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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6-16 (일)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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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8807      
[조선] 조선 시대 연구사 (민족)
조선(1)(연구사) 조선 시대 연구사

세부항목

조선
조선(1)(정치) 1
조선(1)(정치) 2
조선(1)(경제) 1
조선(1)(경제) 2
조선(1)(사회)
조선(1)(문화)
조선(1)(대외관계)
조선(1)(연구사)
조선(2)(1864년∼1910년대의 조선)
조선(2)(국제관계)
조선(2)(정치)
조선(2)(사회경제)
조선(2)(사상ㆍ종교)
조선(2)(역사적 성격)
조선(2)(연구사)
조선(2)(참고문헌)

오늘날 조선 시대사에 대한 연구와 함께 그 성과도 대단히 많아 논문이 1,000여 편, 저서만도 200권에 육박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대체로 광복 이전보다 광복 이후의 것이 대부분이며, 1960년대부터는 연구가 본궤도에 올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제 시기 조선시대사 연구]

일제강점기에 있어서의 조선시대사 연구는 한국인 학자와 일본인 학자의 업적으로 나뉜다. 당초 한국사를 서양근대사학의 방법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인 관인 학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일본인 학자들의 조선시대사 연구는 식민주의 사학의 일환이었으며, 주로 당쟁사ㆍ대외관계사ㆍ토지제도사 그리고 조선 후기 사회의 정체성 등에 힘을 기울였다.

가와이(河合弘民)ㆍ세노(瀨野馬態) 등의 당쟁사 연구는 다분히 한국인이 자치 능력이 없는 민족임을 강조, 일본의 식민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카무라(中村榮孝)ㆍ아키야마(秋山謙藏)ㆍ이케우치(池內宏) 등의 대명ㆍ대일관계사와 왜란ㆍ호란 등의 연구는 조선 역사를 명나라에 대한 사대, 일본과의 교린, 그리고 끊임없이 외침을 받은 것으로 강조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었다. 또한, 와다(和田一郎)ㆍ후카다니(深谷敏鐵)ㆍ쓰도(周藤吉之) 등의 토지제도사 연구는 토지국유제론을 내세워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 의한 토지 약탈을 합리화하고자 한 저의가 숨어 있었다.

한편, 후쿠다(福田德三)ㆍ요모(四方博) 등의 조선 후기 사회 연구는 봉건사회 결여론 내지 미성숙론이라는 정체성론(停滯性論)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일본 학자들은 조선 후기 실학의 발생도 청나라의 외래 문화 전래에 의한 자극 정도로만 파악하였다. 그러나 일본 학자의 연구 중에는 쓰도의 조선 초기 노비 연구나 요모의 조선 후기 신분제 연구, 세키노(關野貞)의 미술사 분야의 업적과 같이 간과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한편, 일제 하 한국인 학자의 조선 시대사 연구는, 그 인원은 적었지만 나름대로의 연구 성과가 있었다. 즉, 저서로는 장지연(張志淵)의 ≪조선유교연원≫,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불교통사≫, 유자후(柳子厚)의 ≪조선화폐사≫, 홍이섭(洪以燮)의 ≪조선과학사≫ 등이 나왔다.

논문으로는 이상백(李相柏)의 전제개혁 운동, 신석호(申奭鎬)의 사화, 유홍렬(柳洪烈)의 서원ㆍ향약, 여말 선초의 사학(私學) 및 사묘(祠廟), 김석형(金錫亨)의 조선 초기의 국역 편성(國役編成), 박시형(朴時亨)의 조선 초기의 전세제도, 손진태(孫晉泰)의 감자전파(甘藷傳播), 김두헌(金斗憲)의 가족제도, 이병도(李丙燾)의 서경덕 등에 대한 유학사, 이인영(李仁榮)의 폐사군 문제(廢四郡問題) 등에 관한 연구가 있었다.

그리고 1936년 정약용 100주기를 전후해 조선학 운동이 전개되면서 정인보(鄭寅普)ㆍ안재홍(安在鴻)ㆍ백남운(白南雲) 등이 조선 후기의 실학을 근대사상의 싹으로 파악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 학자의 연구 중에는 일본 학자의 연구 성향에서 그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도 없지 않았다.

조선 시대사 연구는 광복과 함께 새로 출발하게 되었지만, 연구 성과의 집적이 쌓이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였다. 특히, 6ㆍ25를 겪으면서 1950년대까지 연구 성과가 부진하였다. 광복 후에는 일제강점기 이래의 연구를 묶은 것들이 저서로 선보였다.

이상백의 ≪한국문화사연구논고≫(을유문화사, 1947)ㆍ≪이조건국의 연구≫(을유문화사, 1949), 전석담(全錫淡) 외의 ≪이조사회경제사≫(노농사, 1946), 이북만(李北滿)의 ≪이조사회경제사연구≫ (대성출판사, 1948), 김두헌의 ≪한국가족제도의 연구≫(을유문화사, 1949), 현상윤 (玄相允)의 ≪조선유학사≫(민중서관, 1949), 이만규(李萬珪)의 ≪조선교육사≫(을유문화사, 1947) 등이 출간되었다.

6ㆍ25로 연구 활동이 중단되다시피 했으나 1950년대에도 이인영의 ≪한국만주관계사연구≫(을유문화사, 1954), 조선 시대에 국한된 것은 아니나 정인보의 ≪담원국학산고≫(문교사, 1955)가 저자들이 납북된 뒤 출간되었고, 홍이섭의 ≪정약용의 정치경제사상연구≫ (한국연구원, 1959), 고승제(高承濟)의 ≪근대한국산업사연구≫(대동문화사, 1959) 등이 출간되었다.

한편, 1950년대에 국사편찬위원회가 ≪조선 왕조실록≫(48권, 1953∼1958)ㆍ≪비변사등록≫(28책, 1959∼1960)ㆍ≪승정원일기≫ (1961년부터 등사출판 시작) 등의 원전을 차례로 축소, 영인해 조선시대 연구에 새로운 전환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에 진단학회(震檀學會)에서 편찬한 ≪한국사≫의 근세전기편(을유문화사, 1961)ㆍ근세후기편(을유문화사, 1965)은 조선시대 연구에 길잡이가 되었다.

1960년대부터 조선시대사 연구는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9∼15권, 탐구당, 1974ㆍ1975)는 이러한 활성화된 연구 진척에 따라 새롭게 쓰여진 통사이다. 1960년대 이래의 연구 성과를 한데 묶어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대외 관계 등 각 분야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전기의 정치ㆍ제도 관계는 조선의 건국, 정치지배 세력 문제, 공신 문제, 정치 세력간의 대립, 정치 기구, 제반제도, 지방제도, 군제 등에 걸쳐 100여 편의 논문이 나왔다.

저서로는 송준호(宋俊浩)의 ≪이조생원진사시의 연구≫ (국회도서관, 1970), 최승희(崔承熙)의 ≪조선초기 언관ㆍ언론연구≫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76), 이병휴(李秉烋)의 ≪조선전기 기호사림파연구≫(일조각, 1981), 정두희(鄭杜熙)의 ≪조선초기 정치지배세력연구≫(일조각, 1983), 이재룡(李載奴)의 ≪조선초기 사회구조연구≫(일조각, 1984) 등이 있다. 또 이 밖에 육군본부의 ≪한국군제사≫ 근세조선전기편(보진재, 1968)ㆍ근세조선후기편(천풍인쇄주식회사, 1976), 차문섭(車文燮)의 ≪조선시대 군제연구≫(단국대학교출판부, 1973) 등이 출간되었고, 고려와 조선에 걸친 이수건(李樹健)의 ≪한국중세사회사연구≫(일조각, 1985), 김성준(金成俊)의 ≪한국중세정치법제사연구≫(일조각, 1985) 등이 나왔다.

조선 후기 정치사에서는 당쟁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다룬 김종덕(金鍾德)ㆍ이태진(李泰鎭)ㆍ정만조(鄭萬祚)ㆍ최완기(崔完基)ㆍ박광용(朴光用)ㆍ오수창(吳洙彰)ㆍ이종범(李鍾範)ㆍ이은순(李銀順) 등의 연구와 사림정치의 권력 구조를 다룬 송찬식(宋贊植)의 연구가 있다. 저서로는 당쟁을 비양반층의 움직임과 결부시킨 정석종(鄭奭鍾)의 ≪조선후기 사회변동연구≫ (일조각, 1983)가 있으며, 정치 권력의 향촌 일선기관인 향청(鄕廳)의 구조를 밝힌 김용덕(金龍德)의 ≪향청연구≫(한국연구원, 1978)가 출간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정치ㆍ제도 연구에는 정치학ㆍ행정학ㆍ법학 계통의 학자들인 강주진(姜周鎭)ㆍ이종항(李鍾恒)ㆍ김운태(金雲泰)ㆍ박동서(朴東緖)ㆍ강길수(康吉秀)ㆍ윤갑식(尹甲植)ㆍ이재철(李載喆) 등의 저서가 출간되었다. 법제사의 연구도 약간의 논문이 있고, 저서로 서일교(徐壹敎)의 ≪조선 왕조 형사제도의 연구≫(한국법령편찬회, 1968), 박병호(朴秉濠)의 ≪한국법제사 특수연구≫(한국연구원, 1960)ㆍ≪전통적 법체계와 법의식≫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72) 등이 있다. 이 밖에 구병삭(丘秉朔)ㆍ이종하(李鍾河) 등의 저서가 있다.

[경제사 연구 동향]

조선 전기의 경제사 관계 연구는 토지제도ㆍ농업 기술ㆍ재정ㆍ상업ㆍ화폐ㆍ수공업ㆍ기타 산업 등을 다루어, 논문이 거의 200편이나 되고 저서도 20여 권에 달한다. 토지제도사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 중반부터 종래의 토지국유제론이 배격되고 토지사유제론이 대두되어 공명을 받게 되었다. 농업 기술ㆍ상업ㆍ화폐 연구는 15세기에 연작법의 보급과 수전 농업으로의 전환으로 생산력이 증대되어 16세기 초에는 장시(場市)가 서고 면포(綿布)가 화폐 기능을 가지고 상품 유통이 발달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수공업 연구에서는 15세기의 관장제(官匠制)가 16세기에 무너지고 사장제(私匠制)로 전환되었음이 실증되었다. 이러한 성과로 16세기를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움직임이 완연히 나타났다.

경제사 관계의 저서로는 천관우(千寬宇)의 ≪한국토지제도사 하≫(한국문화사대계 Ⅱ―정치ㆍ경제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65), 김태영(金泰永)의 ≪조선전기 토지제도사연구≫(지식산업사, 1983), 이경식(李景植)의 ≪조선전기 토지제도연구≫(일조각, 1986), 이광린(李光麟)의 ≪이조수리사연구≫(한국연구원, 1961), 이춘녕(李春寧)의 ≪이조농업 기술사≫(한국연구원, 1964), 이태진의 ≪한국 사회사연구≫(지식산업사, 1986), 이호철(李鎬澈)의 ≪조선전기 농업경제사≫(한길사, 1986), 김갑주(金甲周)의 ≪조선시대 사원경제연구≫(동화사, 1983), 김옥근(金玉根)의 ≪조선왕조 재정사연구≫(일조각, 1984), 박원선(朴元善)의 ≪보부상≫(한국연구원, 1965) 등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 경제사 분야에서는 1960년대부터 식민주의 사학의 정체성론이 지닌 허구성을 뒤집고 내재적으로 경제가 성장된 것을 실증적으로 입증하는 연구들이 속속 나오게 되었다.
한편, 농업사 분야에서는 김용섭(金容燮)의 ≪조선후기 농업사연구―농촌경제ㆍ사회변동―≫(일조각, 1970)ㆍ≪조선후기 농업사연구―농업변동ㆍ농학사상―≫(일조각, 1971)ㆍ≪한국근대농업사연구≫(일조각, 1975)가 있다.

상공업 분야에는 유원동(劉元東)의 ≪조선후기 상공업사연구≫(한국연구원, 1968), 강만길(姜萬吉)의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고려대학교출판부, 1973), 송찬식의 ≪조선후기 수공업에 관한 연구≫(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73), 유승주(柳承宙)의 ≪조선후기 수공업의 경영형태연구≫(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4), 화폐 문제에 관한 저서로는 원유한(元裕漢)의 ≪조선후기 화폐사연구≫ (한국연구원, 1975) 등이 나왔다.

[사회사 연구 동향]

조선 전기 사회사 관계의 연구는 신분제, 사림 세력과 향약, 사회 정책, 호구 문제, 가족제도 등을 대상으로 하여 논문이 170여 편, 저서도 10편에 가깝다. 특히, 조선 전기 신분제 연구에는 논쟁이 활발해, 양반층 아래 양인과 천인이 있었다는 양반사족론에 대한 이론(異論)으로 적어도 15세기는 양인과 천인의 2대 신분만이 있었다는 양천제설(良賤制說)이 나와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조선 전기 사회사 관계의 저서로는 이성무(李成茂)의 ≪조선초기 양반연구≫(일조각, 1980), 한영우(韓永愚)의 ≪조선전기 사회경제연구≫(을유문화사, 1983), 이수건의 ≪영남사림파의 형성≫(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9), 최익한(崔益翰)의 ≪조선사회정책사≫(박문서관, 1974), 최영희(崔永禧)의 ≪임진왜란중의 사회동태≫ (한국연구원, 1975), 김홍식(金鴻植)의 ≪조선시대 봉건사회의 기본구조≫(박영사, 1981), 손보기의 ≪Social history of the early Yi Dynasty 1392∼1592≫ (California Berkeley Univ., 1963) 등이 나왔다.

조선 후기 사회사 관계는 주로 신분제의 변동과 사회적 변동에 대한 연구가 많다. 신분제 변동에 대한 연구 방법으로 대구ㆍ울산ㆍ산음ㆍ단성 등의 호적대장을 분석한 것들이 많이 나왔고, 향리와 노비 문제를 다룬 것도 많다.

사회적 변동에 대한 연구로는 서원, 향약과 향청, 그리고 향권의 추이 등이 다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조선 후기 사회사 관련 연구는 활발해졌으나 저서 출간은 아직 적은 편이다. 즉, 당쟁을 비양반층의 움직임과 결부시키면서 사회신분제의 변화를 다룬 정석종의 ≪조선후기 사회변동연구≫, 히라키(平木實)의 ≪조선후기 노비제연구≫(지식산업사, 1982) 정도가 있다.

[문화사 연구 동향]

문화면으로는 사상ㆍ종교ㆍ교육ㆍ과학ㆍ사학사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조선시대 사상사의 중심이 된 것은 유학ㆍ성리학이었으므로, 이 방면에 논문이 200여 편, 저서도 20여 권이 나와 있다. 유학관계 저서로는 배종호(裵宗鎬)의 ≪한국유학사≫(연세대학교출판부, 1974)를 비롯, 김경탁(金敬琢)ㆍ윤사순(尹絲淳)ㆍ김길환 (金吉煥) 등의 저서가 있고, 유학자에 대한 저서로 전두하(全斗河)ㆍ윤사순ㆍ정순목(丁淳睦) 등의 퇴계(退溪) 연구, 이준호(李俊浩)ㆍ손인수(孫仁銖) 등의 율곡(栗谷) 연구, 서수생(徐首生)의 길재(吉再) 연구가 있다. 양명학(陽明學)에는 윤남한(尹南漢)의 ≪조선시대의 양명학연구≫(집문당, 1982)를 비롯, 김길환의 저서가 출간되었다.

사회ㆍ정치사상 관계로는 한영우의 ≪정도전사상의 연구≫(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73)ㆍ≪조선전기 사회사상연구≫(지식산업사, 1983), 김용덕의 ≪조선후기 사상사연구≫(을유문화사, 1977), 유홍렬의 ≪한국 사회사상사논고≫(일조각, 1980), 이원순(李元淳)의 ≪한국천주교회사연구≫(한국교회사연구소, 1986)ㆍ≪조선서학사연구≫(일지사, 1986), 박충석(朴忠錫)의 ≪정치사상사≫, 김병하(金柄夏)의 ≪경제사상사≫ 등이 나왔다.

조선 후기 사상사로는 1950년대부터 실학 연구가 한국 근대화의 정신적인 배경으로 추구되었다. 그리하여 실학사상은 마침내 근대지향 의식과 민족 의식으로 파악되기에 이르렀다. 실학 연구에 대한 저서로는 앞에서 예거한 홍이섭의 ≪정약용의 정치경제사상연구≫를 비롯, 한우근(韓薄劤)의 ≪이조후기의 사회와 사상≫(을유문화사, 1961)ㆍ≪성호이익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 1980), 천관우의 ≪한국실학사상사≫ (한국문화사대계 Ⅵ,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0), 김용덕의 ≪정유박제가연구≫(중앙대학교출판부, 1970) 등이 출간되었다.

교육사 분야는 교육학 계통에서 주영하(朱永夏)ㆍ한기언(韓基彦)ㆍ정순목ㆍ안상원(安商元) 등의 저서가 출간되고 있다. 과학사 분야는 도량형 관계에 박흥수(朴興秀)의 ≪도량형과 국악논총≫(대방문화사, 1980), 화기 관계에 허선도(許善道)의 ≪한국화기발달사≫(일조각, 1969)를 비롯, 이강칠(李康七)ㆍ채연석(蔡連錫)의 저서가 있다.

이 밖에, 선박 분야로는 김재근(金在瑾)의 ≪조선왕조 군선연구≫(일조각, 1977), 활자ㆍ인쇄 관계의 것으로 윤병태(尹炳泰)의 ≪조선조 고활자고≫(연세대학교, 1976), 정형우(鄭亨愚)의 ≪조선시대 서지사 연구≫(한국연구원, 1983) 등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사학사 관계로 한영우의 ≪조선전기 사학사 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 1981)가 나왔다. 대외관계 분야는 대명 교섭과 무역, 대일 교섭과 무역, 대여진 교섭과 무역, 동남아시아 관계 등이 다루어졌다.

저서로는 이현종(李鉉淙)의 ≪조선전기 대일교섭사 연구≫(한국연구원, 1964), 김병하의 ≪조선전기 대일무역연구≫(한국연구원, 1969), 서병국(徐炳國)의 ≪조선시대 여진교섭사연구≫(교문사, 1970), 박수이(朴壽伊)의 ≪이조무역정책논고≫(민중서관, 1974) 등이 출간되었다. 이후 1980년대 후반기인 1987년부터 1996년까지 10여 년 동안의 조선시대사 연구는 양적으로 보아 저서 100여 권, 논문 2,000여 편이나 발표되었다. 이 10년 동안의 연구 분량은 1986년 이전까지의 연구 분량 보다도 더 많아 바야흐로 한국사 연구가 본 궤도에 오른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조선 시대사 연구 동향]

조선 시대사 연구는 1960년대 이래 일제 관인학자들이 말하는 정체성 이론을 극복하기 위해 내재적 발전론이 제시되었다. 이에 자본주의 맹아에 대한 연구로 농업ㆍ상업ㆍ수공업 등의 분야와 내재적 발전론의 사상적 근거로 실학사상 연구에 치중하였다. 따라서 실학사상은 근대지향 의식과 민족 의식으로 집약되는 사상으로 추구되었다.

이와 같은 연구 추세에 따라 자연히 성리학은 부정적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래 성리학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 성리학의 터전에서 활동했던 사림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정치사에서 대간제도ㆍ사림정치ㆍ붕당정치, 사회사에서 향촌 사회, 사상사에서 성리학의 성격 및 의례ㆍ예론 연구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정치사 연구 동향]

정치사 관계 분야에서는 정치 제도에서 비변사ㆍ승정원ㆍ대간제ㆍ과거제와 문음, 관료제ㆍ지방제도ㆍ군사제도에 있어서 면리제가 초기에 정비되고 후기에 발달하게 된 점이 규명되었다. 정치 제도에 관한 저서로는 지두환(池斗煥)의 ≪조선전기 의례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 1994), 정두희(鄭杜熙)의 ≪조선시대 대간연구≫(일조각, 1994), 이재호(李載浩)의 ≪조선정치제도사연구≫(일조각, 1995), 조좌호(曺佐鎬)의 ≪한국과거제도연구≫(범우사, 1996), 이성무(李成茂)의 ≪한국의 과거제도≫(집문당, 1994), 박홍갑(朴洪甲)의 ≪조선시대 문음제도≫(탐구당, 1994), 이수건(李樹健)의 ≪조선시대 지방행정사≫(민음사, 1989), 이존희(李存熙)의 ≪조선시대 지방행정사연구≫(일지사, 1990), 원영환(元永煥)의 ≪조선시대 한성부연구≫(강원대학교출판부, 1990), 차문섭(車文燮)의 ≪조선시대 군사관계연구≫(단국대학교출판부, 1996), 방상현(方相鉉)의 ≪조선초기 수군제도≫(민족문화사, 1991), 최효식(崔孝軾)의 ≪조선후기 군제사≫(신서원, 1995) 등이 있다.

사림정치 내지 붕당정치에 대해서는 붕당정치의 배경, 향촌 지주층의 대두, 그리고 언관권(言官權)과 낭관권(郎官權)의 확립이 붕당정치가 전개되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가 되었음이 밝혀져 있다. 붕당정치의 주요 안건의 하나인 예송(禮訟)에 대해서도 사회 발전상 이념 논쟁으로 해석, 호포법(戶布法),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 궁방전, 북벌 문제, 문묘이정(文廟釐正)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저서로는 최이돈(崔異敦)의 ≪조선중기 사림정치구조연구≫(일조각, 1994), 이태진(李泰鎭)의 ≪조선유교사회사론≫(지식산업사, 1989), 이수건의 ≪영남학파의 형성과 전개≫(일조각, 1995), 이은순(李銀順)의 ≪조선후기 당쟁사연구≫(일조각, 1988), 허권수(許捲洙)의 ≪서인과 남인의 학문적 대립≫(범인문화사, 1993)이 있고, 세도정치에 대한 저서로는 한국역사연구회의 ≪조선정치사 1800∼1863, 상ㆍ하≫(1990)가 있다.

[경제사 연구 동향]

경제사 관계 분야에서는 수취제도에서 전세 문제로 도결(都結), 작부제(作夫制)ㆍ양호(養戶)ㆍ공동납ㆍ금납제 등이, 군역 문제로는 균역법ㆍ호포론(戶布論)이, 공물제도로는 대동법 8결, 작부제, 환곡 문제로는 환모(還耗)의 부세화, 지방 재정의 민고(民庫) 등이 다루어졌다.

19세기 부세의 도결화 문제를 다루어 봉건적 수취의 강화는 결과적으로 민란을 야기하게 하고, 봉건적 수취 체제를 해체시켰음을 추구하였다. 즉, 농민들은 피역, 항조(抗租)ㆍ항세(抗稅)ㆍ민란 등을 통해 국가의 수취 체제에 항거함이 추구되었으며, 18세기 전후부터 새로운 수취 구조이던 환곡제가 다루어졌다.

이 밖에 수취 체제의 모순에 대해 식리 활동, 민간 포흠(逋欠)ㆍ도량형ㆍ호포제론 등이 다루어졌다. 저서로는 김옥근(金玉根)의 ≪조선 왕조 재정사 Ⅱ≫(일조각, 1987)와 ≪조선 왕조 재정사 Ⅲ≫(일조각, 1988)가 있다.

근래 국가적 토지소유론을 주장해 토지소유 구조는 국가 - 지주 - 소작의 구조로서 18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지주제가 지배적인 생산 양식으로 발전되었다는 주장이 나왔다.(이영훈(李榮薰)의 ≪조선후기 사회경제사≫, 한길사, 1988). 이 중층적 토지소유론에 대해서는 궁방전의 특수 형태를 모든 토지에 적용시키는 것은 불가하다는 반론이 있다.

농업 기술에서 종래 조선 후기에는 논농사에서의 직파법이 이앙법으로, 밭농사에서의 농종법(壟種法)이 견종법(腔種法)으로 발전되었다고 이해되었다.(金容燮). 그러나 밭농사에서의 견종법은 15세기부터 일반화되었으며, 농촌 사회의 변화는 16세기 후반까지 소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민성기(閔成基)의 ≪조선 농업사연구≫, 일조각, 1988). 이 주장에 대해 김용섭은 조선 후기 견종법 보급을 재차 주장하였다.(≪증보 조선후기 농업사연구 Ⅱ≫(일조각, 1988).
상업 분야는 조선 전기 행상(行商)과 지방 교역을 통한 상업의 발달, 16세기 부상대고(富商大賈)의 성장 등이 연구되었다. 조선 후기는 종래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유통 경제의 변화에 주목, 상업자본의 축적과 도고(都賈)의 성장을 이루게 된 것으로 추구되어 왔으나, 근래 후기 상업계는 사상(私商)층에 의해 재편 주도되어 갔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오성(吳星)의 ≪조선후기 상인연구≫, 일조각, 1989).

공인(貢人) 연구로 김동철(金東哲)의 ≪조선후기 공인연구≫(한국연구원, 1993)가 있고, 유통 관계에서는 장시의 연구가 있으며, 저서로 최완기(崔完基)의 ≪조선후기 선운업사연구≫(일조각, 1989)가 있다. 이 밖에 이태진의 ≪조선유교사회론≫이 있으며, 광업 경영에 유승주(柳承宙)의 ≪조선시대 광업사연구≫(고려대출판부, 1994)가 있다. 그리고 상업 발달의 원인으로 16세기 중엽 장시 경제의 발달과 인구 증가를 주목하는 견해가 나오고, 16세기 국내 경제의 발달로 대외 무역이 활성화되고 17ㆍ18세기 전반까지 중개 무역이 발달하며, 19세기 중반에 인삼으로 상업자본주의적 경영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편, 자본주의 맹아론을 부정해 농촌 공업의 미약성, 소농의 양극 분해가 아닌 소농 사회의 성숙, 시장 경제에 있어서 자율적 성장의 미진 등을 지적하는 견해가 나왔다.(이영훈). 이 주장은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도전으로서 앞으로의 논쟁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사회사 연구 동향]

사회사 관계 연구에서는 신분제와 향촌 사회 등이 많이 다루어졌다. 신분제는 조선 초기 양인의 제일성(齊一性)에 의한 양천제(良賤制)를 주장한 유승원(劉承源)의 ≪조선초기 신분제연구≫(을유문화사, 1987)가 있고, 중인층은 18세기에 양천제가 무너지고 반상제(班常制)가 확립된 시기에 성립되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조선 초기 이래 양반은 특수 계층으로 존재했다는 양반론이 대립되고 있다.(송준호(宋俊浩)의 ≪조선사회사연구≫, 일조각, 1987). 조선 후기에 중인 신분층이 새로운 사회 세력으로 등장하고, 그 중에서 향리 주도가계가 향리직을 독점 운영하게 되었다는 이훈상(李勛相)의 ≪조선후기 향리연구≫(일조각, 1990)도 있다.

조선 전기 노비 문제에 박한갑(朴漢甲)의 ≪조선전기 노비신분연구≫(일조각, 1995)가 있고, 양천교혼(良賤交婚)으로 임란 이전에 신분 변동이 있었다는 견해가 제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전형택(全炯澤)의 ≪조선후기 노비신분연구≫(일조각, 1989)에서 노비제의 폐지는 신분제를 바탕으로 하는 중세 봉건사회의 해체를 의미한 것이라 해명하고 있다.

또한 종래 외거노비=농노설을 부정하고 외거노비의 공납(貢納)을 주장하는 노비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 밖에 조선 후기의 신분 변동에 관한 저서로는 이준구(李俊九)의 ≪조선후기 신분직역연구≫(일조각, 1995)가 있다. 향촌 사회의 구조와 변동에 대한 연구는 자못 활발하였다. 향소(鄕所)ㆍ향약(鄕約)ㆍ향안(鄕案)ㆍ향회(鄕會)ㆍ동계(洞契)ㆍ향교ㆍ서원ㆍ사마소(司馬所)ㆍ양사재(養士齋)ㆍ향도(香徒)ㆍ두례 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대체로 16ㆍ17세기에 재지사족(在地士族)은 상하합계(上下合契)의 동계로서 농민에 대한 신분제적 지배를 이루어 교화권(敎化權)과 부세 부과권을 누렸다. 그러나 18세기에 분동(分洞)ㆍ분계(分契)하고 면리제(面里制)의 강화와 소농민 경제의 성장으로 부농층이 향임(鄕任)을 맡아 향권(鄕權)을 장악, 사족 중심의 향촌지배 질서가 동요되고, 19세기에는 국가에서 관주도의 공동납제(共同納制)로서 향촌통제책을 강화했으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방향으로 연구가 추구되고 있다.

그리고 18세기에 소농민의 성장으로 종래의 향도는 자율적 노동조직인 두레로 구성되어 촌계와 함께 주목하게 되었으며, 19세기에 요호(饒戶)의 향회 참여 역할이 주장되고 있다. 저서로는 향촌사회사연구회의 ≪조선후기 향약연구≫(민음사, 1990), 이성무의 ≪조선양반사회의 연구≫(일조각, 1995), 이우성(李佑成)의 ≪한국 중세사회≫(일조각, 1991), 이태진의 ≪한국 사회발전사론≫(일조각, 1992), 윤희면(尹熙勉)의 ≪조선중기 향교연구≫(일조각, 1990), 이해준(李海濬)의 ≪조선시기 촌락사회사≫(민족문화사, 1996) 등이 있다. 그리고 상속 관계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 여성이 재산 상속 대상에서 배제되고 17세기 중엽 이후 균분상속에서 적자위주불균등상속(嫡子爲主不均等相續)으로 이행되었다고 추구되었다.

[문화사 연구 동향]

문화면으로는 사상ㆍ종교ㆍ과학ㆍ사학사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사상에는 유학사상과 실학사상의 연구가 대종을 이루며, 그 중에서도 인물을 택한 연구가 대단히 많다. 유학사상사의 저서로 이병도(李丙燾)의 ≪한국유학사≫(아세아문화사, 1987), 최영성(崔英成)의 ≪한국유학사상사≫(아세아문화사, 1994ㆍ95), 유명종(劉明鍾)의 ≪한국유학연구≫(이문출판사, 1988), 최완기(崔完基)의 ≪한국성리학의 맥≫(느티나무, 1989), 최근덕(崔根德)의 ≪한국유학사상사연구≫(철학과 현실사, 1992) 등이 있다.

이 밖에 사상사 분야에 관련해 예학에 대한 고영진(高英津)의 ≪조선중기 예학사상연구≫(한길사, 1995)가 있고, 정치사상으로 권인호의 ≪조선중기 사림파의 사회정치사상≫(한길사, 1995), 이이화(李離和)의 ≪조선후기의 정치사상과 사회변동≫, 정석종(鄭奭鍾)의 ≪조선후기의 정치와 사상≫(한길사, 1994)이 있다.

실학ㆍ동학사상에 대한 한우근(韓薄劤)의 ≪조선시대 사상사연구론고≫(일조각, 1996)가 있다. 실학사상 연구에는 실학자의 농업론ㆍ상업론ㆍ광업론 등이 다루어지고, 특히 북학파 사상 연구가 주목된다. 19세기 중인층의 활동 및 그들의 사상적 기반으로서의 북학사상이 개화사상으로 발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정옥자(鄭玉子)의 ≪조선후기 문화운동사≫, 일조각, 1988).

또 북학파 연구로 유봉학의 ≪18ㆍ19세기 연암일파의 북학사상연구≫(일지사, 1995), 그리고 인물연구 저서로는 정약용을 다룬 것이 4권, 이황ㆍ이이를 다룬 것이 각각 3권씩으로 가장 많고, 신숙주ㆍ김종직ㆍ임성주 등을 다룬 저서도 있다.

양명학으로 김교인의 ≪양명학자 정제두의 철학사상≫(한길사, 1995)이 있고, 정양완(鄭良婉)과 심경호(沈慶昊)의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 2ㆍ3≫(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이 있다.

[과학사 및 사학사 연구 동향]

과학사 연구에는 화기(火器)에 허선도(許善道)의 ≪조선시대 화약병기사연구≫(일조각, 1994)가 있고, 활자에 윤병태(尹炳泰)의 ≪조선후기의 활자와 책≫(범우사, 1992), 천혜봉(千惠鳳)의 ≪한국서지학≫(민음사, 1991)이 있다.

사학사에 한영우(韓永愚)의 ≪조선후기 사학사연구≫(일지사, 1989)는 17∼19세기의 사서 10여 권을 분석, 중세사학에서 근대사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사서로 평가하였다. 그리고 강세구(姜世求)의 ≪동사강목연구≫(민족문화사, 1994)가 있으며, 지리 분야에 한원학(韓元學)의 ≪택리지연구≫(신양사, 1993)가 있다.

한편, 미술에 김영원(金英媛)의 ≪조선전기 도자(陶磁)연구≫(학연문화사, 1995)가 있고, 복식에 이상은(李相恩)의 ≪조선 왕조 복식사론≫(동방도서, 1992)이 있다.

이 밖에 근대사연구회편의 ≪한국중세사회 해체기의 제문제 상ㆍ하≫(한울, 1987)는 조선후기사를 정치ㆍ사상ㆍ경제ㆍ사회편으로 나누어 연구의 현황과 과제를 잘 정리하고 있다.

[대외 관계 연구 동향]

대외 관계 분야는 종래의 중국에 대한 조공 문제 중심에서 벗어나 국제적 관계로 재조명하고, 교린정책(交隣政策)도 국제 관계로 재조명하게 되었다. 즉, 한ㆍ중교역사를 국제 질서와 국제 교역으로 설명하게 되고, 대일 관계도 국제 관계로 정리하며, 그 밖에 여진ㆍ유구 등과의 관계도 종래 사대교린 관계로 연구해오던 경향을 탈피, 대외교섭사로 추구되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일본을 방문한 경험을 토대로 일본 사정의 기록을 남긴 지식인의 일본 이해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저서로는 이원식(李元植)의 ≪조선통신사≫(민음사, 1991), 손승철(孫承喆)의 ≪조선시대 한일관계사연구≫(지성의 샘, 1994), 하우봉(河宇鳳)의 ≪조선후기 실학자의 일본관≫(민음사, 1989) 등이 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조선시대에 관한 10년 동안의 연구는 새로운 경향이 보이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16ㆍ17세기 연구를 통해 그 시기의 동질성이 규명되면서 조선시대의 시기 구분을 종래의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한 전ㆍ후기 구분에서, 초기 15세기, 중기 16ㆍ17세기, 후기 18ㆍ19세기로 구분하고자 하는 시기구분론이 대두되었다는 점이다.

<이재룡>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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