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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8-06 (화) 17:53
분 류 사전1
ㆍ조회: 136      
[조선] 사육신 (한메)
사육신 死六臣

1456년(세조 2)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죽음을 당한 여섯 신하.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를 말하는데, 이들을 <사육신>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남효온(南孝溫)이 이들 여섯 신하의 전기인 《육신전(六臣傳)》을 지은 데서 비롯한다. 이들 중 무신인 유응부를 제외하면 모두가 집현전학사(集賢殿學士) 출신으로서 세종의 신임을 받고 문종으로부터는 나이 어린 세자를 잘 보필해 달라는 고명(顧命)을 받은 신하들이었다.

후일 세조는 이 사건에 집현전학사 출신이 주동이 되었다 하여 집현전을 혁파하였다. 이들은 단종의 숙부 수양대군(首陽大君)이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을 통하여 안평대군(安平大君)·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 단종 친위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독차지한 뒤, 1455년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동조자를 규합하여 단종 복위를 계획하였으나, 이에 참여하였던 김질이 고변(告變)함으로써 주동자와 동조자가 모두 체포되었다.

세조는 이들을 직접 신문하였는데, 갖은 고문과 회유에도 이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박팽년은 옥에서 죽고 유성원은 거사 실패의 소식을 듣고 집에서 자결하였으며, 나머지 네 사람은 옥이 일어난 지 7일만에 모두 군기감(軍器監) 앞에서 처형되었다. 그리고 사육신 이외에도 권자신(權自愼) 등 70여 명이 이 사건으로 참화를 입었다.

중종반정 이후 성삼문·박팽년 등을 난신(亂臣)이 아닌 충신으로 평정하기를 건의하는 상소가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1511년(중종 6) 그 동안 발간이 금지되었던 《추강집(秋江集)》이 인출되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사육신 문제가 정치적으로 용인되는 동기가 되었다.

사육신은 1691년(숙종 17)에 관직이 복구되고 시호가 내려졌으며, 묘우(廟宇)를 세워 제사를 지내도록 함으로써 국가적인 공인이 이루어졌다.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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