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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23 (화)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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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5667      
[고려] 고려 시대 연구사 (민족)
고려(연구사) 고려 시대 연구사

세부항목

고려 역사 개관
고려의 성립과 발전 1
고려의 성립과 발전 2
고려의 제도
고려의 대외 관계
고려 문화
고려의 역사적 성격
고려 시대 연구사
고려 시대 참고문헌

오늘날 고려 시대사에 대한 연구는 자못 활발하고 연구 성과도 많은 편이다. 비교적 많은 인원이 고려 시대 연구에 참여하고 있고, 각 부문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고려 시대사 연구의 활기는 1960년대 이후 비롯된 것으로 그전까지는 한산하였다.

일제 시기의 고려 시대사 연구는 전반적인 한국사연구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전혀 방치된 상태였다. 몇몇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고려 시대의 역사 지리나 정치사·대외 관계 등에 대한 연구가 있었으나, 그것은 단편적인 사건의 고증적 연구에 불과했고, 그 성과도 미미하였다. 반면 한국인 학자들의 고려 시대 연구는 더욱 보잘 것 없었다.

신채호(申采浩)는 〈조선역사상 1천년래 제1대사건〉에서 묘청의 난을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조명했고, 이병도(李丙燾)의 〈인종조의 서경천도운동과 그 반란〉(日文), 김상기(金庠基)의 〈삼별초와 그의 난에 대하여〉, 윤용균(尹瑢均)의 〈고려 의종조에 있어서의 정중부난의 소인과 그 영향〉(日文) 등 몇몇 학자들이 몇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나 성과는 크지 못하였다. 다만, 백남운(白南雲)이 사회경제사적인 입장에서 고려 시대사를 서술한 ≪조선봉건사회경제사상≫(日文)이 나온 것은 특이한 일로 그 의의가 컸다.

고려 시대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광복 후에 시작되었다. 이병도는 일제 시대에 발표한 논문을 광복 후의 연구 업적과 함께 ≪고려시대의 연구≫를 펴내어 고려시대의 풍수도참설의 발전을 고찰하였다. 김상기도 삼별초 연구를 합친 연구서인 ≪동방문화교류사논고≫ 안에 〈여송무역소고〉·〈고려무인정치기구고〉를 발표하였다. 이들 광복 직후의 고려 시대사 연구서의 출간은 민족 항일기부터의 연구 업적을 토대로 나올 수 있는 성과였다.

그러나 새로이 고려 시대사 연구에 참여한 젊은 세대의 연구 논문은 6·25가 끝난 뒤부터 배출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그것은 ≪역사학보 歷史學報≫의 간행에 크게 힘입게 되었다. 그리하여 1950년대 ≪역사학보≫를 비롯한 몇 개의 연구지에 새 역사학도들에 의한 고려 시대사 연구 논문이 상당량 발표되었다. 윤무병(尹武炳)이 1953년 처음으로 〈고려북계지리고〉를 발표한 이후, 1954년 이광린(李光麟)이 〈기인제도의 변천에 대하여〉를 내놓았고, 1955년 박성봉(朴性鳳)이 〈해동공자 최충소고〉, 이용범(李龍範)이 〈여란무역고 麗丹貿易考〉, 김용덕(金龍德)이 〈향·소·부곡고〉를 발표했으며, 1956년 이기백(李基白)의 〈고려경군고〉, 윤무병의 〈소위 적현(赤縣)에 대하여〉, 양원석(梁元錫)의 〈여말의 유민문제〉, 천관우(千寬宇)의 〈여말선초의 한량〉, 김용덕의 〈고려시대의 서경에 대하여〉 등 여러 논문이 나오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이, 1950년대에는 광복 후의 새로운 사학도들에 의한 고려 시대 연구 논문이 상당수 발표되었으나, 그것은 아직도 개별적인 문제 연구에 불과했고, 그 분야의 계통적이며 집중적인 연구 업적은 1960년대에 결실되기 시작하였다. 먼저 1960년대 초에는 고려 시대에 대한 두 개의 시대사가 출간되었다. 이병도의 ≪한국사≫ 중세편과 김상기의 ≪고려시대사≫가 그것이다. 그것들은 고려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길잡이가 되었다. 특히, 이기백이 고려 경군에 대한 논문에 이어 일련의 고려 시대 병제를 연구해 ≪고려병제사연구≫로 집대성했고, 변태섭(邊太燮)이 〈만적란발생의 사회적 소지〉 이후 일련의 고려 정치 제도를 연구한 논문을 모아 ≪고려정치제도사연구≫를 출간함으로써 고려사 연구는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보다 젊은 학자들이 고려 시대 연구에 참여해 새로운 시각으로 각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담당하였다. 특히, 고려시대의 시대적 변화와 사회적 성격 등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끈질긴 연찬을 가함으로써 그 성과는 매우 컸다. 그리하여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들어서는 수많은 연구 논문과 그것들을 집대성한 연구서가 배출되었다. 먼저, 고려 초기의 호족 세력과 왕권과의 관계에 대해 하현강(河炫綱)·김광수(金光洙)·강희웅(姜喜雄) 등의 연구가 있다. 연구서로는 이기백 편 ≪고려광종연구≫가 출간되어 고려 초기의 호족 연합 정권과 그 뒤의 중앙 집권화 정책에 대해 고찰하였다.

다음 고려 사회의 성격에 대한 귀족제 사회설과 관료제 사회설의 논쟁을 중심으로 박창희(朴菖熙)·김의규(金毅圭)·박용운(朴龍雲)·이기백·변태섭 등의 연구가 있었다. 연구서로는 황운룡(黃雲龍)의 ≪고려벌족에 관한 연구≫, 허흥식(許興植)의 ≪고려사회사연구≫, 홍승기(洪承基)의 ≪고려귀족사회와 노비≫, 이수건(李樹健)의 ≪한국중세사회사연구≫가 나와 가장 풍요한 업적을 이루었다. 지배 체제에 대한 연구로는 변태섭의 ≪고려정치제도사연구≫, 이기백의 ≪고려병제사연구≫ 외에 하현강의 ≪고려지방제도의 연구≫, 박용운의 ≪고려시대대간제도연구≫, 허흥식의 ≪고려과거제도사연구≫, 신천식(申千湜)의 ≪고려교육제도사연구≫ 등 각 방면의 값진 업적이 발표되었다.

토지 제도에 대한 연구로는 강진철(姜晉哲)이 ≪고려토지제도사연구≫를 내놓았고, 연구논문으로는 이우성(李佑成)의 영업전(永業田), 송병기(宋炳基)의 농장, 민현구(閔賢九)의 녹과전, 김용섭(金容燮)의 양전제에 관한 것이 눈에 띈다. 사상사 방면에도 적지 않은 연구 성과가 있었다. 이병도의 ≪고려시대의 연구≫는 고려의 풍수도참사상의 발전을 고찰했으며, 조명기(趙明基)의 ≪고려 대각국사와 천태사상≫, 김두진(金杜珍)의 ≪균여화엄사상연구≫, 이희덕(李熙德)의 ≪고려유교정치사상의 연구≫ 등이 나왔다. 연구 논문으로는, 유교 사상에 이병도·박성봉·이희덕의 업적이 있고, 불교 사상에 안계현(安啓賢)·최병헌(崔柄憲)·고익진(高翊晉)·채상식(蔡尙植) 등의 연구 성과가 돋보인다.

문화면에는 문화 의식과 역사 의식에 대해 김철준(金哲埈)·고병익(高柄翊)·이우성·박창희 등의 연구가 있고, 문학에 이명구(李明九)·장덕순(張德順), 미술에 고유섭(高裕燮)·진홍섭(秦弘燮) 등의 논문이 있다. 무신란과 무신 정권에 대해서는 김상기·변태섭·민병하(閔丙河)·김의규·정두희(鄭杜熙)·박창희의 연구가 있고, 민란과 삼별초의 난에 대해서는 역시 김상기·변태섭의 논문이 보인다. 고려 후기 사회에 대해서는 민현구·김윤곤(金潤坤)·이기남(李起男) 등이 권문 세가와 신흥 사대부의 대립을 해명하는 연구를 하였다. 대외 관계에 관한 연구로는, 거란 및 여진족과의 관계는 박현서(朴賢緖)·이용범·김상기·김광수, 그리고 송나라와의 관계는 김상기·전해종(全海宗) 등의 연구가 있다. 그리고 원나라와의 관계는 고병익·강진철·유홍렬(柳洪烈) 등의 연구가 보인다.

1990년대에 들어 고려사 연구는 과연 활기를 띠게 되었으며 그것은 특히 소장 학자들의 학위 논문의 형식으로 구체화되었다. 이것은 젊은 학자들의 고려사연구에 대거 참여로 저변이 확대되어 그 장래가 희망적인 점이다. 이들은 각분야에서 골고루 많은 업적을 내놓았는데 특히 정치사·정치 제도사에서 볼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홍승기는 몇사람의 논문을 합쳐 ≪고려 태조의 국가 경영≫을 내놓았고, 박용운은 ≪고려개경연구≫·≪고려시대 관계·관직연구≫를 저술했으며, 이밖에 학위 논문으로 신수정(申守楨)의 재상제도, 김창현(金昌鉉)의 정방 연구가 돋보였다. 정치 세력 분야에서는 이익주(李益柱)·박재우(朴宰佑)의 고려 후기 정치 세력 연구와 김광철(金光哲)의 세족층(世族層) 연구가 집중되었고 김용선(金龍善)·박용운의 음서제 연구에 성과를 거두었다.

지방 제도 연구로는 김일우(金日宇)·김아네스의 고려초기 지방지배연구가 있었고, 박종기(朴宗基)의 부곡제연구, 구산우(具山祐)·박은경(朴恩卿)의 향촌 사회 분석이 눈에 뛴다. 군사 제도로는 홍승기·홍원기·정경현의 경군인 2군·6위 연구가 잇따라 발표되었고, 권영국(權寧國)의 고려 후기 군사 제도가 이를 이어 나왔다. 교육 제도로는 박찬수(朴贊洙) 및 민병하·신천식의 논문이 돋보인다.

경제사 분야에서는 윤한택(尹漢宅)의 고려 전기 사전(私田) 연구와 박경안(朴京安)의 고려 후기 토지 제도 연구가 있었고, 사원 경제(寺院經濟) 연구로 이상선(李相瑄)·이병희(李炳熙)의 업적이 눈에 뛴다. 재정사 연구로 김옥근(金玉根)·안병우(安秉佑)의 논문이 있고, 최정환(崔貞煥)의 녹봉제 연구와 김재명(金載名)·박종진(朴鍾進)의 부역 제도 연구가 새로웠다.

사상사 방면에는 허흥식의 불교사 연구, 김광식(金光植)의 무인 정권과 불교계 연구가 있었고 성리학 수용 연구로 이원명(李源明)·변동명(邊東明)의 성과가 컸다. 무신 정권에 대해서는 김당택(金塘澤)·민병하의 연구에 이어 이정신의 무신 정권기 농민·천민 항쟁 연구가 있었으며 윤용혁은 대몽 항쟁사를 상술하였다.

이상에서 찾아본 바와 같이, 고려 시대사에 대한 연구는 근년에 이르러 인원이나 연구성과에 있어 자못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개척되지 않았던 많은 문제점이 해명되고 심도 있는 연구 업적이 나오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와 1990년대에 이르러 수많은 연구서가 출간되기 시작한 것은 그와 같은 활발한 고려 시대사 연구의 결실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연구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믿어진다.

<변태섭>

출전 : [디지털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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