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9-25 (화) 05:49
분 류 사전1
ㆍ조회: 366      
[조선] 조선의 신분제도 (한메)
조선의 <신분제도>

조선은 양반 중심의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사회 신분은 고려 시대로부터 계승된 사회 기반과 유교적 이념 위에 이루어졌다. 대체로 15세기에는 양반·상민·천인, 16세기 이후에는 양반·중인·상민·천인으로 구분되었다. 15세기는 사회 신분 구조가 크게 개편된 시기로, 노비의 변정(辯正), 승려의 환속, 신량역천층(身良役賤層)의 설정 등에 따른 양인의 확대와 향리·서리·기술관·서얼 등의 관료 진출 제한에 따른 지배층의 계층 분화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양반은 사회의 지배층인 사대부 계층을 일컫는 말로서, 고려 시대의 문벌 귀족에 비하여 많은 수를 차지하였다.

중인은 집권 지배층의 자기 도태 시책으로 16세기 이래 신분이 격하되어 형성된 향리·서리·기술관·서얼 등의 계층으로, 좁게는 서울의 기술관을, 넓게는 서울과 지방의 하급관리인 아전·군교와 서얼 등을 통틀어 일컫는다.

상민은 농민 상층부와 약간의 상공인들로 이루어지며, 백성·양인(良人)·평민·서인(庶人)·상인(常人) 등으로도 불리웠다. 상민은 전세·신역·공물의 의무를 지면서도 교육과 과거를 통한 진출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사회 계층의 최하층인 천인은 대다수는 노비였고, 그 밖에 재인(才人)·백정·무당·창기(娼妓) 등도 이에 속하였는데, 노비는 개인이나 국가기관에 소속되어 매매·상속·증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조선의 신분 제도는 임진왜란 등의 전란 이후 큰 변동을 겪게 되었다. 양반에게는 벌열·향반(鄕班)·잔반(殘班)의 구분이 생겨났고, 중인계층은 부를 축적하고 문학적 소양을 쌓아 사회적 지위를 높여갔다. 노비 가운데서도 도망하거나 군공(軍功) 등을 통해 양인이 되는 자도 있었다. 이러한 조선 후기의 신분 변동으로, 양반수는 현저히 증가한 반면 노비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윗글 [조선] 서얼 (두산)
아래글 [조선] 조선의 사회구조 : 양천 이원제설 (두산)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90 사전1 [조선] 제생원 (두산) 이창호 2001-09-21 181
89 사전1 [조선] 동서활인원 (한메) 이창호 2001-09-21 260
88 사전1 [조선] 동서활인원 (두산) 이창호 2001-09-21 207
87 사전1 [조선] 대비원 (한메) 이창호 2001-09-21 221
86 사전1 [조선] 대비원 (두산) 이창호 2001-09-21 241
85 사전1 [조선] 혜민서 (한메) 이창호 2001-09-21 257
84 사전1 [조선] 혜민서 (두산) 이창호 2001-09-21 195
83 사전1 [조선] 서얼 (한메) 이창호 2001-09-20 916
82 사전1 [조선] 서얼 (두산) 이창호 2001-09-20 1130
81 사전1 [조선] 조선의 신분제도 (한메) 이창호 2001-09-25 366
1,,,29129229329429529629729829930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