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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3-21 (목) 18:42
분 류 문화사
ㆍ조회: 7336      
[삼국] 신라미술 (한메)
신라미술 新羅美術

관련항목 : 한국미술

신라 때 이루어진 미술.

경주분지(慶州盆地)를 중심으로 한반도 남동부에서 일어난 신라는 북방 스키타이계 문화와 가야(伽倻)ㆍ백제ㆍ고구려의 한민족 문화(韓民族文化), 중국의 6조(六朝)와 수ㆍ당문화(隋唐文化), 그리고 인도(印度) 등의 남방 해양 문화 등을 받아들이고 주체적으로 소화시켜서 독창적이고 찬란한 신라 양식(新羅樣式)을 만들어냈다. 신라 미술은 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분 껴묻거리[副葬品]와 석조물 등의 형태로 많이 나타나며, 일본과 고려의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회화]

1973년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651년(진덕여왕 5) 이전에 있었던 채전(彩典)은 일종의 화원(畵院)으로서 당시의 회화 수요에 응하기 위해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와 백제의 영향을 받았으며, 《삼국사기》의 기록에 당나라에서 보내온 모란그림이야기가 있는 점으로 보아, 당나라의 그림이 신라에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경주시 황오동(皇吾洞) 천마총(天馬塚)에서 나온 <천마도(天馬圖)> <기마인물도(騎馬人物圖)> <서조도(瑞鳥圖)>, 98호분에서 나온 <우마도(牛馬圖)>, 경상북도 영주시(榮州市) 순흥면(順興面) 어숙묘(於宿墓) 내벽과 천장에 그려진 인물과 연꽃, 역시 순흥에서 발견된 고분 내부의 역사상(力士像)ㆍ산악도(山岳圖)ㆍ연화도(蓮花圖) 등의 자료를 통하여 신라회화의 수준을 엿볼 수 있다.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 위에 그린 말갖춤장식[馬具裝飾]으로 둘레는 인동당초무늬의 띠로 두르고, 그 안에 달리는 백마를 그렸다. 신라회화는 공예전문가들에 의해 그러졌기 때문에 전문화공들의 작품인 고구려 고분벽화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편이다.

[조각]

경주 남산 불곡 마애불좌상(감실 부처)535년(법흥왕 22) 불교가 공인된 뒤 많은 불상이 만들어졌다. 574년(진흥왕 35) <황룡사금동장육삼존상(皇龍寺金銅丈六三尊像)>이 완성되었는데, 그 형태와 양식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중국 남북조(南北朝) 양식의 습합(習合)이었을 가능성이 많으므로 당시 조각계의 모범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6세기 후반기의 불상양식은 <인간적 추상주의>로서 당시의 현실적 인물상을 사실적 기법으로 재현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석굴(石窟)의 양식이 나타났다. 7세기 초부터 중국의 북제(北齊)ㆍ수나라의 양식이 들어와 초기양식과 결합한 경주 남산(南山)의 불곡(佛谷) 마애불좌상과 <금동반가사유상> 등이 있다.

삼국 통일 직후인 7세기 말은 신라 조각 양식이 확립되어 가는 시기로 성당양식(盛唐樣式)이 주류를 이룬다. <군위삼존석불(軍威三尊石佛)>과 같은 보수적 전통과 함께 이를 융합하고 극복해 나가는 시기였다. 이때, 조각가 양지(良志)의 활동이 활발하였다. 8세기는 진정한 의미의 신라조각 양식이 완성되어 근엄하면서도 우아한 얼굴과 신체 각 부분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세련되고 생동감 있는 <이상적 사실주의>가 정착된 시기로서 부처의 모습을 이상적 인체에 구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양식으로 만들어진 <석굴암(石窟庵)>은 불교미술의 절정을 이루었다.

8세기 말부터 9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에는 형식화가 진행되었다. 형태적으로 장대해지고 현실성이 두드러지는데, 삼릉계(三陵溪) 선각마애불 등 대형 마애불이 많이 만들어졌다. 9세기 중엽 이후는 신라의 쇠망기로 8세기 조각의 긴장과 탄력에서 멀어진 현실적이고 해이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의 화합에 따라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이 만들어지고, 철조불상(鐵造佛像)이 주조되었다. 신라의 조각은 그 생성과정이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사실주의 조각 양식의 기법으로 대승불교의 구원적 이상주의를 지상에 구현시켰다.

[건축]

안압지 전경5세기 무렵부터 나무를 짜맞추어 기둥과 보를 얽고 지붕을 기와로 얹은 건축물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고분에서 볼 수 있는 나무널[木棺] 등으로 미루어 목조건축기법이 매우 발달했으리라 여겨진다. 석조건축물로 <첨성대(贍星臺)>와 <분황사석탑(芬皇寺石塔)>이 남아 있다. 당시의 몇몇 절터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서 가람배치형식이 알려졌다. 대체로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고, 백제 및 중국 남조(南朝)의 영향도 보인다.

삼국 통일 이후의 신라 건축에 대한 기록과 유적은 상대적으로 많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도성 내에 17만 8936호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674년(문무왕 14) <왕이 궁내에 못을 파고 조산(造山)하여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동물을 길렀다> 하고, 679년에는 <궁궐을 새로 고쳤는데 매우 장려하였다>고 했는데, 이는 지금의 안압지(雁鴨池) 터에 있던 동궁(東宮)이다. 현재 초석(礎石)이 남아 있어 규모를 짐작하게 해준다. 반월성(半月城)은 신라 초기에 세워진 궁성으로 말기까지 쓰여졌다.

이 시기의 건축은 사찰건축에서 가장 활발하였다. 부석사(浮石寺)ㆍ사천왕사(四天王寺)ㆍ감은사(感恩寺)ㆍ망덕사(望德寺)ㆍ해인사(海印寺) 등 기록에는 50여 개가 넘고 중요한 유구(遺構)를 남기고 있거나 지금도 법사(法事)가 계속되고 있는 사찰도 많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사찰로는 역시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을 들 수 있다. 불국사의 목조건물은 조선시대에 다시 지은 것이지만 건축의 공간처리나<청운교(靑雲橋)>와<백운교(白雲橋)><연화교(蓮花橋)>와<칠보교(七寶橋)> 및<석가탑(釋迦塔)>과 <다보탑(多寶塔)> 등은 전통건축의 완벽함을 보여준다.

<석굴암>은 조각작품으로 더 알려졌지만, 지형을 이용한 자연스러운 건축양식으로서도 나무랄 데 없다. 이 시기의 또 다른 건축으로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師子三層石塔)> 등의 탑파와 법주사(法住寺)의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석연지(石蓮池)> 등의 불교와 관련된 작품이 많다. 이 시기의 일반건축양식은 많이 알려진 것이 없으나, 화려한 주심포계(柱心包系)이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성곽]

경주의 왕궁 주변에 성을 많이 쌓았고, 후에 국경 지방에 산성이 활발하게 쌓아졌다. 101년(파사이사금 22) 금성(金城)의 남동쪽에 월성(月城)을 쌓아 왕궁으로 삼았다. 월성은 남천(南川) 북쪽의 동서 1000m, 남북 400m인 반달모양의 낮은 언덕 위에 있으며 동ㆍ서ㆍ북 세 방향에 흙과 돌을 섞어서 성벽을 쌓았다. 6세기 후반 진평왕 때 월성이 거의 완성되었고, 삼국통일 뒤 북쪽 평지에 안압지를 낀 동궁을 건설하였다. 궁성의 동쪽에 명활산성(明活山城), 서쪽에 서형산성(西兄山城), 남쪽에 남산성(南山城), 북쪽에 북형산성(北兄山城)을 쌓았고, 그 바깥에 관문성(關門城)ㆍ부산성(富山城)을 배치하였다.

백제와의 국경지대에도 산성을 쌓았는데 대표적인 것은 충청북도 보은(報恩)의 3년산성(三年山城)이고, 총길이는 1860m로 돌로 쌓았다. 3년산성의 전방에는 산성리산성(山城里山城)ㆍ안내산성(安內山城)ㆍ굴산성(屈山城)ㆍ노고산성(老姑山城) 등이 있다. 삼국통일 이후에는 변경지방인 한주(漢州)에 많은 산성을 쌓았다.

[공예]

신라 미술에서 특히 발달한 공예는, 토기와 기와ㆍ토우(土偶) 등으로 대표되는 토공예(土工藝), 고분 껴묻거리와 범종(梵鐘) 등의 금속공예, 안압지 발굴유물에서 그 일단을 짐작할 수 있는 목공예, 유리공예(琉璃工藝)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토공예>

신라 입큰 항아리신라 토기는 낙동강 동쪽의 경상남북도와 강원도에서 나오는 회청색의 딱딱한 토기로서, 그 이전의 회청색삿무늬토기[灰靑色繩蓆紋土器]의 완성형이다. 100℃ 이상의 높은 온도가 가능한 굴가마〔登窯〕에서 구웠다. 표면에는 고리점무늬[圓圈紋]ㆍ문살무늬[格子紋]ㆍ나뭇가지무늬ㆍ생선뼈무늬ㆍ물결무늬[波狀紋]ㆍ맞톱니무늬[三角鋸齒紋] 등을 음각으로 새겼고, 말ㆍ사슴ㆍ사람 등을 나타내거나 조그맣게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 특히 굽이 붙은 토기가 많으며, 그 종류로는 굽다리접시[高杯]ㆍ뚜껑접시[蓋杯]ㆍ목항아리[長頸壺]ㆍ항아리[短頸壺]ㆍ굽다리항아리[臺附壺]ㆍ굽다리사발ㆍ그릇받침[器臺]ㆍ대접 및 이형토기(異形土器) 등으로 다양하다.

5∼6세기 가장 왕성하게 만들어진 신라 토기들이 7세기 초에 큰 변화를 겪는다. 높은 굽이 낮아지고 이형토기들이 사라지며, 무늬도 도장무늬[印花紋]로 획일화되면서 표면에 유약을 입히기 시작하였다. 삼국통일 뒤 8세기초부터는 중국 당(唐)나라의 영향과 뿌리내린 불교문화 속에서 보다 정리된 토기들이 나온다. 뼈 단지[骨壺]ㆍ입큰사발ㆍ자라병[扁甁] 등의 형태, 도장무늬를 화려하게 찍은 표면, 녹색ㆍ황갈색ㆍ황록색의 색깔, 간혹 도장무늬 대신 점토띠를 붙인 꾸미개〔裝飾〕 등이 이 시기의 특징들이다. 앞선 시기의 활달함과 자유분방함을 실용적 전아함이 물리친 것이다.

안압지 출토 통일신라 와당통일신라 말기에는 민무늬[無紋]가 나타나고 청자(靑磁)의 앞선 양식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신라기와는 초기에는 백제기와와 비슷하나, 후기에 파와(巴瓦)ㆍ당초와(唐草瓦)ㆍ귀와(鬼瓦)ㆍ치와ㆍ평와(平瓦) 등이 만들어지고, 무늬도 다양해졌다. 초기 기와는 대범하고, 후기 기와는 섬세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신라토공예의 한 부분을 토우가 차지하는데, 주로 껴묻거리로서 만들어지고, 주술적 우상으로 그 쓰임새를 짐작할 수 있다.



<금속 공예>

천마총 출토 금관잘 발달된 야금술(冶金術)에서 비롯된 신라의 금속공예는 당나라보다 그 수준이 높았으며 합금술(合金術)도 알고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특히 금세공술에 뛰어나 금관ㆍ금귀걸이ㆍ금목걸이ㆍ금팔찌[金釧]ㆍ금허리띠ㆍ금띠드리개[金腰佩] 등은 환상적 조형감각을 보여준다. 식리총(飾履塚)에서 나온 신발은 도금한 구리만으로 만들어졌다. 또 곱은옥[曲玉]이 많은 점으로 미루어 옥공예도 활발했으리라 짐작된다. 현재 전하는 신라범종은 모두 11구이다. 이 가운데 강원도 평창군(平昌郡) 진부면(珍富面) 오대산(五臺山) 상원사(上院寺)의 <상원사범종>,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이 우수하다. 같은 시기의 중국ㆍ일본의 범종들에 비하여 제작수법이나 조각술, 소리의 맑기 등이 앞선다.

<목공예>

삼국 시대의 신라 고분에서는 칠기(漆器)가 다량으로 나온다. 곧 나무그릇에 옻칠을 입힌 것으로 신라의 목공예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한반도에 많이 자생하는 단풍나무ㆍ박달나무ㆍ피나무ㆍ들메나무ㆍ회화나무ㆍ느티나무 등을 깎고 다듬어서 말갖춤[馬具]ㆍ굽다리그릇ㆍ술잔ㆍ쟁반 등을 만들었다. 나무는 흙이나 금속보다는 다루기 쉬운 재료이므로 더 세밀한 가공이 가능했을 것이다. 1975년 발굴 조사된 안압지에서 다수의 목공예작품들이 나왔는데, 고분껴묻거리보다 일상생활에 밀착된 것들로서 합(盒)ㆍ쟁반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제작수법도 발전하여 오늘날의 베니어합판 원리를 연상시키는, 아주 얇은 나무판을 여러 겹 포개서 붙이는 가공법이 창출되었다. 이 수법은 일본으로 전해져서 쇼소인〔正倉院〕 소장의 《칠호병(漆胡甁)》을 낳았다. 이 칠기는 신라에서 만들어 보냈다고도 한다.

<유리 공예>

천마총 출토 유리잔신라 고분에서는 적지 않은 양의 유리제품들이 나오는데 서방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아왔으나, 말띠드리개〔杏葉〕에 얇은 판유리를 넣었다든가 굽은옥에도 유리로 된 것이 있다든가 유리에 기포가 많고 거칠다든가 하는 점으로 미루어, 유리가 생산되었다는 짐작이 가능해진다. 경주 황남동 98호분에서 나온 유리제품들과 천마총에서 나온<유리잔> 등을 종합하면, 삼국시대 특히 신라에서 유리가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리가 지니는 속성으로 그 형태가 독창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말띠드리개의 판유리나 사리병(舍利甁)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남청색 대접ㆍ팔찌ㆍ목걸이ㆍ곱은옥 따위의 장신구들이 유리로 만들어지는 유리공예의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

[서예]

신라는 서예에서도 일대를 이루었다. 삼국통일 이전의 금석문(金石文) 자료들은 고졸(古拙)한 맛을 풍긴다. 통일 뒤에 왕희지체(王羲之體)가 전해지면서 그 수준이 한결 높아졌다. 8세기에 활동한 김생(金生)은 왕희지체를 따르면서도 그 틀에서 벗어나는 독특한 서법(書法)을 완성했다. 낭공대사비(朗空大師碑)와 전유암첩(田遊巖帖)에서 유묵(遺墨)을 볼 수 있다. 말기에 이르러서는 구양순체(歐陽詢體)가 유행했고, 요극일(姚克一)ㆍ최치원(崔致遠) 등이 나왔다. <이종애>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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