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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6-03 (일) 19:59
분 류 사전1
ㆍ조회: 1637      
[고려] 향·소·부곡 (두산)
향·소·부곡 鄕所部曲

신라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존속한 특수한 지방 하급 행정 구획.

향 ·소 ·부곡의 사람들은 일반적인 양민과 달리 그 신분이 노비(奴婢)·천민에 유사한 특수한 열등계급이었다. 그 발생은 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정복전쟁(征服戰爭)에 패배하였거나 투항 또는 귀순한 집단지, 촌락 본래의 형태인 공동체의 보존과 사회계층의 분화에 따른 예속관계와의 대립 ·모순, 또는 반역죄인의 집단적 유배지, 귀화인의 집단부락, 기타 특수한 생산노비의 집단거주 등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사회 발전에 따른 공동체의 통합과 붕괴, 계급 분화에서 야기된 것으로 이해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조선 전기에는 13개의 향·소·부곡이 있었을 뿐이었으나, 그 이전에 있던 것으로 파악된 것은 향 138, 소 241, 부곡 406 등 모두 785개가 있던 것으로 전한다.

이 중에서 부곡은 217개가 신라의 본거지인 경상도 지방에 집중되어, 부곡의 전성기가 신라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향 ·부곡은 대체로 같은 것으로 보이며 농업생산에 치중하였으나, 소는 수공업 생산을 담당하였다. 부곡이라는 말은 본래 중국에서 한(漢)나라 때는 군오(軍伍)의 뜻이었고, 위(魏) ·진(晉) ·남북조시대에는 관사(官私)의 병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뒤 당나라 때는 천민(賤民)의 칭호로 변하여 양민과 노비와의 중간층을 이루었다가 명나라 때 이르러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러한 신분적 의미와 함께 행정 구획으로도 사용하였다. 부곡민은 매매 ·양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노비보다 신분적 지위가 높다고 할 수 있으나, 이들도 역시 천적(賤籍)에 따라 장악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형식은 지방의 호장(戶長)이 주·군·현의 행정 기관을 매개로 하여 간접적으로 이들의 천적을 장악하였다. 이 부곡이 붕괴된 원인은 가부장적 대가족 구성으로부터 단혼가족으로의 분화와 천인의 반란, 대외전쟁 등에 기인하며, 그러한 변화과정과 아울러 붕괴의 법제적 조치라고 할 수 있는 신라시대의 9주(州) 창설, 고려 성종 때의 12목(牧) 설치, 조선 건국 초의 행정구획 재편 등이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한편, 소는 그 발생이 향·부곡에 뒤지고 있어, 고려 시대 군현제(郡縣制) 확립의 일환으로 처음 실시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소는 중앙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물품을 생산 ·공급하는 기구였으며, 주민의 신분은 공장(工匠)이었다. 예컨대 자기소(磁器所)·철소(鐵所)·은소(銀所)·금소(金所)·동소(銅所)·사소(絲所)·지소(紙所)·주소(紬所)·와소(瓦所)·탄소(炭所)·염소(鹽所)·묵소(墨所) 등의 명칭으로 수공업 생산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였다.

소는 향 ·부곡이 호장 등 토착 관리가 통제하던 것과는 달리, 국왕의 권한 아래에서 소속 주 ·군 ·현의 기관을 통해 직접 그들의 천적이 장악되었다. 부담하는 공물(貢物)도 그 부과와 징수가 보다 직접적으로 중앙정부와 결합되었으며, 수취(收取)도 매우 가혹하였다. 소도 역시 12세기 후반 이후 쇠퇴하였다. 그 직접적인 원인은 국가의 수요가 소의 생산능력을 초과하게 되자, 그 부담에 고생하던 소 주민들의 저항 운동이 격화되어 그 내부로부터 붕괴하기 시작한 데 있다. 한편, 이를 더욱 조장한 것은 이 시기 이후 한국의 사회적·정치적 변동, 즉 대토지 소유의 증가, 귀족층의 항쟁, 대외 전쟁 등의 계속으로 그 영향이 소에 직접 ·간접으로 끼쳐 양적인 감소와 질적인 변화를 촉진하였다.

소는 조선 전기에 이르러 지방관이 없는 행정구획의 정리로, 15세기 후반에는 군 ·현으로 승격되거나 소속 군·현에 흡수되어 완전 소멸하였다. 이같은 향 ·소 ·부곡과 일반 군현의 행정구획과의 구분 기준은 호구(戶口)의 다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부곡 중에는 현보다도 많은 호구를 갖는 예도 많았고, 또 반란 등이 있던 군현은 부곡으로 강등되거나 반대로 공로가 있는 부곡은 현으로 승격하는 수도 있었다. 향·소·부곡의 주민들은 양민에 비해 신분적인 차별을 받았다.

예를 들면, 국학(國學)에 대한 입학이 금지되고, 형벌은 노비와 동등하였으며, 자손의 귀속도 잡척인(雜尺人)과 동일한 대우, 즉 양민과의 소생도 그대로 부곡에 남아야 하였고, 승려가 되는 것도 금지되었다. 향 ·소 ·부곡의 해체와 붕괴는 특수한 하층 지방행정 조직에서 벗어나 일반 지방행정 조직으로 재편성되는 과정이며, 고려의 군현제에서 조선의 군현제로의 이행과정이었고, 이러한 속에서 전체 국민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관련 표제어 : 감무 / 고정부곡 / 군현제 / 노예제 / 신라 / 월경지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야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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