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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9-06 (금) 07:39
분 류 사전1
ㆍ조회: 271      
[조선] 수신사 (한메)
수신사 修信使

조선 말기 일본에 파견한 외교 사절.

이전에는 통신사(通信使)라고 하였는데, 1876년(고종 13) 강화도 조약 이후 수신사로 개칭하였다.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의 간청에 의해 국교를 재개하고 고종 초년에 이르기까지 10여 차에 걸쳐 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하였다. 그 뒤 1868년 일본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뒤 흥선대원군은 일본과 국교를 단절하였으나, 민비(閔妃)측이 정권을 잡은 뒤 일본은 국교 회복을 시도하다 <운요호사건〔雲揚號事件〕>을 일으켜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약체결 뒤 일본은 초대 외교(招待外交)형식을 취하여 조선에게 사신 파견을 간청하였고 조선은 회사(回謝)의 뜻으로 예조참의 김기수(金綺秀)를 수신사로 파견하게 되어 일행 76명은 그 해 4월 4일 서울을 출발, 부산을 떠나 시모노세키[下關]에 도착하였다. 그 뒤 약 2개월 간 시찰을 하고 고종에게 복명(復命)하였다. 이들은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일왕(日王)과의 접견식을 가지고, 원로원ㆍ의사당(議事堂), 육해군의 군사시설 및 훈련 상황, 박물관 등 근대 시설을 관람하고, 개국주의에 큰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한편 일본은 79년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를 변리공사로 파견하여, 원산ㆍ인천의 개항을 강요하고 부산의 관세 배상, 미곡 금수(米穀禁輸) 해제를 제기하자 조선 정부는 문제의 절충과 일본의 진의를 탐색하기 위하여 1880년 5월 수신사 김홍집(金弘集) 등 58명을 파견하였고, 일행은 그해 11월 귀국하였다.

그러나 양국간의 현안 문제들에 대하여 일본측은 확답없이 미루기만 하였고, 김홍집은 청국 공관에서 참찬관(參贊官) 황쭌셴[黃遵憲] 등과 접촉하며 조선이 모르던 국제 정세에 대한 중요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 뒤 개화와 척사의 대립 속에서 다시 1881년 조준영(趙準永) 등 양반 자제의 소장 인물을 망라한 신사유람단 38명을 일본에 파견하여 70여 일 동안 일본 문물을 조사, 연구하게 하였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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