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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9-28 (토) 09:27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331      
[조선] 영주 소수서원 (문화재청)
소수서원 紹修書院

소수서원 전경. 문화재청 사진

소수서원 명륜당. 문화재청 사진

소수서원 일신재. 문화재청 사진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1. 사적 제55호.

<기본 설명>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린 사액서원이자 사학(私學)기관이다.

조선 중종 36년(1541)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을 제사하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가, 중종 38년(1543)에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백운동서원이라 하였다. 명종 5년(1550)에는 풍기군수 이황의 요청에 의해 ‘소수서원’이라 사액을 받고 나라의 공인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 중종 39년(1544)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제사지냈고, 인조 11년(1633)에는 주세붕을 더하여 제사지냈다.

서원의 건물은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되었는데, 일반적인 서원의 배치가 완성되기 이전인 초기의 서원이기 때문인 듯하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학생들이 머물며 공부하는 일신재와 직방재가 연속으로 있다. 서원의 일반 배치가 강당 좌우에 대칭으로 동·서재를 두는 것인데 비해, 소수서원은 현판의 이름으로서 구분하였다.

사당은 명륜당의 서북쪽에 따로 쌓은 담장 안에 있다. 서원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통일신라시대의 절인 숙수사가 있었는데, 그 유적으로 당간지주와 초석 등이 남아있다.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후기에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지금도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전문 설명>

조선 중종 37년(1542)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이곳 출신의 유학자인 안유(安裕(珦))를 제사사기 위해 사당을 세우고 그 다음 해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라 하였으며, 1544년에는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추가하여 배향하였다. 명종 1년(1546)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안현(安玹)은 서원의 행사(享祀)에서부터 학전(學田)과 서적의 운용, 노비와 원속(院屬)의 관리 등 서원유지에 필요한 제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명종 5년(1550)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의 건의로 '소수서원(紹修書院)' 이라는 사액(賜額)과 사서(四書)·오경(五經)·성리대전(性理大典) 등을 하사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어 공인된 교육기관이 되었다. 이렇게 소수서원을 효시로 선현(先賢) 배향(配享)과 지방교육을 담당하는 기능을 가지면서 여기 저기 많은 서원이 세워지고 이것은 향촌사림(鄕村士林)의 정치·사회적 기구로 정착하게 되면서 권력 단체가 되기도 하였다. 인조 11년(1633)에 주세붕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조선말 대원군의 서원철폐시에도 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지금도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享祀)를 지낸다.

이 서원에 관한 기록으로 '소수서원실기(紹修書院實記)'와 '죽계록(竹溪錄)', '신재연부(愼齋年譜)', '회헌실기(晦軒實記)' 등이 있다. 이곳에는 원래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인 숙수사(宿守寺)가 있었는데, 이를 철폐시키고 서원을 건립하여 지금도 그 유적으로 당간지주와 초석 등이 남아 있다.

이 서원의 배치는 전성기의 일반적인 배치와는 달리 비교적 자유롭다. 전체적으로 남향을 하고 있는데, 동쪽에는 죽계(竹溪)가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백운동(白雲洞)'이란 현판을 붙인 강당이 남북 장방형으로 놓여 있는데, 도리칸 4칸 보칸 3칸의 초익공(初翼工) 팔작집이다. 이 내부 대청의 북면에는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 紹修書院 」'이란 편액이 높이 걸려있다.

강당의 뒤편에는 동·서편에 '일신재(日新齋)'와 '직방재(直方齋)'란 편액이 좌우로 걸린 장방형의 재실(齋室)이 있다. 정면 6칸에는 가운데 2칸은 마루를 두고, 좌우에는 각 2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그리고 그 동북편에는 학구재(學求齋)와 지락재(至樂齋)가 축을 직교하게 놓였다.

또 서편에는 별도로 담장을 둘러 남향에 놓인 사당 즉 문성공묘(文宬公廟)가 있는데 여기에는 안향(安珦)을 주향하고 안보(安輔)와 안축(安軸) 및 주세붕(周世鵬)을 좌우에 배향하였다. 그 뒤에 전사청(典祀廳)과 국보인 회헌영정(晦軒影幀)(안향의 영정), 보물인 주세붕 영정과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 등이 보존 되어 있는 새로 세운 영정각(影禎閣) 이 있다.

출전 : 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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