 건축과 조각의 양면을 다 같이 구비하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조선 초에 건립된 원각사지 10층석탑으로 이어지고 있어 역시 토착화된 증거를 보이고 있다.

이 탑의 층수는 10층 또는 13층으로 보기도 한다.

개성 경천사 10층석탑 (경천사탑)

8. 구례 연곡사의 북부도


2400. 구례 연곡사 북부도

고려 10세기, 3.0m, 국보 제54호,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지.

나말 선종의 유행에 따라 이미 한국적 전형이 확립된 팔각원당형을 계승한 참으로 아름다운 부도. 팔각원당형이란 둥근 느낌의 팔각집의 모양을 본뜬 것. 그런 집의 형태는 중국이나 일본에 남아 있다. 이 부도는 나말의 연곡사 동부도를 거의 모방한 형태이나 역시 빼어난 미모. 어떤 선사의 무덤인지 알 수 없으니 그저 연곡사 북부도라 불리운다. 고려 초에도 역시 팔각원당형의 부도가 널리 만들어진다.

구례 연곡사 북부도

9. 공주 갑사의 부도


2416. 공주 계룡산 갑사 부도

고려 10세기, 높이 2.05m, 보물 제257호,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

갑사 입구의 철당간에서 오솔길을 따라 곧장 올라가면 바로 갑사 부도를 만나게 된다. 보물 제257호인 이 부도는 고려 시대의 것으로 높이가 2.05m여서 아담한 편이나 조각이 화려하다.

부도의 모습은 일반적인 팔각원당형으로 특히 기단의 사자 조각은 매우 입체적이어서 부도 전체가 크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퍽 힘있는 느낌을 준다. 그 위로 꿈틀거리는 구름무늬 조각 위에 천인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천상 세계가 되는 팔각 몸돌의 네 면에는 사리를 보호하는 의미로 문 양쪽에 사천왕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기왓장 무늬가 섬세하게 새겨져 있으나 처마가 깊지 않아 기단에 견주어 섬약한 느낌을 준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위쪽이 빈약해 보이는데 상륜부에 꽃잎이 살짝 벌어지기 시작한 연봉오리가 어느 정도 보완해 준다.

이 부도는 원래 계룡산 산중인, 대웅전 뒷산 수정봉의 중사자터에 있었는데, 1971년에 현재 자리인 대적전 앞으로 옮긴 것이다. 대적전은 조선 후기의 건물인데 원래는 그 옆이 갑사의 본전인 금당 자리이다. 양식이나 조각 기법으로 보아 고려 초기(10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공주 계룡산 갑사 부도

10. 여주 고달사지의 원종대사 혜진탑

2415.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 혜진탑

고려 10세기, 4.5m, 보물 제7호,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고달사지.

고달사지에 있는 고려 초기의 석조부도. 8각원당형 부도 기본구조를 따랐으나 기단부가 방형인 점이 특이하다. 4매의 돌로 된 지대석 위에 24잎의 외겹내림연꽃을 조각한 하대석이 있고, 그 위에 갑석형을 조각한 판석을 두었다.

중대석은 용머리를 한 거북을 중심으로 4마리 용이 구름사이로 꿈틀거리는 모습을 부조했는데, 거북은 머리만 오른쪽으로 돌리고 몸은 정면을 향한 자세이다. 세부 표현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중대석 위의 갑석은 8각형이며 그 위에 잘룩한 받침대 위로 8잎의 외겹 올림연꽃을 조각했다. 8각의 탑신 4면에는 문짝을, 다른 4면에는 사천왕입상을 조각했으며 그 위로 8각의 옥개석이 놓여 있다. 옥개석 밑에 이중의 받침을 새겨 서까래를 대신했다.

추녀는 수평이나 여덟 모서리에 귀꽃을 달아 약간 위로 반전되어 있다. 옥개석의 윗면에는 기왓골의 표현이 없고 8개의 우동이 표현되었으며 정상부에 이르는 경사도 완만하다. 상륜부에는 8각 노반과 꽃 모양이 조각된 복발, 귀꽃이 화려한 팔각의 보개, 보륜과 보주를 얹었다.

비문에 의해 나말·여초의 고승 원종대사 찬유의 묘탑임을 알 수 있고, 975년(광종26)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대석의 조각이나 하대석의 연판 형태는 고려 초기 조각의 특색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전체구성을 볼 때 중대석이 다소 비대해진 감이 있고, 기단부가 4각인 점은 고달사지에 있는 또 다른 석조 부도가 8각 기단인 점과는 차이가 있다. 규모나 각 부분의 비례, 장식면에서 장중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갖춘 10세기 부도의 걸작품이다.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 혜진탑. 문화재청 사진

11. 정토사 홍법국사 실상탑

2590. 충주 정토사 홍법국사 실상탑

고려 1017년, 2.55m, 국보 제102호, 원래 충북 충주시 동량면 하천동 정토사지, 현재 경복궁.

공예적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는 고려적인 세련된 부도. 충북 충주시 동량면 하천동에 있던 것을 1915년 경복궁으로 옮겨옴. 많은 문화재가 1915년에 경복궁으로 이전된 까닭은 1915년 말에 일제가 조선 식민지화 5주년을 기념하는 박람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하기 위해서였다.

팔각원당형의 기본을 잃지 않으면서도 탑신을 구형으로 하는 기발한 착상을 통해 약간 변형. 탑신에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2줄의 띠를 두르고 교차점에 꽃판. 탑신이 구형인 것이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인데, 구형 탑신의 불안정성은 넓직한 기단의 설치로 균형을 찾아 여유있는 안정감을 보이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 없어졌지만, 옥개석의 전각마다 높직한 귀꽃을 달았다.

충주 정토사 홍법국사 실상탑

12.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2600.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고려 1085년, 6.1m, 국보 제101호, 원래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법천사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북쪽 뜰.

매우 거대하고 정교, 화려한 네모꼴의 이형 부도. 원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법천사지에 있었다. 일제 때는 일본 대판까지 불법 반출되었다가 환송되어 현재 경복궁에 있다. 6.25때 파손되었던 전력도 있다.

층층이 장막이 늘어지고 불, 보살, 봉황 등의 조각이 가득. 지대석 네 귀퉁이에는 용의 발톱과 같은 조각이 지면까지 딱 닿아서 지상에 완고하게 밀착된 듯한 안정감. 기단 네 귀퉁이에는 본래 사자상이 한 마리씩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 탑신에는 문비와 자물쇠가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고, 페르시아풍의 영창이 조각되어 있다. 정교하고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부도이나 웅건한 힘보다는 기교에 치우친, 조각의 극치를 보이는 매우 이색적인 부도.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13.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2500. 논산 관촉사 은진 미륵

고려 1006년, 높이 18.12m 둘레 9.9m, 보물 제218호, 충남 논산시 관촉동 254 관촉사.

문화재 지정 명칭은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거대한 규모, 괴체화된 고려 초 석불의 대표적인 것. 이 시기 충남, 전북 지역에서는 기둥같이 큰 몸체에 관을 쓴 미륵 보살의 조성이 유행되어 고려 시대 양식으로 자리잡는다. 옛 백제 지역의 백제적 문화가 토착화되어 잔존해 있다가 나말 여초의 사회적 기운을 타고 다시 부흥한 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인 것인 이 미륵은 고려 광종 19년(968) 착공하여 38년 후인 목종 9년(1006)에 완성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높이 18미터로 국내 최대 석조 불상이다. 이 거대한 불상은 땅 속에서 돌이 솟아오른 인연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관세음보살의 조력에 의해 세워졌다는 전설이 있다. 한편 이 지역은 백제 미륵 신앙의 도량인 익산 미륵사터와 멀지 않은 위치에 있어서 옛 백제의 미륵 신앙의 전통이 부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얼굴은 네모난데 이마는 좁고 볼은 넓다. 이목구비가 지나치게 크고 선명하며, 눈은 거의 귓가까지 찢어졌다. 귀는 2미터로 어깨까지 늘어져 있고 꽉 다문 입은 얼굴을 전체적으로 굳게 만든다. 전체 18미터의 거대한 키에, 몸뚱아리는 거대한 돌을 원통형으로 슬쩍 깍아 만든 괴석이라서 사람의 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머리에는 관을 썼고, 손에는 연꽃 가지를 쥐고 있다. 비사실적이고, 도식화된, 토속화한, 괴체화한 고려 불상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미륵불로 신봉되고 있으나, 도상 자체는 관세음보살상으로 알려져 있다.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은진 미륵)

14. 청동 은입사 포류 수금무늬 정병

2820.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고려, 37.5cm, 국보 제92호, 국립중앙박물관.

고려 시대 금속 정병 중 가장 뛰어난 작품. 정병이란 불상이나 불화에서 나타나듯이 불교의 18지물의 하나로, 신성한 물을 담거나 혹은 버드나무 가지 등을 꽂는 정결한 꽃병처럼 사용하였다. 정병은 중국을 통해 전해진 서래의 양식이나 고려에서 가장 세련된 형태로 발전한다. 본래는 깨끗한 물병을 담는 모든 그릇을 지칭하였다. 고려 도경에 민간에서도 정병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찰에서 이러한 형태의 정병이 사용되면서 점차 이 형태로 고정되어간 듯하다.

표면에 옛스런 청색의 녹이 고루 나 더욱 아름다우며, 그것이 무늬의 은입사 색깔과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높은 품격을 자아냄. 버드나무 밑의 갈대가 우거진 물가에는 낚시꾼이 앉았고 물 위에는 고깃배와 오리가 떠 있다. 하늘에는 기러기가 날되 멀고 가까운 거리감을 기러기의 형태로 구별, 표현하고 있다. 무늬가 금속을 사용하였으되 붓으로 그린 그림을 보는 듯하다. 고려 금속 공예의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줌.



15. 화성 용주사 범종


2633. 용주사 범종 (龍珠寺梵鐘)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 용주사에 있는 고려 중기의 범종. 높이 144㎝, 입지름 87㎝. 국보 제120호. 고려 전기의 동종으로서는 드물게 보는 거종의 하나이며 신라 동종의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동종의 정상에는 용뉴(龍瞿)와 용통(甬筒)을 갖추었고, 특히 용통은 세잔한 연주문(聯珠文)으로 돌려서 6단으로 구분하고 당초문(唐草文)과 연판(蓮瓣)으로 장식하였는데, 연판은 원형·반원형·타원형 등 여러 형태이다. 종정(鐘頂)의 천판(天板)에는 문양이 없으며 상대(上臺)와 하대(下臺)의 문양은 서로 다른 형태의 문양대로 장식하였다.

다만 동일한 것은 상대·하대 유곽(乳廓)·당좌(撞座) 등의 내외 둘레만 세잔한 연주문대로 하였고 그 내부에 화려한 문양대로 장식한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상대의 문양은 반원권(半圓圈) 문양을 상하 엇갈려서 장식하고 그 사이사이에 당초문으로 장식하였으며, 하대의 문양은 상대와 달리 연속되는 당초문으로 장식한 것이 다르다.

특히, 하대의 당초문에 있어서 당초가 한번 선곡(旋曲)하는 중앙에 8판 내지 9판의 연화문을 독립시켜 배치한 것이 이색적이다. 유곽 역시 연주문대 내에 당초문으로 장식하였고, 유두(乳頭)는 원형의 연판좌 위에 돌기된 9개의 유두를 가지고 있다.

4개소의 유곽 밑으로 원형의 당좌를 배치하고 있는데, 연화를 주문양으로 하고 그 둘레에 연주문대를 돌리고 다시 당초문으로 돌린 다음 또다시 연주문대로 조식하였다. 종신(鐘身)에는 천의를 날리며 승천하는 비천상(飛天像)과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채 두광을 갖추고 합장하여 승천하는 3존상을 교대로 배치한 특수한 양식이다.

원래 이 동종은 무명종(無銘鐘)이었으나, 후각한 명문이 있어 이에 따라 854년(문성왕 16)에 주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이는 동종의 형태와 일치되지 않는다. 종신의 1개소에는 32자의 명문이 각명(刻銘)되어 있고, 또 1개소에는 55자의 명문이 각명되어 있다. 또한, 이 동종은 신라동종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고려 전기의 종으로, 반원권 문양을 상대에 장식하고 있는 점은 주목된다.

≪참고문헌≫

文化財大觀 2-國寶 2-(韓國文化財保護協會, 大學堂, 1986).

<이호관>

사진 출전 : 문화재청 홈페이지, 두산세계대백과엔싸이버
내용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화성 용주사 범종. 문화재청 사진

화성 용주사 범종 비천문.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사진

16. 해남 대흥사 탑산사 종


2635. 탑산사동종(塔山寺銅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大興寺)에 있는 고려 후기의 종. 높이 79㎝, 입지름 43㎝. 보물 제88호. 본래 탑산사에 있던 종으로서, 일제 강점기에 만일암(晩日庵)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겨져 보존되어 오고 있으며, 일명 대흥사 동종이라고도 한다.

종의 상부 천판 위에 부착되어 있는 용뉴(龍瞿)는 정교하게 처리되어 매우 사실적이고 박력 있는 용두(龍頭)를 갖추었고, 앞으로 힘있게 뻗은 왼발에는 여의주를 잡고 있다. 용통(甬筒)은 상·중·하의 3단으로 구분되어 단마다 당초문(唐草文)을 새겨 넣었으며, 천판과 상대(上帶) 계연상(界緣上)에는 섬세하게 처리한 연판(蓮瓣)을 촘촘히 세우고 있다.

상·하대 유곽(乳廓)에는 모두 상하 또는 내외로 연주문대(連珠文帶)를 돌리고, 그 내부를 화려한 보상화(寶相花) 같은 중판연화(重瓣蓮花)로 장식하였다. 유곽 안의 유두(乳頭)는 6판중엽의 연화에 자방(子房)이 돌기된 9개의 연화유(蓮花乳)를 배치하였고, 종신(鐘身)에는 4개의 당좌(幢座)와 보살상 4구(軀)를 서로 교대로 배치하고 있다.

당좌는 연주원권(連珠圓圈) 안에 8엽중판의 연화당좌로 되어 있고, 보살상은 광배(光背)를 갖추고 연화좌에 앉아 구름 위에 떠 있는 듯이 표현되어 있다. 종신에는 '癸巳十月日塔山寺火香徒(계사10월일탑산사화향도)'라는 음각명과 '萬曆二十年己亥十二月日(만력20년기해12월일)'이라는 추각명(追刻銘)의 명문이 적혀 있어 종의 내력을 밝혀 주고 있다.

이 종은 신라종의 형식을 계승한 중형(中型)의 종으로, 문양의 조식방법이나 양식수법이 매우 섬세하고 고조(古調)를 잃지 않은 대표적인 고려 후기 종의 하나이다. 특히, 종신에 있는 명문 가운데 '계사(癸巳)'에 관하여서는 현재까지도 여러 가지 해석이 내려지고 있다. 이 종은 타종할 수 있도록 종각에 걸려 있지 않고 나무로 된 받침 위에 놓여 있다.

≪참고문헌≫

韓國鐘硏究(廉永夏,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4).

<이호관>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해남 대흥사 탑산사 종. 문화재청 사진

17. 혜허의 양류관음도


3130. 혜허의 양류관음도

고려 후기, 혜허 그림, 144cm×62.6cm, 비단 채색, 일본 도쿄 센소지(淺草寺) 소장.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 작자를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고려 수월관음도 중에서 구도와 형태가 특이한 그림이다. 대각선적 구도는 다른 수월관음도와 비슷하지만 버들잎 속에 서 있는 입상이나 화면  오른쪽의 절벽과 대나무가 없어지고 버들잎 광배가 화면의 중심을 압도하는 구도는 이 상의 독특한 특징이다. 역시 풍만하고 여유로운 표정,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된 어깨의 곡선이나 완만한 굴곡을 이루는 신체의 흐름, 오른쪽으로 휘어진 늘씬한 자태 등은 당대 왕공 귀족들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혜허의 양류관음상

18. 부석사 조사당 사천왕상, 보살상


3022. 영주 부석사 조사당 벽화 (두산)

부석사 조사당 벽화 사천왕 중 서방 광목천왕. 국보 제46호. 두산세계대백과사전엔싸이버 사진부석사 조사당 벽화 범천. 국보 제46호. 두산세계대백과사전엔싸이버 사진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浮石面) 북지리(北枝里) 부석사에 있는 고려 말기의 벽화.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46호로 지정되었다.

모두 6폭이며, 각각의 크기는 가로 75cm, 세로 205cm이다. 원래 부석사의 창건 당시 조사당 벽면에 그려져 있던 벽화인데, 현재는 이 벽면 전체를 그대로 떼어내어 안전장치를 한 후에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 안에 보관하고 있다.

조사당 벽면에 있던 원래의 위치 순서대로 열거하면 ① 보살상(菩薩像), ② 다문천왕상(多聞天王像) ③ 광목천왕상(廣目天王像), ④ 증장천왕상(增長天王像), ⑤ 지국천왕상(持國天王像), ⑥ 보살상(菩薩像)으로 되어 있다.

이들 벽화는 흙벽 위에 녹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붉은색, 금색, 녹색, 백색 등으로 짙게 채색하였다. 양 보살상은 풍만하면서도 우아한 귀부인상으로 정적이고도 유려한 선(線)을 잘 구사하여 그렸다. 또한 가운데의 사천왕상은 악귀를 밟고 서서 무섭게 노려보는 모습으로, 힘차고 동적인 먹선으로 윤곽을 그렸고 그 안에 채색을 하였다.

1916년의 수리공사 때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으로 미루어 조사당을 세운 연대가 고려 우왕 3년(1377)임이 밝혀졌으며, 벽화를 그린 연대도 같은 시기일 것으로 추측된다.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벽화는 이 조사당벽화를 비롯해서 개성 수락암동(水落巖洞) 고분벽화, 개풍군 공민왕릉(恭愍王陵) 벽화 등이 있으나 예술적 가치나 보존 상태로 보아 이 벽화가 가장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남아 있는 벽화로서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그 의의가 크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