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한국사사전1 한국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8-07-04 (금) 21:37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140      
[탑파] 백제계석탑의 양식분류와 특성 고찰 1 (천득염)
백제계석탑의 양식분류와 특성 고찰 1

천득염 (전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고찰 1
고찰 2

1. 백제계석탑의 분포상황

백제의 옛 영토인 충청도와 전라도 지방에 산재해있는 석탑들은 백제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석탑을 비롯하여 고려시대에 이루어진 것 들이다. 이들 중에서 고려시대에 이루어진 탑들은 백제와 신라시대석탑의 형식을 이어 받았기 때문에 백제계석탑, 신라계석탑 혹은 이들을 혼합ㆍ절충한 절충형석탑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 중 축조형식이나 의장양식에 있어 미륵사지석탑과 정림사지5층석탑을 원형으로 하여 생성된 탑들을 본고에서는 백제계석탑이라 칭하고자 한다.

이들 백제계 석탑들은 넓게는 충청ㆍ전라지방에 분포되어 있으며 좁게는 백제의 고도인 부여를 중심으로 충청남도 서남부와 전라북도 북부 일대에 집중 배치되었다. 즉 백제시대석탑의 의장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석탑들만을 대상으로 하면 그 분포 범위는 좁아져 충청남도 서남부와 전라북도 북부의 일대에 국한되고 있으나, 백제석탑의 요소를 미세하게라도 포함된 석탑들을 대상으로 하면 분포범위는 더욱 넓어져 충청남도에서 전라북도, 전라남도 남부에까지 폭넓게 확산된다.

<표1>에서 나타난 바와 같은 여러 석탑들은 백제시대 혹은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들로서 백제의 고도인 부여를 중심으로 하여 분포범위가 널리 퍼진다.

익산 왕궁리5층석탑은 백제석탑의 시원적인 탑인 미륵사지석탑을 모방한 것으로 익산에 인접한 지역인 왕궁리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비인탑과 계룡산5층석탑, 장하리3층석탑 등은 정림사지5층석탑을 가장 충실히 모방한 것으로 정리사지5층석탑이 있는 부여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잇다. 즉 부여의 서편인 비인, 동편인 계룡산, 백마강 바로 건너편 등에 있어서 정림사지 5층석탑의 모방과 재현이 부여에서 가까운 인근지역에서부터 보다 충실히, 보다 빨리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귀신사3층석탑, 옥구 죽산리3층석탑, 은선리3층석탑 등은 역시 정림사지5층석탑을 모방한 것이지만 앞서 기술한 부여 인근 지방의 보다 충실한 모방과 정연한 모습을 갖춘 여러 석탑에 비하여 전형적인 규범에서 다소 이탈한 것으로 이들이 부여에서 더 멀리 떨어진전라북도 북부지방에 분포되어 있음은 흥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표 1> 백제계석탑의 양식분류와 위치

2. 백제계석탑의 양식분류에 관한 기존연구

현재 백제의 고토였던 충청·전라지방에 산재되어 있는 탑파는 약 250여 기 이상이나 된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석조탑이며 모접탑과 목조탑도 몇 기 있다. 이들은 시기적으로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까지 계속해서 조영되었다. 그러나 백제계석탑은 백제시대에 건립된 2기의 석탑을 시작으로 하여 출발되었으나 통일신라시대에는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고 고려시대에서야 비로소 다시 정림사지 석탑의 모습을 모방한 형태로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다.

따라서 백제계석탑에 대한 양식상의 분류 역시 한국 석탑 전체 속에서 한 부분으로만 이어져 왔을 뿐이다. 즉 미륵사지 석탑과 정림사지 석탑을 한국 석탑의 시원적인 석탑으로 인정하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백제계석탑 양식이 없다가 고려 초에 이르러 백제의 옛 영토인 충청전라지역에서 정림사지석탑을 모방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형식을 백제계승양식이라고 분류하였다. 다시 말해 백제계석탑만을 대상으로 하여 그 양식을 분류 고찰한 기존의 연구는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필자는 시론적인 가설로 백제계석탑만을 대상으로 하여 시원, 전형, 과도, 백제계승Ⅰ, Ⅱ, Ⅲ형식, 백제ㆍ신라절충양식으로 분류하여 졸고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분류방법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 이를 수정 보완할 필요가 있음을 느껴 왔다. 이런 차제에 한국 석탑의 양식 분류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검토하여 보고 이를 근거로 백제계석탑에 대한 양식적 분류를 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미술사나 한국건축사를 전공으로 하는 여러 선학들에 의해 한국 석탑 전반에 걸쳐서 수 많은 연구 업적이 있었고 그들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2>와 같다.

<표2> 한국석탑에 있어서 백제계석탑에 대한 기존의 분류

그러나 이 분류 방법은 백제시대석탑, 신라시대석탑, 고려시대석탑 등과 같이 시대를 중심으로 한 구분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부분적으로는 석탑의 형식에 따라 시원양식, 전형양식, 과도양식, 성숙양식, 절충양식, 특수양식석탑 등으로 구분된다.

또한 지역에 따라 개성지역 경상지역 혹은 충청, 전라지역으로 구분하는 방법이나 1종, 2종, 3종 등의 구분방법도 있었다.

이들 분류방법들 중에서 백제형식을 부각시킨 것은 정영호, 윤장섭, 이경회, 김정기, 이은창의 연구 결과물에서만 나타난다. 이들은 고려시대에 건립된 백제계승형식을 큰 범주로 묶었을 뿐만 아니아 그 수효 역시 10여기에 불과하여 자료의 한계성을 갖고 있으며 또한 미술사 전반에 걸친 분석방법대로 외형적인 고찰에 그친 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의 연구로서는 정영호, 천득염, 정선종 등에 의해 새롭게 백제계석탑의 형식을 강조한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3. 백제계석탑의 양식분류와 특성

따라서 본고에서는 백제계석탑의 양식분류를 위하여 석탑 각 부분의 구성 요소를 분해하여 공통점을 추출하였고 의장적 분석이나 비례 등에서 나타난 공통점을 근거로 이들을 Grouping 하였다. 이들은 지역적으로 일정한 곳이나 인접한 곳에 집중되었을 것이라는 가정과 시기적으로 건립연대가 비슷할 것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또한 외형적 감각 특히 탑 전체가 주는 안정감이나 고준한 느낌, 우아한 곡선이나 날카로운 직선 등에서도 유사한 그룹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특히 체감률에서 나타난 근거는 더욱 중요한 논거가 될 것이다.

이러한 고찰의 결과 백제계석탑의 양식상 분류는 시원양식, 전형양식, 과도양식, 순수 백제계승양식, 절충양식(이를 다시 세분하여 백제계 절충양식, 신라계 절충양식으로 나뉨)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백제계 절충 양식을 다시 탑신괴임대형과 세장고준형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이러한 형식분류는 다소 인위적인 것으로서 아직 학계의 통설이 되지는 않고 있으며 또한 이들 석탑을 그렇게 세분할 수 있는가 하는 반론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가. 시원양식

한국의 불탑이 초기에는 목조탑으로부터 출발하였으나 목조 건축의 특성상 쉽게 썩고 불에타기 쉽기 때문에 석재로 바꾸어 새로운 불탑양식이 발생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바다. 따라서 양식발전사상 석탑의 시원양식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전의 탑파 양식 즉 목탑의 양식을 가장 충실히 구비하고 있는 탑이 시원양식이 된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또한 현존하는 석탑의 관련기록 중에서도 그 연대가 가장 높은 것이 있다면 이 역시 시원탑으로서 논거를 지닌 것이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시원석탑이 지녀야 할 논거를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는 석탑은 우리나라 최고최대의 석탑으로 이미 잘 알려진 미륵사지 석탑이다. 이 석탑은 백제 무왕대에 창건되었으며 목조탑의 형식을 가장 충실히 모방하고 있다.

이 탑은 그 전체 형식에 있어 목조 가구 기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후세에 볼 수 있는 석탑과는 상당히 다른 차이점이 있다. 즉 목조 건축을 석조로 번안하는 과정에서 칸의 나눔, 십자형 내부공간, 초석, 고맥이돌, 계단, 우주의 민흘림과 안쏠림, 평방, 창방, 문비, 찰주, 옥개석의 후림과 조로, 반전 등이 나타난다.

이 탑의 특성을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표3> 시원석탑의 특성

1. 목조탑의 가구수법을 가장 충실히 모방, 번안한 것이다.
2. 거의 모든 부재가 각기 다른 별석으로 조립되었다.
3. 체감률이 완만하다.
4. 고려척을 사용하였으며 주간의 1/10을 기본단위로 하여 조형계획을 세웠다.
5. 규모가 가장 크다.
6. 史書에 건립시기를 알 수 있는 관련기사가 나타난다.
7. 品자형 삼원가람이지만 각각의 원에 있어서는 일탑일금당형식이다.

■ 기단부
1. 하층기단이 극히 간단히 표현되고 상층기단이 뚜렷하게 구성된 초기적 이중기단이다.
2. 초석과 계단을 갖춘 목조건축의 기단형태이다.
3. 동탑의 기단형태로 보아 갑석에 부연이 없다고 판단된다.

■ 탑신부
1. 탑파건축으로 내부공간을 의도한 십자형 통로가 있다.
2. 기둥모양으로 탑신을 방 3칸으로 나누었다.
3. 초층의 우주에 민흘림을 나타내었다, 따라서 탑신전체가 상촉하관의 오금을 이루었다.
4. 초층의 구성에 있어 초석, 고맥이돌, 벽석, 문선대, 창방, 평방 등을 갖추어 목조가구 형식을 이루었다.
5. 초층 중앙칸에 문설주가 있고 문짝을 달았던 흔적이 뚜렷하다.
6. 창방과 옥개받침 사이에는 공포가 있어야 할 위치에 수평의 벽석이 있다.

■ 옥개부
1. 옥개받침은 3단 및 4단의 역 사다리꼴이며 상하 2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다.
2. 옥개받침의 층단형태는 수평이 아니라 완만한 경사를 이루었다.
3. 옥개석은 얇고 넓은 판석형석재로 여러 매로 조립하였으며 처마석보다 추녀석이 커서 모서리 부재를 강화한 느낌이다.
4. 옥개석은 처마선이 수평을 이루다가 추녀부분에 이르러 가벼운 반전을 한다.
5. 추녀석 윗부분에는 납작하고 두툼한 우동을 표현하였다.
6. 2층 이상은 탑신 괴임대를 설치하였다. 이는 옥개석의 긴 돌출부를 위에서 누르는 역할을 하고 얕은 탑신고를 보강한 듯하다.
7. 옥개석의 크기가 기단보다 커서 낙수면이 기단의 밖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한국 석탑의 시원형으로서 미륵사지 석탑의 특성을 고찰하여 보았다. 그런데 한국 석탑의 시원과 관련하여 미륵사지 석탑과 비슷한 시기에 신라의 왕도인 경주에 건립된 분황사모전석탑의 출현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즉 한국 석탑의 시원을 밝히는 데에 있어 출발을 두 개의 뿌리에서 찾는다면 미륵사지석탑과 분황사 모전 석탑을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형식이라는 입장에서 대비적 개념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즉 미륵사지석탑에서 출발하여 정림사지석탑과 분황사모전석탑으로 분리된 형식, 즉 백제양식과 신라양식으로 나누어지느냐 하는 점과 아니면 미륵사지석탑이 반도의 서쪽인 백제에서 분황사지모전석탑이 반도의 동쪽인 신라에서 출발하였느냐 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지극히 난해하여 쉽게 결정지을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다만 목조탑을 새로운 재료로 탈바꿈시키면서 고유한 한국적 정서에 적응하고 목조탑을 모방한 미륵사지석탑과 중국적 감각과 재료에 의한 분황사모전석탑이 시원적 석탑으로 분명히 구분된다. 결국 이들 두 개의 커다란 뿌리는 백제계석탑형식이라는 조그마한 줄기와 신라계 석탑형식이라는 커다란 줄기로 이어져 내려왔다. 물론 백제계석탑형식이라는 조그마한 줄기는 신라의 삼국통일에 의한 정치ㆍ문화적 지배에 의해서 위축되어 장기간 동안 그 모습이 나타나지 못한 것 또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석탑의 출발점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 석탑은 백제 무왕대(600~640)에 건립된 미륵사지 석탑과 선덕왕3년(634)에 건립된 분황사모전석탑이다. 전자는 백제시대의 석탑으로 한국에 유존되어 있는 석탑 중에서 최고최대이며 앞서 유행되었던 목조고루 형식탑을 석조로 가장 출실히 옮긴 석탑의 祖形이다. 후자 역시 고신라의 왕경이었던 경주에서 석재로 塼을 모방하여 출발한 모전석탑이지만 신라 석탑 건축의 효시이다.

이 양탑을 한국석탑의 시원적 석탑으로 특히 백제석탑양식과 신라석탑양식의 출발점에 선 석탑으로서 이들의 조형특성을 비교 고찰하여야 할 것이다.

양탑을 두 양식의 시원적 형태로 판단한다면 무엇보다도 우선 창건연대에 대한 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분황사석탑의 창건연대에 관하여는 『삼국사기』권5 신라본기 제5에 “善德王三年春正月改元仁平芬皇寺成”이라 하여 이 탑의 건립연대에 대하여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미륵사지석탑의 창건연대에 대한 논의는 한국미술사에 있어서 오랫동안 중요한 관심사다. 현재까지의 결과는 백제 무왕대, 그 중에서도 무왕35년의 ‘왕흥사성’이 ‘미륵사성’을 의미할 것이라는 홍사준의 견해와 또 ‘眞平王遣百工助之’ 즉 신라의 진평왕이 여러 공인을 백제에 보내어 미륵사의 공사를 도왔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진평왕 재위(579~632)의 어느 시기일 것이라는 견해가 주목된다.

즉 미륵사가 무왕원년(600)부터 시작되어 35년간이나 공기가 지속되었고, 진평왕이 ‘百工助之’할 수 있는 기간도 그의 재위기간과 중첩되는 32년간 사이에 있었다면 백제 模木石塔에 관한 기술이 전해졌거나 최소한 상호 기술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서로 있던 양 국가들 중에서 백제에서 거대한 모목석탑을 건립한다는 정보는 신라를 자극하였을 것이고, 이에 신라의 창의성을 살릴 수 있는 모전석탑의 건립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도 가능하겠다.

석탑의 구성부위들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미륵사지석탑 하층기단 폭이 약 41尺, 상층기단 폭이 35.5尺인데 비하여 분황사석탑의 현존 기단 폭은 약 43尺의 단층기단으로 탑신부의 규모에 비하여 넓은 편이다. 이렇게 넓은 기단을 이 탑의 조형계획에서 인정한다면 초층탑신의 감실과 연관시켜 석조계단도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모전석탑이면서도 탑신에 오금과 옥개에 미세한 반전을 나타낸 것은 한국적인 지붕 윤곽미의 片貌를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되며 중국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기적으로 비슷한 때에 발생한 한반도 동서양국의 시원형석탑은 백제에서는 모목석탑으로, 고신라에서는 모전석탑으로 출발하였다고 생각된다. 또한 양국이 서로 돕고 영향을 끼치면서도 독창적인 조형을 이룩하여 지역적으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하나 시원형식인 양탑이 건립시기, 내부공간과 기단 및 석조계단, 처마의 표현, 탑신의 오금기법 등에서는 일맥상통한 조형의지를 보이고 있다할 것이다.

나. 전형양식

목조탑을 재현하려는 데에서 시작되었던 백제석탑은 시대가 점차 내려옴에 따라 석재가 가지고 있는 시공상의 난점은 규모의 축소를 가져오고 세부형식이 간략화 되어 결국 정림사지석탑과 같은 백제석탑의 전형양식이 성립되게 되었다.

미륵사지석탑은 세부구성형식이 석탑으로서 정형화되지 못하였음에 반하여 정림사지 석탑은 정돈된 형식미와 세련되고 완숙한 의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좁고 낮은 단층기단과 각층 모서리기둥(隅柱)에 보이는 민흘림, 탑신의 오금, 얇고 넓은 각층 옥개석의 형태, 옥개석 단부에서 나타나는 반곡, 옥개석 하부의 받침수법, 낙수면의 내림마루인 우동 등에서 목탑적인 기법을 볼 수 있지만 맹목적인 목조양식의 모방에서 탈피하여 창의적 변화를 보여주면서 석탑으로서 완벽한 구조형식을 확립하게 되었다.

이 석탑의 건립연대에 대하여는 미륵사지석탑에 뒤이은 탑이라는 설이 일반화되어 있으나 衫山信三와 米田美代治는 두 탑의 선후관계를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정림사지석탑이 한국석탑의 최고 및 시원을 이룬다 하였다. 또한 근래 충남대박물관의 정림사지발굴결과 이 석탑의 건립을 사찰의 초창에 준하는 6세기 전반기로 보는 견해가 있고 이 같은 설과 유사한 논문들이 있어 논란의 여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석탑건립의 시기에 관한 논란은 아직까지는 구체적 물증이 없어 논의에 불과할 뿐이고 현 단계로서는 한국석탑이 분명 목조탑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생각할 때 여러 가지 의장적인 기법으로 보아 정림사지석탑이 미륵사지석탑의 뒤를 이은 백제계석탑의 전형으로서 고려시대의 석탑에까지 규범이 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표 4> 전형양식석탑의 특성

1. 시원적인 목조탑의 형식에서 탈바꿈하여 본격적인 석탑으로 정형화된 모습을 갖추었다.
2. 시원탑에서 복잡하게 구성되었던 부재들이 생략되거나 간단하게 정리정돈 되었다.
3. 모든 부재가 각기 다른 별석재로 되었다.
4. 체감률이 다소 급하다.
5. 고려척을 사용하였다.
6. 후대 백제계석탑의 전형이 되고 있다.

■ 기단부
1. 초층기단이 지극히 소략된 초기적 2중기단이다.
2. 기단 주위의 외곽석과 보석의 흔적이 보인다.
3. 지대석과 지석이 확실히 갖추어졌다.
4. 시원탑인 미륵사지 석탑에서 있었던 초석과 고맥이돌, 창방, 평방, 벽석, 문비, 십자형통로가 없어졌다.
5. 기단의 갑석이 두껍고 경사가 없다.

■ 탑신부
1. 1칸의 5층탑으로 그 규모가 줄어들었다.
2. 우주에 민흘림이 있다. 따라서 상총하관의 오금기법이 보인다.
3. 면석을 2매석으로 하고 있다.

■ 옥개부
1. 옥개받침은 각형과 사릉형의 2단으로 하였는데 각각이 별개의 석재이다.
2. 옥개석을 이루는 선이 우아한 곡선이다.
3. 옥개석은 囲字형8석, 田字형4석으로 구성 조립되었다.
4. 비교적 두꺼운 각형의 탑신괴임석재가 있다.
5. 옥개석의 처마석은 직선으로 추녀석은 곡선으로 이어져 맨 끝에서는 가벼운 반전을 이룬다.
6. 옥개석의 상부에는 단면이 호형인 내림마루, 즉 우동이 있다.
7. 옥개석의 폭이 기단갑석의 폭보다 넓다.
8. 옥개석 낙수면 단부의 절단석이 수직선을 이룬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백제계석탑으로서 가장 모범적인 정형을 이룬 정림사지석탑은 미륵사지석탑이 지니는 목재탑으로서의 의장적 의미구현이라는 명제를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일대 변환을 기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장차 고려시대에 나타날 백제계석탑의 전형이 되어 그 의장성이 이어지는 것이다.

또한 시원양식에서와 같이 신라계석탑의 전형을 이룬 불국사 석가탑과 백제계석탑의 전형탑인 정림사지5층석탑을 비교하여 한국석탑의 두가지 줄기를 조형 양식적으로 대비시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다. 과도양식

과도양식이란 백제전형양식으로부터 고려시대의 계승양식에 이어지는 중간단계, 즉 과도적 단계의 양식을 말한다. 이 과도기 양식의 탑으로는 왕궁리석탑을 들 수 있겠다. 왕궁리석탑은 형태의 면에서는 미륵사지석탑을 따랐으나 규모가 작아졌고 부재수를 줄여 신라전형양식의 기법을 수용하였으며, 옥개석의 모양이나 田자·囲자형조합 등은 정림사지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탑의 양식이나 건립시기에 대하여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백제의 고토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역적, 전통적 영향으로 백제양식과 신라양식이 혼합·절충하여 표현된 것으로 고려시대에 건립이 많이 된 백제·신라양식의 절충양식에 선행되는 과도기적 양식으로 규정할 수 있겠다. 즉 고려시대에 정림사지석탑을 모방한 석탑들에 선행하였으며 시기적으로나 양식적으로 진일보한 과도적인 탑이라 하겠다.

이 탑의 건립시기에 대하여 강우방은 백제시대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시하였는데 필자의 견해로서는 전체적인 탑형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일 것으로 생각된다.

<표5> 과도양식석탑의 특성

■ 전체적인 특성
1. 전체적인 모습은 미륵사지 석탑과 비슷하나 가구수법은 정림사지 석탑을 모방한 형태이다.
2. 부분적으로는 옥개석은 정림사지석탑, 옥개받침은 미륵사지석탑과 유사하다.
3. 미륵사지 석탑보다는 작고, 정림사지석탑보다는 크다.
4. 체감율은 미륵사지석탑과 비슷하다.
5. 기단부에서 발굴된 불경 등의 유구들로 보아 대단한 역사였을 것이다.

■ 기단부
1. 9세기 통일신라석탑에서 나타난 단층기단의 모습이다.
2. 특히 갑석하부의 부연이나 상부의 경사진 낙수면, 1층탑신괴임용 몰딩은 신라탑 형식의 기단과 거의 일치한다.
3. 기단내부의 중앙부에는 적석찰추를 축조하였으며, 기단 네 모서리에는 8각고주형 초석을 놓아 각각 1층의 우주를 받게 하고 있는 형식이 미륵사지석탑의 기단부와 비슷하다.

■ 탑신부
1. 1층 탑신은 석탑에서는 이례적으로 2칸이다. 특히 중앙의 탱주가 양쪽 판벽의 일부를 함께 단일석으로 조각, 결구하여 기둥과 벽면석을 별석으로 하였던 백제시대의 석탑과는 다른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2. 2층부터 5층까지 탑신은 1칸으로 우주와 면석을 한 석재에 모각하였다.

■ 옥개부
1. 옥개석 위의 1단의 탑신받침은 얕으며 옥개석과 단일석으로 모각하였다.
2. 옥개받침은 각형 3단으로 미륵사지석탑과 유사하나, 각 단이 층으로 나누어지지 않았다.
3. 옥개석은 정림사지석탑과 같이 전자모양으로 4매석, 囲字모양으로 8매석을 이룬다.

라. 순수백제계승양식

신라의 삼국통일을 계기로 백제석탑조영에 있어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즉 200여 년 동안이나 백제양식을 나타내는 석탑은 건립되지 못하고 신라석탑양식만이 전 국토에 걸쳐 조영되었다. 그후 고려시대에 들어서 신라의 정치적·문화적 굴레에서 벗어나자 백제의 고토인 충청·전라도에 백제의 석탑양식을 계승한 석탑들이 다수가 건립되었다. 결국 신라는 통일을 이루고 백제나 고구려에 있어서 옛 문화를 이어갈려고 하는 의지를 억압한 셈이 된다. 이러한 경향은 석탑에서 더욱 여실히 나타난다고 하겠다.

이제까지 고려시대에 건립된 백제계 석탑들은 선학들에 의해 백제계승형식 혹은 충청·전라지역의 석탑 등으로 표현되었으나 본고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탑파의 구성요소를 분석하여 유사성을 찾고, 타 양식에 비하여 유별성을 갖는 것들을 모아 양식분류를 하여 그 형식 명칭을 시론적으로 만들어 부르고자 한다.

즉 고려시대에 건립된 탑 중에서 백제시대 양 탑의 요소를 순수히 계승한 양식과 백제와 신라탑의 요소를 부분적으로 절충한 양식으로 크게 구분하여 이를 ‘순수백제계승양식’과 ‘백제ㆍ신라절충양식’으로 부르고자 한다.

순수백제계승양식의 탑들은 충청남도 부여지방을 중심으로 배치되고 일부는 전라도 북부지방에까지 분포된 탑들로서 비인오층탑, 장하리삼층탑, 계룡산오층탑, 은선리삼층탑, 귀산사삼층탑, 순화리삼층석탑, 죽산리삼층석탑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정림사지5층탑을 충실히 모방한 것으로 고려시대에 건립된 백제계승 양식석탑 중에서 가장 연대가 앞선 것으로 짐작되며 백제의 고토에서 백제에 대한 고려인들의 향수를 나타낸 탑이라 하겠다.

석탑의 조영방법은 모두가 다 단층기단으로 되었으며, 평평하며 얇고 넓은 옥개석이 囲자형8개석, 또는 전자형4개석으로 구성되었으며, 옥개석 밑에는 각형과 사능형의 옥개받침이 각기 별석재로 조립되어 있다. 또한 옥개의 단부에서 나타나는 경쾌한 반곡이나 옥개석 상부의 내림 마루인 우동의 두툼한 형태, 탑신의 급격한 체감으로 인한 고준한 모습, 다수의 별석재를 조립 구성한 목조가구 수법 등에서 백제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표6> 순수백제계승양식석탑의 특성

■ 전체적인 특성
1. 백제계석탑의 전형인 정림사지석탑을 충실히 모방하고 있다.
2. 거의 대부분의 부재들이 별석으로 되어 이들을 조립 구성하였다.
3. 전체적인 체감율이 급하다.
4. 대부분 규모가 적어졌다.
5. 탑신부나 기단부에 장식이 전혀 없다.

■ 기단부
1. 단층기단이다. 따라서 지대석과 저석의 구별이 없고 하층기단이 없다.
2. 중석을 1매석으로 한 경우도 있다.
3. 기단 갑석은 두툼한 각재인데 하부의 부연이나 상부의 경사 및 1층탑신괴임용 몰딩이 없는 형태이다.
4. 갑석의 폭은 1층 옥개석의 폭보다 좁다.

■ 탑신부
1. 1층 탑신의 우주에는 민흘림이 뚜렷하고 탑신도 윗부분은 좁고 아랫부분은 넓은 상촉하관의 오금기법을 하였다.
2. 탑신괴임이나 옥개받침의 석재들을 비교적 두꺼운 각재로 만들었다.
3. 상층으로 올라가면서 탑신을 1매석으로 하고 우주를 모각하였다.

■ 옥개부
1. 옥개받침의 형태는 각형 1단위에 사능형 1단을 얹은 2단이거나 그 중 1단만을 지닌 형태이다.
2. 옥개석은 규모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囲자형 8석, 田자형 4석으로 구성 조립하였다.
3. 옥개석의 형태는 평평하고 얇으며 넓어 평박광대하다.
4. 옥개석의 처마석은 직선으로 추녀석은 곡선으로 이어져 맨 끝에서는 가벼운 반전을 이룬다.
5. 옥개석의 내림마루 즉 우동은 단면을 둥그런 호형으로 만들었다.
6. 옥개석 낙수면 단부의 절단석이 수직선을 이룬다.

(뒤에 계속)

출전 : 미륵사지유물전시관, [사진특별전 백제 양식 석탑], 2005. 12, pp.189-211
   
윗글 [탑파] 백제계석탑의 양식분류와 특성 고찰 2 (천득염)
아래글 [미술] 불상 (브리)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1232 문화사 [무덤] 고인돌 (한메) 이창호 2010-06-04 439
1231 문화사 [무덤] 고인돌 (두산) 이창호 2010-06-04 1087
1230 문화사 [무덤] 고인돌 (민족) 이창호 2010-06-02 738
1229 문화사 [탑파] 백제계석탑의 양식분류와 특성 고찰 2 (천득염) 이창호 2010-04-12 1199
1228 문화사 [탑파] 백제계석탑의 양식분류와 특성 고찰 1 (천득염) 이창호 2008-07-04 2140
1227 문화사 [미술] 불상 (브리) 이창호 2005-01-17 10736
1226 문화사 [미술] 불교미술 (브리) 이창호 2005-01-16 7459
1225 문화사 [미술] 불교미술 (한메) 이창호 2005-01-16 5882
1224 문화사 [미술] 불교미술 (두산) 이창호 2005-01-16 6282
1223 문화사 [현대] 현대건축=20세기건축 (브리) 이창호 2005-01-10 7972
12345678910,,,13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