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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22 (화) 13:34
분 류 사전1
ㆍ조회: 817      
[조선] 홍문관 (두산)
홍문관 弘文館

조선시대에 궁중의 경서(經書) ·사적(史籍)의 관리, 문한(文翰)의 처리 및 왕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 옥당(玉堂) ·옥서(玉署) ·영각(瀛閣)이라고도 하며,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과 더불어 삼사(三司)라고 한다.

홍문관의 일은 본래 정종 때 설치한 집현전(集賢殿)에서 맡아 하였는데, 세조 초에 집현전 학자 가운데 세조에 반대하는 사육신이 나와, 세조는 그 기구까지도 못마땅하게 여겨 폐지하였다가 1463년(세조 9)에 홍문관이라는 이름으로 설치한 것이다.

그 구성원은 영사(領事:정l품) ·대제학(大提學:정2품) ·제학(提學:종2품) ·부제학(副提學:정3품) ·직제학(直提學:정3품) ·전한(典翰:종3품) ·응교(應敎:정4품) ·부응교(副應敎:종4품) 각 l명, 교리(校理:정5품) ·부교리(副校理:종5품) ·수찬(修撰:정6품) ·부수찬(종6품) 각 2명, 박사(博士:정 7품) ·저작(著作:정8품) 각1명, 정자(正字:정9품) 등인데, 3정승을 비롯해서 경연청(經筵廳)과 춘추관(春秋館) 등의 관원들이 이를 겸직하였다.

왕의 자문에 응하는 임무 때문에 자주 왕에게 조정(朝政)의 옳고 그름을 논하거나 간언하는 입장에 있었으므로 사헌부와 사간원의 합계(合啓)에도 왕이 그 간언(諫言)을 듣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홍문관을 합하여 3사합계로 간언하였다.

연산군 때 잠시 진독청(進讀廳)으로 고쳤다가 1506년(중종 1)에 복구하였고, 1894년(고종 31)에 경연청과 합하여 이듬해에 경연원(經筵院)이라 개칭하였다가 1896년에 다시 홍문관으로 고쳐서 칙임관(勅任官)의 대학사(大學士) ·학사 ·경연관(經筵官), 주임관(奏任官)의 부학사(副學士), 경연관 ·판임관(判任官)의 시독(侍讀)을 두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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