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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04 (금) 11:10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595      
[조선] 봉화 내성유곡권충재관계유적 (경북관광개발공사)
내성유곡권충재관계유적(乃城酉谷權沖齋關係遺蹟)

봉화 유곡(닭실마을) 전경. 경북관광개발공사 사진석천계곡(石泉溪谷), 닭실마을

문화재지정 : 사적 및 명승 제3호 (1963. 3. 28)
소재지 :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산131
수 량 : 216,192㎡
관리자 : 봉화군

이곳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충재(沖齋) 권벌(1478∼1548) 선생의 유적지이다. 선생은 안동 출신으로 중종(中宗) 2년(1507)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에 있던 중, 중종 15년(1520) 기묘사화에 연루 파직되어 이곳에 와서 농토를 마련하고 14년간 후진을 양성하며 경학에 몰두하였다. 선생은 중종 28년(1533) 복직되었으나 을사사화로 인하여 다시 파직되고, 그 후 전라도 구례와 평안도 삭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명종 3년(1548) 71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이곳에는 선생의 장자 청암(靑巖) 권동보(權東甫)가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청암정(靑巖亭)과 석천정(石泉亭)이 보존되어 있으며, 주위에는 울창한 송림과 아름다운 수석으로 싸여서 경관이 뛰어나게 수려하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擇里誌)』에서 이 지역을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경승지로 지적하고 있다.

봉화 유곡 석천계곡. 경북관광개발공사 사진1) 석천계곡(石泉溪谷)

소재지 :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삼계리

태백산에서 발원한 물이 응방산과 옥적봉을 지나면서 유곡옥수와 합쳐져 유곡에 이르면 시원한 계곡을 풀어 놓는데 바로 여기가 석천이다.

석천계곡은 주변 산세가 나즈막하고 소나무 숲이 울창하며, 골이 깊지 않아 계곡 깊숙히 들어갈 수 있다. 또 계곡 폭이 넓고 평평하며 넙적한 바위가 자리를 깔아 놓은 듯 계곡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하얀 바위 위로 투명한 물이 흘러내린다 때문에 석천계곡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피서지로도 적당하여 바위 위로 흐르는 계곡 물은 어린이들의 안전한 물놀이 장으로 손색이 없다.

석천계곡은 충재권벌의 장자인 청암 권동보가 지은 석천정은 봉화에서 생산되었던 유명한 춘양목을 재료로 지었으며, 난간에 기대어 계곡을 내려다보는 경치가 절경이다.

석천계곡과 석천정사에서 더위를 식힌 후 '닭실' 마을로 내려오면 충재권벌 유적지가 있다. 이 유적을 중심으로 계곡을 포함한 일대가 사적 및 명승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 동쪽의 옥적봉이 수닭, 서쪽은 백운령이 암탉을 닮은 지형이기 때문에 닭실이라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봉화 유곡 석천정사. 경북관광개발공사 사진2) 석천정사(石泉精舍)

소재지 : 봉화군 봉화읍 삼계리

봉화읍 삼계리 석천계곡에 소재하며 충재 권벌의 장자인 청암 권동보가 초계군수에 임명되었다가 향리에 돌아와 선지를 계승하여 창건한 정자로서 사적 및 명승 제3호 지정구역내에 보존관리되고 있다. 본 정자는 춘양목으로 지어졌으며 주위는 기암절벽과 노송으로 덮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3) 청암정(靑巖亭)

소재지 :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닭실 마을

봉화 유곡 청암정. 경북관광개발공사 사진충정공 충재 권벌이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재하고 우찬성까지 올랐다. 명종 때 윤원형이 윤임, 류관, 류인숙 등 3대신을 배척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삭주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쳤으며 선조 때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본 정자는 충재(沖齋) 권벌(權 )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유곡(酉谷)에 자리잡아 15년간 은거하여 도학연구에 몰두하며 장자 권동보와 함께 구암상(龜岩上)에 건립한 정자로서 건축양식이 뛰어나고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정자 둘레로 물이 흐르고 그밖은 나무 울타리가 쳐있으며 동·남·북쪽으로 3개의 문이 있으며 정자 1동외에 충재선생께서 공부하던 별채가 있다.

<청암정의 유래>

청암정은 충정공 충재 권벌이 공부하며 놀던 정자인데 거북모양의 바위 위에 세워졌다. 처음 지을 때에는 온돌방으로 하였는데 그 온돌방에 불을 넣으니 바위가 울었다. 그러던 중 한 노승이 지나다가 말하기를 이는 거북 등에다 불을 지르는 것이니 마루 방으로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 말대로 마루방을 만들었는데 아직도 온돌방에 불을 땐 흔적이 남아 있다.

이것은 조선조 명종 때 건립된 것인데 주위는 향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꾸몄다. 못을 만들었는데 그 이유인즉 거북은 물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논에 물이 말라도 이 못에는 항상 물을 대었다 한다. 지금도 청암정 못에는 물이 고이고 있다.

출전 : 경북관광개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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