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진첩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5-20 (월) 21:24
분 류 답사
ㆍ조회: 2748      
나주 향교 대성전


나주 향교 대성전(羅州鄕校 大成殿)

조선 중기, 전남 나주시 교동 32-1, 보물 제394호
규모 : 정면 5칸, 측면 4칸, 단층팔작지붕
문화재 지정 연월일 : 1963년 9월 2일

나주 향교 대성전은 향교의 중심 건물로 공자를 중심으로 한 27위의 위패를 모신 공간이다. 국내 현존하는 대성전 건물 가운데 규모나 격식면에서 제일의 것으로 유교 건축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대성전 벽흙은 공자님의 고향에서 가져온 것이라 전하며, 서울의 성균관을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지을 때 나주향교 대성전을 참조하여 지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공포( 包)를 기둥 위에만 배치한 주심포집 계통의 건축이다. 그러나 쇠서의 형태는 이미 익공(翼工) 비슷하게 변했으며 기둥과 기둥사이의 창방위에는 익공집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화반들이 배치되었다. 전면은 한칸통을 개방하여 퇴칸으로 하고 그 안쪽에 높은 기둥을 세워 중앙과 좌우 양단간에 각각 문비(門扉)를 달았으나 출입문이 없는 기둥칸에는 큼직한 살창을 만들었다.

또 초석은 상면에 연판(蓮辦)을 새긴 장식을 보였다. 내부는 마루를 깔았고 후면에 고주(高柱) 4개를 한줄로 세웠으며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지붕 가구는 앞 뒤 고주에 대량(大樑)을 걸치고 그 위에 동자주형(童子柱形)의 대공을 세워 종량을 받쳤다. 이 동자주형 대공은 상부에 접시받침과 첨차와 양봉형을 갖춘 형식이다. 종량(宗樑)위에 배치한 대공은 파련대공(波蓮臺工) 비슷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건물 내부에 세운 고주와 주위의 평주는 퇴량으로 연결하였으며 이것을 받는 공포의 살미첨차는 한몸으로 합쳐서 양봉(樑奉)의 형식을 이루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공포와 옥개 가구재의 세부에 나타난 특징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 중기의 건축으로 짐작된다. 또한 나주 객사인 금성관의 공포 구조와 비슷한 점이 많다.

설명 출전 : 나주시청 홈페이지 http://210.100.182.129/sub_04/sub04_04_01_05.htm

답사 때 확인한 것은 원래 이 향교 자리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보이며, 절 금당의 연화문 초석을 그대로 대성전 초석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건물의 석조 기단도 금당의 기단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뒤쪽의 명륜당 공간이 대성전 공간보다 낮다.

2002년 5월 12일 오후 2시, 이창호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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