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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5-22 (목) 16:06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010      
[선사] 선사시대의 미술 (민족)
미술(선사시대의 미술)

세부항목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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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참고문헌)

[건축]

선사시대의 건축은 후대의 목조 건축과 같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건축이라고 말하기 힘들지 모르나, 주거 평면에 지붕을 올리는 원시 목조 건축이 실시되고 있었다. 신석기시대의 집은 평균 면적 20㎡ 정도, 가족 4, 5명이 들어갈 만한 원형 또는 방형(方形 : 네모반듯한 모양)의 얕은 움집에 기둥과 서까래를 이용하여 원추형의 모듬지붕을 씌운 것이었다.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면적 30㎡ 정도인 장방형(長方形 : 직사각형)의 집이 유행하고, 경기도 파주 옥석리에서 보는 바와 같이 3.7m×15.7m의 큰 공동 주거로서 맞배지붕에 벽이 있는 반지상 가옥(半地上家屋)도 나타났다.

이런 집에는 방 가운데 화덕 자리를 만들어서 난방을 하였고, 바닥은 진흙을 단단하게 깔고 삿자리 같은 것을 깔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함경북도 웅기에서는 원시 온돌이라고 생각되는 석열(石列)이 발견된 예가 있다.

청동기시대의 건조물로서 주목되는 것은 고인돌이다. 북방식 고인돌의 경우 밑에 판석을 세우고 위에 몇 톤이나 되는 큰 두께 돌을 얹었다. 황해도 은율군 서부면 운성리에 있는 것은 반듯한 판석을 균형 있게 짜서 세운 것으로 석조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는 기념물이다.

[조각]

신석기시대 미술에서 조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부산 동삼동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전기의 가리비 껍질로 만든 패면(貝面)과 강원도 양양 오산리에서 나온 신석기시대 후기의 조그만 토면(土面)이 있다.

패면은 세 개의 구멍으로 두 눈과 입을 나타낸 간단한 것이다. 토면도 눈과 입을 눌러서 표시한 5㎠의 작은 토판(土版)이지만 사람의 얼굴을 나타낸 것이 확실하다. 이들은 당시의 신앙과 관련된 주술적 유물(呪術的遺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고아시아 족의 샤먼 신상(shaman神象)의 전통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웅기 굴포리 서포항 유적 중 머리와 팔다리가 없이 허리 부분만으로서 가슴에는 젖이 표시된 작은 토상(土像)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청진 농포동에서도 개의 토상 및 돌로 만든 새와 함께 사람의 토상이 발견되어 역시 풍요신(豊饒神) 같은 신상이라고 생각된다. 층위가 확실하지 않아 분명하지는 않지만 신석기시대 말기까지 올라간다고 생각된다.

보고서만으로 이것들이 두리새김〔圓像〕인지 앞면만의 돋음새김〔浮彫〕인지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두 토상이 모두 허리가 좁혀져 인체의 굴곡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분명해서 흥미롭다. 신석기시대의 조각을 포함한 미술은 전반적으로 추상성이 두드러져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로 들어가면 조각 기술은 확실히 발전하게 된다. 함경북도 무산에서는 사람의 모습이 뚜렷한 좌상(坐像)이라든가 사실적으로 빚어진 돼지들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

그리고 웅기 굴포리 서포항 유적에서는 웃는 모습이 여실히 표현된 뼈로 만든 사람 얼굴과 함께, 극도로 간략화된 비녀 모양의 인상(人像)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래서 신석기시대 이래의 신상 전통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강 이남 지역에서 발견된 동검(銅劍) 자루 머리의 백조(호암미술관 소장)와 말 모양의 띠 장식(영천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조각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르나 모두 뛰어난 두리새김의 솜씨이다.

그리고 영천 출토의 작은 청동제 사슴 머리도 그 사실성에서 높은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조각은 신석기시대의 것에 비하여 훨씬 사실적이고 보다 구체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 차이라 하겠다.

[암각화 巖刻畵]

청동기시대는 북방 미술 전통의 일환이라고 생각되는 암각화가 나타났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盤龜臺)의 암각화는 강변의 암벽에 새겨진 높이 2m, 길이 8m 가량의 대작이다.

화면은 좌우의 두 구역으로 크게 나누어 왼쪽 부분에는 고래·돌고래 등 바다짐승의 형태 전부를 쪼아 내는 실루엣 그림[影畵]으로 표현하였다. 오른쪽 부분에는 늑대·곰·호랑이·염소 등 들짐승의 윤곽만을 선화(線畵)로 나타내었다. 그리고 두 구역의 중간부에는 두 양식이 섞이는 과도 단계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대상물 중 활·창 등 사냥 기구와 함께 많은 사람이 탄 긴 배와 사냥꾼, 또는 제주(祭主)로 생각되는 인물 입상들도 섞여 있다. 이로써 이 그림이 그 성격상 시베리아 일대에 퍼져 있는 사냥 제단적(祭壇的) 암화 예술(巖畵藝術)의 전통과 통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림 기법 중 시베리아 암화에서 발견되는 짐승의 입·식도·내장을 연결하는 생명선을 표현하는 뢴트겐법을 사용한 것도 있어 주목된다.

그리고 그림의 겹친 상태로 보아, 화면의 왼쪽 부분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퍼져 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시대에 따라 사냥 대상이 변천하였고 조각 수법이 면화(面畵)에서 선화로 변천되었음도 알 수 있다.

한편, 같은 울주군의 천전리와 고령 양전동에는 나사 무늬·동심원(同心圓)·마름모, 기타 뜻을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또는 이형 물체(異形物體)를 새긴 암화가 있어 선사시대의 것이라 생각된다. 이중 천전리 것에는 여백에 고신라시대의 명문들이 새겨 있어 선사시대 및 고신라시대의 문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어 준다.

[공예]

(1) 토기(土器)

우리 나라 신석기시대에 있어서의 미술 활동은 그다지 활발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어로·수렵을 위주로 하던 신석기 주민들의 넉넉하지 못한 경제 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신석기시대의 토기는 서기전 5000년경에 두만강 하류 유역에서 아가리 둘레에 손톱무늬 같은 누른 무늬를 몇 줄 돌린 납작밑토기가 나타났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의 낙동강 강구 지방에서는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두만강 지역의 아가리 무늬 토기는 시베리아의 고아시아 족의 토기 전통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두만강 지방에서 다른 지역으로 퍼지면서 어디선가 아가리무늬 아래쪽에 누르거나 그어서 생선뼈 같은 빗살무늬를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대동강·한강 하류 등 서해안 지방에서는 서기전 4000년경 바닥이 뾰족하거나 둥근 도토리형의 전형적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부산 지방에서도 이 빗살무늬가 덧무늬토기를 누르고 주된 토기로 등장하고 있다.

신석기시대 전기의 빗살무늬토기의 표면 장식은 아가리의 누른 무늬 띠와 그 밑의 직선적인 생선뼈 무늬로써 구성된다. 하지만 바닥 쪽은 같은 선(線) 무늬이면서 평행 사선 무늬〔斜線文〕를 몇 줄 겹친 것이다. 그래서 그릇 전체의 무늬는 아가리·허리(또는 배)·바닥 쪽의 3부로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선 무늬는 기하학 무늬라고 할 수 있는 추상적인 것이어서 거기에서 회화성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세 가지 무늬를 3단으로 구성해서 미적 효과를 나타내려고 한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시베리아 전통의 추상주의 양식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빗살무늬토기의 무늬는 전기 단계를 지나면 아가리 무늬와 허리 무늬 사이에 점열(點列) 지그재그 무늬, 반원형 등 곡선 계통의 무늬를 끼워 넣게 된다. 허리 무늬도 생선뼈 무늬가 분해되어서 격자무늬〔格字文〕·사점(斜點) 무늬 등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릇 전체를 곡선 점열 무늬로 덮는 경향과 아가리 무늬를 없애고 위아래 모두 격자무늬·사점 무늬 등으로 메우는 경향이 생긴다. 그리고 시기가 더 내려가면 아가리 무늬만 남거나 사점 무늬를 띄엄띄엄 배치하는 등 타락한 양식으로 바뀌게 된다.

한편, 신석기 후기에 이르면 중국 요령(遼寧) 지방의 앙소(仰韶) 말기 채도(彩陶)의 영향이 보인다. 압록강·두만강 유역에서는 목이 긴 항아리의 표면을 반들거리게 닦고 검붉은 물감으로 간단한 무늬를 그린다.

또한 요령 토기의 기하학 무늬를 음선(陰線)으로 나타낸 토기(新巖里 1식) 또는 점열로 속을 메운 가는 평행선 띠를 삼각형 또는 사각형으로 감아 돌린 번개무늬토기〔雷文土器〕가 함경도 지방에서 유행하기도 하였다.

청동기시대의 토기로는 기하학 무늬를 검붉은 물감으로 그린 채식 토기, 그릇 표면에 산화철을 바르고 반들거리게 닦은 붉은 토기〔紅陶〕가 함경도 지방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서북한 지방에서는 미송리식 토기(美松里式土器)·공귀리식 토기(公貴里式土器)·팽이토기 등 지역 형식 토기들이 만들어지다가 팽이토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것이 남한으로 전파되면서 한강 유역에서는 가락식 토기(可樂式土器)로 발전되었다.

한강 유역에는 따로 함경도 기원의 아가리에 구멍이 뚫린 구멍토기(공열토기)와 붉은 토기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더 남쪽에서는 붉은 토기 이외 목항아리〔長頭壺〕에서 변화한 듯한 송국리식 토기(松菊里式土器)가 만들어지고 있다.

남한의 후기 청동기시대를 특징짓는 토기는 덧띠아가리토기〔粘土帶 또는 突帶土器〕라고 해서, 아가리 둘레에 둥근 덧띠를 돌린 형식과 만주에서 내려오는 검은 목항아리토기〔黑色長頭壺〕였다. 이들 토기는 서력 기원을 전후해서 김해 토기(金海土器)라고 불리는 단단한 때린무늬토기〔打製文土器〕와 교체되었다.

김해 토기라고 하는 것은 질이 좋은 흙으로 만들고 1,000℃ 가까운 고온으로 구운 토기이다. 이 토기는 낙랑을 통하여 들어온 중국식 회색 토기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것이다. 별로 단단하지 못한 와질 토기(瓦質土器) 단계를 거쳐 석기(庠器, stoneware)라고 불리는 경도(硬陶)로 발전하였다.

그릇 형태로는 둥근밑항아리, 납작 밑의 화분형 단지, 나팔같이 아래가 벌어지는 다리를 가진 토기, 뚜껑이 없고 아가리가 꺾이며 올라가는 굽그릇〔高杯〕 등이 있다. 둥근밑항아리의 경우 끈을 감거나 바둑판무늬를 새긴 방망이로 그릇 표면을 두드린다. 그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평행선을 돌린 멍석 무늬로 장식되는 것이 특색이다. 이 김해 토기는 300년경부터 신라 토기로 차차 변해갔다.

이처럼 선사시대의 토기는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원삼국시대를 거치면서 형태·문양·굽 처리 등에서 다양해지고 단단해지면서 변화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2) 청동기

청동은 구리에 주석(Tin)을 섞은 것으로서 특히 우리 나라 청동에는 아연(Zinc)이 약간 들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하지만 청동기시대 후기(서기전 300∼0)가 되면 주석이 많이 들어가 청동이 단단해지고 칼의 날이나 거울의 무늬가 날카롭게 주출(鑄出)되었다. 이 시기의 청동제 의기(義器)로는 세문경(細文鏡)·검파형 동기(劍把形銅器)·방패형 동기·팔령구(八鈴具) 등이 있다.

그중 특히 정교한 것은 충청남도의 예산 동서리와 아산 남성리, 대전 괴정동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그래서 청동기 후기에 이 지역이 큰 청동 중심지였음을 알려 주고 있다. 또한 그러한 청동 문화의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유력한 사회가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숭전대학교박물관 소장의 다뉴세문경(多瞿細文鏡)은 세문 바탕에 한 쌍의 동심원을 네 군데 배치한 특수 무늬이다. 그 세밀한 기하학적 무늬는 도안으로서의 제도 기술뿐 아니라 그것을 빈틈없이 나타낸 주조 기술의 수준을 과시한 것이다. 그리고 남한 농경 지대로 내려온 고대 예맥족의 주동술(鑄銅術)과 북방적인 냉철한 미 감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아산 남성리 출토의 방패형 청동기는 사람이 팔다리를 대자(大字)로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가운데는 눈썹·눈·코 등이 평행 밀집 선으로 표시되어 그것이 역시 샤먼 신상으로서 당시 지배자의 의기였음을 추측하게 하고 있다.

대전 괴정동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방패형 동기에는 한쪽에 밭 가는 사람, 또 한쪽에는 나무 위에 앉은 새가 그려진 것으로 역시 제사에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동기는 압축된 구성, 사실적이면서도 추상화된 회화적 표현이 돋보여 청동기시대 미술의 수준을 엿보게 한다.

<김원룡>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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