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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9-22 (일)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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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한문학 (한메)
한문학 漢文學

중국의 고전문학, 즉 경서(經書)·사서(史書)·시문(詩文) 등과 한문으로 기록된 한국 문학을 가리키는 말.

한학(漢學)이라고도 하며 양학(洋學)에 대응되는 뜻으로도 쓰인다. 또한 한국·일본 등에서는 중국의 유학(儒學)이나 중국에 관한 학문의 총칭으로서 사용하고, 중국에서는 송학(宋學;性理學)에 대한 대칭어로 한(漢)나라의 유학을 바탕으로 하는 모든 학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또 <한문학>이라는 말은 중국에서는 잘 쓰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한국·일본·베트남 등지에서 한자 공용으로 인해 생성된 문어체(文語體)의 시문장을 일컫는 말이다. 넓은뜻으로 한국에서 사용하는 한문학은, 중국 문자(漢字)와 문학형식을 빌려 한국 민족의 정서와 사상을 표현한 문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문학의 유형적 특징]

한문학 분류에서 그 창시자라 볼 수 있는 조비(曹丕)나 육기(陸機)의 《전론(典論)》 <논문편> 또는 <문부(文賦)>를 보면 시(詩)·부(賦)·비(碑)·뇌(?)·명(銘)·잠(箴)·송(頌)·논(論)·주(奏)·설(說)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것은 양(梁)나라의 소통(蕭統)이 엮은 《문선(文選)》에 의해 크게 부·시·문(文)의 3가지를 나뉘었고, 같은 양나라의 유협이 쓴 문학론집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 이론적 체계가 확립되었다.

한국에서는 조선 성종 때 서거정(徐居正)이 엮은 시문집(詩文集) 《동문선(東文選)》이 분류상의 기준이 되고 있다. 그 내용은 신라로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시문을 수록한 것인데 다음과 같다.

사(辭)·부·고시(古詩)·율시(律詩)·절구(絶句)·배율(排律)·조칙(詔勅)·교서(敎書)·제고(制誥)·책문(冊文)·비답(批答)·표전문(表箋文)·계(啓)·장(狀)·노포(露布)·격문(檄文)·잠·명·송·찬(贊)·주의(奏議)·차자(箚子)·잡문(雜文)·서독(書牘)·기(記)·서(序)·설·논·전(傳)·발문(跋文)·치어(致語)·변(辨)·대(對)·지(志)·원(原)·첩(牒)·의(議)·잡저(雜著)·책제(策題)·상량문(上樑文)·제문(祭文)·축문(祝文)·소문(疏文)·도량문(道揚文)·재사(齋詞)·청사(靑詞)·애사(哀詞)·뇌문·행장(行狀)·비명(碑銘)묘지(墓誌) 등이다. 이들을 성격별로 묶으면 시부류(詩賦類)·논변류(論辨類)·주소류(奏疏類)·조령류(詔令類)·서발류(序跋類)·증서류(贈序類)·전지류(傳志類)·잡기류(雜記類)·사독류(私牘類)·소설류(小說類)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을 오늘날의 통념으로 보면 문예적인 것과 실용적인 것이 혼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한문학은 현대 개념의 문학, 즉 소설·시·희곡·수필 등과는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 중국 문학을 시대에 따라 살펴보면 대체로 시경(詩經)·초사(楚辭)·한부(漢賦)·육조병려·당시(唐詩)·송사(宋詞)·원곡(元曲)·명소설(明小說)·청극(淸劇)으로 이어져 왔으며 이들이 우리 한문학에 직접·간접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한국의 한문학은 중국 문학을 그대로 추종한 것이 아니고 독단적·민족적인 체취와 품격을 지니고 있다.

[상고(上古)시대]

한자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유입된 시기는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된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나 확실하지는 않다. 또 한문학이 언제 처음으로 한국에 전래되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현존하는 한문학 작품으로 최고(最古)의 것은 고조선의 뱃사공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麗玉)이 지었다는 4언 4구(四言四句)의 악부(樂府)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로 그 원문은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秦公何(님이시여 강을 건너지 마세요. 당신이 강을 건너다가 빠져 죽으면 어이하십니까>의 4구절이다.

그 밖에 단군의 사관(史官)이었던 신지(神志)가 문자와 사서(史書)를 지었다고 하나 사서는 전하지 않고 비사 몇 구가 전한다. 속사(俗詞)로서는 기자(箕子)가 조선에 와서 기자조선을 세우고 8조(條)의 정교(政敎)를 행하였으므로 백성들이 노래를 지어 찬송한 것으로, 《서경(西京)》 《대동강(大同江)》 2곡이며 사(詞)는 전하지 않고 곡목만이 남아 있다.

또한 <단군신화>가 일연(一然)의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데, 그 글은 짧으나 당시에 이미 산문문학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는 중국에서 유교가 전래되자 태학(太學)을 세우고 유학을 가르쳤다. 태학박사 이문진(李文眞)은 《유기(留記;고구려의 역사기록)》 100권을 개찬하여 《신집(新集)》 5권을 만들었다. BC17년 유리왕(瑠璃王)은 《황조가(黃鳥歌)》를 지었는데 그 원문은 <翩翩黃鳥 *雄依相 念我之獨 誰其與歸>이다. 유리왕이 아내를 여읜 뒤 화희(禾姬)와 중국 태생의 치희(雉姬) 두 후실을 얻었는데, 서로 불화가 생겨 치희가 중국으로 달아나자 왕이 몹시 탄식하여 쌍쌍이 노니는 꾀꼬리를 보고 지었다고 한다.

414년 장수왕(장수 2)은 광개토왕비(廣開土王碑)를 건립하였는데 그 비문은 현재 전해지는 한문학 작품 가운데 연대가 확실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첫머리에 고구려 건국의 내력이 서술되어 있고 이어서 광개토왕의 위대한 행적이 서술되어 있다. 고구려의 중원비(中原碑)는 문자왕의 남진순수비(南進巡狩碑)인데, 4면에 예서체 비문이 있다.

영양왕 때의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고구려에 침입한 수(隋)나라 장군 우중문(于仲文)에게 보내는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를 지었다. 이로 보아 고구려의 상류층은 한문을 상용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밖에 속악(俗樂)으로서 《내원성(來遠城)》 《연양(延陽)》 《명주(溟州)》는 사(詞)가 없고 해제(解題)만 남아 있으나 당악(唐樂)이 아닌 국악에 관한 가사로서 고구려 문학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향가(鄕歌)가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시가에 대한 한국 고유의 정형시가를 의미하는 향가는 순수한 한문학이 되지 못한다 해도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어 표기하였다는 점에서는 한자문학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신라 최초의 가요인 《도솔가(兜率歌)》를 비롯, 《회소곡(會蘇曲)》 《우식악(憂息樂)》 등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다. 또 향곡으로 대악·현학(玄鶴) 등 8종류가 이루어졌다. 당의 양식을 차용한 시가(詩歌)로 《구지가(龜旨歌)》 《태평시(太平詩)》 등 6종목이 나왔다.

545년 신라의 거칠부(居漆夫)는 국사(國史)를 한문으로 편찬하였으며, 진덕여왕의 《태평송(太平頌)》, 문무왕의 《답설인귀서(答薛仁貴書)》 등의 한시문으로 이루어진 외교문서가 남아 있다.

신라시대에는 불교가 융성함에 따라 한문으로 이루어진 불교문학도 발달하였다. 원효(元曉)·원측(圓測)·의상(義湘) 등의 불교교리를 논한 기(記)와 소(疏)는 문장서술의 논리가 뛰어나며, 경전을 풀이한 내용을 총괄하여 감회를 표현한 게송도 문학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혜초(慧超)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인도의 5국과 주변 여러 나라를 순례하고 돌아와 지은 기행문으로 빼어난 한문학 작품이다.

삼국을 통일한 뒤 신라는 682년 유학을 바탕으로 하는 국학(國學)을 설치하고, 788년에는 독서삼품제(讀書三品制)를 실시하여 지방관리까지도 독서출신이나 당(唐)나라 유학생을 등용하기 시작하였다. 설총(薛聰)이 지은 우의적(寓意的)인 단편 산문 《화왕계(花王戒)》는 이 시기 한문 산문의 뛰어난 작품이다. 더욱이 설총은 이두문자(吏頭文字)를 창안하여 신라어로써 육경(六經)과 모든 문학서를 훈해(訓解)한 업적이 크다.

신라 전성기인 선덕왕 때에는 당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해지자 통문박사(通文博士)를 두어 당나라에 보내는 국서(國書)를 관장하게 하는 등 한문학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 시기에 김대문(金大問)은 《고승전(高僧傳)》 《화랑세기(花郞世紀)》 《계림잡전(鷄林雜傳)》을 지어 신라의 전통을 기록하였다. 금석문(金石文)에서는 719년의 《감산사미륵조상기(甘山寺彌勒彫像記)》, 771년의 《성덕대왕신종명문(聖德大王神鐘銘文)》 등의 세련된 문장을 볼 수 있다.

신라 후기 왕권이 약화된 것과는 반대로 귀족문학인 한문학은 두드러지게 발전하였다. 김운경(金雲卿)을 비롯한 빈공제자(賓貢諸子;당나라의 科擧에 급제한 사람들)가 58명이나 되었고, 그 뒤 최치원(崔致源)·최승우(崔承祐)·박인범(朴仁範) 등이 뛰어났다.

특히 최치원이 당에 유학하여 뀤황소(黃巢)의 난뀥 때 지은 《격황소서(檄黃巢書)》는 유명하며, 또 귀국하여 지은 《사산비명(四山碑銘)》은 명문으로 꼽힌다. 그는 《계원필경(桂苑筆耕)》 《중산복궤집》 《석순응전(釋順應傳)》 등 많은 저서와 작품을 남겨 한국 한문학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백제의 한문학도 상술한 바와 같이 고구려·신라와 마찬가지로 불교·유교·도교의 수입과 함께 상류계층에서 발전하였다. 근초고왕 때는 고흥(高興)이 백제의 사서인 《서기(書記)》를 한문으로 엮었다. 또 무왕이 신라의 선화공주를 왕비로 삼기 위해 신라의 도읍 경주(慶州)로 가서 지어 퍼뜨렸다는 《서동요(薯童謠)》가 전해지고 있다.

향곡으로는 《무등산(無等山)》 《선운산(禪雲山)》 《지리산(智異山)》 등 6곡이 있으나 사(詞)는 없고 해제만 남아 있다. 그 밖에 근구수왕 때의 학자 왕인(王仁)이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에 가서 태자의 스승이 되었으며, 일본에 한문학을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편 발해(渤海)도 당나라 및 일본과 교류하면서 한문학을 발달시켰다.

발해의 한문학은 중국 문헌과 근래에 발견된 금석문에 조금 남아 있을 뿐, 자세하지 않다. 금석문으로는 《정혜공주묘비(貞惠公主墓碑)》 《정효공주묘비(貞孝公主墓碑)》 등이 남아 있다. 그 밖에 한시로 양태사(楊泰師)·왕효렴(王孝廉)·인정(仁貞)·정소(貞素)·배정(裴挺) 등이 남긴 것을 보면 발해 한문학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으며 일본에 보낸 국서(國書)도 남아 있다.

[고려시대]

고려는 삼국을 통일한 뒤 신라의 6두품 출신의 문인들을 등용하여 문치(文治)에 힘썼다. 958년(광종 9) 과거제를 실시하여 중심과목을 시부(詩賦)로 지정함으로써 고려 한문학은 산문보다 운문이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성종은 국자감(國子監)을 설치하고 관료에 대해 시부의 제작을 부과하는 월과법(月課法)을 실시하였으며, 팔관회(八關會) 등 불교적인 행사를 금하고 유교주의를 채택하게 되자 한문학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예종은 학문을 좋아하여 학교를 세우고 6경(六經)을 강론하였으며 군왕과 신하들이 시와 사(詞)를 창화(唱和)하는 등 귀족문학이 융성하였다.

이보다 앞서 문종 때에는 사학(私學)의 권위가 국학을 능가하여 최충(崔沖)이 설치한 문헌공도(文憲公徒)를 비롯하여 12공도가 있었으며 고려의 명사들은 거의 이 12공도에서 배출되었다. 특히 최충은 중서령(中書令)으로 퇴관한 뒤 문헌공도(文憲公徒)를 설립, 후진 양성에 힘써 우수한 제자를 많이 배출하였으며, 당시의 유교를 진흥시켜 해동공자(海東孔子)라고 불리었다.

고려 초기에 향가의 잔영인 균여(均如)의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와 예종의 《도이장가(悼二將歌)》가 있었을 뿐, 이 시기에 특기할 것은 한국의 악부가 이 때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고려의 악부는 속악·당악(唐樂)·아악(雅樂)의 3종류로 분류된다. 속악은 《한림별곡(翰林別曲)》을 비롯하여 31편이 있으며, 당악은 《헌천도(獻天桃)》 외 48편이 있다. 아악은 종묘악(宗廟樂)으로 예종 때 지은 《등가악장(登歌樂章)》이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또 고려시대의 특징으로 사·부를 들 수 있다. 한국 한문학에서 처음 등장한 이인로(李仁老)의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 이색(李穡)의 《유수사(流水辭)》, 정몽주(鄭夢周)의 《사미인사(思美人辭)》, 이숭인(李崇仁)의 《애추석사(哀秋夕辭)》 등은 뛰어난 작품들이다.

부는 느낀 감상을 적은 글에 운을 단 산문으로, 김부식의 《아계부》가 그 시초이고, 이규보(李奎報)의 《외부(畏賦)》 외에 6편, 이인로의 《옥당부(玉堂賦)》 《홍도정부(紅桃井賦)》, 최자(崔慈)의 《삼도부(三都賦)》, 이색의 《관어대부(觀魚臺賦)》 등이 알려져 있다.

고려의 시가는 초기 작가로 박인량(朴寅亮)의 《금산사(金山寺)》, 정지상(鄭知常)의 《송우인(送友人)》, 김황원(金黃元)의 《부벽루송(浮碧樓頌)》 등을 걸작으로 들 수 있다.

고려 후기의 시가로는 이규보·오세재(吳世才) 등의 죽림칠현계(竹林七賢系)와 성리학이 일어난 이후의 이제현(李齊賢)·이숭인 등의 2대 조류로 나눌 수 있다. 운문에 정통한 시재(詩才)들로는 이인로·임춘(林椿) 등이 있다.

이규보의 《동명왕편(東明王篇)》은 휼륭한 서사시이며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도 유명하다. 이제현의 《산중설야(山中雪夜)》, 이색의 《부벽루(浮碧樓)》,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 이숭인의 《오호도》 등도 고려 시가에서 이름 높은 작품들이다.

고려 후기에는 산문문학이 발전하였는데 이들은 잡록(雜錄)과 선집(選集)으로 나뉜다. 잡록으로는 먼저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 《쌍명재집(雙明齋集)》을 들 수 있다. 다음은 이규보의 《백운소설(白雲小說)》인데, 한국 문학사상 처음으로 <소설>이라는 말을 붙였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고려에서 가장 가치있는 잡록계의 명저이다. 선집계로는 첫째로 충렬왕이 세자 때 김구·이송진 등과 주고받으며 읊은 《용루집(龍樓集)》이 있다. 김태현(金台鉉)의 《동국문감(東國文鑑)》, 김경숙(金敬叔)의 《선수집(選粹集)》 등도 선집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저이다.

고려 후기에는 고문(古文) 문체를 이용한 전장(傳狀)·비지(碑誌)와 같이 한 인물의 일생을 서술하는 형식, 사물에 대한 관심을 담은 가전체(假傳體) 형식이 발달하였다. 임춘의 《국순전(麴醇傳)》 《공방전(孔方傳)》, 이규보의 <국선생전(麴先生傳)>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은 그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려 있다.

수난기 여성의 의지를 찬미한 이곡(李穀)의 《죽부인전(竹夫人傳)》, 식영암(息影庵)의 《정시자전(丁侍者傳)》, 이첨(李詹)의 《저생전(楮生傳)》 등의 가전체 작품들은 대나무·지팡이·술·돈·거북이·종이 등을 소재로 사물과 인간과의 관계를 그리고 풍자한 것으로 풍자문학의 시발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비평문학이 등장하여 시문의 창작방법, 작가와 작품의 관계, 수사법, 문학사 서술 등이 중심주제로 다루어졌다. 고려말 최해가 한국 명현(名賢)의 시문을 뽑아 편수한 《동인지문(東人之文)》, 이제현이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이문(異聞)·기사(奇事)·인물평·경론(經論)·시문·서화품평(書畵品評) 등을 수록한 수필집 《역옹패설》은 비평문학의 면모를 보여 준다.

또한 고려시대 불교면에서 거국적 사업이었던 《고려대장경》의 간행은 고려의 자주성을 살리는 동시에 불교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위대한 사업이었다. 고려 전기에는 의천(義天)·원감(圓鑑)·나옹(懶翁)·보우(普雨) 외에 많은 시승(詩僧) 들을 배출하였다.

후기에는 불교문학도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지눌(知訥)·혜심·천인(天因)·천책·운묵(雲默)·충지(沖止)·보우·혜근(惠勤) 등의 선승(禪僧)들은 선시(禪詩)·어록(語錄) 등을 지어 불교의 교리·사상·감정을 표현하였고, 각훈(覺訓)은 승려들의 전기집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을 저술하였다.

[조선시대]

조선조의 정치이념은 숭유억불(崇儒抑佛)로 유교를 표방하였기 때문에 한문학도 유교를 기반으로 발전하였다. 불교 배척을 위한 이론이 정도전(鄭道傳)의 《불씨잡변(佛氏雜辨)》 《심기리편(心氣理篇)》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그의 저술은 《심문천답(心問天答)》과 함께 변론체 문장을 낳게 하였으며, 권근(權近)도 《입학도설(入學圖說)》 등의 변론체 문장으로 성리학 이론을 밝혔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제도의 발전과 함께 한문학이 더욱 더 발전하였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는 한문학에 장애적 요소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상조적(相助的) 요소가 되었다. 한편 주자(鑄字) 및 인쇄 기술의 발달은 한문학 발전을 더욱 왕성하게 하였다.

세종이 설치한 집현전(集賢殿)은 젊은 영재를 모아 여러 방면에 걸친 편찬사업을 벌여 많은 서적을 출간하였다. 《훈민정음》을 비롯,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월인석보(月印釋譜)》 《동국정운(東國正韻)》 《치평요람(治平要覽)》 《고려사》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 《삼강행실》 《효행록》 《오례의(五禮儀)》 《농사직설(農事直說)》 《의방유취(醫方類聚)》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등과 그 밖에 유교·불교의 경전 언해류(諺解類)가 출간되었다.

<조선시대의 사·부>

조선 초기의 부로는 가장 먼저 이행이 《괘관동문부(掛冠東門賦)》 외에 66편의 부를 지어 두각을 나타내었다. 세종 때 강희맹(姜希孟)의 《양초부(養蕉賦)》, 박상(朴祥)의 《몽유부(夢遊賦)》 《황종부(黃鍾賦)》 등이 잘 알려진 부이다. 박은의 《차이백석여춘부(次李白惜餘春賦)》도 빼어난 작품이다.

조선 중기에는 사·부가 별로 발전하지 못하였고, 그 뒤 광해군 때 허균의 《훼벽사(毁壁辭)》 《죽서루부(竹西樓賦)》가 주목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영조·정조 이후 과거시험에서 과부(科賦)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자 부는 점차 쇠퇴하였다. 조선 말기에 을사늑약을 한탄하고 청(淸)나라로 건너간 김택영(金澤榮)의 《오호부》, 이건창(李建昌)의 《파초부(芭蕉賦)》 등이 있다.

<조선시대의 시가(詩歌)>

이 시대에는 흔히 당시풍(唐詩風)이나 송시풍(宋詩風)이니 하여 시풍을 논하는 것이 당대의 경향이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시대풍조는 대체로 고려 중기에서 조선조 선조 때까지는 송시풍이 유행하였고, 그 뒤부터는 당나라 때의 두보(杜甫)나 이백(李白)의 시풍이 우세하였다.

조선 초기의 시인으로는 정도전·권근·변계량(卞季良) 등을 들 수 있고, 이어서 세종 때 집현전에 모인 학자들 중에 뛰어난 시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단종의 비극으로 사육신·생육신 등으로 나뉘었는데, 그 충절과 슬픔을 읊은 시들을 많이 남겼다. 대표적인 인물로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이 있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의 《매월당집(梅月堂集)》 시가(詩歌) 가운데 <산행즉사(山行卽事)>는 뛰어난 작품이다.

조선 초기의 시가나 한문학은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발달하여 서거정(徐居正)에 이르러 집대성되었는데 그의 저서 《동인시화(東人詩話)》는 순수한 한시 담론서로서 한국 시화의 효시이다. 또 《동문선》은 신라∼조선 초기에 이르는 시문을 선집한 것으로 한문학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으며 <춘일(春日)>은 그의 대표작이다.

그 뒤의 대가로는 김종직(金宗直)이 있고, 그의 문인으로는 조신(曺伸)·이주(李胄) 등이 대표적이다. 해동강서파(海東江西派)의 중심 인물인 이행은 전반기 시인 가운데 제일로 꼽히는 대가이다. 중국에서 성리학이 들어오자 당시풍에서 송시풍으로 바뀌었는데, 이를 대표하는 인물로 정여창(鄭汝昌)·서경덕(徐敬德)·이언적(李彦迪) 등이 있다. 그 밖에 남효온(南孝溫)·이희보(李希輔)·정사룡(鄭士龍)·노수신(盧守愼)·휴정(休靜) 등도 당시의 뛰어난 시인이다.

중기 이후에는 도리어 당시풍을 살린 이른바 <삼당시인(三唐詩人)> 백광훈(白光勳)·최경창(崔慶昌)·이달(李達) 등이 있고, 그 가운데 이달은 《반죽원(斑竹怨)》 《만랑가(漫浪歌)》 등의 대표작이 있다. 이어서 팔문자계(八文章系)의 시인 송익필(宋翼弼)·최입·하응림(河應臨) 등의 시인이 나왔다. 호남지방에서는 임억령(林億齡)·백광홍(白光弘)·박순(朴淳)·고경명(高敬命)·임제(林悌) 등이 등장하였으며 특히 백광홍의 저서 《관서별곡(關西別曲)》은 유명하다.

당시 시단에서 이름 높았던 사람으로는 이호민(李好閔)이 있다. 선조 때의 차식과 그의 아들 천로(天輅)·운로(雲輅) 3부자는 중국의 소식 3부자와 견줄만 하였으며, 특히 차천로는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가 떠날 때 선조의 명을 받아 송병시를 지었는데, 이것으로 그의 이름이 명나라에도 알려져 동방문사(東方文士)라 일컬어졌다.

《지봉유설(芝峯類說)》의 저자인 이수광은 박학다식하며 그의 시문체는 빈틈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대의 여류시인으로 황진이(黃眞伊)가 있는데 그녀는 시조시에서 뛰어난 시재를 나타내었으며 한시에서도 《별소양곡(別蘇陽谷)》 《만월대》 등으로 유명하다. 광해군 때에는 유몽인(柳夢寅)·허균이 쌍벽을 이루었고 특히 허균의 시재는 출중하며 《황주염곡(黃州艶曲)》 《궁사(宮詞)》 등이 유명하다.

실학(實學)이 대두한 조선 후기의 한문학에서는 당시의 부패한 관료사회를 비판·풍자한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이광정(李光庭)·이용휴(李用休)·박지원(朴趾源)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시가에서는 허필·신광수(申光洙)·채제공(蔡濟恭)·정범조(丁範祖)·권철신(權哲身)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신광수의 《부해록(浮海錄)》은 당시 제주도의 풍토·산천·조수(鳥獸)·항해상황 등을 적은 귀중한 자료이다. 그 당시 새로 등장한 위항시인(委巷詩人;中人 출신의 시인) 이언진의 《호동서실》은 그 무렵의 기상적(奇想的)인 작품이다.

그 뒤의 4대가(大家)로 알려진 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이서구(李書九) 등은 실학의 비판정신을 이어받아 한시의 시풍을 독특하게 쇄신하였다. 이어서 이름을 떨친 이가환(李家煥)의 《연광정차정지상운(練光亭次鄭知常韻)》, 정약용(丁若鏞)의 《석우별(石隅別)》 《용산리(龍山吏)》, 이학규(李學逵)의 《영회봉기백진(詠懷奉寄伯津)》 등은 우수한 작품이다.

순조·헌종 때에 시·서·화의 삼절(三絶)이라 불렸던 신위(申緯)는 조선 개국 이래 시작(詩作)이 가장 많았으며, 그 뒤의 시인들이 그를 작시법의 스승으로 일컬었다. 그의 《잡서(雜書)》 50수는 양반의 폐악을 통탄하였고 《동인론시절구(東人論詩絶句)》 35수는 시로써 시를 평한 걸작이다.

조선 말기의 시인으로는 강위·이만은(李晩恩)·김택영·이건창·황현·안중근(安重根)·변영만(卞榮晩)·정인보(鄭寅普) 등이 저마다의 경지를 이룩하였고 그 가운데 김택영의 한시풍은 유명하였다. 그 밖에 방랑시인 김병연(金炳淵;김삿갓)의 과시(科詩)와 풍자시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시대의 악부(樂府)>

초기의 작품으로는 권제·정인지(鄭麟趾) 등의 《용비어천가》를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다. 김종직의 《동도악부(東都樂府)》에는 <회소곡(會蘇曲)> <우식곡(憂息曲)> 등을 비롯하여 8수가 수록되어 있고, 성간(成侃)의 《궁사(宮詞)》에는 4수가 들어 있다.

조선 중기에는 임제의 《억진아(憶秦娥)》 《무산일단운(巫山一段雲)》, 이항복(李恒福)의 《철령숙운사(鐵嶺宿雲詞)》 등이 있다. 여류시인 허초희(許楚姬)의 《어가주(漁家做)》는 뛰어난 작품이며, 그 밖에 권필의 《임강선(臨江仙)》이 있다.

조선 중기에는 악부가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으나, 인조 때 4문장가로 불린 신흠(申欽)의 《장진주장곡(將進酒長曲)》을 비롯한 49수가 있으며 그의 악부체 149수가 전한다. 이 무렵의 악부로는 심광세(沈光世)의 《해동악부(海東樂府)》 44수, 이형상(李衡祥)의 《호파구》 16수, 남구만(南九萬)의 《번방곡》 11수 등이 있다.

조선 후기에는 악부가 많이 발전하였다. 임창택(林昌澤)의 《해동악부》, 이익의 《성호악부(星湖樂府)》 이광사(李匡師)의 《동국악부》, 안정복(安鼎福)의 《순암악부(順菴樂府)》, 정약용의 《탐진악부(耽津樂府)》, 신위의 《소악부(小樂府)》, 이학규의 《영남악부》 《해동악부》 등 많은 악부가 생겨났다.

[조선시대의 소설·산문문학]

이 시대의 소설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서양식의 소설체재를 갖춘 것이 아니라 다만 소설적인 내용을 담았거나 그와 흡사한 형태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시대의 소설은 우언(寓言)·가전(假傳)·골계(滑稽)·전기(傳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초기의 소설로는 먼저 우언에 속하는 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첫편인 뀤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뀥, 원호(元昊)의 《몽유록(夢遊錄)》이 있다. 가전체로는 이첨의  《저생전》, 정수강(丁壽崗)의 《포절군전(抱節君傳)》 등이 있다. 골계전으로는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강희안(康希顔)의 《촌담해이》, 송세림(宋世琳)의 《주장군전(朱將軍傳)》 등이 있다. 전기물로는 남효온의 《육진전(六臣傳)》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소설류보다 앞서 발달한 산문문학은 고려 때의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많은 작품이 나왔다. 그 중에서 문학적 요소를 지닌 것들만 들어 보면 강희안의 《양화소록(養花小錄)》, 서거정의 《필원잡기》, 성현(成俔)의 《용재총화》, 남효온의 《추강냉화(秋江冷話)》, 조신의 《수록쇄록》, 이행의 《용재수필(容齋隨筆)》, 이자의 《음애일기(陰崖日記)》, 김안로(金安老)의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노수신의 《소재일기(蘇齋日記)》,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 등 수없이 많다.

문선(文選)으로는 서거정의 《동문선》, 김종직의 《동문수(東文粹)》 등이 있다. 조선 중기로 접어 들어 소설로는 우언에 속하는 임제(林悌)의 《수성지(愁城誌)》 《화사(花史)》, 윤계선(尹繼善)의 《달천몽유록(達川夢遊錄)》 등이 있다.

전기류로는 이항복의 《유연전(柳淵傳)》을 들 수 있다. 이 무렵의 산문문학으로는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譚)》, 성여학(成汝學)의 《속어면순(續禦眠楯)》, 허균의 《조관기행(漕官紀行)》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 외에 수필·평론 등이 많이 있다. 선조·광해군 때에 걸쳐 한문학의 대표격인 유몽인과 허균의 활동은 괄목할 만하다.

유몽인의 소설로는 《어유야담》에 실려 있는 단편 <홍도(紅桃)> <진이(眞伊)> <강남덕(江南德)>이 있고 우어류로는 《호정(虎穽)》 《야서혼천(野鼠婚天)》이 있다. 또 가전체로는 《풍악기우기(楓嶽奇遇記)》, 골계류로는 《김인복(金仁福)》 등이 있다. 허균의 소설로는 협사류(狹邪類)인 《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 《장생전(蔣生傳)》 등이 있고 전기물로는 《손곡산인전》 《엄처사전(嚴處士傳)》 등이 있다. 그 밖에 기전체로는 성여학(成汝學)의 《관부인전(灌夫人傳)》, 권필의 《곽색전(郭索傳)》 등이 있다.

인조반정 이후 한문학은 귀족적인 요소가 더욱 짙어진다. 이 무렵의 소설은 우언으로 임영(林泳)의 《의승기(義勝記)》, 안서우(安瑞羽)의 《금강탄유록(錦剛誕游錄)》, 김춘택(金春澤)이 한역(漢譯)한 《구운몽(九雲夢)》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가 있다. 가전류로는 장유(張維)의 《빙호선생전(氷壺先生傳)》 등이 소설의 세계를 넓히는 데 기여하였다.

조선 중기의 산문문학은 주로 조용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주류를 이룬다. 수필·평론류로는 정탁(鄭琢)의 《용만견문록(龍灣見聞錄)》, 이이(李珥)의 《경연일기(經筵日記)》, 이제신(李濟臣)의 《청강시화(淸江詩話)》, 윤근수(尹根壽)의 《월정만필(月汀漫筆)》, 임진왜란에 대해 상세히 기록한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과 이순신(李舜臣)의 《난중일기(亂中日記)》 등이 있고, 이정형(李廷馨)의 《동각잡기(東閣雜記)》, 허봉의 《해동야언(海東野言)》, 차천로의 《오선설림(五山說林)》, 이항복의 《백사잡기(白沙雜記)》,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 등 많은 저술들이 나왔다. 특히 《지봉유설》은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조선 후기의 문학은 다채로워졌으며, 당시의 사회정세에 따라 소설류에서는 사실적인 경향을 보였다. 동시에 풍자와 협사(狹邪) 등이 크게 발전하였다.

소설에서 염정물(艶情物)로는 이옥의 《심생전(沈生傳)》, 수산선생(水山先生)의 《광한루기(廣寒樓記)》, 유철진(兪喆鎭)의 《현토한문춘향전(懸吐漢文春香傳)》, 이능화(李能和)의 《춘몽록(春夢錄)》 등 남녀간의 애정을 담은 작품들이 나왔다. 지괴물(志怪物)로는 이옥(李沃)의 《신병사전(申兵使傳)》이 있다. 우어체로는 이광정의 《고씨묘(高氏猫)》, 이익의 《동방일사전(東方一士傳)》, 안정복의 《여용국전(女容國傳)》 등이 있다.

풍자소설로는 이광정의 《호예》가 있으며, 특히 박지원은 《마장전》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양반전(兩班傳)》 《호질(虎叱)》 《허생전(許生傳)》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두드러지게 하였다. 협사물로는 신광수의 《검승전(劍僧傳)》, 이옥의 《가자송해솔전》 등이 대표작이고, 정약용의 《조신선전(曺神仙傳)》, 김조순(金租淳)의 《오대검협전(五臺劍俠傳)》 등 많은 작품이 나왔다. 가전체로는 이덕무의 《관자허전(管子虛傳)》, 유본학(柳本學)의 《조원전(鳥圓傳)》 등이 있다.

골계물로는 이용휴의 《해서정자(海西正者)》, 유득공의 《유우춘전(柳愚春傳)》 등이 있다. 전기물로는 이덕무의 《김신부부전(金申夫婦傳)》, 김려의 《유구왕세자전(琉球王世子傳)》, 박지원의 《우상전(虞裳傳)》 등 작품이 많다.

인조반정 후의 한문학에서는 훈척계(勳戚系)의 문인 이정구(李廷龜)·신흠·장유(張維)·이식(李植)이 당시의 문단을 대표하는 4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 뒤 허목(許穆)·송시열(宋時烈)·김석주(金錫胄)·김창협(金昌協) 등이 유명하다.

신흠의 《상촌잡록(象村雜錄)》, 이식의 《택당산록(澤堂散錄)》, 장유의 《계곡만필(谿谷漫筆)》, 김석주의 《사군자문초》, 김창협의 《농암잡지(農巖雜識)》, 강항의 《간양록(看羊錄)》, 김육의 《유원총보(類苑叢寶)》, 김만중(金萬重)의 《서포만필(西浦漫筆)》 등 수많은 산문문학의 수작들이 나왔다. 이들의 대부분은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여 사실적인 필법으로 글을 썼다.

또한 수필·평론 등에서는 빼어난 작품들이 매우 많고 그 중에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풍자문학의 선구자인 이광정의 《망양록(亡羊錄)》, 조선조 실학의 거성인 이익의 《성호사설》, 한국 전역에 걸친 지형·풍토·풍속·교통·고사(故事) 등을 상세히 적은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 안정복의 《순암잡록(順菴雜錄)》, 홍대용(洪大容)의 《담헌서(湛軒書)》,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然藜室記術)》,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등이 있는데,

그 가운데 《열하일기》는 작자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의 기행문인데 관찰력과 문장력이 뛰어나며,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유득공의 《냉재서종(冷齋書種)》,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는 실학사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며, 정약용의 《다산전서(茶山全書)》,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이건창의 《당의통략(黨議通略)》,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 송상도의 《기려수필(騎驪隨筆)》 등이 이 시대의 우수한 작품들이다.

조선 말엽에 걸쳐서는 실학의 발흥과 서학(西學)의 전래, 뒤따라 밀려온 개화사상의 영향하에 크나큰 변혁의 시기를 맞는다. 즉 언문일치(言文一致)의 문학운동으로, 이 조류에 밀리어 전성하던 한문학은 쇠퇴하게 된다.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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