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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24 (목) 21:02
분 류 사전1
ㆍ조회: 1584      
[조선] 양반전 감상 (송경원)
양반전(兩班傳)

● <작가 해설> 북학파의 거장, 박지원(朴趾源,1737~1805)

박지원은 1737년 한성 서쪽 반송방의 야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학자와 고관을 배출한 명문이었다. 5대조 박미는 문예 서도의 대가로서 선조의 부마이기도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 박필균은 정2품의 지돈녕부사를 지냈다. 하지만 아버지 박사유는 그가 어릴 때 미처 관직에도 임용되지 못하고 요절하였으며, 어머니 역시 일찍 세상을 떴다.

그는 부모를 일찍 여읜 탓으로 조부에 의해 양육되었다. 조부 박필균은 노른측 인사였지만 당쟁을 싫어했던 탓에 당론 시비에 휘말리는 일이 없었고 또한 청렴하여 축재에 관심이 없었으므로 가난하게 살았다. 이런 조부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는 건강하고 영민한 청년으로 성장해 1752년 16세 때 이보천의 딸과 혼인했다. 이보천은 비록 벼슬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사람 보는 눈이 좋고 성품이 뛰어난 선비였다. 그는 박지원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교리로 있던 아우 이양천에게 부탁하여 그에게 학문을 가르치게 하였다. 그는 이양천에게 주로 <사기>를 비롯한 역사 서적을 배웠고, 문장 쓰는 법을 터득하여 많은 논설을 습작하였다. 그리고 처남 이재성과 학문을 교제하며 서로 충실한 조언자 역할을 하였다.

1760년 조부가 죽자 생활은 더욱 곤궁해졌다. 그리고 1765년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였고, 이후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1768년에는 집을 파고 백탑 근처로 이사하였는데 그곳에서 박제가, 이서구, 서상수, 유득공, 유금 등과 학문적 교유를 가졌다. 그리고 이 시기를 전후하여 당대 최고의 학자 홍대용, 이덕무, 정철조 등과 자주 토론하였고 또한 유득공, 이덕무 등과 어울려 서부 지방을 여행하기도 한다.
이 당시 정국은 홍국영이 세도를 잡고 있었고, 그 때문에 노론 벽파에 속했던 그의 생활은 더욱 어렵게 되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상태가 되었다. 그는 위협을 피해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에 은거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그의 아호가 연암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그는 연암협에 있는 동안 농사와 목축에 대한 장려책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1780년 처남 이재성의 집에 머물러 있다가 삼종형 박명원이 청의 고종 70세 진하 사절 정사로 북경을 갈 때 수행하여 압록강을 거쳐 북경,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때 보고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이 <열하일기>이다.

그가 자원하여 청을 다녀온 것은 홍대용의 영향 때문이었다. 홍대용은 그에게 중국 여행담을 들려주면서 그곳의 산업과 과학, 그리고 신학문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그가 쓴 <열하일기>는 1780년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너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요동의 성경(봉천)과 산해관을 거쳐 북경으로 가고, 거기서 다시 청황제의 피서지인 열하에 도착하였다가 북경으로 되돌아오는 8월 20일까지 약 두 달 동안의 여행 체험을 날짜별로 기록하고 있으며, 특별한 부분은 별도 항목을 마련하여 덧붙여놓았다. 이 저술로 인하여 그의 명성이 선비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호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 후 1786년(정조 10년) 50세에 음서로 선공관 감역에 제수되면서 녹봉을 받는 관리가 된다. 1789년에는 평시서주부, 1791년에는 한성부 판관, 이듬해에는 안의현감, 1797년에는 면천군수, 그리고 1800년 양양부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1805년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는 안의현감 시절에 북경 여행을 토대로 실험적 작업을 시도했으며, 면천군수 재직시에는 <과농소초>, <한민명전의>, <안설> 등을 저술한다. <열하일기>와 더불어 이 책들 속에는 그의 현실 개혁에 대한 포부가 잘 나타나 있다.

북학 사상으로 불리는 그의 주장은 비록 적대적 감정이 쌓여 있긴 하지만 청의 문명이 우리의 현실을 풍요롭게 한다면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청이 조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의 잘못을 비판하면서 그 개선책을 제시하고 있으며, 역대 중국인들이 우리 민족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는 방법을 서술하기도 했다.

이 같은 그의 현실주의적인 사상은 노론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정조 대의 젊은 선비들에 의해 긍정적으로 수용되어 북학파를 형성하는 중심 사상이 되었다.

그의 현실 개혁적 사상은 <연암문집>에 수록되어 있는 <허생전>, <민옹전>, <광문자전>, <양반전>, <김신선전>, <역학대도전>, <봉산학자전> 등의 소설 속에 잘 용해되어 당대와 후대 학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소설들은 대개 시대상을 풍자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접근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양반전>에서는 조선 봉건 사회의 와해와 그 속에서 기득권을 주장하며 군림하는 사대부 계층이 처한 현실과 한계점을 잘 지적하고 있고, <허생전>에서는 허위적 북벌론을 배격하면서 중상주의적 사상을 통해 이상향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소설들은 그의 사상을 나타내는 이론의 근거이자 배타적으로 인식한 조선 사회의 현실과 이상향으로 추구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염원을 표출한 것이다. 따라서 당대 지배층의 사고방식과 많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그의 저술들이 오랫동안 불온한 서적으로 취급한 이유가 되었다.

그의 문집이 처음 공간된 것은 그가 죽은 지 1백 년이 지난 1900년이었다. 손자 박규수가 우의정을 지낸 인물이었지만 내용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연암문집>은 그때까지 간행되지 못하다가, 20세기 벽두에 김만식을 비롯한 23인의 학자들에 의해 겨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출전 :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인용)

● 작품 개요

연암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을 이루는 것은 풍자적 성격과 사실주의적 성격이다. 연암에게 있어 풍자란, 중세적 봉건 사회가 무너져가고 그 속에서 새로운 사회의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한 역사적 변화 시대에 살면서 그 모든 추이들을 직시했던 비판적 태도로 나타난다.

그는 서민의 세계를 향하여 새로운 의식세계를 확장하면서 당대 평민층의 삶과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함으로써 뛰어난 소설적 성과를 이룩했다.

● <양반전> 본문 읽기

양반이란 사족(士族)들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정선군에 한 양반이 살았다. 이 양반은 어질고 글읽기를 좋아하여 매양 군수가 새로 부임하면 으레 몸소 그 집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 양반은 집이 가난하여 해마다 고을의 환자(봄에 빌린 곡식을 가을에 갚던 일)를 타다 먹은 것이 쌓여서 천 석에 이르렀다. 강원도 감사가 군읍(郡邑)을 순시하다가 정선에 들러 환곡(還穀-고을 사창에서 백성에게 곡식을 꾸어주던 제도)의 장부를 열람하고는 대노해서

"어떤 놈의 양반이 이처럼 군량(軍糧)을 축냈단 말이냐?"

그러나 가난해서 갚을 힘이 없는 것을 딱하게 여기고 차마 가두지 못했지만 무슨 도리도 없었다. 양반 역시 밤낮 울기만 하고 해결할 방도를 차리지 못했다. 그 부인이 역정을 냈다.

"당신은 평생 글 읽기만 좋아하더니 고을의 환곡을 갚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군요. 쯧 쯧 양반, 양반이란 한푼어치도 안 되는 걸."

그 마을에 사는 한 부자가 가족들과 의논하기를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늘 존귀하게 대접받고 나는 아무리 부자라도 항상 비천하지 않느냐. 말도 못하고, 양반만 보면 굽신굽신 두려워해야 하고, 엉금엉금 가서 하정배(下庭拜-신분이 낮은 사람이 양반을 뵐 때 뜰 아래에서 절하던 일)를 하는데 코를 땅에 대고 무릎으로 기는 등 우리는 노상 이런 수모를 받는단 말이다. 이제 동네 양반이 가난해서 타먹은 환자를 갚지 못하고 아주 난처한 판이니 그 형편이 도저히 양반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내가 장차 그의 양반을 사서 가져 보겠다."

부자는 곧 양반을 찾아가서 자기가 대신 환자를 갚아 주겠다고 청했다. 양반은 크게 기뻐하며 승낙했다. 부자는 즉시 곡식을 관가에 실어 가서 양반의 환자를 갚았다. 군수는 양반이 환곡을 모두 갚은 것을 놀랍게 생각해 몸소 찾아가서 양반을 위로하고 또 환자를 갚게 된 사정을 물어 보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 양반이 벙거지를 쓰고 짧은 잠방이를 입고 길에 엎드려 '소인'이라고 자칭하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지 않는가. 군수가 깜짝 놀라 내려가서 부축하고

"귀하는 어찌 이다지 스스로 낮추어 욕되게 하시는가?"

하고 말했다. 양반은 더욱 황공해서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엎드려 아뢴다.

"황송하오이다. 소인이 감히 욕됨을 자청하는 것이 아니오라, 이미 제 양반을 팔아서 환곡을 갚았습지요. 동리의 부자가 양반이올습니다. 소인이 이제 다시 어떻게 전의 양반을 모칭(冒稱-성명을 거짓으로 꾸며댐 )해서 양반 행세를 하겠습니까?"

군수는 감탄해서 말했다.

"군자로구나 부자여! 양반이로구나 부자여! 부자이면서도 인색하지 않으니 의로운 일이요, 남의 어려움을 다급하게 여기니 어진 일이요, 비천한 것을 싫어하고 존귀한 것을 사모하니 지혜로운 일이다. 이야말로 진짜 양반이로구나. 그러나 사사로 팔고 사고서 증서를 해 두지 않으면 송사(訟事)의 꼬투리가 될 수 있다. 내가 너와 고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를 증인 삼고 증서를 만들어 미덥게 하되 본관이 마땅히 거기에 서명할 것이다."

그리고 군수는 관부(官府)로 돌아가서 고을 안의 사족(士族) 및 농공상(農工商)들을 모두 불러 동헌뜰에 모았다. 부자는 향소(鄕所-군현의 수령을 보좌하던 기관)의 오른쪽에 서고 양반은 공형(公兄)의 아래에 섰다. 그리고 증서를 만들었다.

<1차 양반 매매 증서>

건륭(乾隆- 청나라 연호.1745년. 영조 21년) ) 10년 9월 모일에 이 문서를 만드노라. 몸을 굽혀 양반을 팔아서 환곡을 갚으니 그 값은 천석이다. 양반은 여러 가지로 일컬어지나니 글을 읽으면 사(士)라 하고 정치에 나아가면 대부(大夫)가 되고 덕이 있으면 군자(君子)이다. 무반(武班)은 서쪽에 늘어서고 문반(文班)은 동쪽에 늘어서는데 이것이 양반이니 너 좋을 대로 따를 것이다. 야비한 일을 딱 끊고 옛날을 본받고 뜻을 고상하게 할 것이며, 늘 오경(五更-새벽 3시~5시)만 되면 일어나 유황에다 불을 당겨 등잔을 켜고서 눈은 가만히 코끝을 보고 발꿈치를 궁둥이에 모으고 앉아 동래박의(東萊博義)를 얼음 위에 박 밀듯 왼다. 주림을 참고 추위를 견뎌 입으로 구차스러움을 남에게 말하지 아니하되 고치탄뇌(叩齒彈腦-이를 마주치고 머리를 두드림. 옛날 선비들이 하던 체조)를 하며 입안에서 침을 가늘게 내뿜어 연진(嚥津)을 한다. 소매자락으로 모자를 쓸어서 먼지를 털어 물결무늬가 생겨나게 하고, 세수할 때 주먹을 비비지 말고, 양치질을 지나치게 말고, 소리를 길게 뽑아서 여종을 부르며, 걸음을 느릿느릿 옮겨 신발을 땅에 끈다.

그리고 고문진보(古文眞寶), 당시품휘(唐詩品彙)를 깨알 같이 베껴 쓰되 한 줄에 백 자를 쓰며, 손에 돈을 만지지 말고, 쌀값을 묻지 말고,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고, 밥을 먹을 때 맨상투로 밥상에 앉지 말고, 국을 먼저 훌쩍 떠 먹지 말고, 무엇을 후루루 마시지 말고, 젓가락으로 방아를 찧지 말고, 생파를 먹지 말고, 막걸리를 들이켠 다음 수염을 쭈욱 빨지 말고, 담배를 피울 때 볼에 우물이 파이게 하지 말고, 화 난다고 처를 두들기지 말고, 성을 내어 그릇을 내던지지 말고, 아이들에게 주먹질을 말고, 노복(奴僕)들을 야단쳐 죽이지 말고, 마소를 꾸짖되 그 주인까지 욕하지 말고, 아파도 무당을 부르지 말고, 제사 지낼 때 중을 청해다 재(齋)를 드리지 말고, 추워도 화로에 불을 쬐지 말고, 말할 때 이 사이로 침을 흘리지 말고, 소 잡는 일을 말고, 돈을 가지고 놀음을 말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품행이 양반에 어긋남이 있으면 이 증서를 가지고 관(官)에 나와서 변정할 것이다.

성주(城主) 정선군수 화압(花押-손으로 사인(sign)함 ), 좌수 별감 증서(證署).

이에 통인이 탁탁 인(印-도장)을 찍어 그 소리가 엄고(嚴鼓-큰북) 소리와 마주치매 북두성(北斗星)이 종으로, 삼성(參星)이 횡으로 찍혀졌다. 부자는 호장이 증서를 읽는 것을 쭉 듣고 한참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양반이라는 게 이것 뿐입니까? 나는 양반이 신선 같다고 들었는데 정말 이렇다면 너무 재미가 없는 걸요. 원하옵건대 무슨 이익이 있도록 문서를 바꾸어 주옵소서."

그래서 다시 문서를 작성했다.

<2차 양반 매매증서>

"하늘이 민(民)을 낳을 때 민을 넷으로 구분했다. 사민(四民)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사(士)이니 이것이 곧 양반이다. 양반의 이익은 막대하니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않고 약간 문사(文史)를 섭렵해 가지고 크게는 문과 급제요, 작게는 진사가 되는 것이다. 문과의 홍패(紅牌-문과 과거 합격증. 붉은 글씨로 쓴 데서 유래)는 길이가 2자 남짓한 것이지만 백물이 구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돈자루인 것이다. 진사가 나이 서른에 처음 관직에 나가더라도 오히려 이름있는 음관(蔭官-조상의 음덕으로 얻은 벼슬)이 되고, 잘 되면 남행(南行- 과거에 의하지 않고 문벌을 따라 벼슬을 내림 )으로 큰 고을을 맡게 되어, 귀밑이 일산(日傘-감사나 수령들이 부임할 때 받던 우산 모양의 의장)의 바람에 희어지고, 배가 요령 소리에 커지며 방에서 기생이 귀고리로 단장하고, 뜰에는 학(鶴)을 기른다. 궁한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능히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 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너희들 코에 잿물을 드리 붓고 머리끄뎅이를 회회 돌리고 수염을 낚아채더라도 가히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부자는 증서를 중지시키고 혀를 내두르며 "그만 두시오, 그만 두어. 맹랑하구먼. 장차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인가." 하고 머리를 흔들고 가버렸다. 부자는 평생 다시 양반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다.

● <양반전> 내용 정리

* 사상적 배경 : 실사구시(實事求是)
* 성격 : 풍자적
* 풍자대상 : 무위도식하는 무능한 양반, 분수없이 신분 상승을 꾀하려는 상인계층
* 특징
    1. 몰락 양반의 위선적 행동을 묘사
    2. 평민 부자의 새로운 인간형 제시
    3. 실사 구시의 실학사상을 반영함
    4. 양반의 전횡을 풍자적으로 비판함

* 주제 : 양반들의 무기력하고 위선적인 생활에 대한 비판과 풍자
* 출전 : 방경각외전

● 등장인물의 이중적 성격

* 양반 : 악을 행하지 않는 선량한 존재이지만, 타성에 젖은 무능한 인물이면서 본분마저 망각함
* 부자 : 인간성의 각성과 양심의 회복을 보여주지만, 양반권을 사려는 어리석은 속물주의자

● <양반전>의 시대적 배경

조선 후기의 사회는 임진, 병자 양란의 후유증 등으로 조선 전기의 엄격한 신분 질서가 동요하기 시작했으며, 상업의 발달과 농업 생산력의 발달 등으로 평민 부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국가에서는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서 돈 많은 평민들에게 일정한 돈을 받고 신분을 상승시켜 주기도 했다.

한편, 당시의 지배 관료층은 혼란한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부족하고 공허한 명분에 얽매여 있었으며, 관료 사회의 부패 또한 극심하였다.

● <양반전> 이해하기

이 작품에 대하여 박지원은 <방경각외전>의 자서(自序)에서,

"사(士)는 천작(天爵)이니 사(士)와 심(心)이 합하면 지(志)가 된다. 그 지(志)는 어떠하여야 할 것인가? 세리(勢利)를 도모하지 않고 현달하여도 궁곤하여도 사(士)를 잃지 말아야 한다. 명절(名節)을 닦지 아니하고 단지 문벌이나 판다면 장사치와 무엇이 다르랴? 이에 <양반전>을 쓴다." 고 그 저작 경위를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천작을 팔고 산 정선 양반과 상인인 부자를 풍자한 것으로 허위 부패를 폭로한 것이다.

그리고 양반전의 내용에서 보는 것처럼 처음 만든 문권(1차 양반매매증서)에 나타나는 양반의 형식주의, 두 번째 만들다가 만 문권(2차 양반매매증서)에서 볼 수 있는 양반의 비인간적인 수탈 등이 매우 구체적이고 희화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이 점에 착안하여 <양반전>은 양반의 위선적인 가면을 폭로하고 봉건계급 타파를 주장한 소설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한편, 작품을 분석하여 얻은 결론은, 치부를 한 뒤 신분상승을 꾀하여 양반이 되고자 하는 정선의 한 부자가 마침 어느 몰락 양반이 당면한 극한 상황을 계기로 그 양반을 사 가지는 사건을 두고, 같은 양반 계층인 군수가 기지를 써서 이 매매행위를 파기시켜버린 골계소설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 까닭은 최초에 설정되었던 관곡 보상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뒤에 군수가 새로 이 사건에 개입한 점, 문권의 내용은 양반이 상인이 되어 지켜야 할 일들이 제시된 것이 아니고 상인이 양반이 되어 지켜야 할 것만을 요구하는 일방적인 것이라는 점, 첫째 문권은 양반이 행하는 일들의 골계적인 표현이며, 둘째 문권은 계약 파기의 적극적인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견해는 작가가 가진 철저한 계급의식을 감안할 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이 작품은 부농이 등장하여 경제력에 의한 양반 신분 획득의 가능성이 나타나고, 관료 사회의 부정이 깊어졌으며, 몰락 양반의 비참한 모습이 드러나는 등 조선 후기의 역사적 상황이 작가의 간결한 필치로 잘 그려진 작품이다.

또한 사이사이에 끼여 있는 교묘하고 익살스러운 표현은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며, 속된 표현이라 하여 당대에 많은 비난을 받았던 이 작품은 도리어 그 표현 때문에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양반전>은 풍자문학이냐 해학문학이냐?

<양반전>을 풍자문학으로 보느냐 해학문학으로 보느냐는 단순히 작품의 성격 문제에 그치지 않고 주제와 연관되기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양반전>이 풍자문학이라면, 그 풍자의 대상은 양반이다. 양반으로서의 명예와 위신을 저버리고 양반 신분을 팔아 생계를 연명하는 행위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해학문학으로 볼 경우에는 그 대상은 부자가 된다. 사고 팔 수 없는 신분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속물주의자의 어리석음이 군수의 기지를 통해 골계화된 것이다.

풍자문학으로서의 <양반전>은 "명예와 절개를 지키지 못하고 선비도를 상실한 양반의 타락'을, 해학문학으로서의 <양반전>은 '양반 신분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천부(비천한 부자)의 어리석음'을 주제로 한다.

● <양반전> 양반의 두 개의 얼굴 (이강엽)

양반전은 대개의 고소설이 그렇듯이 전(傳)을 표방했지만 전혀 전의 형식이 아니다.

전은 본래 역사 책에서 인물의 일대기를 기록하던 문학 갈래를 말한다. 따라서 '-전'을 표방한다면 <홍길동전>처럼 그 인물의 일대기를 그려 놓는 것이 기본인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잘 생각해 보면, 이 <양반전>의 주인공인 정선 양반은 이름조차 나오지 않으니, 한 개인의 삶을 조망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그리려는 것인가?

건륭 10년(서기 1745년) 9월 0일에 이 증서를 만든다. 앙반을 팔아서 관가의 곡식을 갚았으니 그 값이 곡식으로 천 석이나 된다. 원래 양반이란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글만 읽는 것은 선비요, 정치에 종사하면 대부라 하고, 덕이 있는 자는 군자라고 한다. 무반은 서쪽에 서고 문반은 동쪽에 선다. 그래서 이것을 양반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 너는 맘대로 골라서 하면 된다.

매매 문서의 첫 대목인데, '특정한 양반인 한 인물'에 주목하지 않고 양반 일반에 초점을 두고 있다. 양반은 다시 여러 이름으로 갈라져 있는데, 이 이름이 여럿이라는 것은 곧 역할이 여럿이라는 뜻이다. 선비는 책을 읽는 사람이고, 대부는 정치하는 사람이며, 군자는 덕이 있는 사람이고, 양반은 문반과 무반을 아우른 개념이라고 했다. 양반에게 붙여진 이런 다양한 이름들은 결국 양반이면 꼭 해야하는 역할인데, 문제는 '아무것이나 네 마음대로 하라'고 한 데서부터 발생한다. 만일 그리하여,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선비를, 덕이 없는 사람이 군자를 취하게 된다면 어찌될 것인가. 이것은 정명(正名)에 어긋나는 것으로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첩경이 된다. 박지원은 짧은 소설 한 편으로 그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나선 것이다.

절대로 비루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하고, 옛사람을 본받아 그 뜻을 숭상할 것이다. 새벽 오경(새벽 3-5시)이면 항상 일어나 촛불을 돋우고 앉아서 눈으로는 코끝을 내려다보고 무릎을 꿇어 발꿈치는 궁둥이를 받친다. <동래박의-송나라의 여조겸이 지은 책으로 역사에 대한 논평이 담겨 있음>를 마치 얼음 위에 박을 굴리듯이 술술 외야 한다. 배가 고픈 것을 참고 추운 것을 견디어 내며 입으로 가난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를 마주 부딪치면서 뒤통수를 주먹으로 두드리고 작은 기침에 입맛을 다신다. 소맷자락으로 관을 쓸어서 쓰는데, 먼지 터는 소맷자락이 마치 물결이 이는 듯하다. 손을 씻을 때 주먹을 쥐고 문지르지 않고 양치질을 해서 냄새가 나지 않게 한다.

천한 신분의 부자가 귀한 신분의 양반이 되기 위해 '꼭 해야할 일'을 열거한 부분이다. 이 부분을 두고 양반의 허식이라는 둥, 지저분한 행태라는 둥 말들이 많지만, 잘 따지고 보면 대체로 공부하고 덕을 쌓는 일임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어려운 책도 술술 읽으며 행실을 조신하게 한다는데 누가 시비할 것인가. 결국 이 대목은 앞서 살핀 양반의 여러 이름 중 두 가지, 즉 선비와 군자가 되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 열거되자 부자는 매우 곤혹스러워 이렇게 항변한다.

"양반이란 겨우 이것뿐입니까? 내가 듣기에 양반은 신선과 같다던데 겨우 이것뿐이라면 별로 신통한 맛이 없군요. 더 좀 좋은 일이 있도록 고쳐 주십시오."

그래서 두 번째 문서가 등장한다.

양반의 이익은 막대하니 진사가 나이 서른에 처음 관직에 나가더라도 오히려 이름있는 음관(蔭官-조상의 음덕으로 얻은 벼슬)이 되고, 잘 되면 남행(南行- 과거에 의하지 않고 문벌을 따라 벼슬을 내림 )으로 큰 고을을 맡게 되어, 귀밑이 일산(日傘-감사나 수령들이 부임할 때 받던 우산 모양의 의장)의 바람에 희어지고, 배가 요령 소리에 커지며 방에서 기생이 귀고리로 단장하고, 뜰에는 학(鶴)을 기른다. 궁한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능히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 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너희들 코에 잿물을 디리붓고 머리끄뎅이를 회회 돌리고 수염을 낚아채더라도 가히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보다시피 양반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려운 학문을 열심히 하여도 별다른 보상이 없다고 했던 앞 문서에 비한다면, 이 부분은 참으로 유혹적이다.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아도 벼슬을 하고 큰돈을 벌 수 있으며, 설령 벼슬을 하지 않더라도 시골에 틀어박혀서 일반 백성들을 자기 맘대로 부릴 수 있다니! 이 대목은 바로 양반의 여러 이름 중 대부처럼 벼슬을 통해 특권을 얻은 자에 해당되는 부분인데, 앞의 문서와 완전히 상반된 내용임을 기억하자. 앞의 문서에 나타난 양반이 열심히 공부하고 행실을 닦아도 가난하게 사는 딱한 양반이었다면, 이 문서에 나타난 양반은 공부도 대충하고 행실은 개차반이면서도 제 이익만은 꼬박꼬박 챙기는 도둑놈 양반인 셈이다.

곧 앞 문서의 양반은 의무는 충실히 이행하면서 먹을 것도 못 챙기는가 하면, 뒷문서의 양반은 의무는 게을리하면서 특권을 독점한다. 이 소설에서는 간단한 문서 두 장으로 그런 양반의 두 얼굴을 여지없이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혹시 그 두 얼굴 중에 어느쪽이 진짜 양반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어느쪽도 양반의 진면목은 아니다. 박지원이 생각하는 양반은 열심히 수행하여 백성을 잘 다스리는 사람인데, 이제 시대가 변하여 그런 아름다운 조화는 물거품처럼 되고 말았다. 한편에서는 촌구석에 틀어박혀 열심히 공부하지만 아무 벼슬도 못하고 생계에 허덕이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학문이니 덕행이니 하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살면서도 제 실속은 다 챙기는 파렴치한 사람이 생겼던 것이다. 결국 <양반전>에서는 그런 두 양반상을 다소 과장하여 보여 주면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정말 그런지 궁금하다면, 등장 인물별로 살펴보자.

정선 고을의 양반은 얼마나 덕망이 있었던지, 군수가 부임해 올 때마다 그에게 인사를 왔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생계 대책도 세우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물이었다. 오죽하면 아내로부터 '한푼어치도 못되는 양반'이라며 핀잔만 받았을까. 공간 배경으로 강원도 정선을 설정한 것부터가 출세와는 담을 쌓은 양반을 설정하려는 의도가 강한 것이다.

이와 달리 새로 부임한 군수는 같은 양반이면서도 영 다른 모습을 보인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같은 신분의 양반을 보호하기 위하여 교묘한 문서 두 장으로 천한 부자의 재산만 축내게 하고는 일을 마무리 짓고 있다. 군수라는 신분을 십분 활용하여 낮은 신분의 인물을 골탕 먹인 예라 하겠다.

이렇게 보면, 바로 정선 양반과 정선 군수가 문서에 등장하는 두 얼굴의 양반을 대변하는 예이다.  그렇다면 부자는 또 어떤 인물인가? 양반의 온갖 추악한 행태가 열거되자 그는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이시오?"라며 달아나 버렸다. 끝내 양심의 가책을 받을 만한 일을 할 수 없다며 도망가 버린 점을 생각하면 그는 매우 인간적인 인물이다. 요즘 말로 하면 휴머니스트라 하겠는데,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두 양반의 합작에 의해 재산만 털리고 마는 어리석은 인물이기도 하다.

결국, 이 작품은 도둑질이라도 해야할 만큼 절박한 처지에 놓인 몰락 양반과, 갖은 수단과 밥업을 동원하여 제 잇속만 챙기는 부도덕한 양반, 도둑놈은 되기 싫다며 달아나는 착하고 어리석은 백성을 함께 보여주면서 당시 현실을 총체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출전 : 이강엽, [고교 독서평설] 통권 106호에서 인용)

출전 : 송경원의 국어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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