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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22 (화) 13:46
분 류 사전1
ㆍ조회: 1054      
[고려/조선] 간쟁 (두산)
간쟁 諫諍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간관(諫官)들이 국왕의 과오나 비행을 비판하던 일.

고려 시대에는 중서문하성(문하부)의 하부를 구성하는 낭사(郎舍)들이 군주의 잘못을 지적하여 바로잡는 일을 간쟁이라 하였고, 간쟁을 담당하는 사람을 대관(臺官)과 간관(諫官), 즉 대간(臺諫)이라 하였다.

국왕 비판의 명분은 잘못을 반성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귀족의 의견을 대변하여 왕권을 규제하는 구실을 하였다. 이러한 대간은 매우 신중하게 선발되었으며, 재직시에 함부로 체포되거나 곧장 지방관으로 전보되지 않았고 왕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대사간ㆍ사간ㆍ헌납ㆍ정언 등으로 구성된 독립 관서로 사간원이 설치되어 간쟁을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대사헌ㆍ집의ㆍ장령ㆍ지평 등으로 구성된 사헌부가 정치를 논평하고 관원에 대한 규찰을 맡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두 기관은 업무에 명확한 구분을 두지 않고 함께 활동하였으며, 그들 관원을 합하여 대간 또는 언관(言官)이라고 부르고 그 활동을 언론(言論)이라 하였다. 여기에 세종 때의 집현전과 그 후의 홍문관이 함께 언론 활동에 참여하였다. 사간원ㆍ사헌부ㆍ홍문관을 합하여 삼사(三司)라고 부르는 것은 직무의 그러한 공통성으로 인한 것이었다.

조선 전기 이래로 비록 지배층 내에 한정된 것이었지만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의 의견을 올바르게 반영한다는 공론(公論)에 대한 이해가 점점 커지면서 언관의 기능과 권한도 확대되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국왕이나 다른 관원을 비판할 수 있는 권리를 어떻게 보장받는가 하는 점보다도, 서로 다른 의견들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하게 되었다.

한편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언론은 언관의 몫이었지만, 일반관인 및 재야의 유생들도 상소 등의 형식으로 임금의 태도나 정책을 비판할 수 있었고, 국가에 중대한 일에 대해서는 언관 여부에 관계없이 각자 의견을 개진하였다. 특히 국왕이 널리 의견을 구하는 명령[구언(求言)]을 내렸을 때 올리는 응지상소(應旨上疏)는 내용에 문제가 있더라도 강력히 보호받았다.

그러나 그 모든 권한이 국왕과 극단적인 대립이 빚어졌을 때 항상 절대적이고 명시적으로 보장받는 것은 아니었다는 데 군주 체제의 한계가 있었다. 조선 중기에 가장 활발하고 권한이 강력하게 보장되던 간쟁은 국왕권을 강화하려는 탕평 정국 하에서 점점 제약을 받게 되었고, 한두 가문이 전권을 휘두르는 세도 정치 하에서는 국왕의 행동과 정부 정책에 대한 독자적인 영향력을 거의 잃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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