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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8-20 (화) 20:22
분 류 사전1
ㆍ조회: 113      
[조선] 이귀 (두산)
이귀 李貴 (1557~163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 연안(延安). 자 옥여(玉汝). 호 묵재(默齋). 시호 충정(忠定).

1582년(선조 15) 생원(生員)이 되고 강릉참봉(康陵參奉)을 거쳐 1592년 임진왜란에 삼도소모관(三道召募官)·삼도선유관(三道宣諭官)으로 군졸과 우마와 군량을 징발하여, 도체찰사(都體察使) 유성룡(柳成龍)에게 수송했다. 1603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형조좌랑(刑曹佐郞)·안산군수(安山郡守)·양재도찰방(良才道察訪) 등을 지냈다.

1609년(광해군 1) 함흥판관(咸興判官)을 거쳐 숙천부사(肅川府使) 때 수감된 해주목사(海州牧使) 최기(崔沂)를 만난 죄로 이천(伊川)에 귀양갔고, 풀려나와 평산부사(平山府使)가 되었으나 광해군의 폭정을 개탄, 1523년 김류(金찐)와 함께 광해군을 폐하고 선조의 손자 능양군(綾陽君:仁祖)을 추대하여 호위대장(扈衛大將)·이조참판 겸 의금부동지사(義禁府同知事)·좌찬성(左贊成)이 되었고,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으로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에 봉해지고 공서(功西)의 영수가 되었다.

1626년(인조 4) 병조판서·이조판서를 지내고, 같은 해 김장생(金長生)과 인헌왕후(仁獻王后)의 상(喪)을 만 2년으로 주장하다가 대간의 탄핵을 받아 사직했다. 이듬해 정묘호란 때 왕을 강화도에 호종하고 최명길(崔鳴吉)과 화의(和義)를 주장하다가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인조 묘정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묵재일기(默齋日記)》, 편저에 《한음공언행록(漢陰公言行錄)》이 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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