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24 (목) 20:44
분 류 사전1
ㆍ조회: 1275      
[조선] 호질 감상 (정명숙/송경원)
호질(虎叱)

<작가 해설>

박지원(朴趾源) 1737(영조 13)~1805(순조 5)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북학(北學)의 대표적 학자로, 그의 활동 영역은 소설·문학이론·철학·경세학(經世學)·천문학·병학(兵學)·농학 등 광범위했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할아버지는 지돈녕부사 필균(弼均)이며, 아버지는 사유(師愈)이다. 그의 가문은 노론(老論)의 명문세신(名門世臣)이었지만, 그가 자랄 때는 재산이 변변치 못해 100냥도 안 되는 밭과 서울의 30냥짜리 집 한 채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영조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도 척신(戚臣)의 혐의를 피하고자 애썼으며, 청렴했던 조부의 강한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1752년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그의 처삼촌이며 이익(李瀷)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던 홍문관교리 이양천(李亮天)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3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에 전념, 경학(經學)·병학·농학 등 모든 경세실용의 학문을 연구했다.

특히 문재(文才)를 타고난 그는 이미 18세 무렵에 〈광문자전 廣文者傳〉을 지었다. 1757년 〈민옹전 閔翁傳〉을 지었고, 1767년까지 〈방경각외전〉에 실려 있는 9편의 단편소설을 지었다. 이 시기 양반사회에 대한 비판이 극히 날카로웠으나, 사회적 모순은 대체로 추상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1759년 어머니가, 1760년에 할아버지가, 1767년에는 아버지가 별세했다. 아버지의 장지(葬地) 문제로 한 관리가 사직한 것을 알고는, 본의 아니게 남의 장래를 막아버린 것을 자책해 스스로 과거에의 뜻을 끊었다.

1768년 서울의 백탑(白塔:지금의 파고다 공원) 부근으로 이사했다. 주변에 이덕무(李德懋)·이서구(李書九)·서상수(徐常修)·유금(柳琴)·유득공(柳得恭) 등도 모여 살았고, 박제가(朴齊家)·이희경(李喜慶) 등도 그의 집에 자주 출입했다. 당시 그를 중심으로 한 '연암 그룹'이 형성되어 많은 신진기예의 청년 인재들이 그의 문하에서 지도를 받고, 새로운 문풍(文風)·학풍(學風)을 이룩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북학파실학(北學派實學)이었다. 문학에서는 당시 이덕무·유득공·이서구·박제가가 4대시가(四大詩家)로 일컬어졌는데 모두 박지원의 제자들이었으며, 이서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얼 출신이었다.

1780년 진하별사(進賀別使) 정사(正使) 박명원(朴明源)의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청(淸)의 베이징[北京]에 갔다. 박명원은 영조의 부마로서 그의 8촌 형이었다. 5월 25일에 출발해 8월 1일부터 9월 17일까지 베이징에 머물렀고, 10월 27일 서울에 돌아왔다. 이 연행에서 청의 문물과의 접촉은 그의 사상체계에 큰 영향을 주어 이를 계기로 그는 인륜(人倫) 위주의 사고에서 이용후생(利用厚生) 위주의 사고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는 귀국한 이후〈열하일기 熱河日記〉의 저술에 전력을 기울였다. 〈열하일기〉는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호질 虎叱〉·〈허생전 許生傳〉 등의 소설도 들어 있고, 중국의 풍속·제도·문물에 대한 소개·인상과 조선의 제도·문물에 대한 비판 등도 들어 있는 문명비평서였다. 1783년 무렵에 일단 탈고되었으나,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개작과정을 거쳐 최종적인 수습은 그가 죽은 뒤 1820년대 초반의 어느 시기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열하일기〉는 공간되기도 전에 이미 필사본이 많이 유포되었는데, 특히 자유분방하고도 세속스러운 문체와 당시 국내에 만연되어 있던 반청(反淸) 문화의식에의 저촉 때문에 찬반의 수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고루하고 보수적인 소화의식(小華意識)에 젖어 있는 지식인들의 비난 때문에 정조도 1792년에는 그에게 자송문(自訟文:반성문)을 지어 바치라는 처분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기 그는 양반사회에 대한 비판과 부패의 폭로가 더욱 원숙해졌고, 사회모순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드러냈으며, 이용후생의 실학을 대성하기도 했다.

<작품 감상>

이 작품은 위선적 인물을 대표하는 북곽과 동리자를 내세워 당시의 양반 계급, 즉 다수 선비들의 부패한 도덕 관념을 풍자하여 비판한 작품으로, 도덕과 인격이 높다고 소문난 북곽(양반 계급)은 결국 '여우'같은 인물이요, 온 몸에 똥을 칠한 더러운 인간이며, 끝까지 위선과 허세를 부리는 이중적인 인간임을 고발하고 있다. 또한 그 정절로써 천자와 제후들에게까지 우러름을 받는 과부의 다섯 아들이 모두 성이 다르다고 비꼰 것은 겉모습, 혹은 세상의 평판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없음을 통렬히 풍자한 것이다.

이 작품은 호랑이를 의힌화한 우화적인 단편 소설이다. 플롯은 북곽선생이 동리자의 집에가서 놀다가 겨우 봉변을 면하고 도망해 오는데, 큰 범을 만나 질책을 듣다가 아침에 돌아오는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표현한 작품이다. 단편 소설로서는 가장 간결하면서도 주제를 잘 표현해 놓았다.

북곽선생이란 도학과 덕행이 높아 지방 서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도학자가, 열녀의 표창까지 받았다면서 성이 각각 다른 아들이 5명이 있다는 위선적인 과부 동리자하고 밀회를 하다가 다섯 아들에게 들켜 도망하면서 똥구렁에 빠지고 호랑이에게 일대 질책을 듣는다는 가장 절실한 비유로 유학자들의 위선적인고도 호색적인 생활을 가장 박력있게 표현하였다.

범을 등장시켜 위선적 도학자 북곽 선생과 가짜 열부 동리자의 이중적 행태를 신랄히 풍자, 비판한 작품이다. 범이 북곽 선생을 꾸짖는 내용은 위선적인 인간은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성이 범의 성(性)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 것은 연암의 평소 지론이다.

당시에 명망있던 북곽선생이 실은 동네 부녀자와 통정하다 들켜 도망을 가다가 거름덩이에 빠졌는데, 겨우 거기에서 벗어나자 범이 버티고 있다. 이때 북곽선생은 모든체면을 벗어던지고 온갖 아첨을 떨며 문자를 희롱하며 살려달라고 한다. 비굴한 위학자 북곽 선생의 겉 다르고 속다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 붓 끝의 장난이 남을 음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를 해치는데 이용된다는 식자우환에 대한 지적은 의미 심상하다.

<작품의 줄거리>

산중에 밤이 되자 대호(大虎)가 부하들과 저녁거리를 의논하고 있었다. 결국 맛 좋은 선비의 고기를 먹기로 낙착되어 범들이 마을로 내려올 때, 정지읍(鄭之邑)에 사는 도학자 북곽(北郭) 선생은 열녀 표창까지 받은 이웃의 동리자(東里子)라는 청상과부 집에서 그녀와 밀회하고 있었다.

과부에게는 성이 각각 다른 아들이 다섯이나 있었는데, 이들이 엿들으니 북곽 선생의 정담이라, 필시 이는 여우의 둔갑이라 믿고 몽둥이를 휘둘러 뛰어드니, 북곽 선생은 황급히 도망치다 똥구렁에 빠졌다. 겨우 기어나온, 즉 그 자리에 대호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어 머리를 땅에 붙이고 목숨을 비니 대호는 그의 위선을 크게 꾸짖고 가버렸다. 날이 새어 북곽 선생을 발견한 농부들이 놀라서 연유를 물으니, 엎드려 있던 그는 그 때야 범이 가버린 줄을 알고 줄행랑을 쳤다는 내용이다.

<호질 본문 읽기>

범은 착하고도 효성스러우며, 문채롭고도 싸움을 잘한다. 인자하고도 효성스러우며, 슬기롭고도 어질다. 씩씩하고도 날래며, 세차고도 사납다. 그야말로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

그러나 비위는 범을 잡아먹고, 범우도 범을 잡아 먹는다. 박(駁)도 범을 잡아먹고, 오색사자는 큰 나무가 선 산꼭대기에서 범을 잡아먹는다. 자백도 범을 잡아먹고, 표견은 날면서 범과 표범을 잡아먹는다. 황요는 범과 표범의 염통을 꺼내어 먹는다. 활(猾)은 범과 표범에게 일부러 삼켜졌다가 그 뱃속에서 간을 뜯어 먹고, 추이(酋耳)는 범을 만나기만 하며 곧 찢어서 먹는다. 범이 맹용을 만나면 눈을 꼭 감고, 감히 뜨지도 못한다. 그런데 사람이 맹용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범은 두려워 하니, 범의 위풍이 얼마나 엄한가.

범이 개를 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조화를 부리게 된다. 범이 한 번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가 굴각(屈閣)이 되어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산다. 굴각이 범을 남의 집 부엌으로 이끌어 들여서 솥전을 핥으면, 그 집주인이 갑자기 배고픈 생각이 나서 한밤중이라도 아내더러 밥을 지으라고 시키게 된다. 범이 두 번째로 사람을 먹으련, 그 창귀가 이올(彛兀)이 되어 범의 광대뼈에 붙어산다. 이올은 높은 데 올라가서 사냥꾼의 움직임을 살피는데, 만약 깊은 골짜기에 함정이나 묻힌 화살이 있으면 먼저 가서 그 틀을 벗겨 놓는다. 범이 세번째로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가 육혼( 渾)이 되어 범의 턱에 붙어산다. 육혼은 자기가 평소에 알던 친구들의 이름을 자꾸만 불러댄다.

하루는 범이 창귀들에게 분부를 내렸다.

"오늘도 해가 저무니, 어디서 먹을 것을 얻을까?"

굴각은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아까 점을 쳐 보았더니 뿔 있는 놈도 아니고 날짐승도 아닌, 검은머리를 한 놈이 나왔습니다. 눈 위에 발자국이 있는데, 비틀비틀 성긴 걸음이었습니다. 뒤통수에 꼬리가 붙고, 꽁무니를 감추지 못하는 놈이었습니다."

이올은 이렇게 말하였다.

"동문(東門)에 먹을 것이 있는데, 이름은 의원(醫員)이라고 합니다. 그는 입에다 온갖 풀을 머금어서 살과 고기가 향기롭습니다. 서문에도 먹을 것이 있는데, 이름은 무당이라고 합니다. 그는 온갖 귀신에게 아양부리느라고 날마다 목욕 재계하기 때문에 고기가 깨끗합니다. 이 두 가지 가운데 골라서 잡수시지요."

범이 수염을 거스르고 얼굴빛을 붉히면서 말하였다.

"의(醫)는 의(疑)다. 자기도 의심스러운 처방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시험해서, 해마다 남의 목숨을 끊은 것이 몇 만이나 된다. 무(巫)는 무(誣)다. 귀신을 속이고 인민들을 미혹시켜, 해마다 남의 목숨을 끊은 것이 몇만이나 된다. 그래서 뭇 사람들의 노여움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금잠(金蠶)으로 화하였으니, 독이 있어서 먹을 수가 없다."

그러자 육혼이 이렇게 말하였다.

"저 숲속에 어떤 고기가 있는데, 인자한 염통과 의로운 쓸개를 지녔습니다. 충성스러운 마음을 간직하고 순결한 지조를 품었으며, 머리에는 악(樂)을 이고 발에는 예(禮)를 신었습니다. 입으로는 백가(百家)의 말을 외우며 마음속으로는 만물의 이치를 통달했으니, 그의 이름은 석덕지유(碩德之儒)라고 합니다. 등살이 오붓하고 몸집이 기름져서, 오미(五味)를 갖추어 지녔습니다."

범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침을 흘리다가, 하늘을 쳐다보고 웃으면서

"짐이 더 듣고 싶으니 어떠하냐?"

하였다. 창귀들이 다투어서 범에게 추천하였다.

"일음(一陰) 일양(一陽)을 도(道)라고 하는데, 그 유(儒)가 이를 꿰뚫었습니다. 오행(五行)이 서로 낳고 육기(六氣)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데, 그 유(儒)가 이를 이끌어 줍니다. 그러니 먹는 것 가운데 이것보다 더 맛있는 것은 없습니다."

범이 이 말을 듣고는 문득 걱정스럽게 얼굴빛이 달라지면서 반갑지 않은 말투로 말하였다.

"음양이라는 것은 한 기운이 죽고 사는 것인데, 그들이 둘로 나뉘었으니 그 고기가 잡될 것이야. 오행도 제 바탕이 있어서 애당초 서로 낳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제 그들을 구태여 자(子), 모(母)로 가르고 심지어는 짜고 신 맛까지 들여서 분해하였으니, 그 맛이 순하지 못할 거야. 육기(六氣)도 제각기 행하는 것이라서 남이 이끌어 주기를 기다릴 것도 없었는데, 이제 그들이 망령되게 '재성(財成) 보상(輔相)'이라고 일컬으며 사사롭게 자기 공을 세우려고 한다. 그러니 그런 고기를 먹다가는 너무 딱딱해서 체하거나 구역질 나지 않겠느냐?"

정(鄭)땅의 어느 고을에 벼슬을 좋아하지 않는 선비가 살고 있었으니, 북곽선생이라고 불렸다. 나이 마흔에 손수 교정한 책이 만 권이요, 구경(九經)의 뜻을 부연해서 다시 지은 책이 일만 오천 권이나 되었다. 천자가 그의 의(義)를 아름답게 여기고, 제후들이 그의 이름을 사모하였다.

그 고을 동쪽에는 아름다운 청춘 과부가 살았는데, 동리자라고 이름하였다. 천자가 그의 절개를 갸륵하게 여기고, 제후들도 그의 어진 마음을 흠모하였다. 그래서 그 고을 사방 몇 리의 땅을 봉하여, 동리과부지려(東里寡婦之閭)라고 하였다. 동리자는 이렇게 수절 잘 하는 과부였지만, 다섯 아들을 둔 것이 저마다 다른 성을 지녔다. 어느 날 밤 그 아들 다섯 놈이

강 북편에는 닭 울음소리
강 남쪽에는 별이 반짝이네
방안에서 소리가 나니
모습이 어찌 북곽선생과 아주 비슷한가?

하였다.

형제 다섯 놈이 번갈아 문틈을 들여다보았다. 동리자가 북곽선생에게

"오랫동안 선생의 덕을 연모하였습니다. 오늘밤에는 선생님께서 글 읽으시는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청하였다. 북곽선생이 옷깃을 가다듬고 꿇어앉아서 시를 읊었다.

병풍에는 원앙새가 있고,
반딧불은 반짝이네
가마솥과 세발솥은
무얼 본따서 만들었나
흥겨워라

다섯 아들이 서로 이렇게 말하였다.

"≪예기≫에 이르기를 '과부의 집 문에는 함부로 들어서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북곽 선생은 어진 이거든(그러니 이런 일이 없을거야.)."

"내가 들으니, '이 고을 성문이 헐어서 여우가 구멍을 내었다'고 하던데."

"내가 들으니, '여우가 천 년을 묵으면 조화를 부려 사람 흉내를 낸다.'고 하던데, 그 놈이 반드시 북곽 선생을 흉내 낸 걸 거야."

그들이 서로 이렇게 의논하였다.

"'여우의 갓을 얻은 자는 천금의 부자가 되고, 여우의 신을 얻은 자는 대낮에 그림자를 감출 수 있으며, 여우의 꼬리를 얻은 자는 사랑 받아서 누구든지 그를 좋아한다.'고 하던데, 우리가 저 여우를 잡아 죽여서 나누어 가지는 게 어떨까?"

그래서 다섯 아이들이 한꺼번에 어머니의 방을 에워싸고 들이쳤다. 북곽 선생이 크게 놀라서 달아났는데, 남들이 혹시라도 제 얼굴을 알아볼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한 다리를 비틀어 목덜미에 얹고, 도깨비처럼 춤추며 도깨비처럼 웃었다. 문 밖을 나가 뛰어가다가, 그만 벌판 구덩이에 빠졌다. 그 속에는 똥이 가득 차 있었다. 간신히 붙잡고 올라와 목을 내밀고 바라보니, 이번에는 범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범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구역질하다가, 코를 막고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며

"에이쿠, 그 선비가 구리구나."

하고 혀를 찼다. 북곽선생이 머리를 조아리며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와,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았다. 고개를 쳐들고 이렇게 여쭈었다.

"범님의 덕이야말로 참으로 지극하십니다. 대인은 그 변화를 본받고, 제왕은 그 걸음을 배웁니다. 남의 아들된 자들은 그 효성을 법으로 사모, 장수는 그 위엄을 취합니다. 그 거룩한 이름이 신룡(神龍)과 짝이 되어, 한 분은 바람을 일으키고 한 분은 구름을 일으키시니, 저처럼 하토(下土)의 천한 신하는 감히 그 바람 아래 서옵니다."

범이 이 말을 듣고 꾸짖었다.

"앞으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지난번에 내가 들으니 '유(儒)는 유(諛)다'고 하던데, 과연 그렇구나. 네가 평소에 천하 나쁜 이름을 모두 모아서 망령되게도 내게 덧붙이더니 이제 낯간지럽게 아첨하는 구나. 그 말을 누가 곧이 듣겠느냐? 대개 천하의 이치가 한 가지이니, 범의 성품이 악하다면 사람의 성품도 악할 것이요, 사람의 성품이 선하다면 범의 성품도 선할 것이다. 너희들의 천만 가지 말이 모두 오상(五常)을 떠나지 않고, 경계하여 권명하는 것이 언제나 사강(四綱)에 있긴 하지만, 서울이나 고들에서 코 베이고 발 잘리며, 얼굴에 죄인이라는 글자를 먹으로 새긴 채 돌아다니는 자들이 모두 오륜에 순종치 않은 사람들이란 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밧줄이며 먹바늘이며 도끼며 톱 따위의 형벌 도구들을 날마다 공급하기에 겨를이 없으니, 그 나쁜 짓을 막을 길이 없어.그런데 범의 집에는 이러한 형벌이 없으니, 이로써 본다면 범의 성품이 사람보다 어질지 아니하냐? 범은 나무와 풀을 씹지 않고, 벌레나 물고기를 먹지 않으며, 강술처럼 좋지 못한 것을 즐기지 않고, 젖이나 알처럼 자질구레한 것들은 차마 먹지 못한다. 산에 들어가면 노루와 사슴을 사냥하고 들판에 나가면 말이 소를 사냥하되, 아직 구복(口腹)의 누를 끼치거나 음식 때문에 송사(訟事)를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으니, 범의 도(道)야 말로 어찌 광명 정대하지 않으랴.

범이 노루나 사슴을 먹으면 너희들이 범을 미워하지 않다가도, 범이 말이 소를 먹으면 '원수'라고 떠들어대더구나. 아마도 노루와 사슴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지 않지만, 말이나 소는 너희에게 공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 그러면서도 너희들은 말이나 소가 태워 주고 일해 주는 공로도 다 저버리고, 사랑하고 충성하는 생각까지 다 잊어버리며, 날마다 푸줏간이 미어지도록 이들을 죽이고 심지어는 그 뿔과 갈기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더구나. 게다가 우리들의 노루와 사슴까지도 토색질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산에서 먹을 것이 없고 들에서 끼니를 굶게 하였었다. 그러니 하늘로 하여금 공평하게 처리하도록 한다면, 너를 먹어야 하겠느냐? 아니면 놓아주어야 하겠느냐?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취하는 자를 도(盜)라 하고, 남을 못살게 굴다가 목숨까지 빼앗는 자를 적(賊)이라고 한다. 그런데 너희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쏘다니면서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며 남의 것을 착취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더구나. 심지어는 돈더러 형이라 부르고, 장수가 되기 위해서 자기 아내를 죽이는 일까지도 있었으니, 이러고도 인륜의 도리를 논할 수 있겠느냐? 그 뿐만 아니라 메뚜기에게서 그 밥을 빼앗고, 누에한테서 옷을 빼앗으며, 벌을 막질러 꿀을 긁어먹고, 심한 경우에는 개미의 알을 젓 담아서 그 조상께 제사하니, 너희보다 더 잔인하고 박덕한 자가 있겠느냐?

너희들은 이(理)를 말하고, 성(性)을 논하면서 걸핏하면 '하늘'을 일컫지만, 하늘이 명한 바로서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 다 한가지 동물이다.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아서 기르는 인(仁)으로써 논하더라도 범과 메뚜기, 누에, 벌, 개미와 사람이 모두 함께 길러졌으므로, 서로 거스를 수가 없다. 또 그 선악(善惡)으로써 따지더라도 뻔뻔스럽게 벌과 개미의 집을 노략질하고 긁어 가는 놈이야말로 천지의 거도(巨盜)가 아니겠으며, 함부로 메뚜기와 누에의 살림을 빼앗고 훔쳐 가는 놈이야말로 인의(仁義)의 대적이 아니겠느냐?

범이 아직도 표범을 잡아먹지 않는 까닭은 차마 제 겨레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범이 노루가 사슴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노루와 사슴 먹는 것만큼 많지는 못할 것이고, 범이 말이나 소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말이나 소 먹는 것만큼 많지는 못할 것이며, 범이 사람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저희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만큼 많지는 못할 것이다.

지난해 관중(關中)이 크게 가물었을 때에 백성들끼리 서로 잡아먹은 자가 몇만 명이고, 그 앞서 산동(山東)에 큰 물이 났을 때,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자도 또한 몇 만 명이었다. 그러나 서로 많이 잡아먹기로는 어찌 저 춘추시대(春秋時代) 같은 적이 있었겠느냐? 춘추시대에는 은덕을 세운다는 싸움이 열일곱 번이요, 원수를 갚는다는 싸움이 서른 번이었다. 그들의 피가 천리에 흘렀고, 엎어진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다.

그러나 범의 잡 앞에선 큰물과 가뭄 걱정을 모르므로 하늘을 원망할 것도 없고, 원수와 은혜를 모두 잊고 살므로 다른 생물들에게 미움을 입지 않는다. 천명을 알고 순종하므로 무당이나 의원의 간교한 술수에 미혹되지 않고, 타고난 바탕을 그대로 지녀서 천명을 다하므로 세속의 이해에 병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범이 착하고도 성스러운 까닭이다. 범의 아롱진 무늬를 한 점만 엿보더라도 그 문(文)을 천하에 보여 주기 넉넉하고, 한 치의 병장기도 지니지 않았지만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만으로도 천하에 무(武)를 빛냈었다. 범과 원숭이를 그릇에 그려 천하에 효(孝)를 떨쳤고, 하루에 한 번 사냥하면 까마귀, 솔개, 청머구리, 말개미 따위와 함께 그 대궁을 나누어 먹으니, 그 인(仁)을 이루 다 쓸 수가 없다. 고자질한 자는 먹지 않으며, 병들어 못 쓰게 된 자도 먹지 않고, 상복 입은 자도 먹지 않으니, 그 의(義)도 이루 다 쓸 수가 없다.

그런데 너희들이 먹고 사는 것이야말로 불인키 짝이 없다. 저 틀과 함정으로도 오히려 모자라서 저 새 그물이랑, 노루 그물이랑, 작은 물고기 그물이랑, 그리고 큰 물고기 그물이랑, 수레 그물이랑, 삼태 그물들을 만들었으니 이는 애당초 그물을 만든 사람이 먼저 천하에 화를 끼친 것이다. 또 큰 바늘이니, 쥘 창이니, 도끼니, 세모진 창이니, 한길 여덟 자 창이니, 작은 칼이니 긴 창이니 하는 것들이 생기고 또 화포란 것이 있어서 터뜨린다면 소리가 화산을 무너뜨릴 듯, 그 불 기운은 음양을 누설하여 그 무서움이 우레보다 더하거늘 이도역시 그 못된 꾀를 마음껏 부리지 못한즉, 그제야 보드라운 털을 빨아서 아교를 녹여 붙여 날을 만들되 끝이 대추씨처럼 뾰족하고 길이는 한 치도 못 되게 하여 오징어 거품에다 담갔다가 가로, 세로 멋대로 치고 찌르되 그 굽음은 세모진 창과 같고, 날카로움은 작은 칼 같고, 열셈은 긴 칼 같고, 갈라짐은 가짓창 같고, 곧음은 살 같고, 팽팽하기는 활 같아서 이 병기가 한 번 번뜩이면 모든 귀신들이 밤중에 곡할 지경이라니 그 서로 잡아먹기로는 가혹함이 뉘라서 너희들보다 더할 자 있겠느냐."

하였다. 북곽 선생이 자리를 떠나 한참 동안 엎드렸다가 일어나 엉거주춤하더니 두 번 절하고 머리를 거듭 조아리며,

"시전에 이르기를,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목욕재계만 한다면 하늘에 있는 상제도 섬길 수 있다'고 하였으니 이 하토의 천한 신하 감히 범님의 은덕 밑에 있습니다."

하고 북곽 선생은 장황하게 아첨의 말을 늘어 놓고 범의 본부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또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절을 하였다.

북곽 선생은 얼마 만에야 겨우 머리를 쳐들고 보았다. 범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동녘은 밝아오고 있었다. 한 농부가 일찌감치 밭을 갈려고 나오다가 이 괴상한 광경을 보고,
"선생님은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찍 벌판에서 절을 하고 계십니까?"

하고 물으니 북곽 선생이,

"내가 들으니 하늘이 높다 하더라도 어찌 감히 머리를 굽히지 않을 것이며, 땅이 아무리 두렵더라도 어찌 감히 두렵게 딛지 않으리요 라고 했기에 절을 하고 있는 것이네."

하였다.

(마지막 부분만 송경원의 국어공부방에서 인용하고, 그 앞의 대부분의 내용은 정명숙의 국어수업에서 인용함)

출전 : 정명숙의 국어수업, 송경원의 국어공부방
   
윗글 [조선] 민옹전 (민족)
아래글 [조선] 호질 (한메)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2870 사전1 [조선] 천수경 (한메) 이창호 2002-10-24 793
2869 사전1 [조선] 천수경 (두산) 이창호 2002-10-24 780
2868 사전1 [조선] 천수경 (민족) 이창호 2002-10-24 884
2867 사전1 [문학] 시사(詩社) (한메) 이창호 2002-10-24 737
2866 사전1 [조선] 시사(詩社) (두산) 이창호 2002-10-24 819
2865 사전1 [조선] 민옹전 감상 (정명숙/송경원) 이창호 2002-10-24 1271
2864 사전1 [조선] 민옹전 (한메) 이창호 2002-10-24 908
2863 사전1 [조선] 민옹전 (두산) 이창호 2002-10-24 897
2862 사전1 [조선] 민옹전 (민족) 이창호 2002-10-24 988
2861 사전1 [조선] 호질 감상 (정명숙/송경원) 이창호 2002-10-24 1275
1,,,11121314151617181920,,,30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