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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10-05 (금) 00:29
분 류 사전1
ㆍ조회: 1434      
[조선] 결부법 (두산)
결부법 結負法

토지를 파악함에 있어서 토지의 면적과 수확량을 동시에 표시한 계량법.

기본 단위는 파(把) ·속(束) ·부(負:卜) ·결(結)로서 줌 ·뭇 ·짐 ·멱이라는 우리 말의 한자 표시로 쓰였는데, 곡식단 한 줌을 1파, 10파를 1속, 10속을 1부, 100부를 1결이라 하였다.

토지의 수확량뿐만 아니라 그만한 수확량을 낼 수 있는 토지의 면적을 말하는 단위이다. 언제부터 제도화하였는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삼국사기》와 쇼소인[正倉院] 장적문서 등의 고문서,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 등의 금석문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이미 통일 신라 시대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토지를 이용한 방식 및 농업 생산력의 발전, 이를 국가재정으로 흡수하려는 국가의 조세 수취 방식 및 토지 파악 방식의 변화에 따라 이 제도도 변화하였으며, 4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신라 시대부터 전시과 체제가 무너진 고려 후기 무렵까지이다. 결부는 수확량과는 관계 없이 단순히 토지 면적만을 가리키는 단위로 사용되어, 중국의 면적 단위인 경묘제(頃畝制)와 서로 통용되었다. 당시의 농경지는 대개 한 해 농사지은 다음에는 농사짓지 못하고 놀리는 세역전(歲易田)이었으므로, 결의 면적이 넓고 토지 생산력이 낮은 것이 특징이었다. 1결의 면적에 대해서는 17,000~18,000평 정도로 보는 설, 4,500평으로 보는 설, 6,800여 평으로 보는 설 등이 있다.

고려 전기에 실시된 전시과에서는 토지를 농사짓지 못하고 땅을 놀리는 빈도[휴한(休閑)]를 기준으로 하여 세 등급으로 나누었는데, 놀리지 않고 해마다 농사짓는 땅을 상등, 한 해 농사지은 다음에 한 해 놀리는 땅을 중등, 두 해를 놀린 다음에 한 해 농사짓는 땅을 하등으로 하였다. 이때는 논 ·밭 모두 토지의 등급에 관계없이 결부의 면적은 같았으나 토지세 액수는 등급에 따라 달랐다.

두 번째 시기는 고려 후기 무렵부터 공법(貢法)이 시행된 1444년(세종 26년)까지의 시기이다. 토지를 그 땅이 기름진가 메마른가에 따라 도 단위로 세 등급으로 나누고, 토지를 측량할 때 농부의 손마디 길이[수지척(手指尺)]를 표준으로 한 자를 사용하였다. 토지의 등급에 따라 자의 길이를 다르게 하여 기름진 토지에는 길이가 짧은 자를, 메마른 토지에는 길이가 긴 자를 써서 측량하였다. 따라서 같은 1결이라도 토지의 등급에 따라 면적이 달라졌으나 토지세 액수는 토지 등급에 상관없이 모두 같았다. 1결의 면적은 1389년(공양왕 원년)에 가장 기름진 토지가 약 1,790평, 중간 정도의 토지가 약 2,800평, 가장 메마른 토지가 4,000여 평으로, 이전 시기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이 변화는 고려 말에 농사 기술이 발달하여 땅을 놀리지 않고 매년 경작할 수 있음에 따라 여러 차례 세금 제도를 개혁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이 변화를 바탕으로 고려 말에 과전법이 제정되었다. 이때에 와서 비로소 결부는 토지의 면적을 표시하는 단위임과 동시에 수확량을 나타내는 단위, 국가에서 거둘 토지세 액수를 표시하는 단위로서, 단순히 면적만을 표시한 중국의 경묘제와는 다른 한국 고유의 제도로 정립되었다.

세 번째 시기는 공법을 제정한 1444년(세종 26)부터 토지를 측량할 때 쓰는 자를 하나로 통일한 1653년(효종 4)까지의 시기이다. 토지 등급을 종래 셋으로 나눈 것에서 여섯 등급으로 세분하였고, 토지를 측량할 때 쓰는 자를 종래의 농부의 손마디 길이를 표준으로 한 것에서 보다 합리적인 주척(周尺)으로 바꾸었다. 토지의 등급에 따라 자의 길이가 달라져[수등이척법(隨等異尺法)], 1등급 토지를 재는 자의 길이는 4.775척(95.4 cm)이고, 등급이 낮을수록 자의 길이는 길어져 6등급 토지를 재는 자는 9.55척(191 cm)가 되었다.

따라서 토지 등급에 따라 면적도 달라져, 1결의 면적은 1등전이 약 3,000평, 2등전이 약 3,500여 평, 3등전이 4,200여 평, 4등전이 5,400여 평, 5등전이 약 7,500평, 6등전이 약 12,000평이었다. 이전 시기보다 결의 실제 면적이 축소되는 경향을 보인 반면, 전국의 총토지 결수는 크게 증가하였다. 농사 기술이 발달하여 땅을 놀리지 않고 매년 경작할 수 있게 되었고, 황무지 또는 경작하지 못하고 묵힌 토지도 개간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어 국가에 세금을 내는 토지로 파악되었다. 1391년 과전법이 실시될 당시에는 국가에서 파악하고 있는 함경도 ·평안도를 제외한 전국의 토지 결수가 약 80만 결이었고, 16세기(15세기의 잘못임-이창호)에 이르면 150만 결 내지 170만 결이 되었다.

네 번째 시기는 토지를 측량할 때 쓰는 자의 길이를 통일한 1653년(효종 4)부터 조선총독부의 토지 조사 사업이 끝난 1918년까지의 시기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치른 뒤 조세 징수의 대상인 토지 결수가 급격히 감소하자 국가에서는 토지의 경작 실상을 조사하기 위하여 1653년에 토지를 다시 측량하였다. 토지의 등급에 따라 길이가 다른 자를 사용하여 토지를 측량할 때의 복잡함과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자를 통일하였다. 종래의 1등급 자인 주척 4자 7치 7푼을 1자[척(尺)]로 정하여 토지의 비옥도에 상관없이 측량하여, 사방 100척을 1등전의 1결로 정하였다. 그리고 1등전의 1결을 100으로 하여 2등전은 85, 3등전은 70, 4등전은 55, 5등전은 40, 6등전은 25의 비율로 결의 면적을 환산하였다.

가장 질이 좋은 토지인 1등전 1결의 면적은 3,200여 평이었고, 가장 메마른 토지인 6등전 1결은 1등전의 약 4배인 1만 3000평 정도였다. 이때의 변화는 결부법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토지를 측량할 때 쓰는 자의 길이를 토지 등급에 따라 달리하던 것을 하나로 통일한 정도에 불과하였다. 결부법은 생산량을 단위로 한 점에서 보면 지세부과의 합리적인 단위였지만, 20년마다 실시하도록 법적으로 규정된 토지의 측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결부산정이 현실과 부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모순 때문에 조선 후기 민간에서는 토지면적 단위로 두락(斗落)이 결부와 함께 통용되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농업 문제에 관심이 많은 실학자에 의해 그 문제점이 지적되고 개선방안이 강구되었다.

당시 농촌 사회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정전론 ·둔전론 등의 농업 개혁안을 제시한 바 있는 정약용(丁若鏞) ·서유구(徐有而) 등은 그러한 개혁안을 시행하기 위한 전제로서 전국의 농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결부제는 농토가 기름진가 메마른가에 따라 토지세 액수를 정하는 주관적인 방식이어서 농민의 토지세 부담을 고르게 할 수 없는 폐단이 있으므로 폐기하고, 보다 객관적인 중국식의 경묘법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유길준(兪吉濬) 등 개화파도 공법을 실시하여 토지를 여섯 등급으로 나누면서 토지의 결수와 토지세 액수가 변하였으나, 그것이 생산량을 정확히 나타내지 못함으로써 부정확하고 불균등한 문제점이 있음을 비판하고, 전세 제도의 근대적인 개혁을 위한 전제 조건의 하나로서 경묘법에 입각하여 토지를 측량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 뒤 대한제국기에 와서 전국적으로 토지 조사 사업을 한 뒤 작성한 토지 대장[광무양안(光武量案)]에는 매 필지마다 결부수와 두락을 함께 기록하였으나, 이미 결부법 자체가 토지 생산성과 현저히 괴리되어 근대적 토지소유의 성립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1910년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토지조사 사업을 벌이고 정반평제(町反坪制)에 의해 토지 면적을 파악함으로써 결부법은 폐기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야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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