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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02 (화) 17:21
분 류 문화사
ㆍ조회: 4953      
[미술] 한국 회화사 (두산)
한국 회화의 역사

서양 회화사, 동양 회화사

[고대의 한국 회화]

한국 회화는 청동기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울산시 울주구 반구대의 암각화를 그 시원으로 하며, 삼국시대에 독자적이고 개성적인 회화의 발달을 보여준다.

특히 고구려 회화의 찬란한 발달은 만주와 평양을 중심으로 분포된 고분벽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그려진 대상이나 주제에 따라 시대적 변천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안악 3호분, 덕흥리고분을 비롯 퉁거우[通溝] 무용총과 각저총에서 볼 수 있듯이 초기의 고분벽화가 묘지 주인의 초상을 중심으로 풍속화적 요소와 불교적 요소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무용총의 수렵도는 활력 넘치는 화풍과 생생한 인물묘사가 두드러지며, 6세기 말과 7세기 초반의 사신총, 강서대묘, 진파리 고분군 등의 후기 고분벽화에는 사신도가 주로 그려져 있다.

백제 회화는 그 전모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고구려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아 독창적이면서 높은 수준의 회화세계를 꽃피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백제회화는 송산리 6호분의 사신도와 능산리고분의 사신도 및 연화문, 그리고 무령왕릉의 어룡(魚龍)과 신수(神獸) 문양 정도이며, 역동적인 고구려 벽화에 비해 박진감은 떨어지나 유려하고 부드러운 선과 안정된 공간구성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점은 7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산수문전(山水文塼)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데, 비록 부조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백제 산수화의 품격을 엿볼 수 있으며, 특히 일본을 건너간 아좌태자(阿佐太子)의 《성덕태자상》은 백제 인물화의 발달상을 보여준다.

고구려, 백제와는 달리 돌무지덧널무덤이 고분구조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신라는 상대적으로 회화자료가 빈약하지만 천마총에서 발굴된 《천마도》와 《기마인물도》 《서조도(瑞鳥圖)》를 통해 신라회화의 수준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따르면 선덕여왕 이전에 채전(彩典)을 두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후에 나타나는 도화원(圖畵院)처럼 화사(畵事)를 관장하는 관청으로 추정된다.

통일 신라 시대 또한 불국사 ·석굴암 등과 같은 훌륭한 조형예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화의 발전을 보여주는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다만 황룡사 벽에 노송을 그렸다는 솔거(率居)와 같은 화가들의 이름이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회화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던 것으로 짐작할 따름이다.

[고려 시대의 한국 회화]

고려 시대에는 도화원의 직업적인 전문화가인 화원에 의한 그림과 왕공사대부 및 승려들이 즐겨 그림을 그렸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화원인 이령(李寧)이 그린 《예성강도(禮成江圖)》 《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 등은 현존하지 않지만, 중국 송나라에까지 그의 재능이 알려져 황제가 직접 이령으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도록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산수화뿐만 아니라 안향초상(安珦肖像)과 같은 인물초상화를 비롯 영모 ·화조 ·누각 ·사군자 등과 기록화적인 성격이 강한 기로회도(耆老會圖) 등이 그려졌으며, 불화 또한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현존하는 고려의 회화로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와 이제현(李齊賢)의 《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 노영(魯英)의 《지장보살도》 등이 있으며, 벽화로는 거창 둔마리 고분의 《주악천녀도(奏樂天女圖)》가 전해진다.

[조선 시대의 한국회화]

조선 시대(1392~1910)는 한국 미술 역사상 회화가 가장 발달한 때로서 도화서를 통해 배출된 뛰어난 화원들과 사대부 문인화가들에 의해 많은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조선 전기 회화의 정립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통해 회화의 경지를 끌어올린 안견(安堅)을 비롯 사대부 출신으로 절파화풍을 수용한 강희안(姜希顔), 안평대군, 천민 출신으로 남송 원체화풍을 받아들여 뛰어난 회화적 경지를 발판으로 신분상승한 이상좌(李上佐), 종실 출신으로 영모화에 능했던 이암(李巖) 등에 의해 이뤄졌으며, 그 밖에 이장손(李長孫) ·최숙창(崔叔昌)과 같은 화가는 미법산수(米法山水)의 세계를 보여준다.

왜란과 호란 등의 전란에 의해 전국토가 유린당한 조선 중기에도 안견화풍이 계승되었으며, 한편으로 강희안에 의해 시험된 절파화풍이 확산되었다. 즉, 이상좌의 아들 이숭효(李崇孝)는 절파화풍의 인물화와 영모화를 잘 그렸으나 요절하였고, 그의 아들 이정(李楨) 역시 가계를 계승하여 안견화풍과 절파화풍이 결합된 경향의 산수화를 남겼다.

조선 중기의 가장 개성적인 화가를 들자면 김명국(金明國)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그림은 광태사학적 호방함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달마도(達磨圖)》에서 볼 수 있듯이 선화(禪畵)에도 재능이 뛰어났다. 이 시대에 김제(金釜)와 김식(金埴)은 소그림을 잘 그렸으며, 김제의 영향을 반영하면서도 절파화풍의 정착에 영향을 미친 이경윤(李慶胤)은 산수인물화에, 그리고 조속(趙涑)과 조지운(趙之耘) 부자는 수묵화조에 뛰어났다.

조선 회화는 명 ·청대 회화를 수용하면서 보다 민족적인 색채를 띠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발전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특히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는 시서화에 모두 뛰어났던 삼절(三絶)로서 겸재(謙齋) 정선(鄭敾),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과 더불어 조선 후기 삼재(三齋)로 불려진다.

영정조 시대에 민족 자아의식의 발현을 토대로 새로운 학풍을 진작시키던 실학의 발흥은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비롯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등의 풍속화도 영향을 미쳤으나, 조선 후기 회화는 절파화풍이 쇠퇴하고 남종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였다. 중국을 통해 국내에 소개되어 김두량(金斗樑) ·박제가(朴齊家) 등의 18세기 화가들에 의해 수용된 서양화법은, 그 후 화원들이 그린 의궤도(儀軌圖)나 민화의 책거리 그림에도 반영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진경화법이 쇠퇴하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를 중심으로 한 남종화풍이 세력을 굳힌다. 김정희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조희룡(趙熙龍) ·허련(許鍊) ·전기(田琦) 등의 이른바 추사파와 남종화풍을 토대로 서구적 화풍을 수용한 윤제홍(尹濟弘) ·김수철(金秀哲) 등의 작품이 주목되지만, 19세기 후반의 정치적 격동과 함께 회화 역시 위축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 중 장승업(張承業)은 전통회화를 계승하였으며, 그의 영향을 받은 안중식(安中植)과 조석진(趙錫晉)은 조선 후기로부터 근대 회화로 연결되는 교량 역할을 담당하였다.

[근대의 한국 회화]

한국에 서양화가 소개된 것은 1899년경 네덜란드계 미국인인 휴버트 보스가 중국을 거쳐 입경하여, 고종과 세자의 어진을 그린 것부터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근대화가들은 주로 일본에서 서구적 기법을 배우고 돌아와 작업을 했기 때문에 모방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1908년 고희동(高羲東)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도쿄[東京]미술학교를 입학한 것을 비롯하여, 김관호(金觀鎬) ·김찬영(金瓚永) ·나혜석(羅蕙錫) 등 역시 일본에 유학하였으며, 이종우(李鍾禹)는 도쿄미술학교를 거쳐 프랑스에서, 임용련(任用璉)과 장발(張勃)은 미국에서 현대미술과 접촉하였다.

한편 1911년 3월 조석진과 안중식을 교수로 한국 최초의 근대 미술기관인 경성서화미술원이 설립되어 오일영(吳一英)과 이용우(李用雨)를 첫 입학생으로 받았으며, 이듬해 김은호(金殷鎬)가 2기생으로 입학하였다. 서화미술원은 계속하여 이상범(李象範), 노수현(盧壽鉉) ·최우석(崔禹錫) 등을 배출하였으나, 1919년에 문을 닫았다.

1916년에는 김관호가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였고, 그해 10월 《해질녘》으로 일본 문전(文展:文部省展覽會)에서 특선으로 입상하였으며, 12월에는 고향인 평양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18년 6월 안중식을 회장으로 서화협회가 발족하였으며, 1921년 이후 이 단체가 개최하는 ‘협전’이 1936년까지 개최되었다. 민전인 협전에 비해 총독부가 문화정치의 일환으로 1922년부터 실시한 선전(鮮展:朝鮮美術展覽會)은 관전으로 1944년까지 열렸다.

1930년대에는 김환기(金煥基) ·유영국(劉永國) 등에 의해 추상회화가 그려지기도 하였으나, 1940년대 일제의 전시체제 돌입에 따라 많은 미술가들이 친일세력으로 변절하거나 절필하였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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