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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8-25 (일) 16:06
분 류 사전1
ㆍ조회: 55887      
[조선] 임진왜란 의병의 활동 (민족)
임진왜란(의병의 활동)

세부항목

임진왜란
임진왜란(배경)
임진왜란(전쟁의 발발)
임진왜란(의병의 활동)
임진왜란(수군의 활약)
임진왜란(조·명군의 반격과 휴전 성립)
임진왜란(정유재란)
임진왜란(난중의 사회상)
임진왜란(결과)
임진왜란(참고문헌)

의병이 일어나게 된 동기는, 한마디로 관군의 무능으로 인하여 국토가 일본군에 의하여 짓밟히고 많은 생령(生靈)이 죄없이 쓰러져가자, 동족을 구하고 스스로 향리를 수호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자의에서 나온 것이었다.

의병은 신분적으로 보면 양반에서 천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있어, 의병 활동을 벌이는 기간에는 계급이나 신분의 차이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병장은 대개가 전직 관원으로 문반 출신(文班出身)이 압도적으로 많고 무인들은 소수였다. 그리고 덕망이 있어 지방에서 추앙을 받는 유생들도 있었다.

의병을 일으키는 데 적합지로는 자기가 자란 고장이나 지방관으로 있을 당시 선정을 베풀어 그곳 지방민들이 잘 따를 수 있는 곳을 택하였다. 나아가 이를 확대하여 넓은 지역에 걸쳐서 의병을 불러 모았고, 자연히 활동 무대도 넓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의병의 바탕을 이룬 것은 민족적 저항 의식이며 이를 촉발시킨 것이 의병장이었다. 또한 오랜 유학교육을 통하여 유교의 도덕적 교훈인 근왕정신(勤王精神)이 깊이 뿌리를 박은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보인다.

1593년 정월에 명나라의 진영에 통보한 전국의 의병 총수는 관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만 26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수는 의병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임진년(1592년)에 비하여 많이 줄어든 숫자이다.

그것은 난이 일어난 다음해에 관군이 차차 회복되어 의병을 절제하고 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어, 의병이 해체되거나 관군에 흡수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유명한 의병장으로는 곽재우(郭再祐)·고경명(高敬命)·조헌(趙憲)·김천일(金千鎰)·김면(金沔)·정인홍(鄭仁弘)·정문부(鄭文孚)·이정암(李廷目)·우성전(禹性傳)·권응수(權應銖)·변사정(邊士貞)·양산숙(梁山璹)·최경회(崔慶會)·김덕령(金德齡)·유팽로(柳彭老)·유종개(柳宗介)·이대기(李大期)·제말(諸沫)·홍계남(洪季男)·손인갑(孫仁甲)·조종도(趙宗道)·곽준(郭說)·정세아(鄭世雅)·이봉(李逢)·임계영(任啓英)·고종후(高從厚)·박춘무(朴春茂)·김해(金垓)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에는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다시 벼슬에 들어간 사람도 있으나, 적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의병장도 있었다.

의병장의 대표적인 활약상을 지역별로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곽재우는 현풍(玄風) 유생으로서 사재를 털어 경상도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붉은 옷을 입어 홍의장군(紅衣將軍)으로 통칭되었다.

그는 의병을 이끌고 낙동강을 오르내리며 일본군과 싸워 의령·삼가·합천·창녕·영산 등의 여러 고을을 수복하여, 경상 우도가 그의 보호 밑에 있었다. 또한 전라도로 향하는 적을 정암진(鼎巖津 : 속칭 솥바위나루)에서 차단하여 적의 호남 진출을 저지할 수 있었다.

정인홍은 합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을 물리치고 이듬해 의병 3,000명을 모아 성주·합천·함안 등지를 방어하였다. 김면은 조종도·곽준 등과 거창·고령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 공격해오는 적의 선봉을 관군과 함께 지례에서 요격하여 격퇴시켰고, 무계에서도 승전하여 그 공으로 합천군수가 되었다.

경상좌도에서 기병(起兵)한 권응수는 정세아 등과 함께 휘하의 의병을 이끌고 영천을 탈환하였다. 또 학연·예천·문경 등지 전투에서 연전연승하여 적이 몹시 두려워하였다. 김해는 9월 예안에서 일어나 경상도 북부지방을 제압하는 등 적군의 전라도 침입을 견제하였다.

호남에서는 고경명과 김천일을 대표로 꼽을 수 있다. 먼저 고경명은 유팽로 등과 의병을 일으켜 담양에서 회맹(會盟)하고 의병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각 도는 물론 제주도에까지 격문을 보내고 근왕병을 이끌고 행재소(行在所)로 향할 무렵에 적이 금산에 들어오자, 임진년 7월 9일 금산에 주둔한 적군과 정면대결하였다.

그러나 대패하여 아들 인후(因厚)와 유팽로·안영(安瑛)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그 뒤 맏아들 종후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그 해 12월에 의병을 일으켜 다음해 6월 2차 진주성싸움에 참가했다가 전사하였다.

김천일은 나주에 있다가 의병을 일으켜 수백명을 이끌고 선조가 피난한 평안도로 향하다가 강화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적 점령하에 있는 도성에 결사대를 잠입시켜 백성들로부터 많은 군자금을 얻었으며, 한강변의 여러 적진지를 급습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

충청도에서는 조헌이 10여명의 유생과 함께 공주와 청주 사이를 왕래하며 의병을 모집하여, 곽재우와 거의 같은 때에 옥천에서 봉기하였다. 이들 의병은 차령(車嶺)에서 적에게 포위되어 공격을 받기도 했으나 이를 격퇴시켰다.

또 온양·정산·홍주·회덕 등 도내 여러 읍에서 의병 1,600명을 얻은 다음, 의승장 영규(靈圭)가 이끄는 의승군 500명과 합세하여 청주성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다시 금산에 주둔한 적군을 공격하기 위하여 병력을 이동하였다.

그러나 약속한 관군이 오지 않아 의병들 상당수가 흩어지고 칠백의사(七百義士)만이 남아 생사를 함께 할 것을 결심하였다.

의승장 영규도 조헌과 함께 진격하여 금산성에 육박하였다. 적군은 후속 부대가 없음을 알고 조헌이 채 진영을 정돈하기도 전에 전병력으로 공격해왔다. 조헌이 이끄는 의병들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적을 맞아 싸웠다. 그러나 끝내는 조헌 부자와 영규 그리고 의병들은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조헌은 고경명에 이어 싸움에서 패하기는 하였다. 하지만 수차에 걸친 의병과의 싸움으로 적도 많은 사상자를 내고 후퇴함에 따라 호서·호남 지방은 온전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경기도에서는 홍계남과 우성전을 대표로 꼽을 수 있다. 홍계남은 아버지 언수(彦秀)를 따라 의병을 일으켜서 양성·안성을 활동 무대로 용맹을 떨쳤다.

적정을 보아 동서로 달리며 유격전을 전개하여 적군이 감히 이 지역에 접근하지 못했으며, 경기도에 인접한 충청도의 여러 읍도 안전할 수 있었다. 우성전은 강화·인천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강화를 수비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황해도에서는 전 이조참의 이정암이 의병을 일으켜 연안성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벌였다. 당시 황해도에는 구로다의 군이 열읍을 정벌하고 온갖 약탈을 자행했으며 반민들도 많았다. 그런데 오직 연안성만은 침해를 당하지 않고 있었다. 구로다는 이정암이 의병을 영솔하고 이 성을 지킨다는 보고를 받고 즉시 침입해왔다.

성중에 있는 의병들은 성을 빠져나가 기회를 보아서 도모하자 했으나 이정암은 이를 듣지 않고 굳은 결의로써 수성을 결심하였다.

이에 1592년 8월 27일부터 9월 2일 아침에 이르기까지 4주야를 싸워 끝내 구로다의 5,000병력을 물리쳤다. 이로 인하여 연해 열읍도 회복되었고, 양호(兩湖)의 해상 교통도 강화도와 연안을 통하여 의주의 행재소까지 이를 수 있었다.

함경도에서는 정문부가 현직 관원으로서 경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같은해 9월에 경성을 수복하고 길주·쌍포 등에서도 가토의 군을 격파하고 함경도를 수복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또한 가토가 북쪽 깊숙이 들어와 주둔할 수 없도록 수시로 위협을 가하였다.

의병 중에서도 의승군은 특수 집단으로 활약이 컸다. 묘향산(妙香山)의 노승 휴정(休靜: 西山大師)은 수천의 문도(門徒)로 승군을 일으키고 각 사찰에 격문을 보냈다.

그리하여 앞서 말한 영규 이외에도 호남의 처영(處英), 관동의 유정(惟政 : 松雲大師), 해서의 의엄(義嚴) 등 휴정의 문도들이 승군을 일으켜 호응하였다. 이밖에 전국 사찰에서 일어난 의승군의 수도 많았고 그들의 전과 또한 컸다.

<이장희>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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