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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04-17 (토) 23:55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679      
[미술] 그리스미술 (두산)
그리스미술 Greek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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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0세기부터 BC 1세기 말 로마에 정복되기까지의 약 9세기에 걸쳐 그리스와 남부 이탈리아·에게해 주변 지방 등지에서 번영하여 오리엔트 세계로 전파된 미술.

I. 개관

건축이나 조각의 초기 양식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등 오리엔트 미술의 영향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형식을 배운 데 지나지 않고, 그 세부적 표현에는 그리스의 독자적 양식과 정신이 내포되어 있다.

이를테면 이집트에서의 그리스 조형(造形)은 그들 종교관과 같이 전통과 형식 속에 정지해 있는 데 비해, 그리스에서는 종교가 현세적(現世的)이어서 그 조형은 사실적이며 동적(動的)이다. 그래서 그 미술은 정체되는 일이 없이 항상 종전의 형식을 깨뜨리고 발전시켜, 그들의 이상미(理想美)를 형성해나갔다.

그리스 미술의 특질은 다른 어떤 민족에게서도 볼 수 없던 인간을 중심으로 한 합리성의 추구였다. 인간만이 자연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고 있던 그리스인은 인간의 현실적인 모습을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 완전한 이상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그것은 조화·통일·균정(均整)에 의한 이상미의 탐구인 것이다. 그리스 미술이 이전의 크레타·미케네 미술을 그 바탕에서 계승했으면서도, 그것들과는 다르게 발전한 원인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II. 건축

그리스 건축의 예술적 달성은 대리석으로 만든 신전 ·극장 ·스토아(stoa), 그리고 다른 공공건물이나 기념비적 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으뜸 가는 현존 건축양식은 서양건축의 기본적 양식으로서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그리스의 신전은 최초에는 목재, 다음에는 석회석과 같은 무른 석재들로 지어졌으나, 마지막에는 대리석으로 바뀌었다. 그리스 신전은 신의 주거(住居)이며, 신상을 모시는 건물로서, 그 안에 모여 제례의식(祭禮儀式)을 행하는 장소는 아니다. 따라서 다른 종교적 건물이 내부 공간에 중점을 두는 것과는 달리, 외형적 모습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했다.

수평의 보[樑]와 수직의 기둥에 의한 단순하고 명석한 신전은 각 부분이 유기적 통일을 유지하고 아름다운 비례를 가지고 있어서 일종의 조소적(彫塑的) 성격을 보이고 있다. 신전의 원형(原形)은 미케네의 단순한 메갈론(megalon) 형식에서 발전한 것으로, 그 평면은 전실(前室) ·주실(主室) ·보고(寶庫)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간단한 구조는 인 안티스형(型)이라고 하며, 델포이의 성지(聖地)에 세워진 아테네인(人)의 보고, 시프노스인(人)의 보고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전면 또는 앞뒤에 열주를 가지는 형식을 프로스틸로스(prostylos), 신전 둘레에 1줄의 기둥을 둘러 세운 형식을 페리프테로스(peripteros), 2줄의 열주(列柱)를 세운 것을 디프테로스(dipteros)라고 한다.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은 페리프테로스, 디듀마의 아폴론신전이나 아테네의 올림피에이온은 디프테로스 형식의 대표적 신전이다.

그리스의 신전형식은 그 기둥의 양식(樣式)의 차이로 도리스식(Doric 式), 이오니아식(Ionic 式), 코린트식(Corinthian 式)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서 도리스식이 비교적 일찍이 도리스인(人)이 살고 있던 그리스 본토와 남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도리스식의 특징은 간소하고 기단(基壇)에 직접 원주(圓柱)가 세워졌으며, 위로 갈수록 굵기가 줄어든다. 기둥은 완만한 곡선형 배불림(entasis)이 있고, 기둥에 얕은 세로줄 홈이 패어 있다. 기둥머리(capital)에는 접시 모양의 원반과 사각형의 판석(板石)이 올려져 있고, 지붕을 받치는 수평부에는 2개의 트리글리프(triglyph) 사이에 사각 벽면인 메토프(metope)가 배치되어 있다.

이 도리스식 신전으로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올림피아의 헬라신전, 델포이나 코린트의 아폴론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신전, 파에스툼의 포세이돈신전,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 ·테세이온신전 등이 있는데, 이 신전들은 BC 7~BC 5세기 사이에 세워진 것이다.

이오니아식은 이오니아인들이 살고 있던 소아시아 서해안에서 생긴 양식으로, 형식은 도리스식과 거의 비슷하다. 도리스식이 묵직하고 장중하며 단정한 데 비해, 이오니아식은 기둥이 높고 가늘며, 세부에 걸쳐 조각 장식이 많이 있어서 경쾌하고 우아한 느낌을 준다. 예로부터 대체로 도리스식은 남성에, 이오니아식은 여성에 비유되었다.

기둥과 기단 사이에는 아름다운 주초(柱礎)가 끼워져 있고, 2개의 소용돌이 무늬를 연결한 특유한 기둥머리[柱頭]를 가지고 있다. 기둥 위 제일 아래의 하대(下帶)는 수평으로 삼분(三分)되어 있고, 중간대(frieze)는 트리글리프와 메토프 대신에 두루마리 그림 모양의 연속 부조(浮彫)가 새겨져 있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신전은 이 시기의 대표적 이오니아식 작품이었다. 아테네의 에렉테이온, 니케 아프테로스신전은 그 좋은 예이다. 델포이의 시프노스인의 보고는 인 안티스형의 이오니아식 소신전으로, 원주(圓柱) 대신에 여인상(女人像)이 사용되었다. 현재 정면만 원형으로 복원되어 델포이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코린트식은 BC 4세기에 들어서서 비로소 나타난 건축미술의 새로운 기법이다. 기둥머리[柱頭]는 원뿔형을 가운데서 잘라 뒤집어놓은 모양이며, 그 표면에 아칸서스의 잎과 덩굴이 얽힌 모양을 조각했다. 그 이외의 부분의 구성은 이오니아식과 거의 같으며, 비교적 자유로운 변화가 보인다.

전체로서는 이오니아식에 비해 한층 더 우아하고 화려한 것이 그 특징이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가까이에 있는 올림피에이온은 가장 현저한 코린트식 신전으로, 전면 8주(柱), 측면 20주의 이중주주식(二重周柱式)이며, 약 17 m 높이의 열주가 l04개나 늘어선 최대의 신전이다.

아테네의 리시크라테스의 합창대 우승기념비도 순수한 이 양식의 유일한 작품으로서, 사각형의 높은 대좌(臺座) 위의 코린트식 기둥 사이에 원당(圓堂:torus)을 두고, 원뿔형 지붕의 정점에는 상품인 삼각배(三脚杯)를 장식한 소박하나 아름다운 건물이다.

이러한 호사스러운 신전 건축과는 반대로 아르카이크 시대에서 고전시대 전기(前期)에 걸쳐, 본토에서 우세했던 도리스식은 점차 그 모습이 사라져갔다. 신전에는 이런 직사각형의 모양 이외에 원당도 건축되었다.

헬레니즘 후기에는 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을 배합한 혼합식도 생겼다.그리스의 극장은 오르케스트라 ·테아트론 ·스케네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오르케스트라는 중앙이 원형 평면으로 된 무대이며, 테아트론은 관람석으로서 반원형인 언덕 사면에 있는 동심원(同心圓)의 돌계단에 마련되었고, 스케네는 테아트론 맞은편에 있는 준비실이나 분장실이며 그 뒤에 열주랑(列柱廊)이 부설되어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남동쪽의 벼랑 밑에 펼쳐진 디오니소스극장은 현재 남아 있는 최고(最古)의 것으로, 관람객 수용 인원은 1만 4000명에 이른다. 에피다우로스의 극장은 가장 완전한 모습을 오늘날까지 보여준다.

스타디움은 긴 U자형 평면을 둘러싼 3방향에 관람석을 계단식으로 마련한 경기장(競技場)이다. 그 중 올림피아의 스타디움은 유명하지만 관람석이 흙으로 된 사면(斜面)뿐이며, 돌로 만든 관람석은 없었다. 아테네의 스타디움은 1896년에 재건되어, BC 4세기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전한다. 신전이나 극장 외에는 시(市)의 중심부인 공공광장(公共廣場)에 시민회장(市民會場)인 브레우테리온이나, 그 집행 기관의 건물인 프리타네이온, 시민의 휴식처인 동시에 물건을 사는 점포인 스토아 등의 공공건물이 죽 늘어서 있었다.

III. 조각

1. 미케네시대

이 시기의 그리스 조각은 크레타 미술의 모방과 그 양식을 따른 것이었지만, 그리스적 합리성과 추상성을 보여주었다.

2. 기하학양식시대

도리스인의 침입 후, 크레타 양식에서 이탈하고 새로운 양식으로서의 기하학양식(幾何學樣式)이 그리스 각지에서 생겨났다. 브론즈 소품들인 나체의 남자·전사(戰士)·말·괴수(怪獸) 등의 조각은 기하학 양식의 항아리 그림과 같이 신체의 마디가 강조되고, 추상화와 안정감이 강하며 생명력이 넘치지만 조소성이 충분하지 못하였다.

3. 아르카이크시대

BC 8세기 중반 이후 오리엔트 지방과 교류하면서부터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미술의 영향을 받아, BC 7세기부터 그리스 조각은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즉, 이때에 이르러 그리스 조각에는 등신대(等身大)의 상(像)이 나타나는데, 그 모습·표현·기교는 오리엔트 조각에서 배운 것이다. 이와 같은 상의 출현은 거의 신전 건축의 탄생과 시대를 같이한다.

신전의 박공(튀뱀), 메토프(metope)·프리즈(frieze)의 부조(浮彫)가 구도와 여러 자세 등을 요구하여 조각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델로스섬에서 출토된 《니칸드라의 헌납상》(아테네 고고학 미술관 소장), 《오세르의 부인상》(루브르미술관 소장)은 아르카이크 시대 최고(最古)의 조상(彫像)이다.

그 후 BC 600년경에 각지에서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등신대나 거대한 쿠로스상(靑年像)과 코레상(少女像)들이 만들어졌다. 쿠로스상은 나체로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고, 양손은 허리에 대고 바르게 서 있다. 그 모습이나 표현에는 이집트 조각의 영향이 강하다. 코레상은 항상 옷을 입고, 한 손은 가슴에 대거나 치마의 주름을 잡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조각의 대표적인 상으로는 스니온 출토의 《쿠로스상》, 디필론 출토의 《쿠로스상의 두부(頭部)》, 델포이미술관의 《클레오비스와 비톤의 형제상》 등이 거의 완전한 모양으로 남아 있다. 딱딱하지만 격렬할 정도로 생명력이 넘치는 초기의 상(像)에 비하여 중기 이후는 거의 등신대이거나 조금 더 커지며, 근육 표현은 한층 더 자연스러운 형태에 가까워진다.

이 시기의 조상(彫像)은 부드러운 머리, 아몬드(almond)형의 눈, ‘아르카이크 스마일’이라는 입 모습 표현이 특징이다. 아크로폴리스의 《모스코폴로스(송아지를 멘 청년)》상(像)이나, 아나비소스 출토 《쿠로스상》 등이 아르카이크 중기 양식의 좋은 예이다. 한편 코레상은 여신의 좌상을 포함하여 모두 옷을 입었으므로 쿠로스상이 굳건한 청년의 근육을 유기적(有機的)으로 표현한 데 비해, 코레상에서는 살갗과 옷 주름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이다.

아르카이크 시기의 모든 상의 입매에 보이는 특징은 인물에 생생한 감정을 부여하고 있다. 아르카이크 후기에는 육체의 유기적인 구성에 대한 관찰이 한층 더 높아진다. 이런 독립상에 병행하여 건축공간을 장식하는 조각으로서의 군상(群像) 조각이 만들어졌다. 케르키라섬의 《아르테미스신전 박공부조(튀뱀浮彫)》와 《푸른 수염》으로 알려진 아테네의 헤카톰페돈신전의 포로스 조각, 델포이의 시프노스인의 보고인 프리즈 등이 있다.

4. 고전시대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는 모든 면에서 현저한 발전을 이루고 새로이 고전기(古典期)를 꽃피웠다. BC 480년경부터 아르카이크 스마일이 사라지고, 묵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어 긴장한 시대의 정신과 생기를 나타낸다. 델포이의 브론즈 상 《마부(馬夫)》, 아이기나섬의 아파이아신전이나, 올림피아의 제우스신전의 힘찬 박공 조각 등은 아르카이크 시기에서 고전기로 향하는 과도기의 걸작이다.

BC 5세기 고전 전기(前期)의 조각은 조화와 균정(均整)에 의한 이상미(理想美)를 창조했다. 상(像)은 모두 단순하며 또 명석한 형식으로 정리되어 개개의 감정을 넘어선 정신을 보이며, 사실주의(寫實主義)가 이상(理想)의 경지에까지 높아졌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조각가는 미론인데, 그는 《원반 던지는 사람》이나 《아테나와 마르시아스》의 상에서 운동의 정점에 도달한 긴장의 순간을 훌륭하게 포착하였다. 그것은 말하자면 동중정(動中靜)의 일순간이다.

여기에는 운동이라는 격렬한 동작에도 불구하고 고양(高揚)된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같은 시기의 조각가 피디아스의 조영(造營)에 의한 파르테논신전의 조각은 그의 양식을 전하는 걸작으로 유명하다. 금과 상아로 만든 《아테나 파르테노스》의 거대한 상(像)을 비롯하여 《아테나 레무니아》, 올림피아의 《제우스 좌상》 등은 그의 가장 빼어난 작품이라고 하나, 그 원작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현존하는 파르테논의 프리즈나 박공 조각은 그의 양식을 전하는 걸작이다. 파나테나이아의 행렬을 부조한 프리즈는 전체 길이 160m로 인물·동물들이 360여를 헤아린다.

미론과 피디아스와 더불어 이 시기를 대표하는 폴리클레이토스는 인체의 가장 아름다운 비례를 계산적으로 산출(算出)하여 《카논》이란 책을 펴냈다. 그의 작품으로 유명한 《창을 든 청년》 《승리의 머리띠를 맨 청년》의 조상(彫像)은 그 비례에 입각해서 제작되었다고 전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시작된 고전시대 후기는 도시 상호간의 대립과 항쟁의 시기로, 도시의 이념이 약해짐과 더불어 사상이나 감정상에서도 전세기와는 달리, 현실적인 풍조가 고조되어 왔다.

예술의 양식에서도 이전의 숭고한 양식에서 보다 인간적인 표현으로 옮겨간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에 의하여 우미(優美)한 여성의 이상상을 표현해서, 고전시대 후기의 우미양식(優美樣式)을 확립한 프락시텔레스, 그와는 대조적으로 강한 눈매 속에 인간의 내면적인 감정을 포착한 파로스섬 출신의 스코파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궁정조각가로서 대왕의 초상 조각을 제작하고, 또 《몸의 흙을 닦는 청년》 상으로 우미한 인체의 이상상을 창조한 리시포스 등은 이 시기에 활약한 가장 홀륭한 조각가들이다.

5. 헬레니즘시대

이 시기에는 조각이 고전 시대 후기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모든 면에서 전 시대를 뛰어넘는다. 고전적인 감정은 흥분으로 변하고, 운동은 동요(動搖)·격동에 이르게 된다. 새로운 미술의 중심지는 본토를 떠나 이집트·시리아·소아시아·로도스섬(島)으로 옮겨서 이루어졌다. 동방의 여러 민족이나 문화와의 접촉은 조각의 제재(題材)를 매우 확대시켰다.

《거위를 안은 아이》나 《취한(醉漢)》에 이르는 세속적인 제재가 격렬한 움직임 속에서 표현되고, 한편 꿇어앉거나 돌아보는 모습 등으로 관능적(官能的)인 미를 자랑하는 아프로디테(비너스)가 많이 제작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는 《라오콘》 《사모트라케의 니케》 《웅크리고 앉은 비너스》 《빈사(瀕死)의 갈라티아인(人)》, 그리고 페르가몬의 신전 대제단의 부조(浮彫) 등이 있으며, 어느 작품에나 격정과 약동이 소용돌이치는 역동적인 표현이 넘쳐 있다.

IV. 회화

그리스 시대의 회화(繪畵)는 오늘날 거의 없어져 버렸다. 그 때문에 고대의 문헌·도화(陶畵)와 아울러 헬레니즘 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로마 시대의 현존하는 벽화를 통하여서만 상상할 수밖에 없다.

문헌에 의하면 화가로서 최초로 알려진 거장(巨匠)은 타소스섬의 폴리그노토스이다. 그는 BC 470년경부터 아테네에 와서 활약하면서 훌륭한 작품을 많이 그렸다. 기품이 있고 정확하며 사실적인 묘사는 당시의 조각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BC 5세기 후반에는 아가타르코스가 나와서 비극(悲劇)의 무대 배경을 그렸고, 같은 시대에 아테네 출신의 아폴로도로스는 음영(陰影)에 의한 정밀한 묘사로 유명하여 당시에는 스키아그라포스(음영화가)라고 불렀다. 그 뒤로 제욱시스나 파라시오스 등이 활약하여 철저한 사실(寫實)을 추구했다. 제욱시스가 파라시오스와의 작품 경쟁 때에 그가 그린 포도를 새가 날아와서 쪼았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BC 4세기에는 시크온의 에우폰포스,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에서 회화의 이론적 기초를 부여한 팜필로스, 엔코스틱(encaustic:蠟畵)의 기법(技法)으로 명성을 얻은 파우시아스, 그 밖에도 니코마코스와 플록세노스 등이 활약하여, 원근법(遠近法)이나 명암화법(明暗畵法)에 의한 회화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고 전해진다.

폼페이 출토의 유명한 모자이크화인 《이소스의 전투》는 플록세노스의 명작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의 전투》를 모작(模作)한 것이라고 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궁정화가였던 아펠레스는 고전시대 후기의 그리스 최대의 화가로 전해진다.

헬레니즘 시대의 회화는 건축이나 조각과 같이 극히 다양화하여 장식적·동적(動的)·관능적이 되었다. 그 주제(主題)도 신화(神話)와 역사 이외에 정물화(靜物畵)나 풍속화가 나타났다. 색채는 더한층 화려해지고, 투시원근법(透視遠近法)이 거의 달성되었다. 폼페이나 헤르쿨라네움의 벽화는 이 헬레니즘 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것이다.

V. 공예

그리스의 공예를 대표하는 것은 도기(陶器)이다. 최초의 도기는 BC 10세기경의 초기 기하학 양식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기하학양식의 전형(典型)은 아테네의 디필론 묘지에서 출토된 BC 8세기경의 한 무리의 거대한 항아리이다. 뒤이어 BC 8세기부터 BC 6세기 초에 걸쳐 그리스 각지에 동방(東方)의 유익수(有翼獸)나 물새, 동물이나 인물을 실루엣으로 그린 여러 형태의 다채로운 항아리가 나타났는데, 동방양식에서 코린트 양식의 항아리이다.

BC 6세기에 아테네에 흑회식(黑繪式) 도기가 생겨 도기는 현저히 발달하였다. 이것은 적갈색 바탕흙[胎土] 위에 검은색으로 실루엣 화상을 그리는 기법이다. 그 가장 뛰어난 예는 화공인 클리티오스와 도공(陶工) 에르고티모스의 작품인 크라텔 《프랑수아의 항아리》이다.

그 뒤 BC 5세기 말에 홍회식(紅繪式) 도기가 나타났다. 이것은 그림의 부분은 적갈색 바탕흙을 그대로 남기고, 나머지 배경을 흑색으로 칠하는 기법이다. 이 무렵에 백색의 레큐토스도 나타나 이후 그리스의 도예는 형태와 도화(陶畵) 양면에서 최고의 발전을 이루었다. 또 우미한 색채의 부인상(婦人像)으로 알려진 타나그라 인형은 BC 4세기에서 BC 3세기에 대량으로 제작되었다.

금속공예의 재료로는 황금·은·브론즈 등이 쓰였다. 그 가운데서도 청브론즈가 그 대부분을 차지하여 무기·마구(馬具)·용기·가구·거울 등 다방면에 사용되고, 기법도 타출(打出)·주형(鑄型)·선각(線刻)·상감(象嵌) 등 다양하였다. 올림피아 출토의 《황금의 팔[腕]》, 브론즈의 《그리폰의 두부(頭部)》, 프랑스 비크스 출토의 커다란 안포라, 아프로디테와 빵을 우아하고 아름답게 선각한 경개(鏡蓋), 그 밖의 귀금속에 의한 장신구 등 어느 것이나 각각 그 시대의 그리스 공예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는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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