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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9-06 (금) 22:13
분 류 사전1
ㆍ조회: 170      
[경제] 경제 (한메)
경제 經濟 economy

의식주 등 물재(物財)의 생산·유통·소비에 관련되는 인간관계의 전체.

사람은 생활해 나가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욕망을 만족시켜야만 하는데 그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요구되는 외계의 물자 또는 타인의 활동을 재화(財貨) 및 용역(用役)이라 하고, 재화 및 용역에 대한 요구충족, 즉 재화 또는 용역을 지배하는 것을 소비라고 한다.

그러나 재화 및 용역은 언제나 사람의 요구를 곧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완성재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대개는 재료로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재료를 적당히 결합하여 재화 및 용역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재화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자원(資源)이라 하고 자원을 결합 또는 배분함으로써 재화를 산출하는 것을 생산이라고 한다.

이와같은 재화 및 용역의 소비와 생산에 관한 활동이 경제생활이며, 경제생활에서 요구대상이 되는 재화 및 자원은 대개가 부족한 상태에 있는 데 반해 재화 및 용역에 대한 요구는 무한하다. 따라서 요구와 재화간에는 언제나 긴장된 상태 또는 모순된 상태가 존재하게 되며, 인간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이러한 모순을 끊임없이 극복 또는 완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서 요구와 재화, 요구와 자원간에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그 결과로 질서가 이루어진다. 질서라는 것은 목적달성을 위한 여러 수단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하며 경제생활에 있어서의 질서는 재화 및 용역에 대한 요구충족을 위하여 필요한 소비 및 생산활동의 질서를 뜻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P.A. 새뮤얼슨은 어떠한 사회든 반드시 다음과 같은 기본적 경제문제, 즉 ① 무슨 재화를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 ② 어떠한 재화를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③ 누구를 위하여 생산할 것인가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①② 는 생산에 관한 문제이고 ③ 은 소비에 관한 문제이다.

한사회의 성원(成員)이 생명의 유지, 생활의 영위를 위해서는 이상의 3가지 문제를 그 사회가 해결함으로써 그 사회내의 성원의 소비와 생산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기본적 경제문제의 해결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의 경제생활은 동일한 문제의 해결이면서도 시대와 국가에 따라서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다.

[자본주의 경제]

경제생활은 원시사회·고대사회·봉건사회를 거쳐 근대사회의 경제생활로 발전해왔다. 18세기에 영국에서 발생한 산업혁명의 결과로 새로 발생하게 된 근대사희의 경제를 자본주의경제라고 하는데, 화폐경제 또는 상품경제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산업혁명의 결과 기계의 이용에 의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으며, 이로 인해 자급자족을 위한 생산이 아니고 상품으로서 팔기 위한 생산이 행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교환이 빈번해졌고 이에 따라 일반적 교환수단이 화폐를 사용하는 매매의 형태를 취하게 되어 화폐사용이 일반화되었다.

자본주의경제에서는 자본과 노동이 분리되어 자본이 노동을 지배하게 되었다. 공장에서 대량생산이 행해짐에 따라 몰락한 종래의 수공업자와 상품경제의 발달 및 토지의 상실로 빈곤해진 농민들이 공장노동자로 바뀌어 갔다. 이에 따라 근대적 생산설비를 소유하는 소수의 자본가와 노동을 유일한 생산수단으로 하는 노동자가 발생하게 되었고,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가 노동자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본과 노동의 분리는 또 필연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를 초래하였다. 자본주의의 또 하나의 주요한 특질은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가 인정된다는 점이다. 즉 개인의 경제활동에 대해서 정부는 일절 간섭을 하지 않는다.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하여 자기 책임하에 생산 및 소비를 행하므로 여기서는 사유재산이 인정되고 보장된다.

그리고 직업 선택의 자유가 인정되어 있으므로 노동자의 고용에 있어서는 고용주와 노동자가 평등한 지위에서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법률에 의하여 <계약자유의 원칙>이 규정되어 있다. 또 소비에 있어서는 요구의 표현과 이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재화의 선택을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소비자 자신이 할 수 있는 권리, 즉 <소비자주권>이 인정된다.

이상과 같은 특징을 가진 근대 자본주의경제는 생산수준과 소비수준을 끌어올렸지만 다음과 같은 폐해도 가져왔다. ①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간에는 불공정한 분배가 행해져서 빈부의 차가 격심해졌고 여기서 노동문제가 빈번히 발생하게 되었다. 생산과잉으로 침체·공황을 일으켜 파산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이에 따라 실업자가 증대하는 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③ 거대한 자본이 집중되어 각 산업 부문에 독점이 성립되었다. 일단 독점이 성립되면 그것은 독점자로 하여금 독점이윤을 획득하게 할 뿐 아니라 생산제한으로 실업자를 배출하고 또 가격의 인상으로 소비대중을 압박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는 자본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생산수단의 사유를 인정하고 개인의 창의와 자유를 살려나가는 한편 중요한 산업·금융에 대해서 정부가 통제를 가하고 노사관계를 정부가 조정해 나가는 이른바 <수정자본주의>이고, 또 하나는 자본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나 생산수단을 공유하여 노사간의 대립을 해소하고 정부의 계획적인 경제활동에 의하여 소비와 생산의 수준을 향상하려 하는 이른바 <사회주의경제>이다. 세계의 경제는 크게 이 사회주의경제와 자본주의경제로 나누어진다.

[사회주의 경제]

사회주의 경제가 처음 모습을 나타낸 것은 1917년 10월의 러시아혁명 이후 N.레닌이 지도하는 노농정권이 탄생하면서부터이다. 그 후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동유럽과 아시아의 국가들이 사회주의로의 길을 가게 되면서 사회주의 경제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 경제는 생산의 수단, 즉 토지·삼림·수리·지하매장물·원료·생산용구·생산용건물·교통통신기관 등이 자본주의에서와 같이 개인의 사적 재산이 되지 않고 사회성원 전체의 소유가 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사회주의경제는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계획적인 배분과 이용을 통해 운용되는 이른바 계획경제이다. 거기서는 자유경제가 인정되지 않는다. 동시에 사회주의경제는 공산주의경제와도 구별된다.

1952년 I.V. 스탈린은 소련의 사회주의는 생산력의 미발달로 말미암아 콜호스적·협동조합적 소유형태가 고유형태와 병존하고 또한 노동자의 교양이나 생활수준이 낮기 때문에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려면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별하였다.

소련의 사회주의적 경제발전의 시기는 역사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별될 수 있다. ① 10월 러시아혁명기(1917∼18) ② 외국의 무력간섭과 국내전쟁기(1918∼20) ③ 국민경제부흥기(1921∼25) ④ 공업화의  시기(1926∼29) ⑤ 농업집단화의 시기(1930∼34) ⑥ 사회주의사회건설의 완성기(1935∼37)가 그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와 소련·동유럽의 경제발전 속도는 둔화되었고 따라서 그때까지의 외연적·물량적 발전에서 집약적·질적발전으로의 정책전환이 불가피해졌다. 종래 각국의 경제계획·관리제도는 1930년대 소련의 방식을 답습한 것으로 그것은 물동적(物動的)·중앙집권적 계획기구에 의한 것이었다.

생산력이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농촌의 혼재적 노동력이 차례로 고갈되게 되고 설비투자가 대규모화함에 따라 노동생산성이나 투자효율이 큰 관심사가 되었다. 또한 계획화이론이나 기술이 컴퓨터의 발달에 따라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소련과 동유럽제국에서는 경제관리를 보다더 분권화하고 기업단위로 재정상의 상대적 자립성을 강화하는 방식, 말하자면 행정지도방식에서 경제적 자극을 보다더 중시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소련·동유럽제국(알바니아 제외)은 모두 65∼68년에 전면적으로 이 개혁을 도입하였다. 한편 중국은 소련의 평화공존정책이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을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유에서 이에 반대하고, 또한 소련의 대국주의적 태도에 대한 반발도 겹쳐서 소련과의 대립이 점점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경제의 과도적 성격에 관한 문제, 공업과 농업의 균형문제, 공산주의로의 점차적 이행에 관한 경제정책 등 격한 논쟁이 진행되었다.

[한국의 경제생활]

고대 한민족의 경제생활은 씨족 중심의 채집·어로·수렵생활에서 시작하여 고대국가가 형성되면서 한반도 전역에 농경문화가 보급되었다. 고대의 농업경제는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여 자가소비에 충당되었다.

중세사회에서도 농민경제는 자급자족의 자연경제에 머물러 있었고 상업과 수공업은 발달하지 못하였다. 수공업은 고려와 조선초에 이르기까지 관영공업으로 운영되었고 국가의 재정은 현물조세에 의존하였다. 이러한 경제상태하에서 화폐의 발달은 기대할 수 없었다.

중세경제체제는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농업에서 지주의 토지를 빌려서 소작료나 지대를 지불하는 양상이 나타나 농민이나 자영지주들 중에 중산농으로 부를 이룬 자들이 나왔다. 대동법 실시 이후엔 시장의 발달이 이루어져 상품농업과 자영수공업이 등장하였다. 또한, 징부가 조세의 일부를 화폐로 수납하게 되고 상공업이 발달되면서 화폐경제가 정착하였다.

그러나 18세기말의 근대지향적인 경제적발전추세가 근대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스스로 성립시킨 것은 아니었고, 개항과 더불어 유입된 서구자본주의가 한국인의 생활환경과 경제활동을 크게 변화시켰다. 상공회의소·상업회사·상사·은행 등이 설립되고 근대식 공장이 건설되었다. 1910년 일본에 병합된 뒤 민족자본은 일본에 예속되었고 근대적 경제발전은 크게 제약받았다. 광복 후 오늘날까지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은 거시적으로 보면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하여 국민경제건설을 이룩한 시기라 하겠다.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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