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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28 (일)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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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6676      
[한국] 한국의 인문 환경 (민족)
한국(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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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지표경관은 인구의 증가와 기술의 발달에 따라 대부분이 인공적으로 개조된 것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이룩된 촌락과 도시를 비롯해 도로ㆍ경지 등은 조상의 얼이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다.

하천은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경지를 확보하기 위해 유로를 바로잡았다. 경지의 관개를 위해 작은 하천을 가로막아 저수지를 축조했고 계곡에는 계단식 논을 조성하였다. 특히, 1960년대 이후 공업기술의 획기적인 발전과 경제규모의 증대로 대규모 댐, 아산만방조제, 영산강하구언, 경부고속도로, 대도시의 고층빌딩 등과 같은 대규모 공사가 이루어졌다. 계화도ㆍ영산강ㆍ서산ㆍ시화 ㆍ새만금 등의 간척사업으로 해안선이 크게 변모하였다.

현재의 우리 나라 인문환경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던 한반도를 한민족의 가치관과 기술 발달로 변형, 성장시킨 산물이다. 이러한 인문환경의 차이는 그 지역의 자연적 차이에서 유래하기도 하지만, 그 지역을 점유한 사람들의 문화적 배경 차이에 더 큰 원인이 있다. 산록에 발달한 집촌과 산간지대의 산촌, 마을 주변 구릉지의 묘지군(墓地群) 등은 우리 나라 특유의 촌락 경관이다.

우리 나라의 기본 산업이었던 농업은 점차 제조업분야의 팽창에 따라 국민총생산에서의 비중이 크게 낮아지고 있다. 특히, 경인ㆍ남동 임해공업지역ㆍ영남공업지역ㆍ호남공업지역ㆍ태백산공업지역ㆍ중부내륙공업지역 등을 비롯한 근대적 공업지역의 발달은 원료의 수입과 공산품의 수출을 주로 하는 선진국 산업형으로 급속히 전환시켜 국토의 경관이 크게 변모되었다.

도보ㆍ수로(水路) 교통의 시대에서 철도ㆍ고속도로ㆍ항공으로의 발달은 우리의 생활권을 전국 내지 세계로 확대시켰다. 1970년대에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해 호남ㆍ남해ㆍ구마ㆍ88올림픽ㆍ중부ㆍ영동ㆍ동해 고속도로 등이 완공되고, 중앙ㆍ서해안ㆍ대전통영고속도로가 완공될 예정이어서 우리 나라의 모든 지역이 1일생활권에 속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는 전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일 뿐만 아니라 산맥도 남북과 동서로 교차해 교통의 장애가 되고 있다. 또한, 삼국시대까지는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각각 독립된 문화를 발전시켜 온 결과, 현재까지도 기호(畿湖)ㆍ관동(關東)ㆍ관서(關西)ㆍ영남(嶺南)ㆍ호남(湖南)ㆍ관북(關北) 등 각 지역은 독특한 문화적 특색을 띤다.

2. 일반적 특성

[인구]

조선 중기의 우리 나라 총인구는 약 1000만 명으로 추계되고, 그 뒤 약 200년 동안 정체상태에 머물러 조선 말기에는 약 1300만 명으로 추계된다. 근대적 인구센서스가 처음으로 실시된 1925년의 총인구는 약 1900만 명이었다. 1944년의 인구조사에서는 2512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조선 말기부터 일제 시기를 거치는 동안 많은 인구가 북으로는 만주와 노령(露領)으로, 남으로는 일본으로 이주하였다. 1945년 광복 당시 일본에는 약 210만 명, 만주에 약 160만 명, 구소련에 약 20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광복과 더불어 일본에서 거주하던 약 150만 명은 귀국했으나 만주와 구소련에 거주하던 동포들은 대부분 그대로 머물렀다. 광복 이후에 귀국한 해외동포들은 주로 남한에 정착하였다. 또한, 국토가 양단되어 많은 북한주민들이 남한으로 이동했으며 6ㆍ25전쟁 동안 절정에 달하였다.

6ㆍ25전쟁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1955년의 인구조사 결과 북한을 제외한 총인구는 2150만 명이었고, 1960년에는 2495만 명으로 1945년 당시 남북한 전체인구 규모에 다다랐다. 1960년대에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인구증가율도 연 2% 이상으로 인구의 급증을 기록했으나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1.0%내외의 인구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1985년 총인구가 4000만명을 넘어섬으로써 세계상위권의 인구 대국이 되었으며, 1999년 현재 총인구는 약4685만명이다. 평균 수명은 광복 직전에 남자 45세, 여자 49세였으나, 1985년에는 남자 65세, 여자 72세로 40년 동안에 20세 이상 길어졌다. 이후 평균수명은 계속 늘어나 1997년 현재에는 남자 71세, 여자 78세이다.

인구의 성별 구조에서는 전쟁을 치렀거나(1955) 주민의 해외이주가 많았던 때(1944)에는 여초현상(女超現狀)이 나타났다. 지역별로 보면 1985년의 경우 섬유공업ㆍ전자공업 등의 발달로 여성근로자가 많은 공업도시와 관광도시에서 여초현상이 두드러졌다(마산 92.0, 구미 92.1, 경주 92.1 등). 반면, 남초현상(男超現狀)이 나타나는 지역은 중화학공업이 발달한 도시와 광산도시, 여자인구의 유출이 많은 농촌지역 등이었다(창원 111.3, 울산 108.2, 태백 109.6, 정선 109.7 등).

연령별 인구 구조를 보면, 일제 시대에는 청장년층의 해외유출로 청장년층이 감소하고 유년층이 증가했으나 광복 직후에는 반대현상이 나타났다. 1960년대에는 6ㆍ25전쟁 이후의 출생률 상승으로 유년층이 증가하였다. 1970년대 이후에는 유년층은 감소한 반면 청장년층의 비율이 높아졌다. 소득과 문화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노년층의 비율도 증가해 1995년 현재 65세 이상의 노년층은 5.9%를 차지한다. 2000년 11월 현재 우리 나라의 총인구는 약 4612만명이며, 지역별 분포는 〔표 4〕와 같다.

[취락]

1960년에 약 70%를 차지하던 촌락인구는 1980년에 42.7%로, 1990년에는 25.6%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도시의 팽창에 따른 촌락인구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선진공업국에 비하면 촌락인구의 비율은 높은 편이다. 촌락인구의 대부분이 대도시근교를 제외하면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 경지의 분포와 대략 일치한다. 촌락의 대부분은 집촌(集村)을 형성하고 있으며, 산간지대와 개척촌에서는 산촌(散村)을 이룬 곳이 많다. 집촌은 우리 나라의 자연환경과 사회적 환경에 의해 이루어져, 전통적인 가족제도와 풍수사상에 바탕을 둔 자연관(自然觀), 그리고 합리적인 토지이용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촌락의 입지는 낮은 구릉지를 등지고 남사면에 위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남사면 산록입지는 겨울의 북서계절풍을 막을 수 있고, 일사량을 최대한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지를 최대로 경지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위치이다. 우리 나라의 공업화와 때를 같이하는 새마을운동은 촌락경관을 많이 변모시켰다.

불규칙한 집촌은 규칙적인 가옥 배치로 정리되었고, 건축재료와 구조면에서도 중부지방의 ㄱ자집, 남부지방의 一자집 등에서 새마을 표준가옥형으로 전환되어 종래의 초가지붕은 1970년대 이후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아직 전통적 가옥구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촌락의 입지 및 형태에서도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나라의 도시화는 비교적 최근의 일로서 수차에 걸친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국토종합개발계획에 따른 산업구조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도시인구는 1960년의 700만 명에서, 1980년에는 2140만 명으로, 다시 1985년에는 2641만 명으로, 1996년에는 4042만 명으로 증가했으며, 이에 비해 농촌인구는 격감하였다. 1960년에서 1985년 사이에 일어난 도시인구의 증가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1960∼1966년에는 도시중심의 경공업발달에 따르는 인구증가가 있었으며 촌락인구의 감소는 없었다.

1966∼1970년의 제2차경제개발 기간에는 수도권과 태백산 지역에서 급속한 인구증가를 보였으며, 1968년 이후에는 촌락인구의 절대 감소가 나타났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인구증가는 서울의 팽창에 따른 위성도시의 발달 때문이었다.

1970∼1975년에는 대부분의 도시지역과 태백산지역에서 인구가 증가했고, 특히 경부고속도로의 주변 도시와 남동임해공업지역의 포항ㆍ울산ㆍ부산ㆍ마산 등지에서 급속한 인구증가를 보였다. 이 시기의 도시발달은 공업지역이나 공업단지의 발달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1975∼1980년에는 전국에 걸쳐 도시인구는 증가하고 제주도를 제외한 농촌지역은 인구가 감소하였다. 이 기간 동안 도시인구는 460만 명이 증가한 반면, 촌락인구는 180만 명이 감소하였다.

이 시기는 우리 나라 수출산업의 팽창과 관련 산업의 신장기에 해당한다. 1980∼1985년에는 경상북도를 제외한 전농촌지역에서 인구감소가 약화되었다. 1970년대 이후 수도권전철의 부설과 고속도로의 개통, 위성도시의 성장 등으로 팽창된 수도권 인구는 1985년에는 총인구의 39.1%에 이르렀다. 그러나 농촌지역의 인구는 1960년 수준 이하로 감소해, 1985년 전국의 시부인구(市部人口)는 65.4%에 달하였다.

인구분포면에서 보면 농업이 주축을 이루었던 광복 이전까지는 온난한 남부ㆍ서부의 평야지대의 인구밀도가 높고 한랭한 동부ㆍ북부의 산악지대로 갈수록 낮았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에 기존 도시를 중심으로 진행된 공업화로 많은 농촌인구가 대도시로 집중되었다.

지역별 인구밀도를 살펴보면, 1960년에 서울 9,111인ㆍ㎢, 부산 4,826인ㆍ㎢, 제주도 157인ㆍ㎢이던 것이 1989년에는 1만7469인ㆍ㎢, 7,334인ㆍ㎢, 283인ㆍ㎢으로 각각 높아졌다. 제주도의 경우는 감귤과수원과 관광지개발에 따른 전입인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광복 당시 남한에는 도시가 11개(개성 제외)에 불과했으나 1955년 25개, 1975년 35개, 1990년 67개, 2000년 현재에는 7개 광역시를 포함해 79개로 늘어났다.

[산업 활동]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 산업활동의 중심은 농업이었다. 1960년에 총취업인구 가운데 1차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50%를 넘었고,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40%였다.
1962년에 시작된 경제개발5개년계획 이후 급속한 공업화로 농업인구와 국민총생산에서의 비중이 급속히 저하되었다. 1989년에는 1차산업인구가 총취업인구의 19.5%, 국민총생산의 10.3%를 차지하였다.

농업 내부에서도 기계화를 위한 경지 정리, 관개시설의 확충, 수확품종의 개량, 영농의 다각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삼국시대 이후 전국으로 확산된 벼농사는 중부ㆍ남부 지방의 평야지대를 비롯한 전국에서 재배되고 있어 오늘날에도 우리 나라 농업의 주축을 이룬다. 기후의 차이에 따라 중부에서는 조생종, 북부에서는 중생종, 남부에서는 만생종이 재배된다. 1972년 이후에는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ㆍ유신벼 등의 도입과 영농방식의 개선으로 쌀생산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였다.

1997년의 우리 나라 곡물생산량은 614만t이며, 그 중 쌀은 545만t으로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맥류는 전체의 7.7%를 차지한다. 밀은 추위나 가뭄, 토질 등에 대한 적응력이 보리보다 강한 작물이어서 북한지방에서 주로 재배되며, 광복 이전에는 전국 생산량의 3분의 1을 황해도에서 생산하였다. 영남ㆍ호남 지방에서는 그루갈이로 재배된다. 서류는 전라남도ㆍ경상남도의 고구마와 강원도의 감자가 유명하며, 전체 곡물생산량의 약 6.3%를 차지한다.

도시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채소ㆍ화훼ㆍ과수ㆍ육우ㆍ양계 등을 포함하는 근교농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채소류의 생산량은 1970년 250만t에서 1998년에는 925만t으로 크게 늘어났다. 또한, 비닐의 보급으로 시설농업(施設農業)이 발달해 계절에 관계없이 고급채소와 화초를 도시에 공급할 수 있게 되었고 농촌의 경관도 많이 변모하였다. 대관령을 중심으로 하는 고랭지농업에 의한 여름 채소 공급도 최근의 변화이다.

주곡 생산 위주의 자급농업에서 점차 다각적인 영농과 상업적 농업으로 전환되고 있으나, 대다수의 농민들은 호당 경지면적이 1 내외인 좁은 경지에서 전통적인 농업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재래수공업은 임진왜란 이후 관영공업(官營工業)이 폐기되면서 가내수공업으로 성장했으나, 20세기에 접어들어 서구문물이 유입되고 외세가 침입해 쇠퇴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한산의 모시, 안동의 안동포(安東布), 담양의 죽세공품, 강화의 화문석(花文席), 전주의 합죽선(合竹扇)과 한지(韓紙), 안성의 유기(鍮器), 충무의 나전칠기(螺鈿漆器), 운봉의 목기(木器) 등 일부만이 남아 있다.

근대적인 공업은 일제 때 시작되었으나 일본경제에 예속되어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광복 이후에는 국토가 양단되어 전력ㆍ중화학공업 시설의 대부분이 북한에 편중되었고, 소수인 남한의 공장들도 사회의 혼란과 자본 및 기술의 부족으로 정상적인 발전을 하지 못하였다. 1950년부터 공업진흥계획이 수립되었으나 6ㆍ25전쟁으로 기존의 공장시설마저 파괴되었다. 휴전 후 섬유ㆍ식품ㆍ시멘트ㆍ전력 등의 소비재산업에 치중했으나 발전은 미약하였다. 본격적인 공업발전은 1962년부터 시행된 일련의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함께 이루어졌다. 1970년대는 1차산업국가에서 2ㆍ3차산업국가로 급속히 전환하는 시기였다.

1971년에 2차산업인구는 총인구의 17.6%였으나 1980년에는 30.5%, 1989년에는 28.2%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러한 산업구조의 변화는 1970년대에 수출산업이 급신장했기 때문이다. 1971년에 수출액 10억달러를 넘어선 이후 1977년 100억달러, 1989년 623억달러로 19년 동안 62배로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산업별 취업인구도 변화하였다. 무역구조도 1960년에는 총수출액의 80% 이상을 식료품과 원료가 차지했으나 1966년부터 공산품의 비중이 높아져 1989년에는 약 95%를 차지하였다.

우리 나라의 공업은 원료의 해외의존도가 높고 수출지향적인 것이 특징이다. 원유ㆍ철광석ㆍ원목ㆍ원면ㆍ양모ㆍ고무 등의 원료를 수입, 가공해서 그 일부를 다시 수출하는 가공무역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중화학공업은 원료의 수입과 제품의 수출에 편리한 임해지역에 주로 입지하고 있다. 또한, 경공업 편중에서 제철ㆍ기계ㆍ화학ㆍ조선ㆍ자동차 등의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한 뒤 최근에는 다시 반도체ㆍ컴퓨터ㆍ통신기 등의 첨단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여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급속한 공업발달은 우수하고 풍부한 노동력과 국제협력을 통한 기술 및 자본의 도입에 따라 이룩되었다.

[교통과 생활권]

삼국시대에 성립된 역원제(驛院制)에 따른 도로망은 조선시대에 한성∼의주로, 한성∼서수라로, 한성∼평행로, 한성∼동래로, 한성∼제주로, 한성∼강화로 등의 주요 간선이 확립되었다.
이 간선은 현재의 주요철도 및 간선도로와 대략 일치하고 있으나 보행과 우마차의 통행을 위한 것이었다. 차량을 위한 교통로는 일제시대에 전국적으로 건설된 신작로(新作路)이다.

6ㆍ25전쟁 이후 자동차교통이 급속도로 보급되었고, 1962년 이후 경제개발계획과 더불어 산업도로ㆍ고속도로ㆍ관광도로 등이 건설되었으며, 도로포장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998년 현재 남한의 도로연장은 약 8만6989㎞이다. 또한, 고속도로는 총연장 1996㎞이며, 일반국도 1만2447㎞, 특별ㆍ광역시도 1만7670㎞, 지방도 1만7155㎞, 시도 1만5145㎞, 군도 2만5576㎞ 등이다. 1997년 현재 도로포장률은 74%이다.

도로교통은 여객수송에서 1965년 이후 철도를 앞질러 1996년에는 여객수송량의 83.2%를 담당하였다. 또한, 도로교통이 발달하면서 자동차 대수가 급증해 1960년 약 3만대에 불과하던 것이 1997년에는 1041만대를 초과하였다. 자동차는 대도시(서울 약 40%, 부산 약 10%)에 편중되어 도로교통망도 대도시 지역에 특히 잘 발달되어 있다. 서울∼대전간은 자동차 교통량이 가장 많은 구간이다.

철도교통은 1899년에 개통된 노량진∼인천간의 경인선이 효시이다. 광복 당시 남한의 철도 총연장은 2,642㎞였으나 산업철도 부설, 간선철도의 복선화ㆍ복복선화ㆍ전철화, 지하철의 개통 등으로 1999년에는 총연장 6,683㎞로 늘어났다. 부분적으로는 자동차교통에 밀려 수려선(水驪線)과 같이 철거되기도 했으나 화물수송의 18.7%, 여객수송의 4.4%를 담당하고 있다. 철도 중에서 경부선ㆍ경인선ㆍ호남선은 여객수송 중심이며, 중앙선ㆍ영동선ㆍ태백선 등은 화물수송 중심이다.

1975년에 서울의 지하철 1호선 개통 이래 지하철망을 점차 확대시켰다. 부산, 대구, 인천에도 건설되어 1999년 말 현재 전철의 총연장은 661㎞에 이르렀다. 이로써, 여객수송의 대부분을 자동차교통에 의존하고 있던 수도권 및 전국 광역시의 교통난이 크게 해소되었다.

철도와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19세기 말까지는 하천과 연안수로를 이용한 수운이 화물과 여객수송의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조정에 수납하는 조곡을 운반하는 조운(漕運)은 물론, 한강ㆍ금강ㆍ낙동강 등의 주요 하천 곳곳에는 하항이 발달해 중요한 교통로 구실을 하였다. 특히, 한강은 휴전선에 의해 하구의 교통이 막히기 전까지는 바다의 해산물과 내륙의 농산물이 서울로 집산되는 주요 교통로였다.

연안항로도 자동차교통에 밀려 쇠퇴했으나 남해안과 다도해지역, 반도부와 제주도ㆍ울릉도ㆍ흑산도 등을 연결하는 항로는 중요하다. 해외수출상품과 수입원자재가 급증해 부산ㆍ인천ㆍ포항 등의 항만시설을 확장했고, 1998년 현재 약 4900척 524만t에 달하는 선박을 보유하고 있다.

항공 교통은 1962년 대한항공이 설립된 이후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2000년 현재 우리 나라는 77개국과 항공협정을 맺었으며, 국적항공사가 30개 국가의 80개 도시에 운항하고 있다. 서울에서 아시아ㆍ중동ㆍ미주ㆍ유럽 등을 연결하는 국제노선이 있고, 서울은 국내항공노선의 중심이기도 하다.

고속도로의 발달, 기차와 전철의 고속화, 항공교통의 발달로 국내는 1일생활권에 속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활동이 전세계로 확대되면서 지구 전체를 생활권으로 하는 ‘지구촌’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3. 지역 특성

[지역 구분]

우리 나라는 동일한 문화를 가지는 단일민족이면서도, 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이 달라 독특한 성격을 가지는 여러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지역 구분은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가장 보편적이고 지방의 특성을 잘 설명해주는 전통적인 구분을 택하기로 한다. 우리 나라를 크게 북부ㆍ중부ㆍ남부 지방으로 나눈 뒤, 북부지방은 관서와 관북, 중부지방은 기호와 관동, 남부지방은 호남과 영남 등으로 세분한다.

북부지방과 중부지방은 도경계선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ㆍ풍속ㆍ경제활동 등을 기준으로 멸악산맥을 경계로 황해도의 북쪽은 북부, 남쪽 해안지방은 중부지방에 포함시켰다.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의 경계도 차령산맥을 기준으로 하였다. 문화지역의 경계는 언어ㆍ민속ㆍ경제활동 등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점이지대(漸移地帶)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기호 지방]

서울특별시ㆍ인천광역시ㆍ경기도와 경기만을 둘러싸고 있는 황해도의 해안지방과 충청남도 북서해안지방을 포함한다. 주민들의 생활은 한강ㆍ임진강ㆍ예성강ㆍ안성천ㆍ삽교천 유역을 중심으로 발달해, 이들 하천이 모여드는 경기만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공통된 지역적 특색을 보인다. 이 지방의 중심부이자 우리 나라 전체의 심장부인 서울ㆍ인천ㆍ수원ㆍ부천ㆍ안양ㆍ성남ㆍ의정부 등의 수도권은 전 국토 면적의 12.8%에 해당하나, 인구는 2221만 명(2000년)으로 총인구의 약 46%를 차지하는 최대의 인구집중지역이다.

이 지역의 특징은 1차산업의 비율은 낮고 2ㆍ3차산업의 비율이 높다는 데에 있다. 이는 서울을 포함해 경인공업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경인공업지대는 서울의 영등포와 인천을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수도권이 급속하게 도시화하면서 서울∼인천 간은 거의 연속된 도시지역으로 변모하였다. 또한, 안양과 수원 등지도 연속해 도시화가 이루어져, 경인공업지대는 서울ㆍ인천ㆍ부천ㆍ안양ㆍ수원ㆍ성남ㆍ안산을 포함하는 우리 나라 최대의 공업지대로 성장하였다. 경인공업지대는 인구 2000만에 가까운 수도권의 대소비시장은 물론 세계의 시장들을 상대로 한 각종 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경인지방은 동력자원과 공업용수가 풍부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력이 풍부하다. 또한대소비시장이자 정치ㆍ경제의 중심지인 서울과 인접해 자본과 기술의 도입에도 유리하다. 대도시 근교에서는 채소ㆍ과실ㆍ육우 등의 근교농업이 성하고,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고급채소와 화초의 재배도 유명하다. 또한 이 지방 전지역에 걸쳐 젖소의 사육이 급증하고 있다.

[관동 지방]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일부를 포함하며 국토개발계획상의 태백산지역과 일치한다. 관동지방은 태백산맥을 경계로 서쪽의 영서와 동쪽의 영동으로 나누어진다. 영서지방은 대부분이 남한강과 북한강 수계에 속해 우리 나라 최대의 수자원 보유지역이며, 발전ㆍ공업용수ㆍ관광산업 등으로 각광받고 있다. 북한강과 남한강은 예로부터 이 지역의 교통로였으며, 지역적 공통성을 이루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영서지방은 밭농사가 중심이며 감자와 옥수수의 산출이 유명하다. 최근에는 수도권과의 교통이 편리해지고, 고도가 높기 때문에 여름철의 기온이 낮아서 고랭성(高冷性)의 야채재배가 성하며, 고위평탄면을 이용한 기업적 규모의 목축업이 발달하고 있다. 춘천ㆍ원주ㆍ충주 등이 영서지방의 행정ㆍ경제ㆍ문화의 중심지이다. 영동ㆍ동해ㆍ중앙고속도로를 비롯한 서울∼충주, 춘천∼원주∼충주 간의 고속화도로가 발달해 이 지역의 새로운 발전이 기대된다.

영동지방은 동해어장을 바탕으로 수산업이 발달했으며, 최근에는 아름다운 해안과 설악산국립공원 등을 이용한 관광산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은 영동선과 1970년대 이후 건설된 여러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수도권과 더욱 밀접해졌다.

태백산지역은 무연탄ㆍ철광석ㆍ중석ㆍ흑연ㆍ석회석 등의 지하자원이 집중되어 있어 시멘트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중요한 공업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국내의 공업발전을 위한 동력과 지하자원의 공급원이 되고 있다.

[호남 지방ㆍ제주도]

호남지방은 광주광역시ㆍ전라남북도와 그리고 충청남북도의 일부를 포함하며, 중부지방과는 차령산맥, 영남지방과는 소백산맥을 경계로 한다. 금강유역의 공주와 부여를 중심으로 발달한 백제문화권에 속한다. 호남평야ㆍ나주평야 등 남서해안지방의 넓은 평야와 섬진강 유역의 산간분지 및 진안고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뜻한 기후와 넓은 평야를 바탕으로 일찍부터 우리 나라의 곡창지대를 이루었다. 황해안과 남해안의 어장을 끼고 있어 각종 어업과 양식업이 발달하였다. 지하자원이 빈약하고 동력 개발도 늦어 공업 발달은 아직 미약하지만, 교통망의 발달과 정부의 공업정책에 힘입어 새로운 산업발전이 기대된다.

이 지역은 경지의 65%가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호남평야가 있는 전라북도는 논이 총경지의 약 70%를 차지한다. 겨울이 따뜻하고 생육기간이 길어 보리를 2모작으로 재배하며, 쌀보리의 생산량은 전국의 약 60%를 차지한다. 그 밖에도 면화ㆍ대마ㆍ모시 등 섬유작물의 재배가 성하다.

제주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자연환경도 상이해 독특한 지역적 특성을 이루어 왔으며, 언어ㆍ풍속 등에서 옛 것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인구의 성별구조에서는 여초현상이 뚜렷하며, 특히 40세 이상의 장년층과 노년층에서 현저하다. 제주도는 원래 고구마ㆍ보리ㆍ유채 등의 밭농사가 중심이었으나 1960년대 이후 과수ㆍ채소ㆍ특용작물 등 상품작물 재배로 전환되었고, 특히 귤생산이 활발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목축은 현대적인 기업적 육우사육으로 발전했고, 온난한 겨울과 남국적인 풍경으로 인해 국제적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영남 지방]

경상남북도와 부산ㆍ대구ㆍ울산광역시를 포함하는 영남지방은 낙동강과 형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일찍이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건설했던 곳이다. 이 지역은 소백산맥을 경계로 북쪽의 중부지방, 서쪽의 호남지방과 인접해 있다. 이 지방은 언어ㆍ풍속ㆍ생활양식에서 뚜렷한 지역성을 보이며 전통적인 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는 지역 중의 하나이다.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의 불교문화와 안동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유교문화는 현재도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지역은 경상북도 북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논농사지역으로 호남지방과 더불어 우리 나라의 곡창을 이룬다. 전체 경지의 약 60%가 논이지만 2모작으로 보리를 재배하므로 벼와 보리의 생산지가 일치한다. 부산과 대구의 근교에는 1960년 이래 근교농업이 급속하게 발달하였다. 대구의 사과와 김해ㆍ구포의 배ㆍ채소 등은 전국적인 상권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양잠과 약초 재배도 성해 뽕밭의 면적은 전국의 약 45%를 차지한다. 이 지역은 동해남부어장과 남해어장을 끼고 있어 수산물 생산량이 전국의 약 2분의 1을 차지하며, 부산은 원양어업기지이다.

남동임해공업지역과 영남내륙공업지역은 1970년대의 급속한 공업발전을 주도한 곳이다. 남동해안지역은 항만건설에 유리한 자연조건과 온난한 기후, 수도권 및 남서지방과 연결되는 경부철도ㆍ경부고속도로ㆍ남해고속도로, 정부의 공업정책 등에 힘입어 1970년대에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급신장하였다. 제철ㆍ정유ㆍ석유화학 공업에서는 원료의 대부분을 수입해 일부를 다시 수출하는 가공무역이 발달하였다. 우리 나라의 조선ㆍ자동차 공업의 중심지이며, 금속 및 기계공업의 종업원수는 전국의 약 40%를 차지한다.

[관서 지방]

철령관(鐵嶺關)의 서쪽으로 평안남북도와 황해도의 일부를 포함하며, 북으로는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과 마주하고 남으로는 멸악산맥을 경계로 중부지방에 인접한다. 이 지역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옛터로서 중국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였으며, 한민족이 북방으로 진출하는 근거지였다. 또한 북방 이민족의 침입도 잦아 압록강 상류의 자강고원(慈江高原) 지방은 시대에 따라 국경선의 변화가 심했던 곳이다. 광복 이후 북한이 이 지방을 점령하게 된 것도 이러한 지리적 위치에 기인한 바 크다. 멸악산맥 이남의 황해도 일부는 언어ㆍ풍속 등으로 보아 중부지방에 속하지만, 휴전선 때문에 실제로는 관서지방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1945년 당시 토지이용에서 밭이 차지하는 비율은 황해도 75%, 평안남북도 약 80%로 밭농사가 농업의 주축을 이룬다. 이는 강수량이 1,000㎜ 이하여서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고 생육기간도 중부ㆍ남부 지방에 비해 짧기 때문이다. 밭작물로는 밀ㆍ보리ㆍ조ㆍ수수 등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산출된다. 황해도의 연백평야ㆍ재령평야, 대동강 하류의 평양평야, 청천강 하류의 박천평야 등에 일제강점기에 확충된 관개시설도 논농사도 활기를 띠고 있다.

이 지역에는 철ㆍ석탄ㆍ금ㆍ중석ㆍ흑연ㆍ은ㆍ규사 등 지하자원의 매장량이 풍부하다. 철은 황해도 북서부의 은율ㆍ재령ㆍ하성과 평안남도의 개천ㆍ강서 등지에서 주로 산출되며, 송림에는 제철소가 있다. 무연탄은 평안북부탄전과 남부탄전이 주산지이며, 유연탄은 사리원의 봉산탄광에서 산출된다. 평양과 남포를 중심으로 하는 관서공업지대는 이 지역의 지하자원과 압록강 수풍에서 발전되는 풍부한 동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관서지대는 중공업에 치중해 소비재 생산이 빈약하다.

[관북 지방]

함경남북도를 포함하는 관북지방은 한민족(韓民族)의 북방진출과 여진족의 남하세력이 부딪치는 곳으로, 조선시대까지도 충돌이 끊이지 않아 역사적인 배경에 따라 언어와 풍속의 지역적 차이를 나타낸다. 그러나 밭농사와 어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오랜 기간의 공동생활로 지역적 유사성이 강화되었다.

이 지역은 개마고원과 좁은 해안지대로 나누어진다. 해발고도가 높고 겨울이 길며, 연강수량이 600㎜ 내외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다. 개마고원은 벼농사가 불가능해 밭농사가 주를 이룬다. 함경북도는 밭이 92%, 함경남도는 87%이다. 밭작물인 감자ㆍ귀리ㆍ피의 생산량은 전국의 50%를 초과한다.

해안지방은 북쪽의 한류와 남쪽의 난류의 영향으로 각종 어류가 풍부하며, 주요 수산물은 대구ㆍ명태ㆍ고등어ㆍ청어ㆍ방어 등이다. 이 지역은 지하자원이 풍부해 철ㆍ석탄ㆍ마그네사이트ㆍ흑연ㆍ금ㆍ은ㆍ구리 등이 많이 산출된다. 특히, 이원ㆍ단천의 철, 아오지의 갈탄, 이원의 마그네사이트 등은 이 지역 공업발전의 기초가 되고 있다.

개마고원에서 압록강으로 북류하는 하천은 장진강ㆍ부전강ㆍ허천강 등이다. 이들 하천의 유로를 경사가 급한 남쪽해안사면으로 변경해 대규모 수력발전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풍부한 지하자원과 더불어 함흥ㆍ청진 등을 중심으로 하는 관북공업지대의 기초가 되고 있다. 장진강발전소와 부전강발전소는 현대적인 발전 규모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1945년 이전에는 우리 나라 최대의 발전시설이었다.

<이찬>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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