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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7-08 (화) 15:15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723      
[석탑] 신라의 석탑 (민족)
신라의 석탑

[고신라ㆍ통일기의 석탑]

한편, 신라의 석탑은 전탑(塼塔)을 모방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신라의 석탑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경주의 분황사 석탑(芬皇寺石塔, 국보 제30호)으로 이 탑은 전탑 양식에 속하는 것 같으나 그 재료는 벽돌이 아니고 석재이다. 이 탑은 장대석으로 구축한 단층의 기단을 갖추고 있으며, 그 중앙에는 탑신부를 받기 위한 널찍한 1단의 화강암 판석 굄대가 마련되어 있는데, 탑재는 백제 석탑과는 달리 흑갈색의 안산암이다. 즉, 안산암을 소형의 장방형 벽돌같이 절단하여 쌓아올린 전탑형을 이룬 것이다. 이 탑은 634년(선덕여왕 3)에 건조된 것으로 신라 석탑의 기원을 이루고 있다.

분황사 석탑과 관련된 탑으로 경상북도 의성에 있는 의성 탑리 오층석탑(義城塔里五層石塔, 국보 제77호)을 들 수 있다. 이 탑도 석재로서 전탑 양식을 모방한 것으로 광대한 석단 위에 5층의 탑신부를 구성하고 있는데, 탑신을 받기 위한 1매의 판석과 옥개의 상하받침이 5단인 점, 기단이 광대한 점 등은 곧 분황사 석탑과 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석탑은 분황사 석탑과는 달리 새로운 착상과 수법의 간략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예컨대 기단이 잘 정비된 건축기단의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탑신부의 옥신(屋身)에는 우주 외에 주형(柱形) 1개를 만들었고, 사방에 설치하였던 감실(龕室)을 한 면에만 두고 있다. 이 석탑은 백제의 두 탑과 같이 기단부의 우주·탱주나 옥신의 우주·주신(柱身)에 엔타시스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이 석탑도 백제의 두 석탑과 같이 양식 발생의 초기 유구에 속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의 탑들에서 살펴 보았듯이 백제계의 석탑은 화강암만을 사용하여 목탑계 양식을 따른 반면, 신라는 화강암을 혼합하였으되 안산암을 주재료로 삼아 전탑계 양식을 모범으로 삼았다. 또 양국의 초기석탑은 그 기본 평면을 정방형으로 하여 다층을 이루었다는 사실과 석재를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

백제와 신라의 초기 석탑들은 서로 그 양식을 달리해서 출발했지만, 얼마 뒤 하나의 양식으로 통일을 보게 된다. 여기에서 비로소 한국 석탑의 전형이 성립되었는데, 이러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바로 신라의 삼국 통일이다. 신라의 석탑은 삼국 통일과 함께 백제와 고신라의 각기 다른 두 양식을 종합하여 새로운 양식을 갖추게 되었다.

새로운 계기를 맞아 집약, 정돈된 형식으로 건조된 석탑 중 가장 시원적인 양식의 표본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感恩寺址東西三層石塔, 국보 제112호)과 고선사지 삼층석탑(高仙寺址三層石塔, 국보 제38호)이며, 그뒤 월성 나원리 오층석탑(月城羅原里五層石塔, 국보 제39호)과 경주 구황리 삼층석탑(慶州九黃里三層石塔, 국보 제37호)의 과도기적인 양식을 거쳐, 8세기 중엽에 이르러 불국사 삼층석탑(佛國寺三層石塔, 국보 제21호)ㆍ갈항사 동삼층석탑(葛項寺東三層石塔, 국보 99호)에서 전형적인 양식의 정형(定型)을 보게 되었다.

이와 같이 8세기 중엽에 완성된 신라식 일반형 석탑의 정형은 그 뒤 전시대를 통하여 오랫동안 지켜진 형식으로, 이러한 방형 평면의 기본양식과 괴체성(塊體性)의 중층형식(重層形式)은 한국 석탑의 주류이며 또한 특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 전형 양식의 건조 형식은 여러 개의 장대석으로 지대석(地臺石)을 구축하고 그 위에 2층기단을 형성하였는데, 상하기단 면석(面石)에는 각 면에 양쪽 우주(隅柱:모서리기둥)와 2주의 탱주(撑柱:받침기둥)를 각출(刻出)하였으며, 상층기단 갑석(甲石)에는 하면에 부연(副椽)을 새겼다.

그리고 상면에는 각형(角形) 2단의 굄대를 마련하여 그 위에 탑신부를 구성하였다. 탑신부에는 옥신과 옥개석을 각기 1석씩으로 조성하여 쌓았으며, 옥신에는 각 층 각 면에 양 우주가 각출되었다. 옥개석은 하면에 각형 5단의 받침이 마련되고 상면 정상에는 2단의 각형굄으로 그 위층의 옥신석을 받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 위에 복발(覆鉢 : 탑의 노반 위에 놓는, 엎은 주발 모양의 장식)과 앙화(仰花)가 놓이고, 그 위에 보륜(寶輪)ㆍ보개(寶蓋)ㆍ수연(水烟)ㆍ용차(龍車)ㆍ보주(寶珠) 등이 긴 찰주(擦柱 : 탑의 중심기둥)에 꽂혀 장식되고 있다.

[후기 통일신라 석탑의 변형]

신라의 석탑은 8세기 이후 시대가 내려오면 부분적인 변화가 생기고 전체적으로 작아지는 경향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옥개석의 받침이 5단이던 것이 3,4단으로 줄어든다든지, 기단부 면석의 탱주가 상층부터 2주에서 1주로 줄어들거나 혹은 없어진다든지 하며, 또 옥개석 정상면의 옥신굄도 2단에서 1단으로 약화되고 각형에서 호형(弧形)으로 변하는 등 전체적인 규모에 있어서 거대한 것이 중형ㆍ소형으로 위축되는 식으로 변형을 보이고 있다. 대체로 9세기에 들면서 점차 변형이 나타나며 9세기 후반에는 현저한 변화를 보이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870년(경문왕 10)경에 건립된 보림사 삼층석탑(寶林寺三層石塔, 국보 제44호)이다. 이 석탑은 상층기단 면석의 탱주가 2주에서 1주로 줄어들고 옥개석이 얇아졌으며 네 귀퉁이 전각의 반전도 아주 심하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 석탑에서는 아직도 하층기단의 탱주 2주, 옥개받침 5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 형식의 석탑에 속하는 것으로는 부석사 삼층석탑(浮石寺三層石塔, 보물 제249호)을 비롯하여 단속사지 동삼층석탑(斷俗寺址東三層石塔, 보물 제72호)ㆍ청량사 삼층석탑(淸凉寺三層石塔, 보물 제266호)ㆍ청송사지 삼층석탑(靑松寺址三層石塔, 보물 제382호) 등을 들 수 있다.

좀더 말기로 내려오면 석탑 자체의 규모가 작아질 뿐 아니라 각 부 양식에 있어서도 큰 변화를 보이게 된다. 즉 기단부에 있어서 석재가 줄어들고 각 면석의 탱주도 약화되며, 탑신부는 각 층 옥개석 받침의 층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탑신굄의 조각 수법이나 옥신굄 및 낙수면과 전각의 다듬기 형식에서 통일 신라 전성기의 전형으로부터 변형되어 약화 혹은 부분적으로 생략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형은 조형 미술품 자체의 양식적인 여러 가지 여건에 기인되었다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9세기 이후 왕실의 골육상쟁과 지방 군웅의 할거로 사회가 혼란해져서 예술성이 위축되고, 특히 조형미술은 힘찬 기상에서 가냘픔과 허약함으로 변했으며, 따라서 자연히 각기 조형물의 규모가 작아지고 각 부의 양식도 약화, 생략된 변모를 보였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하층기단의 탱주도 2주에서 1주로 줄어들고 옥개받침도 5단에서 4단으로 약화된 형식의 석탑이 신라 하대의 후기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실상사 삼층석탑(實相寺三層石塔, 보물 제37호)을 비롯하여 월광사지 동삼층석탑(月光寺址東三層石塔, 보물 제129호)ㆍ경주 효현리 삼층석탑(慶州孝峴里三層石塔, 보물 제67호)ㆍ탑곡리 삼층석탑(塔谷里三層石塔) 등이 모두 이러한 예에 속한다.

신라 하대에 이르면 또 하나의 변형된 작풍이 생겨난다. 즉 일반형 석탑에서 기단부의 구조가 2층기단이라는 기본형을 벗어난 단층기단으로 변화하여 그 위에 탑신부를 받고 있는 형식이다. 이 형태는 양식적으로는 낮은 하층기단이 생략되어 지대석 위에 바로 하층기단이 놓이게 된다. 이러한 양식이 나오게 된 동기는 목조 건축의 기단이 단층이고 목조건축을 모방한 백제계의 석탑들이 모두 단층 기단인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단층기단을 갖춘 작품에서는 여러 개의 장대석을 결구하여 지대석을 마련한 위에 기단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따금 통례와는 달리 지대석 대신에 자연암반 위에 기단면석을 조립한 석탑도 볼 수 있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慶州南山茸長寺谷三層石塔, 보물 제186호) 같은 것은 자연암반의 상면을 평평하게 다듬고 높직한 굄대를 마련하여 기단을 받았는데, 단층으로서 2층기단부의 상층만을 놓은 것 같은 형식으로 우주와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그리고 옥개받침은 각 층 4단씩으로 역시 1단이 줄어들고 있다.

한편, 이러한 형식들의 석탑은 곧 고려 시대의 석탑 건조 양식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신라시대 전형적인 기단 양식인 2층기단의 석탑이 유행하는 한편, 이와 같은 단층석탑도 많이 건립되어서 그 유례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신라 석탑의 양식과 그 변천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형 양식의 정형에서 말기의 약화된 양식에 이르기까지 몇 단계로 나누어 보면, 첫째 단계는 전형 양식의 정형이라 볼 수 있는 석탑으로 경주 천군리 동서삼층석탑(慶州千軍里東西三層石塔, 보물 제168호)ㆍ월광사지 서삼층석탑(月光寺址西三層石塔, 보물 제129호)ㆍ광주 동오층석탑(光州東五層石塔, 보물 제110호) 등을 들 수 있다. 또, 월성 장항리 서오층석탑(月城獐項里西五層石塔)ㆍ원원사지 서삼층석탑(遠願寺址西三層石塔) 등은 탑신부나 기단부 표면에 인왕상(仁王像) 혹은 사천왕상(四天王像)ㆍ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들의 조각으로 장식적인 조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석탑 자체의 구성이나 각 부의 양식수법에 있어서는 상ㆍ하층 기단의 탱주가 2주씩이고 옥개받침도 5단씩이어서 역시 전형양식의 정형기 작풍을 보이고 있다. 둘째 단계는 상층기단의 탱주만이 2주에서 1주로 변하고 있는 석탑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 이외에 대흥사 응진전전 삼층석탑(大興寺應眞殿前三層石塔, 보물 제320호)ㆍ영광 신천리 삼층석탑(靈光新川里三層石塔, 보물 제504호) 등이 있다. 이것들은 아직 하층기단에 2주의 탱주를 가지고 있다.

셋째 단계는 9세기 후반에 들면서 규모가 위축되고 탱주도 상ㆍ하층 기단이 모두 1주씩으로 약화되었으며 옥개받침은 4단으로 줄어든 형식이다.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桐華寺毘盧庵三層石塔, 보물 제247호)ㆍ동화사 금당암 서삼층석탑(桐華寺金堂庵西三層石塔, 보물 제248호)ㆍ불굴사삼층석탑(佛窟寺三層石塔, 보물 제429호)ㆍ봉화 서동리 동서삼층석탑(奉化西洞里東西三層石塔)ㆍ성주사지 중앙삼층석탑(聖住寺址中央三層石塔)과 서삼층석탑(西三層石塔) 등 각처에서 상당히 많은 유례가 발견된다.

넷째 단계는 기단부의 단계가 2층기단이라는 기본형을 벗어나 단층기단으로 변화한 석탑을 말한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이외에 문경 내화리 삼층석탑(聞慶內化里三層石塔, 보물 제51호)ㆍ봉암사삼층석탑(鳳巖寺三層石塔, 보물 제169호)ㆍ화엄사동오층석탑(華嚴寺東五層石塔, 보물 제132호)ㆍ표충사삼층석탑(表忠寺三層石塔, 보물 제467호)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양식과 각부 수법은 신라에서 그치지 않고 고려 시대까지 미쳐 하나의 양식으로 계승되어 곳곳에 많은 예를 남기고 있다.

[특수형 석탑의 발생과 조형]

통일 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을 기본으로 하는 석탑들이 건립되는 한편, 전형 양식과 형태를 달리하는 ‘이형적(異型的)인 석탑’이 출현하였다. 즉, 신라의 전성기인 8세기 중엽 이후에 이르러서는 전반적으로 건축적 결구의사(結構意思)가 단일된 조각적인 의사로 기울어져가는 동시에 탑 그 자체에 장식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전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비건축적인 장식적 석탑이 유행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서 경주의 불국사 다보탑(佛國寺多寶塔, 국보 제20호)ㆍ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35호)ㆍ정혜사지 십삼층석탑(淨惠寺址十三層石塔, 국보 제40호)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건조 연대는 모두 8세기 중엽으로, 통일 신라 전성기에 유행한 수식적 의장은 곧 석탑에까지 미쳐 이형양식(異型樣式)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따라서, 시대가 내려올수록 여러 가지 유형의 발생을 보게 되었으며, 동시에 전형적인 석탑 그 자체에도 여러 가지 변화를 보게 되었다.

이형 석탑이란 석탑의 건조 양식이나 각 부재의 결구 방법이 전형적인 양식의 정형에서 벗어나 외관상으로 특이한 형태를 보이는 탑을 말한다. 즉, 방형 중층의 일반형 석탑의 기본형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의 정형에서 탈피하여 외관상으로 특수한 가구(架構)를 보이는 것인데, 이형 석탑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형태로 분류하여 볼 수 있다.

첫째, 이형적인 석탑으로서 석탑의 건조 방법이나 각 부재의 결구 방식이 전형적인 양식의 정형에서 완전히 벗어나 외관상으로 특이한 형태를 보이는 석탑이다.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석탑은 대체로 8세기 중엽부터 그 뒤에 나타난 것으로서 불국사 다보탑과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ㆍ화엄사 원통전전 사자탑(華嚴寺圓通殿前獅子塔, 보물 제300호)ㆍ정혜사지 십삼층석탑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장식적인 석탑으로, 외형은 신라의 전형 양식인 방형 중층의 기본형을 갖추고 있으나 기단 및 탑신부의 각 면에 천인상(天人像)ㆍ안상(眼象)ㆍ팔부신중상(八部神衆像)ㆍ십이지신상ㆍ사방불(四方佛)ㆍ보살상ㆍ인왕상 등 여러 상을 조각하여 표면장식이 화려하며 장중한 석탑이다. 여기에 속하는 석탑으로는 원원사지 동서삼층석탑을 비롯하여, 화엄사 서오층석탑(華嚴寺西五層石塔, 보물 제133호)ㆍ경주 남산리 서삼층석탑(慶州南山里西三層石塔, 보물 제124호)ㆍ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實相寺百丈庵三層石塔, 국보 제10호)ㆍ진전사지 삼층석탑 (陳田寺址三層石塔, 국보 제122호)ㆍ선림원지 삼층석탑(禪林院址三層石塔, 보물 제444호)ㆍ산청 범학리 삼층서탑(山淸泛鶴里三層石塔, 국보 제105호)ㆍ중흥산성 삼층석탑(中興山城三層石塔, 보물 제112호)ㆍ남산 승소곡 삼층석탑(南山僧燒谷三層石塔) 등을 들 수 있다.

셋째, 탑신부는 방형 중층의 전형을 보이고 있으나 기단부는 전혀 다른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도피안사 삼층석탑(到彼岸寺三層石塔, 보물 제223호)의 경우 탑신부는 방형 평면이나 기단부에서 8각형의 평면을 이루어 하층 기단 면석에 안상이 조각되고, 상층기단 상하갑석에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을 조각하여 마치 불상 대좌와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석굴암 삼층석탑(石窟庵三層石塔)은 탑신부는 방형 중층으로 전형적인 일반형 석탑의 탑신을 이루고 있으나 기단부에서는 전혀 이형적인 구성을 보이고 있다. 즉, 상하 2층의 기단이나 평면은 면석과 갑석이 같지 않고 면석은 8각형으로서 각 모서리에 우주가 각출되었고 갑석은 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형식은 석굴암 본존불(石窟庵本尊佛)의 대좌에서 본뜬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넷째,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건조 재료는 석재이나 그 형태가 전조탑파(塼造塔婆)의 양식을 갖추고 있어 각 부재의 축조 및 결구 방법이 특이하므로 괴체성의 전형적인 일반형 석탑과는 구별하여야 할 것이다. 분황사 석탑ㆍ봉감 모전오층석탑(鳳甘模塼五層石塔, 국보 제187호)이 여기에 속한다. 또, 모전석으로 건조한 것은 아니나 외형으로 보아 모전석탑의 형태와 비슷한 모전석탑류도 이형 형식에 속하는데, 예를 들어 의성 탑리 오층석탑을 비롯하여 선산 낙산동 삼층석탑(善山洛山洞三層石塔, 보물 제469호)ㆍ경주 서악리 삼층석탑(慶州西岳里三層石塔, 보물 제65호)ㆍ경주 남산리 동삼층석탑(慶州南山里東三層石塔, 보물 제124호) 등은 모전석이 아닌 치석(治石)한 작은 석재로 탑을 조성하였다.

다섯째, 청석탑류(靑石塔類)로서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海印寺願堂庵多層石塔, 보물 제518호)은 가장 오래된 청석탑으로 주목된다. 이 탑은 건조 석재가 점판암이라는 특수한 용재이기 때문에 화강암으로 만든 일반형 석탑과는 구별된다. 청석은 그 자체가 크지 못하므로 모두 소규모의 탑뿐인데, 석질이 약해서 각 부재가 파손 혹은 결실되고 있어 완전한 형태는 거의 없다. 그리고 이 탑에서 기단부는 모두 화강암으로 형성되고 탑신부 이상만이 점판암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석재가 모자라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정영호>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석탑'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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