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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2-19 (화) 12:11
분 류 문화사
ㆍ조회: 721      
백제 토기사 새로 써야 (풍납토성 출토 토기)
< 풍납토성특집 > ⑭ 백제 토기사 새로 써야 (완결)

연합뉴스 / 2000년 6월 1일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초기백제 한가운데에 위치한 풍납토성에서 기원전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각종 토기들이 쏟아져 나오자 이 시기를 연구하는 고대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이 당황한 얼굴 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백제의 생성, 혹은 동네국가를 벗어난 국가다운 국가로서의 백제 출발을 3세기 중,후반 고이왕 때쯤이라고 보면서 그 이전, 즉 기원전후~서기 300년경 시기는 원삼국이라 해서 백제와는 구별되는 다른 사회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1997년 이후 풍납토성이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곳곳에서 붕괴되는 소리를 내고 있다. 풍납토성 발굴은 대다수 고대사학자들과 일부 고고학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백제가 훨씬 빨리 성립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한국고고학계가 짜놓은 백제토기 역사는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됐다.

물론 백제의 시작이 언제인가 하는 문제는 학자들마다 각양각색이다. 서울대 최몽룡 교수나 목포대 최성락 교수 같은 이는 서기 300년  이전  한반도 중부를 백제가 아닌 원삼국 시대로 보는 것을 부정한다. 대신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대폭 수용해 이 시기를 백제 초기, 혹은 넓게는 삼국 시대 초기(전기)로 본다. 이는 기원전후~서기 300년 즈음 백제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많은 다른 고고학자들은 대다수 고대사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백제의 시작을 3세기 중,후반으로 본다. 이들은 그 근거로 몽촌토성 같은 대형성곽과 석촌동 고분군 같은 대형 적석총의 출현이나 토기의 뚜렷한 변화가 이 때쯤 감지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제 토기의 역사도 이 때쯤 시작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80년대 몽촌토성이 대규모로 발굴되고 그 결과 이 성이 빨라야 3세기  초,중반쯤 축조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백제 토기사를 몽촌토성에 맞췄다.

많은 고고학자들이 탄소연대측정치는 물론이고 중국 동진제 회유전문도기(회색 유약을 바르고 동전 무늬를 새긴 도자기)가 출토된 점을 들어 몽촌토성이 3세기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보면서 이 동진제 도자기와 같이 출토된 이른바 흑색마연토기(검은 빛이 도는 단단한 단지 모양 토기)를 백제 토기의 시작으로 보았다.

또 어떤 학자는 3세기 이전으로 올라 갈 수 없는 석촌동 대형 고분군을 백제의 실체로 삼았다. 당연히 백제토기도 이 고분군 출토품이 그 기준이자 출발선이었다.

비록 그 근거가 다르기는 하지만 이들이 설정한 백제 토기 변천사는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풍납토성 발굴은 백제의 시작은 물론 백제 토기사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유전 소장은 '백제 토기사는 새로 써야 한다'고  단언한다. 원삼국론을 부정하면서 백제를 이미 기원전후부터 인정하고 있는 최몽룡,최성락 교수가 이런 조 소장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왜냐하면 풍납토성에서는 이전에 백제토기의 출발이라고  보았던  몽촌토성이나 석촌동 고분군 출토품보다 그 시대가 훨씬 앞서는 토기들이 다량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기원전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경질무문토기(단단하면서 무늬가 없는 토기)와 이것과 거의 동시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타날문토기(찍어누른 무늬가 있는 토기).

이 중에서도 1964년 풍납토성을 시범발굴했던 김원룡이 풍납동식토기라고  불렀던 경질무문토기는 비단 풍납토성 뿐만 아니라 춘천 중도, 최근의 원주  법천리까지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중부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출토되고 있다.

어떻든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는 몽촌토성이나 석촌동 고분군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풍납토성은 몽촌토성보다 규모가 훨씬 클 뿐만 아니라 그 축조시기 또한 대단히 빨라 기원전후까지 올라간다. 이는 이곳에서 출토된 목탄과 목재 및 토기에 대한 탄소연대측정치 및 열형광분석을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더불어 풍납토성 뿐만 아니라 백제가 국가다운 국가가 된 증거로 삼았던 몽촌토성이나 석촌동 고분군보다 시기가 훨씬 앞서면서 풍납토성과 축조방법이나  시기, 그 위치는 물론이고 출토유물까지 대단히 비슷한 토성들이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음이 최근 들어 잇따라 확인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파주 주월리 육계토성과 청주 정북동토성.

지난 96년 대규모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육계토성에서는 풍납토성 안쪽  경당연립아파트 건축예정지에서 나온 것과 똑같은 톱날모양 무늬를 새긴 거치문토기가  나온 것을 비롯해 흡사 풍납토성 축소판이라고 할 만큼 닮아있다.

또한 충북대가 연차 발굴 중인 정북동토성 또한 풍납토성과 마찬가지로  흙으로 성벽을 쌓은데다 위치 또한 강을 끼고 있는 점은 물론이고 이곳에서 출토된 목탄을 탄소연대측정한 결과 그 축조시기가 기원후 1,2세기로 나와 3세기 중,후반 이전  초기백제를 부정했던 고고학계와 문헌사학계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결과는 백제역사를 새로 쓰지 않을 수 없게끔 하고 있다. 더불어 백제토기사도 이제는 그 출발을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에서 삼을 때가 됐다.

무턱대고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믿을 수 없다고 하고는 사료적 가치가  떨어지는 『삼국지』 ≪동이전≫에 바탕을 둔 이른바 원삼국론이 얼마나 초기백제 역사를 왜곡할 수 있는지를 풍납토성과 육계토성,정북동토성을 비롯한 그 `아류' 토성들과 여기서 출토된 유물들이 경고하고 있다.

2000/06/01 13:54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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