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한국사사전1 한국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6-09 (월) 12:29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805      
[근대] 구벨기에영사관 (문화재청)
구벨기에영사관(舊벨기에領事館)

구벨기에영사관 이건전. 문화재청 사진

구벨기에영사관 정면 이건후. 문화재청 사진

구벨기에영사관 측면 이건후. 문화재청 사진

종목 : 사적 제254호
명칭 : 구벨기에영사관(舊벨기에領事館)
분류 : 개화기건축
면적 : 3,468.9㎡
지정일 : 1977.11.22
소재지 : 서울 관악구 남현동 1095-13
시대 : 조선 순종
소유자 : 상업은행
관리자 : 한국상업은행

<기본설명>

1903년에 짓기 시작해서 1905년에 완성한 대한제국시기의 벨기에 영사관 건물이다.

1919년 영사관을 충무로로 옮긴 다음, 요꼬하마 생명보험회사 사옥으로 쓰이다가, 다시 일본 해군성 무관부 관저로 이용되었다. 광복 후에는 해군헌병대에서 사용하였다. 1970년 상업은행이 사용하다가 은행측에서 그 자리에 건물을 짓기 위하여, 회현동에 있던 공사관 건물을 서울특별시 관악구의 남부순환도로변에 있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벽돌과 화강암을 적절히 사용하여 지은 건물로, 좌우 대칭의 고전주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 20세기 전반기의 중요한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전문설명>

이 건물은 이중화(李重華)의 경성기략(京城記略)에 의하면 벨기에(白耳義) 전권위원 레온 방카르(Lion Vincart)가 1902년 회현동2가 78, 79자리에 영사관건축을 착수하였다고 한다.

영사관건물의 설계는 일본인 고다마(小玉)가 맡고 시공은 일본시공회사인 배륙토목공사(北陸土木公社)가 맡아 1903년 광무(光武) 7년에 착공, 1905년 광무 9년에 준공하였다. 그후 벨기에 영사관은 1919년 충무로1가 18번지로 옮기게 되어 이 건물은 일본 횡빈생명보험회사(橫濱生命保險會社)사옥으로 쓰였고, 다시 일본 해군성(海軍省) 무관부 관저로 이용되었다. 해방후에는 해군헌병대로 사용하다가 1970년 상업은행이 불하받아 사용하였다.

그러나 1982년 8월 본래의 자리에서 관악구 남현동 1059번지 18호의 대지로 이건되어 상업은행 사료관(史料館)으로 사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은 지하1층 지상2층, 벽돌과 돌출된 현관부를 두고, 몸채 좌우에 정면보다 물러선 곳에 로지아(로지아)를 1, 2층 모두 두었다. 현관의 기둥과 1층 로지아의 기둥은 투스칸오더(Tuscan order)이고, 2층 로지아는 이오닉오더(Ionic order)이다. 창문틀은 모두 수평아치(Flat arch)로 하였다. 전체적으로 석재와 붉은벽돌을 적절히 사용, 단아한 고전주의 양식을 이루고 있는 20세기 전반기의 중요한 양식건축임을 알 수 있다.

출전 : 문화재청 홈페이지
   
윗글 [근대] 구벨기에영사관 (민족)
아래글 [근대] 대한의원 (브리)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1032 문화사 [근대] 구배재학당동관 (두산) 이창호 2003-06-10 1402
1031 문화사 [근대] 구배재학당동관 (문화재청) 이창호 2003-06-10 1658
1030 문화사 [근대] 구공업전습소본관 (문화재청) 이창호 2003-06-10 1466
1029 문화사 [근대] 구공업전습소본관 (두산) 이창호 2003-06-10 1215
1028 문화사 [근대] 구공업전습소본관 (민족) 이창호 2003-06-09 1527
1027 문화사 [근대] 구벨기에영사관 (두산) 이창호 2003-06-09 1167
1026 문화사 [근대] 구벨기에영사관 (민족) 이창호 2003-06-09 1699
1025 문화사 [근대] 구벨기에영사관 (문화재청) 이창호 2003-06-09 1805
1024 문화사 [근대] 대한의원 (브리) 이창호 2003-06-09 1139
1023 문화사 [근대] 대한의원 (한메) 이창호 2003-06-09 1076
1,,,21222324252627282930,,,13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