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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6-07 (목) 22:32
분 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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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405      
[남북국] 2190. 김생의 글씨(집자본)

2190. 김생의 글씨(집자본)

《삼국사기》 열전 권8에 따르면 김생(711∼791)은 비천한 가문 출신으로 711년(성덕왕 10년)에 나서 80세 이상(원성왕)을 살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으며, 죽을 때까지 글씨 쓰기를 쉬지 않았다. 예서, 행서, 초서에 모두 능통하였으며, 고려시대까지 그의 필적이 전해져 그것을 보배로 여겼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김생이 왕희지체를 잘 썼다고 하는 예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숭녕 년간(1102∼1106, 고려 숙종 7년∼예종 1년)에 학사 홍관(洪灌)이 진봉사(進奉使)를 따라 송나라에 들어가서 변경(卞京)의 객관에서 묵고 있었는데, 이때 한림대조(翰林待詔) 양구(楊球)와 이혁(李革)이 황제의 조칙을 받들고 객관에 이르러 족자에 글씨를 청하니, 홍관이 김생의 행서, 초서 한 권을 그들에게 보였다.

두 사람이 크게 놀라면서 말했다.

"오늘 왕우군(王右軍:왕희지)이 손수 쓴 글씨를 얻어 볼 줄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홍관은 말하였다.

"이는 그렇지 않소. 이것은 곧 신라 사람 김생이 쓴 글씨요."
두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천하에 왕우군을 제외하고는 어찌 이와 같이 잘 쓴 글씨가 있겠소?"
홍관이 여러번 말해도 이를 믿지 않았다.

이 글씨는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것으로,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비석을 탁본한 단행본 법첩(法帖)인 '전유암산가서(田遊巖山家書)'의 끝부분이다. 새기는 방법이 정교하지 못하여 글자의 원형을 제대로 살리지는 못하였으나, 法보다 멋을 중시한 것와 파격적인 조형미를 느낄 수 있다.

김생의 글씨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낭공대사비(朗空大師碑)를 꼽는데, 고려 시대에 김생의 글씨를 집자(集字)한 것이다. 김생의 글씨체는 왕희지체를 기본으로 중국 육조 시대의 필의(筆意)와 당대(唐代) 저수량의 서풍에서 취한 것이 많다.

한 획을 긋는 데에도 굵기가 단조롭지 않아 반드시 변화를 일으키며, 선은 곡직(曲直)의 미묘한 운율을 구사하였다. 결구(結構)에 있어서는 음양향배(陰陽向背)의 묘를 느낄 수 있게 하여 과거 어떤 사람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서법을 창안하였다. 김생의 서품(書品)은 한국에서뿐 아니라, 중국의 역대 서예가 가운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격조와 재기를 겸비한 신품(神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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