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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6-05 (토) 15:27
분 류 문화사
ㆍ조회: 386      
[무덤] 널무덤 (두산)
널무덤 土壙墓

땅에 구덩이를 파고 직접 주검을 묻은 무덤으로서, 선사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 널리 만들어졌다.

평면적인 형태별로 보면 사각형ㆍ직사각형ㆍ원형(圓形)ㆍ타원형(楕圓形)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널[관(棺)]과 덧널[곽(槨)]과 같이 일차적으로 유해를 보호하는 장구(葬具)가 있는 것은 널무덤에 포함시키지 않지만, 관용적으로는 나무널[목관(木棺)]과 나무덧널[목곽(木槨)]을 사용하였어도 이미 부패하여 그 존재 유무를 확인할 수 없을 때는 널무덤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인류 사회의 원초적ㆍ보편적인 묘제(墓制)로서 세계적으로는 중기 구석기(中期舊石器) 시대부터 유행하였으며, 중국에서는 신석기 시대부터 유행하였고, 한국에서는 초기 철기(初期鐵器) 시대에 출현하여 삼국 시대 전기까지 유행한 묘제이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평남 평양시 태성리, 황해도 은율군 운성리, 경북 경주시 조양동, 경남 김해시 예안리 등의 널무덤군(群)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서 태성리 유적은 기원전 1세기 이후의 것으로, 세형동검(細形銅劍)과 철기 및 전한계(前漢系) 토기가 함께 출토될 뿐만 아니라 널ㆍ덧널과 같은 장구도 출토되어 평안도 재래의 동검문화(銅劍文化)와 중국 전한문화(前漢文化)가 복합된 유물상을 보여준다. 조양동 유적은 1∼3세기 것으로 철기ㆍ청동기ㆍ와질토기(瓦質土器)가 함께 출토되었는데, 목관이 장구로 사용된 이른 시기와 덧널이 장구로 사용된 늦은 시기의 두 단계로 구분된다. 예안리 유적은 4세기 것으로, 덧널이 장구로 사용되었으며, 철기와 도질토기(陶質土器)가 함께 출토되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이들 널무덤이 한결같이 널 또는 덧널을 장구로 쓰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 유적을 널무덤으로 정의하기보다는 사용된 장구에 따라 구분해야 할 것이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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