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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5-13 (일) 12:08
분 류 사전1
ㆍ조회: 1312      
[고려] 음서 (두산)
음서 蔭敍

고려ㆍ조선 시대 부(父)나 조부(祖父)가 관직 생활을 했거나 국가에 공훈을 세웠을 경우에 그 자손을 과거에 의하지 않고 특별히 서용하는 제도.

문음(文蔭)ㆍ남행(南行)ㆍ백골남행(白骨南行)ㆍ음사(蔭仕)ㆍ음직(蔭職)이라고도 한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걸쳐 관리들을 선발하는 제도로 과거 제도가 있었으나, 일단 관인층을 형성한 자들은 그들의 지위를 자손대대로 계승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부분적으로나마 관직을 세습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였다.

997년(고려 목종 즉위)에 문무관 5품 이상관의 아들에게 음직을 주도록 하는 음서제가 최초로 생겨났으며, 1049년(문종 3)에는 전시(田柴)를 지급하는 공음전(功蔭田)의 제도가 마련되면서 고려의 문벌 귀족 사회를 형성하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음서의 범위는 고려 시대에는 5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관리의 자제를 그 대상으로 하였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면 그 범위를 축소시키고 있다. 즉 《경국대전》의 이전(吏典) <음자제조(蔭子弟條)>에 의하면 음직 제수의 범위를 공신이나 2품 이상관의 자(子)ㆍ손(孫)ㆍ서(壻)ㆍ제(弟)ㆍ질(姪), 실직(實職) 3품관의 자손으로 제한하여, 실력에 의한 선발 시험인 과거의 비중을 높였다.

그러나 음서는 혈통을 중시하는 신분제 사회의 속성을 띠면서, 실력을 중시하는 관료제 사회의 속성을 대표하는 과거와 함께 조선 양반 관료 사회를 형성하는 하나의 축으로 기능하였다.

음서에 의해 선발된 관리들을 음관이라고 하는데, 원칙적으로 장자(長子)만이 받을 수 있었으나, 장자가 유고인 경우에는 장손이나 차자가 감등하여 음직을 받을 수 있었다. 음관을 제수받는 연령은 만 18세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15세를 전후하여 관직에 등용되었으며, 부와 조부의 정치적 배경에 따라 승진 속도에 차이를 보이기도 하였다.

음서 제도는 혈통을 중시하는 문벌주의(門閥主義)가 여전히 명맥을 유지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음서제의 범위와 역할은 고려와 조선 사회의 성격을 비교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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