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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6-15 (일) 20:28
분 류 문화사
ㆍ조회: 3642      
[건축] 고딕미술 (두산)
고딕미술 Gothic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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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후기 서유럽에서 일어난 미술 양식.

I. 개관

로마네스크미술에 이어 12세기 중기에 그 싹이 터서 13세기에 프랑스ㆍ영국에서 명확한 양식이 확립되었다. 그뒤 2세기 동안 서유럽 전체에 전파되어 더욱 발전ㆍ변화해서, 15세기 초부터 이탈리아에서 형성된 르네상스 미술이 대표하는 근대 미술로 바뀔 때까지 존속하였다.

고딕이란 명칭은 르네상스의 이탈리아인이 중세 건축을 조야(粗野)한 만족(蠻族) 고트족이 가지고 온 것이라고 비난한 데서 유래한 것인데, 19세기 이래 서유럽 중세 미술의 한 양식을 가리키는 미술사상(美術史上)의 용어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 중세 미술에 명확한 형식을 부여한 것은 북프랑스였지만, 결국 전서유럽적 현상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고트족들은 이 미술의 형성에는 직접 관계가 없었지만, 약간 모멸적인 뜻으로 말한 것이 이러한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고딕미술의 양식은 먼저 건축에서, 특히 성당 건축에서 실현되었지만, 여기에 어울려서 형성된 조각ㆍ회화ㆍ공예에 대해서도 총괄적으로 이 양식의 명칭이 적용된다.

II. 건축

아헨 대성당, 두산 엔싸이버 사진고딕식 성당 건축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구조 기술상(構造技術上) 3가지의 특징적인 요소로 요약된다. 첨두 아치(Pointed Arch), 리브 보울트(Rib Vault),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ress)인데 이러한 요소는 고딕건축 양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건축요소들은 고딕 이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에서도 있었지만 고딕 건축물에서 더욱 발전된 형태로 결합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의 결합으로 건축물 평면 형식은 정사각형에서 직사각형으로 변화되었고 외관은 수직적으로 높고 실내는 많은 창을 내어 개방감이 높은 건축 공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고딕 건축에서 신랑(nave)의 기둥과 기둥사이 벽체는 없어지고 창의 면적을 확대해 갔으며 이 창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워져 신비로운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특히 장미창으로 불리는 둥근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고딕 성당건축의 상징적인 형태를 이룬다.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사용된 반원형 아치 구조는 아치의 직경에 따라 건물의 높이가 결정되었지만 첨두형 아치는 높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횡압이 적어 효율적인 설계가 가능했다.

이러한 건축 기법으로 성당 안의 공간 구성을 시각적으로 강조하게 되었다. 이 구조에 따르면 첨두 아치의 무게가 리브에 의해 실내 지주에 집중되기 때문에, 벽체는 거의 중량을 받지 않게 되며 첨두 아치의 하중은 플라잉 버트레스가 외벽에서 받쳐주기 때문에 지주에 걸리는 하중이 분산된다.

리버보울트. 두산 엔싸이버 사진

12세기 중엽에 이미 리브 보울트를 적용하거나, 높은 비례의 복합주(複合柱)나 창이 만들어졌고, 내진회랑(內陣廻廊)의 해방된 공간 등 고딕적 건축 사고(思考)가 이미 나타났다. 그러나 아직도 거기에는 로마네스크적인 점이 적지 않아, 과도기적 성격을 면할 수 없었으며 이때의 건축물은 초기적인 고딕건축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첨두 아치와 리브. 두산 엔싸이버 사진

13세기에서는 고전적 고딕 성당들이 지어졌다. 창이 높아지며 채광(採光)을 풍부하게 하고, 전체로서 상승효과를 강하게 나타내어, 세련된 건축기술을 과시하는 레요낭양식(rayonnant style)이 퍼졌다. 14∼15세기에는 후기 고딕 성당들이 건축되었고, 창의 디자인은 물결 모양을 이어 불꽃 모양을 나타내는 플랑부아양양식(flamboyant style)이 유행하여 도시계획에 많이 사용되었다.

이탈리아의 고딕 건축은 전통적인 바실리카형식이 존속하여, 궁륭은 낮고 창은 적어 고딕 특유의 경쾌한 상승감이 적었지만 반면에 벽면이 넓어 내벽은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예외적인 외관구성(外觀構成)을 보이는 밀라노대성당은 주로 북유럽 건축가의 손으로 지은 것이다.

첨두 아치와 리브. 두산 엔싸이버 사진

독일은 최초에 북프랑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나, 14세기 이후에는 독일의 독특한 형식인 할렌키르헤(Hallenkirche)가 추진되었다. 이것은 신랑(身廊)과 측랑(側廊)의 궁륭 높이를 균일하게 하고, 성당 내부를 높은 창에 둘러싸인 단일 공간으로 통일하는 것이다. 에스파냐에서도 당초에는 프랑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거기에 이슬람계 양식이 섞여 들어가 에스파냐 특유의 무데하르 형식이 형성되었다.

영국에서는 프랑스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영국 고유의 양식이 확보되어 있어서 13세기의 초영식(初英式:early English), 14세기의 장식식(裝飾式:decorated style), 14세기 이후의 수직식(垂直式:perpendicular style)이라고 하는 양식으로 그 발전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또 후기 고딕 건축에서는 교회 건축 이외에 플랑드르 및 이탈리아 북부에 발달한 시청사(市廳舍)나 저택 등의 세속적 건축에도 이것이 쓰였다.

III. 조각

고딕의 성당은 ‘돌로 만들어진 성서’라고 할 만큼 수많은 조상군(彫像群)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것들은 주로 성당의 정면ㆍ입구 및 문 위의 팀파눔(tympanum), 그것을 둘러싼 몇 층의 아치와 입구 양 옆의 열주(列柱), 그 아래의 돌벽에만 보이지만, 단지 그리스도교적 주제(主題)인 것뿐만이 아니고, 다채로운 주제가 풍부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정면 입구 주변을 장식하는 수많은 조상군과 부조(浮彫) 등에 의해 서유럽의 독자적인 인간상(人間像)이 비로소 확립되었다. 샤르트르대성당의 서쪽 정면 ‘왕의 문’을 비롯해 파리 부근의 12세기 후반의 성당 입구 조각은 원주인상(圓柱人像)의 새 요소가 있었으나, 양식상으로나 도상상(圖像上) 로마네스크 조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13세기에 들어와서, 샤르트르ㆍ파리ㆍ아미앵ㆍ랭스 등 잇달은 대성당의 장식과 조각에서 고딕양식은 확립되었다. 샤르트르는 12세기 중반의 서쪽 정면을 그대로 보존하고, 13세기 초에 남북에 새로 큰 문을 냈고, 13세기 중반에 거기에 대규모 조상군과 부조를 장식해 놓았는데, 도상의 풍부한 내용과 짜임새에서는 첫째 가는 예이다. 중세 그리스도교 신앙의 인간화 경향의 하나로 보이는 민중의 성모숭배(聖母崇拜)에 대응하여 성모에게 입구 장식을 바치게 된 것은 고딕미술의 새로운 일면으로, 그 형식이 정해졌다.

13세기 고딕 도상은 복음서적인 《묵시록》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였던 로마네스크시대의 신비주의와 서사시적(敍事詩的) 경향에 대신해서, 신앙의 기초를 지성(知性)에 의해 다지고, 또한 인간적 감정과 융화하는 도상을 구하였다. 즉, 13세기 고딕 조각의 이상주의를 양식상으로나 내용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옛 성자의 숭배에도 실제의 농민이나 기사의 모습을 같이 결부시켜 그 도상을 만들었다. 현실과의 접촉은 조상(彫像)의 현실감에 충실해야 한다는 욕구에 부응하여 고딕 조각의 사실주의로 나타나고, 중세인이 이상으로 삼은 인간상이 현실감을 가지고 표현된다.

13세기 중반부터 이미 사실주의의 진행은 고전주의를 깨뜨리고, 14세기는 개성화를 진전시켜 초상 및 초상적 작품의 예와 우아하고 아름다운 매너리즘의 조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도 조각가들의 힘찬 사실주의로 그때까지의 우미(優美)한 매너리즘을 타파하고 성격적인 극적 조상을 실현하여, 건축에서 독립한 15세기 조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후기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양식에 걸쳐 독일 조각은 훌륭하였으며, 13세기의 조상군, 13∼14세기의 슈트라스부르크의 조각은 프랑스에 못지 않은 힘있는 성격적 표현을 이어왔다. 15세기에는 제단 조각(祭壇彫刻)으로 발달하고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는 목조주상(木彫鑄像)에 많은 명장(名匠)을 배출하였다.

IV. 회화

고딕 시대의 미술가들은 그리스 미술가들이 인간의 육체를 관찰하고 이를 어떻게 형성화하였는지 그들의 기교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고딕 시대 미술의 기교와 방법들은 성서를 표현하기 위한 목적과 수단으로 취급되었다. 성서 속의 이야기를 더욱 감동적이고 실제감있는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고딕미술의 회화는 견본에 의존하여 제작되었다. 자연을 관찰하거나 사물을 관조한 결과로 그림을 그린 그리스미술과 다른 관념적인 화풍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고딕시대 미술가들이 비례에 대한 지식이나 묘사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당시 미술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위한과 이교도들에게는 교화(敎化)를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성당 건축의 발달과 함께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 회화가 많이 제작되었다. 고딕성당 건축에는 창문이 많고 벽면이 적어서, 자연히 스테인드글라스의 발달이 싹텄다. 간단한 것은 카롤링거왕조 후기에도 있었고 12세기 전반기에도 있었으나, 12세기에 들어와서 고딕성당 건축이 발달하면서 개화하게 되어, 맑은 청색과 강한 붉은색의 배색이 훌륭하였고, 화상(畵像)도 점차 인간적 감정을 여유있게 나타내게 되었다.

13세기에는 전성기에 달하여, 데생(dessin)은 자연스러움이 더해지고, 힘을 잃지 않았으며, 배색도 더욱 섬세해지고 그림에도 깊이가 더하게 되었다. 당시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오늘날에도 많이 보존하고 있는 샤르트르 대성당의 장관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여러 빛깔의 유리 조각을 H자형 납테에 끼워, 창문 전체를 종교적 화상으로 메운 이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통해 들어오는 광선의 영롱함은 이 성당 안을 완전히 종교적인 법열(法悅)로 채우게 한다. 파리 왕성(王城) 안의 상트 샤펠은 4면이 모두 창인데, 모두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성당이다. 이런 추세는 13세기 중기 이후, 제작을 서둘러 장식 효과는 아름다우나 깊이가 없어지게 되었다.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에 걸쳐 무색(無色) 유리에 단색 데생의 그리자유(grisaille) 수법이 나타났고, 한편 유색(有色) 유리는 회화의 영향으로 색조(色調)의 뉘앙스는 풍부하게 되었지만, 빛의 예술인 본래의 성질은 약화되었다. 회화 부문에서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이 다루어야 할 것은 사본장식(寫本裝飾)의 삽화인 미니어처(miniature:미니아튀르)이다.

로마네스크 회화나 비잔틴 양식(비잔틴 미술)의 영향을 받아들여 인간상을 자연의 모습에 가깝게 해서, 인간적 감정의 분명한 모습을 그려낸 것은 13세기 초의 영국과 프랑스의 미니어처였다. 이것은 뒤에 건축의 호화스러운 액자에 끼워졌다가 13세기 후반부터는 왕후의 사치스러운 생활 환경을 반영하게 되었다.

사본장식의 대표적 화가 장 퓌셀의 화풍은 파리 양식으로서, 당시의 고딕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13세기 후반에 나타나는 서민적인 사실주의는 매너리즘(mannerism) 속에 사멸하는 고딕 회화를 구하게 되었다. 이것을 14세기 후반부터 활약하는 네덜란드 출신의 예술가들이 이어받아 사실주의를 추진해 나갔다. 이탈리아에서의 고딕 건축은 알프스 이북의 건축과는 다소 달리, 창이 적고 벽면이 더 커서 벽화 제작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13∼14세기에 이탈리아에서는 많은 우수한 화가들이 활약하여 14세기 미술의 방향을 크게 돌려놓았다. 이것은 15세기의 르네상스 미술로 그대로 이어졌다. 특히, 지오토(Giotto di Bondone)가 그린 인간상은 그때까지 보지 못한 힘찬 양감(量感)과 움직일 듯한 기운이 있어서 거의 조상(彫像)과 같은 인체인데, 북프랑스 성당의 외벽을 장식한 고딕식 부조군(浮彫群)에서 영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14세기 이탈리아 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셰나 화가들로, 저마다 걸작을 이 도시에 남겼다. 이들의 활약으로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초에 걸쳐서, 전(全) 유럽적 유행을 보인 고딕 국제양식이 탄생하였다. 벽면이 없는 북방 고딕 건축은 벽화의 발전이 그리 성하지 못하였으나, 직물화(織物畵)로서 북프랑스와 플랑드르 지방에서 왕성하게 만들어졌다. 그 내용은 종교적ㆍ사전적(史傳的) 제재나 그밖의 당시 풍속을 다룬 것들도 있어서 흥미롭다. 14세기경부터 종이가 생산 보급되기 시작하자 판화도 유행하였으며, 또한, 남부 독일을 중심으로 목판화가 나타났고 얼마 뒤에는 동판화까지 나타나는 등 각지에서 여러 형태로 발전하였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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