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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15 (화) 22:27
분 류 사전1
ㆍ조회: 970      
[조선] 동서 분당 (두산)
동서분당 東西分黨

1575년(선조 8)에 일어난 사류(士類) 사이의 분파 싸움.

당시 청빈사류로서 젊은 선비들 사이에 평판이 높았던 김효원(金孝元)을 지지하는 일파와 명종(明宗)의 왕후의 아우로서 노장사류(老壯士類)의 인정을 받고 있던 심의겸(沈義謙)을 지지하는 일파 사이에 반목 ·대립이 일어났는데, 그 직접적인 원인은 조정의 요직인 이조전랑(吏曹詮郞)의 자리 문제였다.

김효원은 문과에 장원급제를 한 문명 높은 선비로서 직무에 충실했기 때문에 선비들의 칭찬을 받고 있었는데, 마침 전랑 자리에 있던 오건(吳健)이 그 자리를 떠나면서 후임으로 김효원을 추천하였으나 심의겸은 이에 반대하였다. 김효원이 전에 권신(權臣)이며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킨 바 있는 윤원형(尹元衡)의 집에 머무른 일이 있었다는 이유로, 그러한 자를 전랑과 같은 요직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김효원은 전랑에 임명되었으며, 그가 그 자리를 떠날 때 사람들이 심의겸의 아우 심충겸(沈忠謙)을 천거했으나 이번에는 김효원이 이를 반대하였다. 당시에는 전임 전랑이 그 후임을 천거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로 되어 있었으므로 김효원의 반대는 심충겸의 전랑 취임에 큰 장애가 되었다. 왕실의 외척으로서, 조정의 인사를 처리하는 막중한 전랑의 직책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김효원의 주장이었다.

이 두 차례의 논쟁으로 김 ·심 두 집안의 반목과 불화는 격화되었고, 사류 사이에 분당 운동이 일어나 일파는 김효원을 지지하고 다른 일파는 심의겸을 지지하게 되었다. 이때 김효원의 집이 서울의 동쪽인 낙산(洛山) 밑의 건천동(乾川洞)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 일파를 동인(東人)이라 하였고, 심의겸의 집은 서울의 서쪽인 정동(貞洞)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 파를 서인(西人)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선비 사회의 동서 분당은 후에 사색 당쟁(四色黨爭)으로 발전해 국정을 혼란하게 하여 국력을 크게 소모시켰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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