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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9-25 (화) 21:47
분 류 사전1
ㆍ조회: 1706      
[조선] 과전과 직전 (인터넷 스쿨)
과전(科田)과 직전(職田)

중세 우리 나라의 토지 소유가 갖는 기본 특징은 토지의 사적 소유권 위에 수조권(收租權)이라는 또 하나의 토지 지배권이 중첩되어 있던 점이었다. 즉 사적 소유권에 입각한 지주전호제(地主佃戶制) 위에 수조권에 의거한 전주전객제(田主佃客制)가 운영되었던 것이다. 조선은 고려와 마찬가지로 이 토지 지배권을 신분과 직결시켜 분급하고 이를 과전 제도로서 운영하고 있었다.

과전 제도는 고려 말기에 수조권 확보를 둘러싼 신·구관료 간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수조권자와 납조자(納租者) 즉 양반 관료층과 일반 농민층 사이의 수조(收租)·납조(納租)를 둘러싼 대립·항쟁 등 사전(私田) 문제 [자료1]를 처리하고, 그런 선상에서 국가 재정을 확충하려는 목적에서 제정된 토지분급제(土地分給制)이다.

과전법 상의 토지는 모두가 수조지(收租地)의 재분배에서 설정된 것으로, 여기에는 소유지의 재분배나 재조정은 시행되지도 않았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능침전(陵寢田), 창고전(倉庫田), 궁사전(宮司田), 군자시전(軍資寺田), 사원전(寺院田), 외관(外官)의 직전(職田)· 늠전(田), 그리고 향리(鄕吏)· 역리(驛吏) 및 군장(軍匠)· 잡색전(雜色田) 등은 왕실과 일반 행정 사무에 공적·사적으로 필요한 재정 확보를 목적으로 설정된 토지이고, 과전은 양반 관료의 경제적 보장을 위해 18과(科)로 구분하여 현임·퇴임을 막론하고 지급되었으며, 경기(京畿) 지역에 국한하여 분급되었다. 이를 흔히 사전 경기(私田京畿)의 원칙이라고 부르는데 중앙 권력의 통제를 목표로 한 것이다. 반면에 군전(軍田)은 무직사(無職事)·무직역(無職役)의 한량관(閑良官)들을 대상으로 10결 혹은 5결씩 지급되었는데, 이는 외방에 설정되었다. [자료2]

이러한 토지의 점유자들은 소유·경작권자 즉 전객(佃客)에게서 전조(田租)로서 수확의 1/10 즉, 1결당 30두(斗)씩을 징수하고 이중 2두씩을 세(稅)의 명목으로 국가에 납부하게 되어 있다. 이는 지배 신분층인 수조권자로서의 전주(田主)가 피지배 신분층인 소유·경작권자로서의 전객(佃客)에 대한 수조(收租)상에 있어서 공정율(公定率)을 설정한 조치였다. 그러나 전조 외에 수납가(輸納價), 초가(草價) 등도 징수하여 실제 수확량은 수확의 1/6, 때로는 1/5에 육박하였다. 그리고 전주와 전객 사이의 갈등, 대립은 수조(收租) 문제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전주가 이유없이 전객의 소경전(所耕田)을 탈취하는 행위를 금지시키고 있으며, 동시에 경작 농민, 납조 농민을 토지에 묶어 두기 위하여 전객이 마음대로 자기 소유지를 처분하지 못하게 하였다.

사전(私田)은 공신전(功臣田)을 제외하고는 세전(世傳)이 될 수 없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세전되었다. 수신전(守信田)·휼양전(恤養田)이 사실상 그것이었고, 이는 결국 세전 과정을 법제적 단계를 거쳐 공인하는 처사였다. 따라서 사실상 분급, 회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이를 보완하는 법으로서 진고체수법(陳告遞受法)이라 하여 타인이 신고하면 그에게 분급하는 제도도 시행되었다.

과전 제도는 기본적으로 수조지 소지의 불균등을 내포하고 있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료층 내부에서 대립과 반목이 증대하고 심화되어 갔다. 그리하여 세조 12년(1466)에 과전의 세전성을 폐지함으로써, 즉 구체적으로는 수신전·휼양전을 몰수하여 현직자에 한해서만 재분배하였다. 이를 직전(職田)이라고 한다. [자료3], [자료4] 그러나 과전 제도가 가진 문제는 이 뿐이 아니었다.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수조권자의 자의적인 전조(田租) 수취와 이에 부수하는 각종 형태의 강압,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납조자 전객의 여러 가지 방식의 저항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었다. 이 문제는 결국 직전제 시행 후 몇 년이 지난 성종초(1470) 관수관급제(官收官給制)로 일단락 지워졌다. [자료5]

관수관급제는 수조권자의 직접적인 전조의 수취를 봉쇄하고 납조자가 전조를 관(官)에 납부하고, 정부는 이를 받아서 1결당 세(稅)에 해당하는 2두를 제한 나머지 액수를 관리들에게 분급하는 제도였다. 그러므로 직전제의 출현은 수조권자의 세전(世傳)적 권능과 직접 수조의 권한을 말살시키는 것이었고, 이는 납조자 소유권자의 경제적 성장을 반영하는 동시에 중앙 집권의 강화라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직전법 마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1556년 명종 중엽에 오면 이미 직전을 소지하고 있는 관리에 대해서도 완전히 지급이 중단되고,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폐기되어 버렸다. 수조권, 수조지의 소멸인 것이다.

[자료1]

신우 14년(1388) 7월 대사헌(大司憲) 조준(趙浚) 등이 상서하기를 '근년에 이르러 겸병이 더욱 심해져 간흉한 무리가 주군을 포괄하고 산천을 경계로 하여 그 모두를 조업전(祖業田)이라 칭하면서 서로 빼앗으니, 1무(畝)의 전주(田主)가 5, 6을 넘고 1년의 전조(田租)를 8, 9차례나 거두어 간다. 위로는 어분전(御分田)으로부터 종실(宗室)·공신전(功臣田)과 조정의 문무 양반전, 그리고 외역전이라든가 진(津)·역(驛)·원(院)·관전(館田)에까지 이르고, 무릇 다른 사람이 대대로 심어 놓은 뽕나무와 집까지 모두 빼앗는다'하였다. ([高麗史] 78, 食貨 1, 祿科田)

[자료2]

공양왕(恭讓王) 3년(1391) 5월,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1)가 글을 올려 과전을 지급하는 법을 정할 것을 요청하니 왕이 따랐다. … 능침(陵寢), 창고(倉庫), 궁사(宮司), 외관(外官)의 직전(職田)과 늠급전(給田), 그리고 향(鄕)·진(津)·역리(驛吏) 및 군(軍)·장인(匠人)의 전지(田地)를 정한다. 경기(京畿)는 사방의 근원이니 마땅히 과전을 설치하여 사대부를 우대한다. 무릇 경성에 거주하여 왕실을 시위하는 자는 시산(時散)2)을 막론하고 과(科)에 따라 과전을 받는다. 제1과는 재내대군(在內大君)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기까지 150결 … 제18과는 권무(權務)3)· 산직(散職)4)으로서 10결씩이다. 외방은 왕실의 울타리이니 마땅히 군전(軍田)을 설치하여 군사를 기르고, 동서양계(東西兩界)는 예전대로 군수(軍需)에 충당하며, 6도의 한량관리5)는 자품(資品)의 고하(高下)를 논하지 말고 각기 군전 10결 혹은 5결씩을 지급한다. … 무릇 수전자(受田者)가 죽은 후, 그의 아내가 자식이 있고 수신(守信)6)하는 자는 부(夫)의 과전 모두를 전수받고, 자식이 없이 수신하는 자의 경우는 반을 감하여 전해 받으며, 본래 수신한 사람이 아닌 경우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부모가 모두 사망하고 그 자손이 유약한 자는 마땅히 휼양(恤養)하여야 하니 그 아버지의 과전 전부를 전해 받고, 20세가 되는 해에 본인의 과(科)에 따라 받는다. 여자는 그의 남편이 정해진 과(科)에 따라 받고, 여전(餘田)은 다른 사람이 갈라 받는다. … 무릇 사원·신사(神祠)에 토지를 시납(施納)할 수 없으며 위반자는 죄로 다스린다. … 공사(公私)의 천구(賤口)·공상(工商)·매복(賣卜)·맹인·무(巫)·창기(倡妓)·승니(僧尼) 등의 사람은 본인 및 자손이 토지를 받지 못한다. 대저 공사전(公私田)의 조(租)는 수전(水田)은 1결에 조미(米)7) 20말, 한전(旱田)은 1결에 잡곡 30말로 하며, 이외에 횡렴(橫斂)하는 자는 장물(臟物)8)로써 다스린다. 능침원·창고·궁사·공해·공신전 외에 무릇 토지를 가진 자는 모두 세(稅)를 납부하여야 하는데, 수전은 1결에 백미(白米) 2말, 한전은 1결에 황두(黃斗) 2말씩이다. … 전주(田主)가 전객(佃客)의 소경전(所耕田)을 빼앗으면, 1부(負)에서 5부는 태(笞)9)로써 20대, 매 5부씩 늘어감에 따라 일등씩 가하여 죄가 장(杖)10) 80에 이르면 직첩11)은 회수하지 않으나, 1결 이상이면 그 토지를 타인이 받게 한다. 전객은 자기의 소경전을 멋대로 타인에게 팔거나 증여할 수 없다. ([高麗史] 78, 食貨 1, 祿科田)

[자료3]

과전을 폐하고 직전(職田)을 설치했다. ([世祖實錄] 39, 세조 12년 8월 甲子)

[자료4]

수신(守信)·휼양전(恤養田)이 폐지되어 직전이 되었다. ([成宗實錄] 249, 성종 22년 정월 壬午)

[자료5]

직전(職田)·사전(賜田)의 세(稅)와 초가(草價)12)는 경창(京倉)에 납부하며(기한은 다음 해 3월 초 10일까지이다) 군자감의 미두(米豆)로 바꾸어 지급한다. (초(草) 1속(束)을 미 2승(升;되)으로 계산한다. 직전·사전에서는 1결마다 2두씩을 관에서 징수한다.) ([經國大典] 戶典, 職田)

<참고 문헌>

김태영, [조선전기토지제도사연구], 지식산업사, 1983.
이경식, [조선전기토지제도연구], 일조각, 1986.

출전 : http://uniweb.unitel.co.kr:8083/class/history/lesson/5/5-10-1.html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인터넷 스쿨> 조선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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