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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6-05 (토) 16:23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070      
[무덤] 덧널무덤 (민족)
덧널무덤

            경주 조양동무덤(60호). 구덩이를 파고 널을 넣은 덧널시설이 이루어진 무덤. 무덤 속에 관을 넣어두는 묘실을 목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목곽묘라고도 하며, 단순한 움무덤의 토광묘와 낙랑 시대의 목곽분과 구별하기 위해 토광목곽묘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경주 조양동무덤(60호). 구덩이를 파고 널을 넣은 덧널시설이 이루어진 무덤. 무덤 속에 관을 넣어두는 묘실을 목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목곽묘라고도 하며, 단순한 움무덤의 토광묘와 낙랑 시대의 목곽분과 구별하기 위해 토광목곽묘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구덩이를 파고 널을 넣은 덧널시설이 이루어진 무덤. 무덤 속에 관을 넣어두는 묘실을 목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목곽묘(木槨墓)라고도 하며, 단순한 움무덤의 토광묘와 낙랑 시대의 목곽분과 구별하기 위해 토광목곽묘(土壙木槨墓)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모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기원]

기원은 삼림 지대의 주민들에서 비롯되었다. 시베리아 지방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 무덤 형태를 지녀왔다. 남시베리아 스키타이(Scythians)ㆍ몽고ㆍ한국 등지와 유럽 할슈타트 문화(Hallstatt文化)에서도 목곽묘를 만들었다.

[중국]

연대도 오래되고 가장 발달된 목곽묘는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신석기 시대의 산둥성(山東省) 다원커우 문화(大汶口文化, 서기전 4000년경)의 무덤 중에서 상자 모양의 목곽이 발견되었다. 그 뒤 은나라에서 전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후장묘(厚葬墓)가 성행하였다. 형식은 스키타이 계통의 목곽이 유목민의 주거 형태를 모방한 것에 비해 각재 또는 목판으로 만든 상자 모양이었다. 한대 이후는 중원 지역 외에도 낙랑(樂浪)ㆍ양가오(陽高)ㆍ창사(長沙)ㆍ광저우(廣州) 등지로까지 확대되었고, 중원(中原)은 벽돌무덤[전축분(塼築墳)]으로 대체되었다.

[남시베리아와 유럽]

남시베리아에서는 스키타이 문화 이전인 서기전 2000년 중엽에 폴타프카 문화(Poltavka文化)에 목곽이 나타났다. 흑해 북안 스키타이 문화(서기전 8, 7∼서기전 3, 2세기)의 고총 고분(高塚古墳, Kurgan)의 목곽은 특히 유명하다. 목곽묘는 기마풍과 함께 서방의 할슈타트 후기 문화(서기전 6, 5세기)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쿠르간 목곽묘는 스키타이 문화의 동래(東來)와 함께 동방에 더욱 보급되었다. 남시베리아의 파지리크(Pazyryk)ㆍ바샤다르(Bashadar)ㆍ투에크타(Tuekta) 등지에서 발견된 서기전 5∼서기전 2세기의 알타이종족들의 수장묘에서도 목곽묘가 나타났다.

[몽고]

북몽고의 노인울라(Noin Ula)에서도 서기 전후의 흉노 선우(單于)의 목곽묘가 발견되었다.

[우리 나라]

우리 나라의 목곽묘로는 낙랑 시대의 것이 대표적이다. 서력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만들어진 이 무덤들은 지하 움 안에 각재로 네모난 방모양의 곽을 짠 형태이다. 봉토는 피라미드의 위를 자른 듯한 방대형(方臺形)이다. 목곽의 안은 나무로 벽을 세워 안곽을 만들고 그 곳에 대개 북으로 누운 부부 또는 가족의 관을 넣었다. 여자는 남자의 왼편에 자리잡는 것이 보통으로 신라와는 반대이다.

이러한 합장묘는 추가장을 한 것으로 봉토를 일부 헐어내고 목곽에 추가장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방은 하나인 경우도 있지만, 앞뒤 두 개인 것도 있다. 유명한 채협총(彩練塚)에서는 앞방의 벽에 기마도가 먹과 붉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묘실의 평면 구성과 벽화 장식으로 보아 고구려 벽화 무덤의 선구가 아닌가 한다. 그 밖에 강서 태성리, 은율 운성리, 봉산 송산리, 영천 어은리, 경주 입실리ㆍ구정리, 부산 노포동, 김해 양동리 등지에서도 발견되었다.

태성리 제10호분의 경우, 토광을 동서로 나란히 파고 낙랑 고분식으로 동에는 남자, 서에는 여자를 목관에 넣어 묻었다. 송산리 고분에는 북쪽 끝을 따로 구분해 토기를 부장하는 목곽을 만들었고 천장은 판자로 덮었다.
대곡리에서는 동검ㆍ세문경ㆍ동도끼ㆍ쌍방울ㆍ절삭공구 등 청동 제품이 출토되었다. 노포동 무덤은 관곽 시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철제용구ㆍ토기ㆍ유리제품ㆍ수정곡옥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양동리에서도 한대의 거울ㆍ철검ㆍ청동제검파두(靑銅製劍把頭) 등이 발견되었다.

목곽묘의 양식은 초기 철기 시대에 대동강 유역으로 들어와 세력가들의 무덤 형태로 차차 전국으로 퍼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지역에서는 부조예군묘(夫租濊君墓)ㆍ고상현묘(高常賢墓)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무덤에서 출토되는 청동기와 철기 유물들의 결합상을 통해 문화 단계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반면, 경주시를 중심으로 한 무덤들은 경주 조양동 무덤같이 원삼국 시대로 이어져 경주 고신라 시대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조양동의 무덤은 3세기경의 것으로 초기 철기 시대의 토광목곽묘의 전통을 이어받아 고신라의 적석목곽분으로 넘어가는 과도 형식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는 철제무기ㆍ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한편, 경주식의 적석목곽분이 아니면서 조양동 무덤과 연결되는 토광목곽묘 계통의 무덤이 부산 복천동 학소대(鶴巢臺)와 경산 임당동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는 토광목곽묘와 적석목곽묘의 계통 변화를 파악하는데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일본의 경우, 곽은 점토곽(粘土槨)ㆍ목탄곽(木炭槨) 등의 용어로 표현되고 있는데, 중국이나 우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목곽묘와는 규모나 구조면에서 내용을 달리한다.

≪참고문헌≫

韓國考古學槪說(金元龍, 一志社, 1973), 釜山老圃洞古墳(釜山直轄市立博物館, 1985), 慶州朝陽洞土壙墓群4次發掘槪觀(崔鍾圭, 韓國考古學年報 9, 1982).

<강인구(姜仁求)>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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