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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3-21 (목) 23:48
분 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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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고구려미술 (두산)
고구려미술 高句麗美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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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총 수렵도BC 1세기에서 7세기까지 약 700여 년 동안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걸쳐 그 판도를 넓히고 있던 고구려에서 일어난 미술.

I. 개관

화화·조각·공예·건축 등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우선 회화에서는, 수많은 각종 그림들이 그려졌을 것이나 오늘날은 무덤의 내부에 그려진 벽화만이 알려져 있다. 조각에서는 돌사자, 계단깃돌에 새긴 돌사자, 불상 같은 것이 남아 있다. 공예는 무덤에서 출토된 장신구류·토기류와, 절터·궁터 등에서 발견된 기와·벽돌 등이 남아 있는데, 성곽과 무덤은 일반적으로 따로 취급하고 있다.

[회화]

고구려 무덤의 내부에 그린 고분벽화는 회를 바른 벽면 또는 돌벽에 그렸는데, 그 내용은 인물화, 풍속화, 동식물화와 산수화, 신비화, 천체도, 건축 의장, 장식무늬 등 다양하다. 이를 주제에 따라 몇 개의 유형으로 나누면, 인물풍속도, 인물풍속도 및 사신도(四神圖), 장식무늬, 장식무늬 및 사신도, 사신도의 5가지로 분류된다. 그러나 장식무늬는 모든 벽화에 그려져 있으므로 부차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 다시 나누면 인물풍속도, 인물풍속도 및 사신도, 사신도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인물풍속도>

안악3호분 행렬도주인공의 생전의 실내 생활을 주로 그린 것이다. 주인공을 그린 그림의 위치는 왼쪽벽 또는 뒷벽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무덤에는 기둥ㆍ두공(枓뱀)ㆍ도리 및 창방 등을 그려서 널방 내부를 목조건물과 같이 보이게 하였고, 각종 장식 무늬로써 방안과 같이 아담하고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각 벽에는 주인공의 실내생활을 비롯하여 주인공의 위엄을 나타내는 위풍당당한 행렬도(行列圖)와 힘차고 생동감이 넘쳐 흐르는 수렵도(狩獵圖)ㆍ전투도 외에 씨름ㆍ무악ㆍ남녀인물상ㆍ수문장 등 실생활을 묘사한 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또 장방(帳房)ㆍ전각(殿閣)ㆍ성곽ㆍ부엌ㆍ방앗간ㆍ푸줏간ㆍ우물ㆍ차고ㆍ마구간ㆍ외양간 등의 각종 건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천장에는 해ㆍ달ㆍ별을 그려서 하늘, 즉 천체를 표시하였다. 한편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비천(飛天)ㆍ선인(仙人) 등도 천장에 그렸다. 인물풍속도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장방 안이나 장방 밖에 주인공의 분부를 기다리는 듯 앉았거나 서 있는 여러 시자(侍者)와 시녀(侍女)를 그 직분에 알맞게 그려놓은 점이다.

<인물풍속도 및 사신도>

무용총 천장 벽화인물풍속도에 비하여 더욱 복잡하고 다채롭다. 인물풍속도 및 사신도에서도 실내를 목조건물과 같이 보이게 하기 위하여 벽에 기둥ㆍ두공ㆍ도리ㆍ창방 등을 그렸다. 한편 요동성총(遼東城塚)ㆍ쌍영총(雙楹塚)ㆍ팔청리벽화고분(八淸里壁畵古墳) 등에는 8각 또는 4각의 돌기둥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그림으로 기둥과 두공을 그렸다. 특히 벽화와 함께 우수한 건축기술과 건축미를 자랑할 수 있는 천왕지신총(天王地神塚)의 구조는 매우 뛰어나다.

그리고 대안리 제1호분(大安里第一號墳)에는 실물 활기를 벽 모서리에 붙이고, 그 활기를 기둥 대신에 힘센 장사(壯士)가 받쳐 든 모습을 그렸으며, 세방무덤[三室塚]에는 기둥과 두공을 그리고 겸하여 돌을 받쳐 든 장사를 그렸다.

네 벽면에는 주인공의 실내 생활 장면ㆍ행렬도ㆍ수렵도ㆍ무악ㆍ씨름장면ㆍ공양도ㆍ직녀도(織女圖)ㆍ전투도ㆍ남녀인물상ㆍ수문장(守門將) 등과 장방ㆍ성곽ㆍ전각ㆍ부엌ㆍ방앗간ㆍ외양간ㆍ마구간 등 각종 건물을 그렸으며 또 사신도도 그렸다. 그리고 천장에는 해ㆍ달ㆍ별과, 비천ㆍ신선ㆍ기린ㆍ봉황ㆍ이금괴수(異禽怪獸) 및 사신수(四神獸)인 청룡ㆍ백호ㆍ주작ㆍ현무 등을 그리기도 하고, 각종 아름다운 무늬로 다채롭게 장식하기도 했다. 문 입구에 그린 수문장은 문을 지키는 신을 의미한 것으로 보이며, 공양도 및 비천은 불교신앙을 반영하는 것이고, 신선은 장생불로(長生不老)할 수 있다는 신선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오회분 주악도비천은 하늘을 날면서 연꽃을 뿌리며 각종 악기를 연주하고, 신선은 십장생(十長生)에 드는 학ㆍ사슴과 상서로운 동물인 기린ㆍ봉황과, 이상한 짐승 또는 범ㆍ용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사신은 방위신인데 방위신에는 청룡ㆍ백호ㆍ현무ㆍ주작ㆍ황룡의 다섯 신수(神獸)가 있다. 그러나 흔히 황룡을 뺀 나머지 네 신수를 사신이라고 한다. 이 방위신의 사상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및 이십팔수법(二十八宿法)과 관련된 것이다. 즉, 28개의 별자리를 중앙ㆍ동ㆍ서ㆍ남ㆍ북의 다섯 방향에 따라 나누고, 그 별자리들의 모양을 따서 환상적인 신수를 만들어 그것을 숭배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방위신이다.

방위신은 방위에 따라 빛과 형태를 각기 달리하며, 중앙에는 황룡, 동에는 청룡, 서에는 백호, 남에는 주작, 북에는 현무가 있다. 한편, 비천ㆍ신선 및 이상한 짐승 등을 벽화 내용으로 그린 것은, 불교의 영향도 있겠으나 동양적 신비사상의 소산으로 보이며, 벽사(폄邪)ㆍ수호(守護)ㆍ상서(祥瑞)ㆍ영원(永遠)ㆍ청정(淸淨) 등을 뜻하는 그림으로서, 중국의 한(漢)ㆍ위(魏)ㆍ육조시대(六朝時代)에 즐겨 그렸던 것들이다.

<사신도>

강서대묘 현무도유해를 안치하는 널방[玄室] 벽면에 청룡ㆍ백호ㆍ현무ㆍ주작 등 사신을 그렸다. 일부 벽화에서는 벽면에 사신도를 그리고 나머지 공벽에는 산수도ㆍ구름무늬ㆍ초롱무늬ㆍ인동잎 위에 사람이 선 그림이 들어 있는 나뭇잎무늬, 불꽃무늬 또는 인동무늬가 들어 있는 나뭇잎무늬 등을 가득 그려서, 마치 장식무늬 바탕에 사신도를 그린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널길[羨道]에는 수문장을 그렸고, 벽 모서리에는 굄돌을 받쳐 든 괴수를 그리기도 하였다.

천장 복판에는 황룡 또는 연꽃무늬를 그렸으며, 천장의 굄돌에는 해ㆍ달ㆍ별ㆍ산수ㆍ나무ㆍ비천ㆍ신선ㆍ이상한 짐승ㆍ기린ㆍ봉황ㆍ연꽃무늬ㆍ구름무늬ㆍ엉킨 용무늬 등 다채로운 장식무늬를 그려 화면을 장식하였다. 이렇게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우수한 솜씨로 그려졌다.

고구려 벽화의 기법은 회를 바른 벽면이나 돌벽에 먹선으로 밑그림을 그린 다음에 여러 색으로 구륵(鉤勒)하여 그리기도 하고, 또는 밑선을 긋지 않고 색채를 써서 백묘(白描)도 하였다. 밑그림을 그리는 먹선에는 좋은 유연묵(油煙墨)을 사용하였다. 돌벽에 직접 그릴 때에는 돌벽에 호분(胡粉)으로 엷게 밑바탕 칠을 하고, 그 위에 주색(朱色)이나 직접 먹색으로 기본형태를 잡는 밑그림을 그리고 나서, 결정적인 먹선으로 백묘를 하고 최후에 채색을 하였다.

그리고 밑그림이나 잘못된 그림은 다시 호분을 칠하여 그 자국을 지워나갔고, 밑그림을 그릴 때에는 정확한 형태를 잡기 위하여 우선 데생(dessin)하였음을 안악 제3호분(安岳第三號墳)의 말 그림에서 볼 수 있다. 밑그림은 일반적으로 먹선으로 그렸으나, 그 밑선은 주선(朱線) 또는 참대 꼬챙이 같은 것으로 긋기도 하였다. 이 밖에 원형이나 직선을 그을 때에는 자와 컴퍼스를 사용하였다.

강서중묘 청룡도물상(物像)의 묘사에는 가는 먹선과 굵은 먹선을 섞어서, 대상의 모든 세부를 집약하여 특징만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간필묘적(簡筆描的)인 기법으로 그리기도 하였고, 대상의 세부를 치밀하고 구체적으로 나타내려고 세화적(細畵的)인 수법을 쓰기도 하였다. 그 필치는 세련되고 원숙하며, 섬세하면서도 억세고 호탕한 기세를 보여준다.

벽화에 사용된 채색의 종류는 검은색을 주로 하여 붉은색·누런색·자주색·푸른색·초록색·흰색 등을 사용하였는데, 붉은색은 다시 적·주·홍·자색 등 4색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다른 색도 농담(濃淡)의 변화가 풍부하여 다양한 색감을 준다. 때로는 중화군 진파리(眞坡里) 제4호분의 벽화에서와 같이 금분(金粉)을 쓰기도 하였고, 또 중국 퉁거우[通溝] 제4호분의 벽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덧칠을 한다든지 꽃술을 나타내는 데 금동(金銅) 같은 금속을 이용한 예도 있다. 벽화의 구도에서는 정연한 배치로 체계적으로 짜여진 것도 있으나, 한 벽면에 있는 2개의 주제가 서로 한계(限界)가 분명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무용총(舞踊塚) 벽화의 경우와 같이, 한 벽면에 주제를 달리하는 수렵도와 우교차도(牛轎車圖) 사이에 큰 나무를 그려서 화면을 좌우로 명확하게 갈라놓은 것도 있다. 한편, 공간처리에서는 별로 고려하지 않았으며, 원근을 나타내는 데도 사물의 형태를 크고 작게 그린다든지, 또는 계단식 배열법을 취한 경우가 많아 대체로 평면적이다. 특색으로 중요한 것은 크게 그리고 종속적인 것은 대개 작게 그렸다는 점인데, 이로 말미암아 주인이 시종보다 엄청나게 크게 그려지고, 산 위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가 산보다도 더 크게 그려지는 등 실물 상호간의 비례가 흔히 무시되었다.

다시 말하면, 벽화의 그림들은 사물의 크기 비례를 자연의 현실적 비례에 맞추어 그린 것이 아니라, 사물 형상의 중요성에 따라, 또 인물 형상의 경우에는 엄격한 위계제도(位階制度)에 맞추어 그렸다는 것이다. 이는 미술사적으로 볼 때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한편, 벽화의 배치상태는 무질서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나, 사건들을 벽면의 임의의 장소에 맹목적으로 나열한 것만은 아니다.

문지기인 수문장은 반드시 문 입구에 그렸고, 하늘에 있는 해ㆍ달ㆍ별은 천장에 그렸는데, 해는 동쪽에, 달은 서쪽에, 북두칠성은 북쪽에 두었다. 그리고 비천ㆍ선인 등 하늘을 나는 사물도 천장에 그렸고, 수렵도는 대체로 서쪽 벽에 배치하였다. 또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행렬도는 북쪽을 향하여 전진하게 그렸으며, 방앗간ㆍ푸줏간ㆍ부엌 등 살림과 관계 있는 사물은 동쪽에 그렸다.

이러한 벽화의 배치는 구도상 일정한 규칙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형상의 진실성과 수준 높은 예술성과 함께 고구려 사람들의 진취적인 기상과 섬세한 정서감정이 한결같이 흐르고 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난 무덤의 주인공이 유계(幽界)에서 영원히 편안할 것을 기원하기 위해 그려진 유계의 미술이라고도 하겠다.

고구려 조각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남아 있는 고구려 조각의 유품은 지극히 소수이다. 돌에 새긴 조각품으로서 알려진 것에는 평양(平壤) 부근의 영명사지(永明寺址)의 계단 깃돌에 부각한 돌사자가 있는데, 불쑥 내민 가슴, 억센 앞다리, 부릅뜬 눈 등은 맹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돌사자의 예도 알려져 있다.

이 밖에 널리 알려진 것에는 현존하는 불상 5∼6구가 있다. 우선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을 들 수 있는데, 이 불상은 고구려의 것인데도 경남 의령군 대의면(大義面) 하촌리(下村里)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고구려 불상 중에서 가장 오래 된 것으로, 긴 명문이 음각된 매우 중요한 조각품이다. 불상은 둥근 연꽃무늬 대좌 위에 직립한 여래입상으로서, 큰 광배를 지니고 있으며, 나발(螺髮)의 육계(肉몲)가 머리 위에 둥글게 만들어졌고,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몸의 좌우와 밑에서 주름을 보인다. 광배 뒤에는 4행 47자의 조상명(造像銘)을 새겼는데, 그 첫머리에 연가(延嘉)라는 연호가 있으며, 을미년(乙未年)이라는 간지(干支)와 제작수법으로 보아 539년 또는 599년으로 추정된다.

또, 황해도 곡산군에서 발견된 신묘명 금동삼존불(辛卯銘金銅三尊佛)은 삼존 뒤에 큰 광배 1장이 있어 일광삼존(一光三尊)의 형식이다. 본존(本尊)은 육계가 크고 법의는 두꺼우며, 가슴 앞에 U자형의 옷주름이 있고 옷자락은 좌우 대칭으로 펴져 나갔다. 두 보살은 크기가 작고 모두 머리에 삼면관(三面冠)을 썼으며 법의는 길게 늘어져 대좌 밑까지 내려와 좌우로 크게 전개되었다. 광배 후면에는 8행 68자의 명문이 있는데, 신묘(辛卯)라는 명문에 의하여 서기 571년으로 추정된다.

좌상(坐像)으로서는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 중 금동미륵반가상(金銅彌勒半跏像)은 평양의 평천리 사지(平川里寺址)에서 발견되었다. 삼면관을 썼고 얼굴을 약간 숙였으며 상체는 나형(裸形)이고 허리는 가늘다. 왼다리는 늘어뜨리고 오른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얹었으며, 오른팔은 팔꿈치를 오른쪽 무릎 위에 대었다. 오른손이 없어졌으나 손을 볼에 대고 있었음이 분명하며, 왼손으로는 왼쪽 발목을 잡고 있는 정형적인 반가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불상의 형식은 백제나 신라의 반가상과 동일하며, 확실한 고구려 유일의 반가상이다.

고구려에는 금동불상 이외에 이조불상(泥造佛像)이 있는데, 평남 평원군 덕산면(德山面) 원오리(元五里)의 폐사지(廢寺址)에서 발견된 이조여래좌상(泥造如來坐像)이 널리 알려져 있다. 여래좌상은 체발(剃髮)한 머리에 육계(肉몲)가 큰 편이고 눈은 감은듯 아래를 보고 있으며 입가에는 미소를 띠었다. 법의는 매우 두꺼우며, 옷주름은 가슴 앞에서 U자형을 이루었고 밑으로 여러 가닥의 주름이 흘러내리고 있다. 대좌는 높직하고 옷자락 밑에 큰 복련(覆蓮) 5잎이 조각되어 있다. 적막감과 동심을 느끼게 하는 불상이다.

고구려 공예

고구려의 공예품 중 장신구류에서 주목되는 것을 추려보면, 평양 부근의 고분에서 드러난 투각초화무늬 금동관[透刻草花文金銅冠]과 평양의 청암동토성(淸巖洞土城)에서 발견된 투각화염무늬 금동관[透刻火焰文金銅冠] 및 고분에서 드러난 금동귀걸이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중화군 진파리 제7호분에서 출토된 투각용봉무늬금동관형장식[透刻龍鳳文金銅冠形裝飾]이 있는데 그 용도는 분명하지 않다. 투각초화무늬 금동관은 폭이 좁은 금동관대에, 초화무늬를 투각한 금동입식을 앞면과 좌우에 각각 하나씩 세우고, 이 앞면의 입식에 접하여 뒷면 좌우에 투각한 사각형 장식을 각각 하나씩 부착한 구조의 것으로, 앞면 좌우의 입식 윗부분이 안으로 굽은 모양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흔히 보이는 절풍(折風)과 같은 인상을 준다.

또 투각화염무늬 금동관은 폭이 넓은 금동관대에 화염무늬를 투각한 금동입식 9개를 세우고, 관대 좌우에 옷고름 같은 수식을 각각 하나씩 달았다. 그리고 관대의 상단 둘레에는 인동무늬를 투각하고 하단 둘레에는 연주무늬[連珠文]을 돌렸으며, 상ㆍ하단의 중간에는 같은 간격으로 꽃모양 장식 7개를 배치하여 변화를 주었다.

이 금동관의 투각화염무늬 입식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관식(冠飾)과도 기본적으로 통하고, 또 중국 북위(北魏)의 금동삼존불(金銅三尊佛)의 광배에서도 볼 수 있다. 투각용봉무늬 금동관형 장식은 관모형을 이루고 있는데, 중앙에는 2겹의 주문대 원형(珠文帶圓形) 안에 태양을 상징하는 세발까마귀를 두고, 그 테두리에는 불꽃 비슷한 구름무늬를 새겼으며, 구름무늬 속의 윗부분에는 봉황, 아랫부분에는 용 2마리를 각각 배치하였다. 그리고 테두리에는 다시 넓고 좁은 2겹의 테를 두르고 그 사이에 구슬무늬[珠文]을 양각하였다.

무늬는 정교하고 치밀하며 유려한 흐름을 보여준다. 이 금동관 뒤에는 같은 형태의 나무관을 댔는데, 금동관과 나무관 사이에 비단벌레의 날개를 깔아 금녹색의 바탕을 만들어, 이것을 배경으로 하여 금동관을 두드러지게 한 세련된 솜씨이다. 비단벌레의 날개를 장식에 쓰는 수법은 신라의 금관총(金冠塚)에서 드러난 마구에도 보이고, 또 일본의 호류사[法隆寺]의 불감(佛龕)에서도 보이나, 그것은 한국 기술을 도입하여 이룬 것이다.

한편 금동귀걸이에는 신라에서 볼 수 있는 태환식(太豌式)은 없고 모두가 가는고리식[細豌式]이며, 가는 고리에 작은 고리를 달고 그 고리에 각추(角錐) 같은 장식을 매단 것이 기본형이다.

고구려 평양 토성리 출토 와당토기는 백제ㆍ가야ㆍ신라에 비하여 장기간에 걸쳐 존속하였고, 또 넓은 영역을 차지하였으나 그 유품은 지극히 드물다. 주거지나 고분에서 발견된 토기 유품을 보면, 부분적으로는 사리기[卷上法]에 의하여 성형하고, 낮은 온도에서 산화염(酸化焰)으로 구워낸 것도 있으나, 물레를 써서 성형하고 밀폐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낸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한식(漢式) 계통의 전통을 이은 회색연질토기(灰色軟質土器)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회도(灰陶)ㆍ흑회도(黑灰陶)ㆍ황록유도(黃綠釉陶)ㆍ채문도(彩文陶) 등이 알려지고 있다.

사리기법으로 만든 적갈색 토기도 있으나 주가 되는 것은 물레를 써서 성형한 토기이다. 가는 모래를 약간 섞고 차진 진흙을 잘 이겨서 만든 바탕흙에, 예새 같은 것으로 간 자리가 보이는 갈색마연토기와 흑색마연토기가 그것이다. 종류는 아가리가 넓적한 깊은 바리 모양의 단지ㆍ접시, 목이 짧고 배가 통통한 흑색마연도호, 네 귀가 달린 단지, 큰 띠손잡이가 4개 달린 시루, 뚝배기ㆍ보시기 등 다양하다.

황록유도는 도기에 황록유(釉)를 올린 것으로 종류에는 단지, 네 귀 달린 단지, 반(盤) 등이 있다. 채문도는 채색 돋을무늬의 도기로서 토포리대총(土浦里大塚)에서 드러난 뚜껑 2점 중의 하나는, 꼭지의 둘레에 8잎의 연꽃무늬를 그렸고, 측면에는 일종의 꽃모양의 무늬를 배치하였으며, 다른 하나는 앞의 것과 흡사하나 꼭지를 중심으로 연꽃무늬를 부각시켰다. 이 뚜껑의 무늬들은 우아하며 세련된 솜씨를 보여준다.

이 밖에 고구려의 도기 중에는 부뚜막ㆍ벼루ㆍ기대(器臺) 및 각종 명기(明器) 등이 있다. 다음은 기와와 벽돌 공예이다. 이는 중국 퉁거우지방의 고구려 유적과, 평양 원오리사지(元五里寺址) 및 안학궁지(安鶴宮址)를 비롯한 평양의 근교유적에서 많이 드러났다. 기와는 중요한 건축부재의 하나로서 그 용도에 따라 수키와ㆍ암키와ㆍ막새ㆍ치미(隋尾)ㆍ귀면기와ㆍ제형기와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훌륭한 공예품이다. 기와에는 다양한 무늬를 놓았는데 암키와에는 식물무늬ㆍ기하무늬 및 기타 무늬를 부각시켰다.

식물무늬로는 이깔잎무늬ㆍ넓은잎무늬ㆍ꽃무늬 같은 것이 보이며, 기하무늬로는 노끈무늬ㆍ돗자리무늬ㆍ멍석무늬ㆍ사격무늬ㆍ사각무늬와 원무늬ㆍ물결무늬 등이 흔하다. 기타 무늬에는 귀면ㆍ새ㆍ화염 같은 것이 보인다. 수키와에는 간단한 돋을 무늬의 것이 있다. 기와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막새기와이다. 막새에는 여러 무늬를 부각시켰으며, 그것은 대체로 연꽃무늬ㆍ인동무늬ㆍ귀면무늬 및 그 밖의 무늬로 나눌 수 있다. 다음은 귀면판이다.

이는 사각형과 구형의 판에서 아랫부분의 중앙을 반달형으로 도려 낸 2가지 모양이 있다. 귀면판에는 무섭고 흉물스러운 귀면이 부각되어 있으며, 귀면의 양미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은 이 판을 추녀마루나 두공(枓뱀)에 붙이기 위한 것이다. 치미에는 큰 것과 작은것의 2가지가 있으며, 안학궁과 평양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벽돌에는 사각형 벽돌ㆍ직사각형 벽돌ㆍ부채꼴 벽돌 등이 있다. 사각형 벽돌은 금강사지(金剛寺址)에서 발견되었는데, 집바닥 전면에 깔려 있었다. 직사각형 벽돌은 퉁거우ㆍ평양 등의 고구려 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무늬를 돋치거나 글귀를 새긴 것이 많다. 무늬는 대체로 기하무늬와 식물무늬로 나뉜다. 기하무늬로는 둥근 돈을 띠로 이어댄 돈띠무늬, 겹선으로 사격 또는 방격무늬를 놓고 그 속에 마름모형을 새긴 능형무늬가 대부분이다.

식물무늬로는 연꽃무늬ㆍ인동무늬 등이 흔히 보인다. 직사각형 벽돌에는 글자를 새긴 것도 있다. 태왕총(太王塚)에서는 ‘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이라고 쓴 벽돌이 나왔고, 천추총(千秋塚)에서는 ‘千秋萬歲永固’라고 쓴 벽돌이 나왔다. 이 벽돌들은 모두 이 무덤 주인공의 명복을 빌어 만든 것이다. 부채꼴 벽돌은 직사각형 벽돌이 한쪽으로 휜 모양으로 된 것이다. 그리고 바깥 옆면과 안쪽 옆면에 인동무늬를 여러 가지로 변형시킨 무늬를 부각한 것이 있다.

이 밖에 고구려의 공예에서는 옥공예(玉工藝)와 옻칠공예도 찾아볼 수 있는데, 옥공예품으로는 중국 지안[集安]에서 발견된 백옥귀잔이 있으며, 옻칠공예품으로는 안악 제3호분ㆍ강서중묘(江西中墓)ㆍ퉁거우 제12호분에서 출토된 칠판에 쓴 것으로 보이는 칠화 조각이 알려졌다. 강서중묘의 칠화 조각은 검은 칠을 두껍게 먹이고, 그 위에 흰색과 붉은색을 가지고 인동무늬와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봉황을 화려하게 그렸다.

이러한 공예품 이외에, 고구려 금속공예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금속공예품 1점이 신라 호우총(壺棹塚)에서 발견되었는데, 명문이 있는 청동호우(靑銅壺棹)이다. 깊숙한 물체에 뚜껑이 달린 합(盒)으로 몸체와 뚜껑의 표면에는 삼중의 동심횡대(同心橫帶)가 돌려 있고, 뚜껑 중앙에 달려 있는 오똑한 구형(球形) 꼭지는 연꽃에 싸여 있으며, 합 바닥에는 광개토왕(廣開土王)을 위해 만든 것으로 해석되는 명문이 양각되어 있다. 이와 같이 고구려의 공예는 수준이 높았다.

고구려 건축

고구려 집모양 토기살림집ㆍ궁전ㆍ사찰 등이 있다. 고구려의 살림집에 관한 자료로는 《삼국지(三國志)》 《신당서(新唐書)》 등의 문헌기록 및 고분벽화에 그려져 있는 주택 그림과 주택 유적 등이 있다. 문헌에 의하여 대옥(大屋)ㆍ소옥(小屋)ㆍ창고(倉庫) 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그 구체적 구조는 알 수 없다. 고구려 벽화고분 중에는 주택에 관계 있는 그림이 그려진 고분이 많다. 즉 쌍영총ㆍ천왕지신총ㆍ대안리 제1호분ㆍ안악 제1호분ㆍ퉁거우 제12호분 등에는 전각도(殿閣圖)가 있고, 안악 제3호분ㆍ약수리 벽화고분ㆍ무용총ㆍ각저총ㆍ퉁거우 제12호분ㆍ마선구 제1호분 등에는 주택의 부속건물 그림이 있다.

이런 벽화고분 중에서 쌍영총의 전각도를 보면, 용마루 끝에 망와(望瓦)가 달린 맞배지붕의 건물이 그려졌는데, 기둥은 가늘고 기둥머리에는 이중으로 보이는 두공이 달렸으며, 건물 측면은 기둥머리에 창방(昌枋)을 걸고, 기둥 위 주간(柱間)에는 측면에 하나, 정면에 5개의 ‘人’ 자형 대공(臺工)이 있으며, 또한 대공과 대공 사이에는 동자주(童子柱)를 세웠다. 측면의 ‘人’ 자형 대공머리에는 소루(小累)를 올리고 그것이 덧보를 받고 있으며, 덧보 위 중앙에 다시 같은 모양의 대공을 올려 중도리를 받게 하였다. 또 건물의 좌측에는 문짝을 달았다. 한편, 안악 제1호분의 전각도를 보면 주택에는 넓은 마당이 있고 주위에는 높은 담장을 돌렸으며, 그 안에 골기와를 이은 주택이 세워져 있다.

주택 유적에서 발굴된 집터를 보면, 평북 강계군(현 시중군) 노남리(魯南里) 제2호 집터는, 4개의 기둥구멍이 동서방향으로 1줄로 늘어서고, 2개의 온돌은 모두 외고리의 ‘T’자 모양으로 꺾인 긴 고래온돌이다. 아궁이는 남쪽에 있고 고래는 북쪽으로 뻗다가 서쪽으로 구부러졌으며, 집터의 바닥은 진흙으로 발랐다. 여기에서는 기와가 없어 서민층의 주택으로 보이며, 벽화의 그림은 지배층의 주택으로 여겨진다.

다음에, 고구려의 왕궁터로는 평양의 안학궁(安鶴宮)과 고구려 장안성 내의 궁성, 중국 둥베이지방 지안의 국내성(國內城) 등이 알려져 있다. 안학궁 안에는 대건축군과 정원이 들어차 있다. 궁전들은 대체로 남북으로 놓인 3개의 축에 따라 배치되었는데, 궁성 남문을 통하는 남북축이 중심축, 궁성 남벽의 동서문을 통하는 남북측이 보조축으로 되어 있다. 중심축 위에는 4개의 기본 궁전들이 놓여 있었고, 궁전들의 중앙 부분에는 대체로 주축자릿돌이 비어 있다. 이처럼 궁전자리는 알 수 있으나 그 위에 세워진 건물의 구조는 알 수 없다.

끝으로 그간에 알려진 절터의 한두 예를 들면, 우선 금강사지(金剛寺址)는 남북으로 놓인 축상에 문ㆍ탑ㆍ당을 차례로 세운 형식의 가람배치이고, 평양시 동쪽 청암리 토성 안에 위치한 청암리사지(淸巖里寺址)를 보면, 팔각전(八角殿)을 중심으로 동ㆍ서ㆍ북의 3면에 금당을 배치한 1탑 중심(一塔中心) 동서북 3금당식(東西北三金堂式) 가람배치이다. 이러한 가람배치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절인 아스카사[飛鳥寺]의 배치와도 같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고구려의 미술]

강서대묘 백호도고구려 예술의 특징은 와당(瓦當)의 귀신상(鬼神像)과 사신도(四神圖)의 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힘과 정열이 넘치고 있는 점이다. 특히 미술은 고분(古墳:굴식돌방무덤)에서 그 대표적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무용총ㆍ수렵총ㆍ각저총(角抵塚) 등의 초기 벽화는 고졸(古拙)하고, 감신총(龕神塚) 등 중기의 그림은 섬세하며 사실적(寫實的)이고, 사신총(四神塚) 등 후기 벽화는 웅대하며 건실하다.

강서고분(江西古墳)에 그려진 사신도(四神圖)는 벽화 중에서 최우수 작품으로 흑ㆍ백ㆍ청ㆍ주홍ㆍ갈색 등으로 빛깔의 조화미는 물론, 힘과 패기가 넘치며, 쌍영총(雙楹塚)의 기마상(騎馬像)ㆍ남녀입상(男女立像), 30여 인물행렬도와 풍속도는 당시의 풍속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고구려' 항목 중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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