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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1-01 (금) 07:51
분 류 사전1
ㆍ조회: 904      
[조선] 이인좌의 난 (두산)
이인좌의 난 李麟佐-亂

조선 후기 이인좌 등의 소론(少論)이 주도한 반란. 일어난 해의 간지를 따서 무신란(戊申亂)이라고도 한다.

소론은 경종 연간에 왕위 계승을 둘러싼 노론과의 대립에서 일단 승리하였으나, 노론이 지지한 영조가 즉위하자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박필현(朴弼顯) 등 소론의 과격파들은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니며 경종의 죽음에 관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고 밀풍군 탄(密豊君坦)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하였다. 여기에는 남인들도 일부 가담하였다.

한편 이들의 거병에는 유민(流民)의 증가, 도적의 치성, 기층 민중의 저항적 분위기가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그리하여 반군은, 지방의 사족과 토호가 지도하고 중간계층이 호응하며, 일반 군사는 점령지의 관군을 동원하거나 임금을 주어 동원하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이인좌는 1728년(영조 4) 3월 15일 청주성을 함락하고 경종의 원수를 갚는다는 점을 널리 선전하면서 서울로 북상하였으나 24일에 안성과 죽산에서 관군에 격파되었고, 청주성에 남은 세력도 상당성에서 박민웅(朴敏雄) 등의 창의군에 의해 무너졌다. 영남에서는 정희량(鄭希亮)이 거병하여 안음ㆍ거창ㆍ합천ㆍ함양을 점령하였으나 경상도관찰사가 지휘하는 관군에 토벌당했다. 호남에서는 거병 전에 박필현 등의 가담자들이 체포되어 처형당하였다.

난의 진압에는 병조판서 오명항(吳命恒) 등 소론 인물들이 적극 참여하였으나, 이후 노론의 권력 장악이 가속화하였고 소론은 재기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이 사건 이후 정부에서는 지방 세력을 억누르는 정책을 강화하였고 토착 세력에 대한 수령들의 권한이 커져갔다. 또한 이때 반군이 군사를 동원한 여러 방식은 뒤의 홍경래의 난으로 이어졌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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