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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1-22 (토) 19:19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611      
[미술] 한국화 (한메)
한국화 韓國畵

한국의 전통적 기법과 양식에 의해 그린 회화.

조선시대 말기까지 글씨와 함께 서화(書畵)로 지칭되던 한국의 전통회화는 근대 이후 새로 들어온 기법의 서양화와 구분하여 동양화라는 명칭으로 불리었다. 중국의 전통회화는 중국화(中國畵)로, 일본의 전통회화는 일본화(日本畵)라고 하였으나, 일제(日帝)는 한국인의 고유의 전통과 민족성에 대한 자각을 꺼려, 전통회화를 조선화(朝鮮畵)로 지칭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고 대신 동양화로 부르게 하였다.

동양화라는 용어의 공식적인 사용은 1922년 개최된 조선총독부 주최 제 1 회 조선미술전람회 (약칭 鮮展)의 제 1 부를 동양화부로 부르면서부터였다. 이 명칭은 광복 이후에도 그대로 사용되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주관으로 창설되어 1981년까지 지속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國展)>에서도 동양화부로 불렀다.

1970년대에 이르러 이 명칭은 한국 전통회화의 독자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제강점기에 타율적으로 붙여진 용어라는 비판이 대두되면서 <한국화>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1982년부터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주최한 <대한민국미술대전>를 비롯한 각종 공모전에서 동양화 대신 한국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1983년 이래 미술교과서에서도 같은 명칭이 쓰임으로써 이 용어가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역사]

한국화는 종이나 비단 위에 먹이나 물에 녹인 안료(顔料)를 사용하여 부드러운 모필(毛筆)로 그리며, 동양적 자연관과 가치관에 바탕을 둔 회화관(繪畵觀)과 화론(畵論)에 입각하여 주로 중국의 전통회화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를 선별적(選別的)으로 받아들여 한국 특유의 양식을 형성하여 왔다.

그 원천은 선사시대의 선각화(線刻畵)나 암각화(岩刻畵)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삼국시대 중반인 4세기 무렵부터 본격적인 발전을 하였다.

⑴ 삼국시대:삼국의 회화는 중국의 한(漢)나라와 육조시대(六朝時代) 회화의 영향을 토대로 감상적인 목적보다는 실용적인 목적과 기능을 위하여 그려졌다. 주로 고분벽화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삼국시대 회화의 특색은 각기 다르다.

고구려의 회화는 어느 나라의 회화보다도 힘차고 율동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고, 백제의 회화는 완만한 곡선 중심의 부드러운 양식이며, 신라는 전반적으로 경직되고 사변적인 느낌을 준다. 이러한 삼국시대의 회화는 담징(曇徵)·가서일(加西溢)·인사라아(因斯羅我)·백가(白加)·아좌태좌(阿佐太子)등에 의해 일본에 전해져 그곳 회화발달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각기 다른 양식을 형성했던 삼국의 회화는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하나로 통합, 조화되었다.

솔거(率居)의 황룡사(皇龍寺) 《노송도(老松圖)》에 관한 일화를 통해 이 시대에 사실적 화풍이 크게 진작되었으며, 당(唐)나라와의 빈번한 문화교류를 통하여 궁정취향의 인물화와 청록산수화(靑綠山水畵)가 성행한 한편, 불교화가 활발히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⑵ 고려시대:고려시대에 이르러 한국화는 한층 다양하게 발전하여 실용적 기능을 지닌 작품은 물론 여기(餘技)와 감상을 위한 순수회화도 활발히 제작되었다.

그림의 소재도 다양해져 제왕(帝王)·공신(功臣)의 초상화가 활발히 제작되었고, 《금강산도(金剛山圖)》 《송도팔경도(松都八景圖)》 등의 진경산수화가 태동되었으며, 사대부 화가와 선승(禪僧)화가들에 의하여 흑죽·흑매·흑란의 문인화가 성행하였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이영(李寧)은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인 《예성강도(禮成江圖)》와 《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로 화명(畵名)을 중국에까지 떨치었다. 이제현(李齊賢)의 《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와 공민왕의 《수렵도(狩獵圖)》 등은 모두 북종적(北宗的)인 원체화풍(院體畵風)을 보이고 있다.

고려시대에 확산된 한국화의 전통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폭넓게 전개되면서 확고한 기반을 형성하여, 소재는 물론 구도·공간처리·필묵법·준법·수지법(樹枝法)등에서 두드러진 독자적 양식을 이룩하였다.

⑶ 조선시대:조선시대의 회화는 그 변천과정에 따라 4기로 나뉜다.

① 초기(1392∼1550):세종 연간을 중심으로 하여 이미 안견(安堅)·강희안(姜希顔) 등의 거장이 배출되었다. 이 시기는 후대 한국 회화 발전의 토대를 이룬 시기로, 중국에서 전래된 여러 가지 화풍을 토대로 하면서도 중국 회화와는 완연히 구분되는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16세기에 이르러 단선점준 등의 한국적 준법이 발생되었다.

② 중기(1550∼1700):초기의 화풍들이 계승, 지속되는 한편 영모·화조 부분에 애틋한 서정적 세계와 조선시대의 정취를 짙게 풍기는 화풍이 등장하였으며, 묵화의 발전과 함께 문인 화가들이 배출되었고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가 전래되어 부분적으로나마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③ 후기(1700∼1850):가장 한국적이고 민족적 자아의식이 짙은 화풍이 풍미하였던 시기이다. 영조·정조 연간에 대두된 실학 발전의 영향으로 새로운 경향의 회화기법과 사상이 수용되어 절파계(浙派系) 화풍이 쇠퇴하고 남종문인화가 성행하였고, 독특한 화풍의 진경산수(眞景山水)가 정선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또 김홍도(金弘道)와 신윤복(申潤福) 등은 당시 생활과 애환을 해학적으로 다룬 풍속화를 그렸으며, 청(淸)나라로부터 서양화법이 전래되어 일부 수용되기도 하였다.

④ 말기(1850∼1910):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쇠퇴하고 김정희(金正喜)를 중심으로 남종문인화가 세력을 떨친 시기이다. 남종화법의 토착화는 한국 근·현대의 수묵화가 남종화로 치우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한국화의 전통은 국내 정치적 격동에 의해 위축되어 갔으며 장승업(張承業)을 고비로 퇴조를 보이기 시작, 전체적으로 침체화되기 시작하였다.

⑷ 근대·현대:1910년 국권피탈을 계기로한 일제의 문화말살정책과 서양화의 대두 등으로 한국화는 더욱 위축되었으나 11월 서화미술협회(書畵美術協會)를 창설한 안중식(安中植)·조석진(趙錫晉) 등의 노력과 그 문하에서 배출된 이상범(李象範)·김은호(金殷鎬)·허백련(許百鍊)·노수현(盧壽鉉)·변관식(卞寬植) 등에 의해 맥락이 이어져 왔다.

오늘날의 한국화는 민족미술의 원래 얼굴을 되찾고, 이를 주체적으로 새롭게 정립하려는 움직임으로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전통성·고유성에 대한 자각과 재인식을 통하여 한국화의 현대화와 세계미술의 주역으로서의 비약이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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