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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12-12 (수) 07:25
분 류 사전1
ㆍ조회: 122      
[조선] 향안 (두산)
조선 시대 지방에 거주하는 사족(士族)의 명단.

원래 지방에 거주하는 품관(品官)의 명단으로서 경재소(京在所)에 비치된 <경안(京案)>에 대칭하여 쓰인 명칭으로 보인다. 향적(鄕籍) ·향언록(鄕諺錄) ·향록(鄕錄) ·향중좌목(鄕中座目) 등으로도 불렸다. 정확히 언제부터 작성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 시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각 지방에 전래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자료로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469년 함흥지방의 《풍패향좌목(豊沛鄕座目)》이다.

시기마다 그 성격이 약간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재지사족(在地士族) 가운데 내외 친족 및 처족(妻族)에 신분적 하자가 없어야만 재지사족의 공론에 따라 향안에 이름이 오를 수 있었으므로 그들의 신분적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향안에 이름이 오른 구성원인 향원(鄕員)들이 모여 향회(鄕會)를 구성 ·운영하였다. 향회에서는 향안에 새로 이름을 올릴 사람을 결정하고, 향임(鄕任)을 추천하고, 자신들의 결속을 다지는 한편, 향리와 백성을 통제하는 등 향촌 사회 운영 전반에 걸쳐 신분제적 운영원리를 관철시켜 나갔다.

임진왜란 이전의 것은 대부분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거나 없어져, 그 뒤에 거의 모든 지역에서 다시 작성되었다. 17세기에는 전국적으로 작성되어 사족 중심의 향촌 사회 지배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18세기 초에는 대부분의 지방에서 향안을 둘러싼 갈등, 즉 향전(鄕戰) 때문에 계속 작성되지 못하거나 폐기되었다.

한편 전통적인 사족이 없는 함경도나 평안도 지역 같은 곳은 작성을 시작한 시기가 17세기 중엽이나 18세기로 조금 늦었지만, 오히려 18세기 말이나 19세기까지 계속적으로 개수되고 그 기능이 변질된 형태로 계속 유지되기도 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17세기 이후의 것인데, 가장 오래된 것은 1530년 안동의 《가정경인좌목(嘉靖庚寅座目)》이다. 재지사족 중심의 향촌사회 지배 구조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야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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