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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3-22 (금)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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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4103      
[남북국] 발해 (두산)
발해 渤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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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둥베이[東北] 지방 동부ㆍ연해주ㆍ한반도 북부에 있던 나라(698~926년).

[발해사 개요]

668년 고구려가 망한 후, 고구려 유민들은 산산이 흩어지게 되었다. 신라로 귀화한 사람, 당으로 들어간 사람, 만주의 말갈족과 혼재하여 사는 사람 등 패망국의 한을 안고 살게 되었다. 당(唐)나라는 고구려 유민 2만 8000여 가호를 중국 땅으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이때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大祚榮;뒤의 고왕)도 그의 아버지로 알려진 걸걸중상(乞乞仲象 또는 大仲象)과 함께 요서지방의 영주(營州;조양)로 옮겼다. 당시 영주는 당나라가 북동부의 이민족을 제어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운영한 전략도시였다. 이곳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하여 말갈인ㆍ거란인 등 다수 민족이 집결되어 있었다. 이들은 당나라의 세력이 약화되면 언제든지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 696년에 거란족 출신 이진충(李盡忠)이 요서지방에서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통치하던 당나라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난은 1년여 만에 진압되기는 하였으나, 당나라는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돌궐의 힘을 비는 등 상당한 어려움에 처하였다. 이러한 혼란기를 틈타 고구려 출신인 대조영이 유민들을 규합하고 걸사비우(乞四比羽)가 이끄는 말갈 세력과 손을 잡아 당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당나라는 대조영 세력을 공격하였으나, 대조영은 공격해오는 이해고(李楷固)의 군대를 천문령(天門嶺) 싸움에서 격파하고 당나라의 세력권에서 벗어나 남만주 지역에 위치한 동모산[東牟山, 지금의 길림성 돈화성 부근에 있는 육정산(六頂山)]에 정착하여 성을 쌓았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개국하고, 국호를 발해,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 사서(史書)에 진국(震國)이라 칭하던 것을 "발해군" 왕으로 봉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재평가되고 있다.

발해는 고구려 출신 대조영(고왕 高王)이 국가를 세웠으나, 만주지방에 혼거하던 말갈족도 함께 포용하여, 일반적으로 고구려 유족이 주로 상류 지배층을 형성하였고, 말갈족이 하류층을 형성하였다. 대조영은 북서쪽의 거란이나 돌궐족의 성장으로 요서지방이 막혀 당나라의 방해를 받지 않고 발해를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었다. 당도 결국 발해의 자립을 인정하고 외교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대조영을 이어 그의 아들 대무예(大武藝)가 제2대 무왕(武王)으로 즉위하여 연호를 인안(仁安)으로 하고, 부왕이 건국한 발해를 무력을 통한 강력한 대외정책으로 국토를 넓히는 데 주력하였다. 무왕은 당시 송화강 유역에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흑수말갈(黑水靺鞨)을 압박하였다. 또한 그 과정에서 동생 대문예(大門藝)가 말갈을 공격하라는 왕명을 어기고 당나라로 망명하자, 장문휴(張文休)로 하여금 당나라의 등주(지금의 산둥반도)를 공격하게 하여 성주를 살해하고 당나라에 위압적으로 대항하는 면모를 보였다. 이 공격에 성공함으로써 당나라로 하여금 발해를 더 이상 멸시하지 못하게 하고, 발해 북쪽의 흑수말갈과 유대관계도 약화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제3대 문왕(文王)은 즉위 후 연호를 대흥(大興)이라 하고, 부왕이 군사력을 이용한 대외적 팽창에 주력한 데 비하여 주로 내치와 외교에 주력하였다. 우선 문왕은 좁은 지역인 동모산(東牟山)에서 벗어나 약간 남쪽에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를 건설하고 도읍을 옮겼다. 농경지가 넓어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리고 또 다시 얼마 후 북쪽에 위치한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로 천도하였다(742~755년 사이). 이곳은 발해 북쪽에 세력을 펴고 있던 흑수말갈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발해의 국세는 말갈 세력을 충분히 압도할 수 있는 수준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또 다시 두만강 하류 지역에 위치한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로 옮겼다(785~794년 사이). 이곳은 동해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다. 발해는 일본과의 외교관계와 교역을 도모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에 수시로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는 물론 관무역의 경제적 발전을 꾀하였다. 발해는 당과도 사신을 수시 파견하여 친당외교를 폈고, 공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신라와는 경계하는 입장으로 활발한 교류를 하지 않았다.

그뒤 여러 왕들이 단명하다가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大野勃)의 4세손인 대인수(大仁秀)가 제10대 선왕(宣王)으로 15년간 재위하였는데, 이 시기는 영토를 넓히고 내치를 충실히 한 발해 중흥기라 할 수 있다. 우선 영토를 크게 넓혀 흑룡강 하류 지역까지 개척하고 흑수말갈을 압박하여 말갈과 당나라의 교류가 중단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문왕 때의 3경 외에 2경을 더 개척하여 서경압록부(西京鴨綠府)와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를 둠으로써 전국이 5경 15부 62주의 행정구역을 갖추었다. 그리하여 과거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고 오히려 북쪽 연해주 지역으로 더 진출한 형세를 갖게 되었다. 발해는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호칭할 정도의 국세를 가지게 되었다.

발해는 제15대 왕인 대인선(大諲譔)에 이르러 종말을 고했다. 북서쪽으로부터 점차 성장하던 거란족[契丹族]이 중국 중원으로 나가기 이전에 후환이 될 수 있는 발해를 먼저 공략하였다. 결국 926년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는 발해 상경용천부를 공격하여 쉽게 굴복시켰다. 발해는 15대 228년간의 역사를 남긴 채 사라졌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왕조로서, 중국이나 신라 등과 활발한 정치, 경제적 교류를 하였더라면 보다 강력한 왕조로서 그 역사적 역할이 막강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면으로는 고구려의 문화 바탕위에 불교적 색채가 강한 문화를 발전시켰고, 당과의 교류를 유지하여 당문화를 받아들여 문화국가로서의 입지를 유지하였다. 특히, 오랫동안 수도로 사용된 상경용천부의 도성터는 동서 길이가 약 4.6㎞, 남북 약 3.3㎞의 크기로 짜임새있는 도성임이 밝혀졌다. 이는 중국 장안성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것이다.

1. 성격

중국의 《구당서(舊唐書)》<발해말갈전(渤海靺鞨傳)>에서는 발해 건국자 대조영(大祚榮)을 "고려별종(高麗別種)"이라고 기록하고 있어, 발해와 고구려의 관련성을 명시하고 있다. 제2대 무왕(武王)이 일본에 사신을 보내고 국왕 성무(聖武)에게 처음 국서를 보내면서 수호를 청한 문서에서, "이 나라는 고구려(高句麗)의 옛 땅을 회복하여 계승하고 부여(夫餘)의 유속(遺俗)을 지킨다."고 하여 발해 국가의 성격을 설명하였다. 또한, 제3대 문왕은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를 '고구려(高句麗) 국왕'이라고 칭하였다. 이와 같이 발해국은 고구려 계통임을 분명히 밝혔다. 한편, 일본에 파견된 발해 사신의 대부분이 고구려의 왕족명 혹은 한족명(漢族名)을 가진 자였으나, 만주족(滿洲族) 이름을 가진 자가 극히 적었다는 사실 등을 종합하여, 발해가 고구려 계열의 속성을 가진 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또, 《구당서(舊唐書)》<발해말갈전(渤海靺鞨傳)>에는 대조영이 동쪽으로 피난하여 발해를 건국하였는데, 그 곳이 "계루(桂婁)의 옛 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은 대조영의 적자(嫡子) 대무예(大武藝)와 또 대무예의 적자(嫡子) 대도리행(大都利行)을 각각 "계루군왕(桂婁郡王)"으로 책봉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계루는 고구려 계루부의 명칭해서 유래했으므로 이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음을 당도 인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통치제도

군사제도

군사제도 역시 발해의 국세가 강화됨에 따라 확장 보강되는 면을 보였다. 대외 사신(使臣)도 초기에는 무관출신이 중심을 이루다가 후에 정치가 안정됨에 따라 문관으로 대체되었다. 군사조직도 점차 변화 발전하는 모습이 발견되나, 구체적인 조직이나 역할 등을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군사업무를 담당한 부서는 정당성의 지부(智部)-융부(戎部)와 수부(水部)로 군사 업무, 무관 임명, 군사 양성, 봉수ㆍ역 참 관리, 군사지도ㆍ전차ㆍ수레ㆍ무기 관리 등을 관장하였다.

왕실과 궁중을 지키는 중앙 군사조직은 10위(十衛)로 좌우맹분위(左右猛賁衛)ㆍ좌우웅위(左右熊衛)ㆍ좌우비위(左右羆衛)ㆍ남좌우위(南左右衛)ㆍ북좌우위(北左右衛)가 있다. 각 위에는 대장군 1명, 장군 1명을 두었다.

9세기에는 중앙과 지방을 방어할 수 있는 보다 확대 강화된 군사조직으로 발전하여 위군(왕실군)과 부병(지방군)으로 분리 조직되었다. 변경을 방비하는 지방군인 좌우신책군(左右神策軍),  황실 호위군인 좌우삼군(左右三軍), 지방의 부병인 120사(司)가 있었다.

3. 일본과의 관계

발해는 건국 후 국가의 기초를 다지고 한편으로는 주변국에 대한 방어 차원의 국제연합을 위해 외교에 노력하였다. 발해의 대일외교는 정치ㆍ경제ㆍ문화면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고, 나아가 중국과 일본간의 관계사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당 문화를 일본에 전하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발해가 처음 일본에 사신을 파견한 것은 727년(무왕 인안 8)(일본 성무왕 신귀 4)이다. 고인(高仁), 고제덕(高齊德) 등 24인을 파견하였으나, 겨우 8명만이 나라(奈良, 平安京)에 도착하였다. 나아가 일본국을 칭찬하고, 선물을 보내며 장차 인접국으로서 서로 교섭을 잘 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에 대하여 일본 성무(聖武)왕은 각종 비단을 답례품으로 보내고, 인전충마려(引田虫麻呂)를 국서와 함께 회례사(回禮使)로 파견하였다. 이렇게 하여 발해-일본간 국교가 열렸고, 두 나라는 그 후 919년까지(대인선 13) 배구(裴璆)를 마지막 사신으로 파견하여 206년간 교류가 이루어졌다.

정치적 목적으로 출발한 양국간 외교는 우호 측면에서 그리고 경제ㆍ문화적으로 소득이 컸다. 발해에서 일본에 간 길을 ‘일본도(日本道)"라고 하고, 일본인이 발해를 거쳐 당에 왕래한 길을 ‘발해도(渤海道)"라고 하였다. 발해 사신이 일본 육지에 도착하면, 일본 정부는 존문사(存問使) 또는 영객사(迎客使) 등을 파견하여 맞아들이고, 중앙에서는 태극전(太極殿)에서 연회를 베풀고 일본관위(從2位 ~ 從6位)를 수여하는 등 환대하였다. 영빈관을 설치하여 숙소를 제공하고, 문인학사를 보내 시문을 교환하였다.

발해는 우선 정치적으로 대륙에서 신라ㆍ당ㆍ흑수말갈 등 주변 세력에 대항해야 하는 입장에서 일본과의 국교를 통해 연합세력권을 형성하여 안정을 도모하였다. 일본은 대륙국가와의 통교를 통해 정치적 폭을 넓히고, 또한 한반도를 통일한 신라를 견제하는 데 발해가 큰 도움이 되었다.

경제적 의미도 크다. 사신 왕래는 예물교환 형태의 ‘궁중무역’이라는 국제무역이었다. 양국 사이에는 수행원을 통한 일반무역도 이루어졌다.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발전하면서 무역은 더욱 확대되었다. 국제정보도 교환되었다. 발해는 당에서의 안사(安史)의 난이 발생했음을 순인(淳仁) 왕에게 알려주어 일본은 이에 대비하였다. 이 외에도 당나라 왕 교체나 사회혼란 등 정치변화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다.

문화교류로서는 발해 사신과 일본의 시ㆍ부 등 문장이나 문학에 능한 문인학자 사이에 교류가 이루어졌다. 도다이사[東大寺]에서는 대당악(大唐樂)ㆍ발해악(渤海樂)을 연주하기도 하였다. 또 서양의 역법인 선명력이 전해지기도 하였다. 또한 당에 유학하는 학승과 일본 국왕이나 정부 사이를 발해 승려가 문화적 중개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발해에는 대외교류 행로가 발달하여 일본도(日本道-수도 상경에서 용원부 동경방향), 신라도(新羅道-상경에서 남해부 남경방향), 조공도(朝貢道-상경에서 압록부 서경방향), 영주도(營州道-상경에서 장령부 방향), 거란도(契丹道-상경에서 부여방향)의 5개 대외교통로가 있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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