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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8-08 (목) 12:09
분 류 사전1
ㆍ조회: 136      
[고려/조선] 정랑 (두산)
정랑 正郞

고려 후기와 조선 시대의 정5품 관직.

1275년(충렬왕 1) 전기의 상서 6부 및 속사(屬司)인 고공사(考功司)와 도관(都官)을 전리사(典理司:이부·예부)·군부사(軍簿司:병부)·판도사(版圖司:호부·공부)·전법사(典法司:형부) 등 4사(司)와 고공사·도관으로 고치면서 낭중을 개칭한 것이다.

정원은 전리사에 1명, 군부사·전법사·판도사에 각 2명씩 두었다. 1298년에 4사를 전조(銓曹)·병조(兵曹)·민조(民曹)·형조(刑曹)·의조(儀曹)·공조(工曹)의 6조로 바꾸면서 낭중으로 복구하고 정원은 각 3명씩 두되, 그 중 1명은 서반(西班)이 겸직하게 하였다. 1308년에는 직랑(直郞)으로, 1310년(충선왕 2)에는 정랑으로, 1369년에는 직랑으로 바꾸었다가 1372년에 다시 1362년의 관제로 복구하였다.

조선에서는 1392년(태조 1) 관제를 제정하면서 6조와 고공사 및 도관의 정랑으로 두었고, 정원은 이조와 고공사는 각 1명, 나머지는 각 2명씩 두었다. 1405년(태종 5)에는 이조·호조·예조·공조에 각 3명, 병조·형조는 각 4명씩 두어 《경국대전》에 그대로 반영되었다가 《속대전》과 《대전통편》에서 인원에 변동이 있었다.

조선의 정랑은 6조의 실무를 관장하여 청요직으로 간주되었으며, 특히 이조·병조의 정랑은 좌랑(佐郞)과 함께 인사 행정을 담당하여 전랑(銓郞)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들은 삼사(三司) 관직의 임명 동의권인 통청권(通淸權)과 자신의 후임자를 추천할 수 있는 재량권이 있어 권한이 막강했으며, 이로 인해 붕당의 폐단을 낳기도 하였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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