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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11 (금) 23:28
분 류 사전1
ㆍ조회: 2275      
[조선] 진경산수화 (한메)
진경산수화 眞景山水畵

진경산수화 2폭. 왼쪽 정선의 금강전도.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사진조선 후기에 유행한 한국의 산천을 소재로 그린 산수화.

현실경치를 사실적으로 표현, 근대지향성을 띠면서 한국적 화풍과 함께 조선 후기 회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조선 후기에 진경산수화가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의 새로운 사상동향과 사회적 변동을 들 수 있다.

진경산수화는 종래의 실경산수화 전통에 18세기에 새릅게 유행하기 시작한 남종화법(南宗畵法)을 가미, 정선(鄭敾)에 의해 개척되었고 18세기 중기·후기에 정선화풍을 풍미시켰다. 정선화풍은 단순한 실경의 재현이 아니라 회화적 재구성을 통하여 경관에서 받은 감흥과 정취를 감동적으로 구현하였다.

또한 새로운 화면구성법과 스케치풍의 소나무구성법, 만물을 음양의 조화처럼 보이도록 하는 금강산화법 등이 특징으로서,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 남화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정선화풍은 점점 형식화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이에 강세황(姜世晃)과 김홍도(金弘道)는 진경산수화의 한계를 지적, 구도와 필법을 더욱 치밀하고 박진감 넘치는 화풍으로 발전시켰다. 정선파와 김홍도파 외에도 심사정(沈師正) 등의 문인화가들도 하나의 흐름을 형성, 진경산수화의 다양한 전개에 기여하였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면 김정희(金正喜)를 중심으로 한 사의적(寫意的)인 문인화풍이 득세함에 따라 쇠퇴하였으나, 일제강점기로부터 1970년대까지도 특정경관이 아닌 생활 주변의 일상적인 풍경을 그리는 사경산수화(寫景山水畵)로 전통이 계승되어 양식보다 정신적 배경으로 계속 영향을 미쳤다.

대표작으로 정선의 《경외명승첩(京外名勝帖)》 《금강전도(金剛全圖)》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심사정의 《경구팔경도(京口八景圖)》 《강암파도(江巖波濤)》, 강세황의 《송도기행명승도첩(松都紀行名勝圖帖)》, 김홍도의 《사군첩(四君帖)》 등이 있다. →조선미술

<송영방>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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