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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14 (월) 00:02
분 류 사전1
ㆍ조회: 2564      
[조선] 김종서와 남이의 시조 (송경원)
김종서의 시조

장백산에 기를 꽂고 - 김종서

장백산(長白山)에 기를 꽂고 두만강에 말을 씻겨
셕은 져 션비야, 우리 아니 사나희냐.
엇더타, 능연각(凌練閣) 상(上) 뉘 얼골을 그릴고.

주제 : 무인(武人)으로서의 호탕한 기개(氣慨)

시어 풀이

* 장백산 : 백두산의 다른 이름
* 능연각 : 당 태종이 24 공신들의 얼굴을 그려 걸어 두게 했던 누각

배경 및 해설

작자가 함길도 관찰사로 있을 때, 두만강 유역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6진을 설치, 두만강 경계로 국경선을 확정지었는데, 그 때, 그 호탕한 기개를 읊은 작품이다.

초장의 '장백산'과 '두만강'은 좋은 대구를 이루어 우리의 국토를 나타내고 있다. 중장에서는 선비들을 낮추어 표현해 무인들이야말로 나라를 수호하는 사내 대장부가 아니냐는 호기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종장에서는 우리 무인들이 큰 업적을 세웠으니 공신(功臣)으로서 이름을 남겨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당당함을 보이고 있다. 작자의 대망(大望)과 호탕한 면모가 넓게 펼쳐진 산과 강을 배경으로 잘 나타나고 있으며, 실제 공을 세운 사람을 멀리하고 썩은 선비들이 큰 소리치는 현실을 고발한 작품이다.

● 김종서 (1390~1453) 호 절재. 고려 공양왕~단종. 세종 때 함경도의 육진을 개척하였고 문종 때 우의정, 단종 때 좌의정이 되었다. 수양대군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출전 : 송경원의 국어공부방

삭풍은 나모 끝에 불고 - 김종서

삭풍(朔風)은 나모 끝에 불고 명월(明月)은 눈 속에 찬듸
만리변성(萬里邊城)에 일장검 집고 셔셔
긴 파람 큰 한 소리에 거칠 거시 업세라

주제 : 나라를 지키는 장군의 용맹스런 기개

시어 풀이

* 삭풍 : 겨울철 북에서 부는 바람
* 변성 : 변방의 성. 여기서는 함경도 북방의 육진
* 일장검 : 긴 칼
* 파람 : 휘파람

배경

조선 초기까지 여진족은 함경도 지방을 비롯한 우리의 변방을 자주 침입하였다. 그래서 세종은 김종서를 관찰사로 임명하여 여진족을 물리치고자 하였다. 마침내 여진을 격퇴시킨 김종서는 6진을 개척하고, 그곳을 지키며 호방한 기개를 읊은 호기가(豪氣歌)를 지었다.

북풍이 나뭇가지를 울리고, 흰 눈이 온 천지를  뒤덮은 겨울 달 밝은 밤에, 황량한 변경을 지키며 오랑캐를 노려보고 있는 용맹한 장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겨울 밤이라는 극한 상황과 작가의 호방한 기개를 대비시켜 나라를 사랑하는 작가의 충정을 보여 주고 있다.

초장에서는 북방의 국경 주변이 매우 삼엄함을 중장에서는 국경 넘어 여진 쪽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 있는 장군의 높은 기상을 종장에서는 긴 휘파람을 불며 큰 뜻을 생각하고 숨을 들이 마시는 용맹스런 장군의 기상이 집약되어, 의연함과 강인함을 읽을 수 있다.

'삭풍'과 '명월'의 대구적 표현으로 겨울 밤 변방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일장검'으로 충천하는 장부의 기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출전 : 송경원의 국어공부방

남이의 시조

장검(長劍)을 빠혀 들고 - 남이

장검을 빠혀들고 백두산(白頭山)에 올라보니
대명천지에 성진(腥塵)이 잠겨셰라
언제나 남북풍진(南北風塵)을 헤쳐 볼가 하노라.

주제 : 국난 평정을 기원하는 장군의 기백과 포부
출전 : <진본 청구영언>

시어 풀이

* 장검 : 긴 칼
* 빠혀 : 빼어
* 남북풍진 : 남만과 북적의 병란

배경 및 해설

고려 후기 이래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에 자주 여진족의 노략질이 있었고, 조선 세종 때 4군과 6진을 설치해 평정을 시켰으나 계속 끊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침략이 일어나고 있었다.국경을 이루는 백두산의 제일봉(第一峰)에 올라가 대장부답게 장검을 빼어 들고서, 적의 침입으로 어지러운 나라를 태평케 하려는 호기(豪氣)가 넘쳐나고 있다.국난 평정의 웅혼(雄渾)한 기백과 포부를 노래한 이 작품은, 작자의 당당하고 힘찬 조국애의 기상이 잘 나타나 있다.

● 남이 (1441~1468) 세조 때의 장군으로 이시애의 난에 크게 공을 세워 용명을 날리고 26세에 병조판서를 지냈으나 예종 즉위년에 옥사로 죽었다.

출전 : 송경원의 국어공부방

<남이장군의 죽음에 대한 보충 설명>

남이

본관 의령. 시호 충무. 태종의 외손이다. 1457년(세조3) 약관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1467년(세조13) 이시애가 북관에서 난을 일으키자 우대장으로 이를 토벌, 적개공신 1등에 오르고, 의산군에 봉해졌으며 이어서 서북변의 건주위를 정벌하고 28세의 나이로 병조판서에 올랐다.

1468년 예종이 즉위한 후 대궐에서 숙직하던 중 혜성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 것이 나타날 징조라고 말하자, 그에게 항상 질투를 느껴오던 유자광이 엿듣고 역모를 획책한다고 모함하였다. 또한 남이가 여진 토벌 때 읊은 시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 속의 ‘미평국(未平國)’이란 글귀를 ‘미득국(未得國)’이라 하였다고 조작한 사실은 유명하다. 즉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을 ‘나라를 얻지 못하면’으로 왜곡하여, 반역의 뜻이 있다고 모함받아 영의정 강순 등과 함께 주살되었다. 1818년(순조 18) 관작이 복구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이 시조는 남이 장군이 세조 13년(1467)에 이시애의 난과 건주위를 평정한 후 돌아올 때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같은 때, 같은 호기를 노래하며 그의 생리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 한시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백두산석마도진 (白頭山石磨刀盡 : 백두산의 돌은 칼 가는 데에 다 닳아버렸고)
두만강파음마무 (豆滿江水飮馬無 : 두만강의 물은 말이 마셔 말라버렸구나)
남아이십미평국 (男兒二十未平國 :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수칭대장부 (後世誰稱大丈夫 : 후세에 어느 누가 대장부라 일컬으리)

출전 : 김광복의 똥침국어교실

<서울시 용산구 용문동에 남아있는 남이장군의 혼>

남이장군대제

조선시대 세조 때 도적을 토벌하고 반란을 평정했던 남이 장군(1441-1468)은 28세의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지금의 국방부 장관)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으나 역모죄로 모함을 받아 처형당했다.

남이 장군 대제는 젊은 나이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남이 장군의 영혼을 달래고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사당을 지어 제를 지내면서 시작되었다. 1972년 당굿을 끝으로 간단한 제만 지내오다가 1983년 학계의 복원작업에 의해 남이 장군 당제에 장군의 출진을 재현하는 등 문화행사도 병행하고 있다.

남이장군대제 소개 : 서울특별시 문화관광안내, 두산세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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