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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8-25 (일) 16:06
분 류 사전1
ㆍ조회: 23227      
[조선] 임진왜란 조명군의 반격과 휴전의 성립 (민족)
임진왜란(조·명군의 반격과 휴전 성립)

세부항목

임진왜란
임진왜란(배경)
임진왜란(전쟁의 발발)
임진왜란(의병의 활동)
임진왜란(수군의 활약)
임진왜란(조·명군의 반격과 휴전 성립)
임진왜란(정유재란)
임진왜란(난중의 사회상)
임진왜란(결과)
임진왜란(참고문헌)

앞서 선조는 피난 도중에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구원을 요청하였다. 명나라에서는 파병 여부의 의논이 분분했으나 병부상서 석성(石星)의 주장으로 원병을 파견하였다. 이에 요양부총병(遼陽副摠兵) 조승훈(祖承訓)은 5,000의 병사를 이끌고 고니시의 본거지인 평양성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이들 원병은 명나라 조정에서 파견한 군사는 아니고 국경 수비병이었다.

그들은 1592년 7월 15일 평양에 도착하여 풍우가 심한 밤을 이용하여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도리어 적의 기습을 받아 대패하고, 우참장(右參將) 대조변(戴朝弁)과 유격(遊擊) 사유(史儒) 등이 전사하였다. 그리고 조승훈이 잔여병을 거두어 퇴각하니 1차 구원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보다 앞서 고니시는 임진강에서 대진하고 있을 때와 대동강에 이르러 두 차례의 강화(講和)를 청하였으나 성사시키지 못하였다. 이에 1차 명나라 군사의 내원(來援)을 계기로 명나라와의 강화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명나라도 조승훈의 군이 패하자 화의에 응할 기세를 보이던 중 석성의 건의로 심유경(沈惟敬)이 화의 교섭을 맡게 되었다.

심유경은 8월 29일 평양에 와서 고니시를 만나 쌍방의 강화 조건을 논의하여, 50일 이내로 본국에 돌아가 구체적인 조건을 가지고 오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일본군이 평양 이상은 침입하지 말 것과 조선군도 남쪽에 들어와 작전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심유경은 약속대로 11월 14일에 돌아와서 고니시를 만나고 임의로 화의를 성립시키려 하였다.

1차 원병에 실패한 명나라는 화전양론의 의논끝에 파병으로 기울어져, 간쑤성(甘肅省) 영하(寧下)에서 반란을 평정하고 복귀한 이여송(李如松)을 다시 동정제독(東征提督)으로 삼아 2차 원병을 보내기로 하였다. 이 해 12월에 이여송은 4만 3000여의 군사를 거느리고 부총병 양원(楊元)을 좌협대장(左協大將), 부총병 이여백(李如栢 : 이여송의 아우)을 중협대장(中協大將), 부총병 장세작(張世爵)을 우협대장(右協大將)으로 삼아 압록강을 건너왔다.

명군의 제2차 원병이 압록강을 건너기에 앞서 조선에서는 임진년 10월 재정비된 관군과 휴정이 이끄는 의승군으로 평양성을 탈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11월에는 의승군 단독으로 평양성을 진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심유경이 화의차 적진에 있으니 그가 귀환하는 것을 기다려 관군과 합세하여 진병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으로 때를 잃고 말았다.

그 뒤 이여송의 원병이 압록강을 건너서 다음해인 1593년 1월에 평양 근방에 이르렀다. 이에 순변사 이일과 별장 김응서가 관군을 이끌고 합세했고, 휴정 휘하의 의승군 수 천여 명도 이에 합세하여 28일 평양성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조명 연합군이 칠성(七星)·보통(普通)·함구(含毬)의 세 문으로부터 맹렬한 공격을 감행하니 고니시 등은 감당할 수 없음을 간파하고 내성(內城)에 불을 지르고 그 길로 성을 빠져나와 대동강의 얼음을 밟고 패주하였다. 이때 휴정이 이끄는 의승군도 모란봉 격전에서 많은 적을 참획하여 평양 수복에 큰 도움을 주었다.

고니시는 주야로 속행하여 10일 배천에 당도하였다. 황해도 해주를 근거로 했던 구로다는 고니시를 먼저 후퇴하게 하고 자신도 군사를 거두어 개성으로 철수하였다. 좌의정 유성룡은 황해도방어사 이시언(李時彦)과 김경로(金敬老)를 시켜 관군을 이끌고 고니시군의 퇴로를 끊어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한편, 평양성을 탈환한 이여송도 그 길로 바로 남진하여 개성에 육박해왔다. 그러자 여기를 지키고 있던 고바야가와는 함께 머무르던 구로다와 같이 서울로 퇴각하였다. 그런데 일본군이 대결하지도 않고 계속 퇴각하자 이여송은 적을 경시하고 바로 그 뒤를 따라 서울로 향하였다. 이를 알아차린 일본 진영에서는 고바야가와 등으로 하여금 서울 북쪽 40리 지점인 벽제관(碧蹄館) 남쪽 여석령(礪石嶺 : 속칭 숫돌고개)에다 정예병을 매복하게 하고 명나라 군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급습하였다.

이곳에서 대패한 이여송은 기세가 꺾여 더이상 진격을 못하고 개성으로 후퇴하였다. 이때 조선측에서 재차 공격을 주장했으나 이여송은 듣지 않았다. 그리고 함경도에 있는 가토의 군이 양덕·맹산을 넘어 평양을 기습한다는 유언(流言)이 있자, 이여송은 부총병 왕필적(王必迪)을 개성에 머무르게 하고, 조선 제장(諸將)에게도 임진강 이북에 포진하도록 명한 다음 다시 평양으로 퇴진하였다.

한편, 함경도 방면에 침입한 가토는 명군의 내원으로 평양성이 수복되고 고니시 등이 서울로 퇴각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그래서 퇴로가 차단될 것을 염려하여 즉시 철군을 서둘러 서울로 퇴진하였다. 당시 일본군은 평양성에서의 패배로 사기가 떨어졌으나 여석령 전투(일명 벽제관싸움)에서 승리하여 회복세에 있었다. 이때 마침 전라감사 권율(權慄)이 명군과 함께 도성을 수복하기 위하여 북진하던 중 행주산성(幸州山城)에 이르러 배수진을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2월 12일 도성에 머무르던 일본 대군이 일시에 공격을 해왔다.

권율과 의승장 처영 등은 휘하군을 지휘하여 격전 끝에 그들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두었다. 이는 지난해 10월에 있었던 김시민의 진주싸움, 이순신의 한산도싸움과 함께 임진왜란 삼대첩(三大捷)의 하나이다.

그동안 명군은 다시 심유경을 서울의 일본 진영에 보내 화의를 계속 추진하였다. 일본군도 각지의 의병 봉기와 명군의 진주, 보급 곤란, 악역(惡疫)의 유행으로 전의를 잃고 화의에 따라 4월 18일 도성에서 철수하여 강원·충청도에 주둔한 병력과 함께 전군을 남하시켰다. 그리고 서생포(西生浦)에서 웅천(熊川)에 이르는 사이에 성을 쌓고 화의 진행을 기다렸다.

그러나 일본군은 화의의 진행 도중 진주성에 보복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치열한 전투 끝에 의병장 김천일, 경상우병사 최경회, 충청병사 황진 등은 전사하고 성은 마침내 함락되어 성안에 있던 수만의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는 임진왜란중 가장 치열한 전투의 하나였다.

한편, 심유경이 일본군과 같이 도요토미의 본영에 들어간 뒤 2, 3년간 사신이 왕래했으나 화의는 결렬되었다. 도요토미는 명나라에 대하여 ① 명나라의 황녀를 일본의 후비(後妃)로 삼을 것, ② 감합인(勘合印 : 貿易證印)을 복구할 것, ③ 조선 8도 중 4도를 할양할 것, ④ 조선 왕자 및 대신 12인을 인질로 삼을 것을 요구했고, 붙들려갔던 임해군과 순화군을 돌려보냈다.

심유경은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알고 거짓으로 본국에 보고하여 도요토미를 왕에 책봉하고 조공을 허락한다는 내용의 봉공안(封貢案)을 내세워 명나라의 허가를 얻었다. 이에 1596년 명나라의 사신을 파견하여 도요토미를 일본 국왕에 봉한다는 책서와 금인(金印)을 전하였다.

도요토미는 크게 노하여 이를 받지 않고 사신을 돌려보낸 뒤 다시 조선 침입을 꾀하였다. 심유경은 본국에 돌아가 국가를 기만한 죄로 처단되고, 이로써 오랫동안 결말을 보지 못하던 화의마저 끝내 결렬되었다.

<이장희>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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