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게시판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3-23 (금) 20:49
분 류 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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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 한국 미술의 특색과 전통의 문제
강우방, 한국 미술의 특색과 전통의 문제

우리 나라나 외국의 미술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은 이상하리만치 한국 미술의 특색을 몇 마디로 규정하려 애써왔다. 그러나 그 문제를 일관성 있고 진지하게 다룬 사람도 드물거니와 그 특색을 명쾌하게 드러낸 사람도 거의 없다. 이 문제를 뚜렷한 관점을 가지고 고심한 분으로서 우현 고유섭과 동탁 조지훈을 들 수 있다. 그 후 다른 미술사학자들에 의한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대동소이하거나 즉흥적인 면이 많았다.

우현은 이러한 문제의 해답을 '깊은 연구와 장구한 고찰의 총결산'이라 하였으니, 이 말은 그의 생에 걸친 미술사 연구의 모든 것이 반영되었음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선학들의 글을 보면 때로 실망과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우리의 연구가 고작 이것이며 우리 미술의 특성이 겨우 이런 것뿐인가.

그러나 곧 비감한 생각을 거두고 그들이 왜 그러한 작업을 서둘러야 했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중국이나 일본의 미의 특색은 비교적 명료한 편이라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굳이 몇 마디로 규정하려 하지 않는다. 한때 일본이 한국을 점유했을 때 한국의 존재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한국 미술도 그때서야 비로소 일본인에 의하여 처음으로 연구되었고 그 특색이 거론되었다. 그들이 한국 미술을 보았을 때 간취된 것은 일본 미술의 관점에서 포착된 한국 특유의 미적 감각이었다. 한국 미술이 일본 미술과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시각에 비추어 한국 미술을 찬탄하거나 혹은 혹평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시 일본인이 본 한국 미술의 특색일 뿐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타국인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우리 나름의 미술사를 정립해야 하는 것이 시급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아왔다는 생각과 일본인에 의한 상대적, 때로는 왜곡된 평가를 하루빨리 제쳐두고, 우리 문화의 독자성을 표방하기에만 다급했던 듯하다. 그러나 연구가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특색이 거론되었으므로 무리한 표현이나 무책임한 발설이 불가피했을 것이며, 때로는 특색을 규정하고 설명하는 동안 오히려 한국미의 본질이 은폐되거나 일그러진 경우가 많았다.

민족 미술의 특성은 언어를 빌려서 표현되자마자 부분적이며 상대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예를 들면, 고려 청자의 특성을 언급할 경우 그 해석은 당시 중국의 것과 비교했을 때 드러나는 특성만을 기술하게 되기 쉬우며, 백제 미술의 특색 또한 고구려나 신라와 비교할 때 드러나는 것에 관한 것일뿐 그것이 한국 미술의 전반에 걸친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미술의 속성은 어떤 상황과 조건에 의하여 늘 변화하며, 그러한 변화 속에서 '특성'을 추출할 수 있는 것이므로 고정된 개념으로 규정되어 버릴 성질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변의 그 무엇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우현 고유섭은 철학ㆍ미학ㆍ문헌 해독ㆍ심미안ㆍ문필가의 자질 등을 두루 겸비한 분이었다. 거기에다가 그의 학덕은 조지훈과 통하는 바가 있다. 그리고 그의 한국 미술에 대한 애정과 깊은 통찰력, 폭넓은 시야, 연구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은 만인의 모범이 되었다. 그는 회화ㆍ건축ㆍ도자 공예 등 한국 미술 전반에 걸친 기초 작업에 힘썼으며, 여러 가지 해석을 시도하여 시기적으로 참담했던 20세기 전반에 한국 미술사학의 정립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여 연구의 수준을 높였던 외로운 선각자였다. 특히 [조선 탑파의 연구]는 매우 훌륭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41세에 요절하여 학문적 연구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한국 미술사학 연구의 긴 공백기를 남긴 아쉬움의 여운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그런데 요즈음 그의 학문 정신을 계승하지는 못할 망정 그의 업적을 과소 평가하여 그의 방법론을 유종열의 아마추어적 방법론의 범주에 넣고 매도하는 경향이 생겨서 점차 그의 명성과 업적이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듯하다. 이러한 추세는 한국 미술사학의 전진에 역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학문 수준을 스스로 비하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나는 이 지면을 통하여 그가 언급했던 한국 미술의 특색에 관한 논고를 검토해 보고 그의 학문적 일단을 살펴 그의 진지한 학문적 태도를 재확인하고자 한다.

그는 <조선 고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 문제>에서 한국 미술의 특성은 민예적인 것이므로 신앙과 생활과 미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크게 규정한 뒤,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성향을 지적하였다. 우선 '무기교적 기교''무계획적 계획'을 그 특색으로 들면서 기교와 계획의 독자성, 자율성, 특수성이 자각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치한 맛, 정돈된 맛이 항상 부족하고, 질박한 맛과 순후한 맛과 순진한 맛이 뛰어나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삼국 시대 이래 한국 미술을 모두 민예적인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규정에서 출발하여 그는 다시 '비정제성''비균제성'이란 구체적 특색을 지적하면서 "이곳에 형태가 형태로서의 완형을 갖지 않고, 음악적 율동성을 띠게 된 것이니……"라고 하며 한국의 예술을 선적(線的)이라 규정한 유종열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출발하여"우아(優雅)에 통하는 약미(弱味)가 있고 다시 또 생동감"이 있다고 하였으며, "색채적으로 단조한 것과 곁들여 적조미(寂照美)를 구성한다"고 하였다. 그는 또 "사상적으로 철저한 깊이에 들어가지 않고 어느 한도에서 체관적(諦觀的) 전회(轉廻)를 한다"고 하고 이어 "이는 곧 끈기와 고집이 부족한 것이며, 반면에 허무ㆍ공무(空無)ㆍ운명의 관념이 쉽사리 이루어져 농조(弄調)로서의 '유머'가 나와서 '적료(寂蓼)와 명랑(明朗)'이라는 두 개의 모순된 성격이 동시에 성립되어 있다"고 결론지었다. 또 그는 한국 미술의 비균제성의 특질에서 파조적(波調的)이며 환상의 자유 발휘가 여기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그 다음 또 하나의 특성으로 그는 무관심성을 들었다. 무관심성은 자연에 순응하는 심리로 변해져서 통일을 위한 중도에 중단이 있고, 세부를 위하지 않는 조소성(粗疎性)이 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이러한 소대황잡(疎大荒雜)한 면에서 구수한 큰 맛과 생명감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다른 특성의 하나로서 그는 단아성(端雅性)을 들고 있다. 우리 나라 미술은 비록 크기는 작지만 구수하게 큰 맛이 나는 모순을 가진다. 단아함이란 작은 데서 오는 예술성인데 그는 이를 자연의 제약에서 오는 것이라 하였고, 거기서 느끼는 큰 맛이란 생활에서 오는 것이라 하였다. 이리하여 단아함이란 것이 작은 맛과 구수하게 큰 맛이란 개념으로서는 모순된 것이나, 적조(寂照)와 유머가 합치되어 있는 것과 같이 성격적으로 한 몸을 이룬다 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매우 깊은 통찰력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한국미의 특성을 '무기교의 기교'와 '무계획의 계획' '무관심성' '단아함' 등을 들었는데 이러한 부정적 성향 가운데서 긍정적 성격들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우현이 처했던 참담한 시대적 상황을 참작해 보면 그의 이러한 부정적 태도의 일말에 이해가 가는데, 그가 그러한 조건에서도 한국미의 특질을 적극적이며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하였고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은 선구자로서의 그의 연구 업적이 반영된 결과라 하겠다.

그러나 그가 한국 미술을 근본적으로 민예적이라 한 것은 그의 훌륭한 연구 업적에 비해 볼 때 납득이 가지 않는다. 혹시 그가 서양 미학을 전공하였으므로 개성과 천재성이 강한 서양 미술이 화려한 전개에 비하여 우리 미술의 성격을 민예적이라 했는지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그는, 특색이란 것은 결국 전통이란 것의 극한 개념이라 했으며, 그것은 한국 미술의 줏대로서 시대의 경과에 따라 더욱 구체화될 뿐이고 변화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우현의 작업은 비록 비판받을 점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미술사를 처음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이므로 크게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 여러 미술사가들의 시도가 우현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실에 있으며, 따라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우리가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할 몇 가지 점들을 여기에서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는 한국 미술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몇 가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입장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오류를 범하게 된다. 만일 우현의 말대로 그 특징들의 추출이 오랜 연구의 총결산이라면, 특색의 그릇된 추출은 그릇된 연구 방법의 결과라 하겠다.

첫째, 우리가 미술사의 대상으로 왕실 및 귀족 사회의 미술을 취할 것인가, 아니면 민간 미술을 취할 것인가가 문제다. 우리는 언뜻 생각하기를, 상류층의 미술은 늘 외래의 영향 아래 이루어지므로 가변적인 것이라 보고, 민예는 외래의 영향을 받지 않아 한국 고유의 것을 고이 간직하여 내려온 것이기에 불변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미술 연구가들은 대개 후자에서 한국 미술의 본질을 찾으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새로운 경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마디로 잘라 말하면, 상류층의 미술이 미술사학의 대상이요, 하류층의 민예는 민속학의 대상이다. 그리고 미술사학이 국제간의 관계와 또 국내의 여러 조건의 교섭을 통해 미술이 어떻게 변화하여 가는가를 다각도로 다루는 것이라면 단연 상류층 미술을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오늘날 남아 있는 고대의 유물은 대개 상류 사회 문화의 흔적이다. 민간 예술을 중시하여 거기서 한국 미술의 불변의 특성을 찾는 경우엔 여러 제한이 따른다.

지금 남아 있는 민간 예술이란 조선 왕조 후기의 것뿐이다. 건축에서의 민가, 회화에서의 민화, 공예에서의 민예가 다 그렇다. 또 민간 신앙의 산물인 조각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 제한된 시기와 자료를 가지고 어떻게 한국 민족 미술의 형성 능력과 변화 과정을 가늠할 수 있단 말인가. 민간 예술이야말로 무기교의 기교요, 무계획의 계획이요, 무관심의 산물이며 자연에의 순응의 산물이다. 그것은 세계 공통의 보편적 현상이다.

둘째, 지금 남아 있는 유물은 각 장르에 따라 사정이 다르다. 건축은 기껏해야 고려 말의 것이 몇 개 있을 뿐이며, 조선의 것도 후기 것이 대부분이다. 석탑이 있다고 하나 목조 건축을 돌로 번안한 것이어서 변형과 단순화가 심하므로 그 시대의 건축을 규명하는 데에는 제약이 많다. 회화도 고구려 고분 벽화를 제외하면 조선 중기 이후의 것이 대부분이다. 불화는 고려의 것이 꽤 있으나, 역시 일반 회화와는 뚜렷이 구별되어 장식화의 성격이 강하다.

조각은 이에 비하여 삼국 시대 이래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꽤 많이 남아 있으나, 조선조의 것은 추상화와 단순화가 심하게 일어나 민예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통시적으로 고찰하기엔 비교적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는 셈인데, 한 장르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현존하는 것만 가지고 전체적인 변화 과정과 특색을 규명하기 어렵다. 더구나 삼국 시대에는 당의 침략에 의한 대대적인 약탈과 파괴가 있었고, 고려 때는 몽고의 침입에 의한 전국의 초토화, 조선 시대에는 일본의 침략에 의한 또 한번의 전국적 초토화가 있었으며, 그 말기 이후에는 일제에 의한 조직적인 대약탈과 민족 문화 말살 정책의 참담한 고초를 겪었던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6.25의 전화는 다시 전국을 휩쓸었다. 실로 우리의 문화는 기구한 운명의 연속이었다.

그러므로 어느 일정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예를 들면 고구려 고분 벽화, 고려 청자, 혹은 조선 백자, 그리고 통일 신라적인 조각만 가지고 단편적으로 한국 미술의 전반적인 성격을 규정할 수도 없다. 각 장르마다 그것을 만든 계층도 다르고, 시대의 사상적 배경도 다르며 시대적인 변화 과정도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 분야의 전공자들의 연구 방법에 따라 그 특색이 다르게 드러나기도 한다.

이러한 두 가지 입장을 감안한다면 한국 미술의 특색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미술사는 한국 미술 가운데 불변의 것, 한국 고유의 것을 찾아서 그것을 한국 미술의 특성이라 규정하려고 애써왔다. 저 선사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저변에 깔린 어떤 본질적인 것을 캐내어 하나의 단어로 뭉뚱그리려고 노력해 왔던 것이다.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민족 고유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 보편적 성격의 것이 아닐까? 만일 민예적인 것에서 한국 특유의 본질적 요소를 찾으려 한다면-아마도 민예적인 것은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거기서 추출된 여러 특성은 동서 고금의 민예품에서 발견되는 인류의 보편적 성격이 될 것이다. 우리가 세계 여러 나라의 민예품에서 느끼는 경이감은 우리의 것과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 그야말로 새로운 것이 없는 것이다. 그곳엔 우현의 말대로 생활과 신앙과 미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거기에 우리 민족 미술의 특질이 나타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생성 변화하는 미술의 사차원적 세계는 외래의 영향과 우리 고유의 것과의 대응에 의하여 형성되어가는 것이므로, 우리는 오히려 역동적으로 생성 변화하는 과정에서 한국 미술의 특질을 찾아야 한다. 부단히 변화하는 예술 양식과 형식은 다른 나라와의 관계, 또 우리 나라 안에서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사상ㆍ종교ㆍ미술 등과의 복잡하면서도 유기적인 상호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생성, 변화하는 과정을 밝히는 것이 미술사학의 목적이다. 그러한 상호 관계의 연구 속에서 민족 미술의 고유한 면, 본질적이고 독창적인 면이 드러나는 것이다.

불변의 것에서 인류 보편적인 것을 찾아야 하고 제행무상에서 민족 고유의 것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 반대로 관찰하며 사유하여 왔다. 그런 까닭에 조지훈은 언급하기를 민족 문화는 존재와 생성의 어느 한 측면에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통일에서 체득되고 파악되어야 한다는 지혜를 제시하기도 했다.

독일 미술사학자 젝켈은 한국의 미술은 분명히 중국ㆍ일본과 다르지만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이것은 한국 미술의 특성이 뚜렷치 않다는 의미로 한말이지만, 나는 오히려 바로 이 점을 통해 한국인은 미술을 예술로서 완수하였음을 웅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술이 조형 언어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우리가 그 특색을 눈과 마음으로 확인하면 그뿐이지 문자나 언어로 억지로 무리하게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표현 방법의 차원이 각각 다르므로 일면 불가능하기까지 한 것이다.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우리는 그 핵심에 이르지 못하고 빗나가고 마는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우리가 반드시 전달이나 표현 방법이 필요하여 말로 나타내지 않으면 안될 경우가 있다면, 단지 그 변화 과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주변의 것과 비교하여 그 다른 점을 지적할 수밖에는 없는 극히 상대적인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전 역사를 꿰뚫는 우리 미술의 특색을 한마디 단어로 규정한다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한 것이다.

예술은 생의 총체적인 반영이며 그 나름의 조형 언어로 진리를 구상화한 것이며, 그것은 궁극의 진리와 같아서 문자나 언어로 설명하거나 규정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가들은 오늘날도 묵묵히 그림을 그리고 조각하고 춤을 추는 것이다.

그래도 한국 미술의 특색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보라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나라의 미술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른 여러 가지 양식적 실험과 변화 과정을 거쳤으나, 그에 일관된 어떤 한국적 특성이나 경향이 있다면 이미 우현이 지적한 대로 '작은 데서 오는 단아성''단색에서 오는 적조한 분위기''자유분방에서 생기는 유머와 생동감', 그리고 '기술적 미완성에서 생기는 여유'등을 들고 싶다. 그러나 이들도 상대적이며 부분적인 특색임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고대 이래 다섯 차례에 걸친 전국적인 참혹한 수난과 가혹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지극히 그윽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런 미술을 창조하고 독자적으로 전개시켜왔다. 그 가운데 선사 시대 청동기, 사신도, 고분 금속 공예, 가야 토기, 십이지상 조각, 석탑, 부도, 법당, 불화, 사리기, 범종, 나전칠기, 고려 청자, 분청사기, 백자, 초상화 등은 가히 독창적이요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우현의 말대로 특색이 전통의 극한 개념이라면, 그것은 이미 운명적으로 정해진 불변의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의 미술에 숨겨진 미적 진리를 부단한 노력으로 찾아내야 하고, 또 앞으로 형성해 가야하는 늘 가변적인 성질의 것이다.

실로 그것은 한국 민족에 의한 진리의 감상적 인식의 실현이므로, 섣불리 제한되고 애매한 문자나 언어로 규정할 성질의 것이 되지 못한다. 이때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괴텡의 말이 새롭게 들린다.

출전 : 강우방, [미의 순례], 예경, 1993, pp.236∼244 (원문 : [박물관신문] 198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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