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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24 (목)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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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한문소설 (민족)
한문소설(漢文小說)

고전소설 중에서 한문으로 창작되고 읽혔던 소설.

[개설]

한문소설의 대부분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근대적 의미의 소설의 개념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소설의 개념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한 범주 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동아시아 한문문학권에 속하는 중국문학사에서는 기록된 서사문학 모두를 소설(小說)이라 한다. ‘지괴(志怪)’·‘전기(傳奇)’·‘화본(話本)’ 등을 모두 소설의 범주에 포함한다. 일본문학사에서는 ‘모노가타리(物語)’·‘소시(草子)’ 등은 소설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한국문학사에서는 중국문학사에서와 마찬가지의 폭넓은 소설 개념을 따랐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나름대로의 소설에 대한 인식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한문문학권에서 ‘소설’이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나는 문헌은 ≪장자 莊子≫〈외물편 外物篇〉의 “소설을 꾸며 높은 벼슬을 구하는 것은 크게 출세하는 것과는 또한 거리가 멀다(飾小說以干縣令 其於大達亦遠矣).”이다.

이 때의 ‘소설’의 의미는 깊은 사상이나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글이 아니고 남의 비위나 맞추기 위하여 꾸며낸 대단하지 않은 내용의 글이다.

장자보다 약 3세기 뒤에 반고(班固)는 “소설가라는 무리들은 대개 패관출신이며, 길거리와 뒷골목의 이야기들을 길에서 듣고 말하는 자들로 이루어졌다(小說家者流 蓋出於稗官 街談巷語 道聽塗說者之所造也).”(漢書藝文志)라고 하여 소설가와 소설의 내용을 말하였다.

이에 따르면 소설은 민간생활에서 파생된 잡다한 이야기들을 모아 글로 기록하여 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반고와 거의 같은 시기에 살았던 한(漢)나라의 환담(桓譚)은 “소설가는 자질구레한 말들을 모아 가까운 곳에서 비유를 취하여 짤막한 글을 지어내었는데,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데 볼만한 내용이 들어 있다(小說家 合殘叢小語 近取臂喩 以作短書 治身理家 有可觀之辭).”(李選注 文選 31, 新論)라고 하였다.

소설은 떠돌아 다니는 시정(市井)의 이야기를 단순히 기록하여 놓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비유를 취하는 등의 기록자의 의도가 가미된 교훈적 내용의 글임을 말하고 있다.

한국에서 ‘소설’이라는 용어가 처음 쓰인 것은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 白雲小說≫이다. 이것은 시화(詩話)를 모아놓은 글이다. 따라서 근대적 의미의 소설과는 거리가 멀고, 중국문학에서의 ‘소설’의 개념에 가깝다.

조선 초에 어숙권(魚叔權)은 그의 ≪패관잡기 稗官雜記≫에서 “우리 나라에는 소설이 적다(東國少小說).”고 하고는 고려시대에서 조선 초까지의 ‘소설’ 19편을 제시하였다.

이수광(李邈光) 또한 ≪지봉유설 芝峰類說≫에서 조선 건국 이후 200년 동안에 “소설로서 볼 만한 것(小說之可觀者)”으로 18편을 제시하였다. 그들이 제시한 작품은 겹치는 것을 빼면 30편에 달한다.

소설에는 ≪파한집≫·≪보한집≫·≪역옹패설≫·≪태평한화 太平閑話≫·≪필원잡기 筆苑雜記≫·≪동인시화≫·≪금오신화≫·≪용재총화 弁齋叢話≫·≪패관잡기≫·≪육신전 六臣傳≫·≪추강냉화 秋江冷話≫·≪오산설림 五山說林≫ 등의 패관문학이라고 불리는 고려 때의 저술에서부터 조선 초 개인 문집류에 이르기까지 서사문학에 포함될 수 있는 잡다한 글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이 중에서 오늘날 우리가 소설문학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은 ≪금오신화≫ 1편에 불과하다. 조선 초까지 한문소설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였다. 그러다가 국문소설이 대량으로 나타나게 되자 소설의 의미는 바뀌게 되었다. 소설은 허황되고 세교(世敎)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내용을 담은 글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이덕무(李德懋)는 ≪사소절 士小節≫에서 “연의소설은 간사하고 음란한 것을 가르치므로 보아서는 안 된다(演義小說 作奸誨淫 不可接目).”고 하였다. 〈세정석담 歲精惜譚〉에서는 야담(野談)·전기·지괴 등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무 가치없는 글로 신랄한 비판을 가하였다.

만와옹(晩窩翁)은 〈일락정기 一樂亭記〉 서문에서 〈일락정기〉는 “비록 공허한 이야기로 꾸며졌지만, 복선화음(福善禍淫)의 이치가 바탕에 깔려 있다(雖出於架空構虛之說 便亦有福善禍淫底理).”라고 하며 소설이 지닌 허구성과 교훈성을 일정하게 긍정하였다.

홍희복(洪羲福)은 청(淸)나라 이여진(李汝珍)이 지은 〈경화연 鏡花緣〉을 번역한 〈제일기언 第一奇諺〉 서문에서, “소설은 처음에는 사기(史記)에 빠진 말과 초야에 전하는 일을 거두어 모아내어 야사(野史)라고 하였다.

그 뒤에 문장력은 있으나 일없는 선비가 필묵을 희롱하고 문자를 허비하여 헛말을 늘여내고 거짓 일을 사실처럼 하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사실처럼 믿게 하고 매료시켜 소설이 성행하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거짓을 사실처럼 꾸며 독자로 하여금 사실처럼 믿고 흥미를 가지게 하는 것이 소설이라는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소설의 개념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볼 때에 한국 한문소설의 범주를 설정하고 제한하기 위하여, 중국이나 한국에서 쓰여온 ‘소설’이란 용어의 의미변천에 집착하여서는 계속 논란의 여지가 남게 된다.

따라서, 한국 한문소설의 개념을 서구의 로망스(romance)의 개념에 상응하는 작품으로 규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온당할 것이다.

한국 한문소설의 시원(始源)은 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설화는 아직 단순한 이야기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설화적 차원에 작가의 창작의식이 개입되고, 인간의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될 때에 비로소 소설 양식으로 이행되었다고 하겠다.

서구의 ‘로망스’는 봉건사회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 그 구조는 선과 악, 신적(神的)인 것과 악마적인 것, 천상적인 것과 지하적인 것의 대립·갈등 구조를 지니고 있다. 소설의 주요창작동기는 ‘욕망충족의 꿈’에 있다.

이러한 조건을 비교적 충실히 갖추고 있는 최초의 작품은 조선 초의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신라 말 고려 초의 ‘전기문학(傳奇文學)’인 〈김현감호 金現感虎〉·〈최치원 崔致遠〉·〈조신 調信〉 등도 소설에 접근하지만 아직은 설화성이 더 짙게 나타나 있고, 고려 중기 이후에 활발하게 창작된 ‘가전문학(假傳文學)’은 그것이 지닌 강한 교술적(敎述的) 성격으로 말미암아 소설로 보기에는 불충분하다.

한국 한문소설은 설화문학에서 신라 말 고려 초의 ‘전기와, 고려의 ‘가전’을 거쳐 조선 초의 ≪금오신화≫에서 일단 완성된 모습을 보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형성]

한문소설의 연원은 고대 설화문학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구체적 모습은 ≪삼국사기≫·≪삼국유사≫ 그리고 ≪수이전 殊異傳≫의 잔편(殘篇; 남은 작품)에서 살필 수 있다.

이들 문헌에 수록된 설화 중에는 ‘전기(傳奇)’양식에 속할 수 있는 작품들이 발견된다. ≪삼국유사≫에 실린 〈김현감호〉와 〈조신〉, ≪수이전≫의 잔편으로 ≪대동운부군옥 大東韻府群玉≫과 ≪태평통재 太平通載≫에 실려 있는 〈최치원〉과 ≪대동운부군옥≫의 〈수삽석남 首揷石枏〉, 그리고 ≪삼국사기≫열전(列傳)에 실려 있는 〈온달 溫達〉과 〈가실 嘉實〉 같은 작품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전기’는 원래 ‘기이(奇異)를 전술(傳述)한다.’는 뜻으로 육조시대(六朝時代)의 ‘지괴’와 구별하여 당대(唐代)의 개인적 창작을 지칭하는 말로서, 중국문학사에서는 소설로 다룬다.

한국문학사에서 ‘전기소설’은 ‘① 사대부들에 의한 의도적 개인 창작으로서 전아·미려한 문언문(文言文)으로 기술된 단편적 형식의 서사체, ② 봉건사회 속의 사대부, 혹은 귀족계층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③ 사건 전개에 있어서 신이(神異), 즉 비현실적, 환상적 요소나 낭만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장르상의 필요조건이 제시될 수 있다.

신라 말 고려 초에 형성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전기’류에 속할 수 있는 이들 작품들이 조선 초에 형성된 ≪금오신화≫ 등과 같은 ‘전기소설’에 얼마만큼 접근하는가의 문제는 작품의 구체적인 분석에 의하여 해명될 수 있다.

〈김현감호〉에는 ≪태평광기 太平廣記≫에 실린 당대(唐代) 전기의 하나인 〈신도징 申屠澄〉이라는 유사한 이야기가 김현의 이야기에 덧붙여 있다. 이것은 작자가 의도적으로 대비시켜 작품을 구성한 것으로서 모두 남녀 애정갈등이 중심사건이다.

〈김현감호〉가 신분이 낮은 한 처녀가 귀공자를 연모한 것이라면, 〈조신〉의 경우는 그 반대이다. 〈수삽석남〉의 경우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남녀 사랑에서 발단된 애정갈등을 신이로써 해결하고 있다.

이러한 애정갈등은 신분상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애정갈등의 문제는 〈최치원〉·〈온달〉·〈가실〉에서도 나타난다. 이들 작품의 기반은 물론 설화이다. 그러나 구성이나 인물의 개성 창조에 있어서는 설화의 단순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다.

〈최치원〉은 단순한 설화의 기록화에서 벗어나 작의성이 상당히 개입되어 있다. 등장인물이 주고받는 다수의 한시, 세련된 문장표현, 사상적 깊이 등에서 알 수 있다. 〈최치원〉은 역사적 실제인물의 전기와 인귀교환설화(人鬼交歡說話)가 결합된 것으로 여기에 작가의 작의적 허구가 가미된 작품이다.

≪삼국유사≫에는 작의성이 개입된 작품이 많다. 그 중에서 〈조신〉은 조선초 ≪금오신화≫를 비롯한 몽유록계 소설과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도 기본적으로 몽유설화의 정착이다. 〈조신〉의 꿈의 구조는 매우 치밀한 인과적 구성으로 짜여져 있다.

꿈이 단순한 환몽으로 인식되지 않고 인생살이의 고뇌가 현실처럼 생동감 있게 표현되고 있다. 신분적, 경제적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파탄에 이른 남녀 애정갈등은 궁극적으로는 불교적 차원에서 수습되는 것으로 끝난다.

신라 말 고려 초는 시기적으로 과도기적 사회이다.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남녀애정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설화를 기반으로 한 ‘전기’ 양식을 통해서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비록 그것이 허구적 창작물이 아닐지라도 소설문학에 매우 접근하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고려 중기 이후에 이르면 아직은 미숙한 모습이지만, 허구를 바탕으로 창작된 ‘가전’이라는 작품들이 등장한다. 이 ‘가전’은 의인화된 사물의 전기이다.

작품으로는 임춘(林椿)의 〈국순전 麴醇傳〉과 〈공방전 孔方傳〉, 이규보의 〈국선생전 麴先生傳〉과 〈청강사자현부전 淸江使者玄夫傳〉, 이곡(李穀)의 〈죽부인전 竹夫人傳〉, 이첨(李詹)의 〈저생전 楮生傳〉, 석식영암(釋息影菴)의 〈정시자전 丁侍者傳〉, 혜심(慧諶)의 〈죽존자전 竹尊者傳〉과 〈빙도자전 氷道者傳〉, 이윤보(李允甫)의 〈무장공자전 無毖公子傳〉 등이 있다. 작자는 대체로 신흥사대부이다.

가전은 문인·학자들의 생활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의인화하여 이들의 삶의 일대기를 해박한 한문적 지식을 동원하고 허구적 세계를 설정하여 세태를 비판하고 교훈을 주려고 한 지적(知的)·도덕적 충동의 소산이다.

임춘의 〈국순전〉은 가전의 효시가 되는 작품으로, 정중부(鄭仲夫)의 난을 중심한 무신집권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는 가전이 새로운 신흥세력의 문학창조의 의지를 담고 나타났음을 말하여 주고 있다.

〈국순전〉과 〈국선생전〉은 모두 술을 의인화한 작품이다. 〈국순전〉은 순(醇)의 부정적 성격을 통하여 정객(政客)과 군주에 대한 풍자성이 두드러진 작품이고, 〈국선생전〉은 국선생의 긍정적 성격을 통하여 사회적 모범성의 교훈을 주고자 한 작품이다.

〈공방전〉은 돈의 제조 및 활용을 중국사실에 가탁하여 당시 고려사회의 경제적 상황을 풍자하고 있다. 〈청강사자현부전〉은 거북을 의인화하여 왕의 부름에도 속유배(俗儒輩)와는 달리 의연히 불응하는 인간 수양의 교훈성을 담고 있다. 이들 작품에는 무신집권기를 살았던 문신들의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다.

〈죽부인전〉은 대나무를 의인화하여 여성의 열사상(烈思想)을 고취하고 윤리관을 깨우치고 있다. 〈저생전〉은 종이를 의인화하여 그 용도에 따른 문사(文士)의 일생을 비유, 묘사하고 있다. 〈정시자전〉은 지팡이를 우화적(寓話的)으로 처리한 작품이다.

이 밖에 대를 의인화한 〈죽존자전〉과 얼음을 의인화한 〈빙도자전〉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그 내용 전모를 알 수 없다. 이들 가전은 조선 초기를 거쳐 〈화사 花史〉·〈수성지 愁城誌〉 등의 작품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밖에 고려시대의 소설의 형성과 관련될 수 있는 서사문학으로는 이른바 ‘패관문학’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종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학양식이다.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 최자(崔滋)의 ≪보한집≫,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과 같은 개인 문집류에 실려 있는 역사·설화·신변잡기·시문에 얽힌 일화 등 잡다한 내용의 글들이다.

패관문학 중에는 세상에서 황탄(荒誕)스러운 이야기라고 일컫는 자료도 수록되어 있다. 예컨대 ≪보한집≫에 수록되어 있는 〈호승 虎僧〉은 호랑이가 사람으로 변하여 승려와 만났고, 그 범이 승려 앞에서 자결하여 죽는 이야기이다.

≪수이전≫의 〈호원 虎願〉과 같은 계열의 설화이다. 이와 같은 예는 이들 문집에 수록된 설화가 신라의 전통을 계승하고, 그것을 다시 조선의 소설문학으로 발전시키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하였음을 말하여 준다.

고려시대까지의 서사문학 작품들이 전승설화를 충실히 기록하는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비록 작가의 창조적 허구의식이 작용하였다고는 하여도 전승설화의 기본 골격을 크게 바꾸지 않는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조선 초의 ≪금오신화≫에 이르면 전대(前代)의 문학적 관습에서 탈피하여 완전한 허구세계를 창출하게 된다.

신라 말 고려 초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되어지는 〈조신〉·〈최치원〉·〈김현감호〉 등이 작의성이 개입되어 단조로운 설화적 차원에서 벗어났다고 하여도 그것은 기왕에 존재하였던 설화의 기본 골격을 바꾸는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금오신화≫의 경우는 민간전승설화를 수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작가가 설정한 허구적 이야기 속에 적절히 용해되어 있을 뿐이다. 이렇게 전승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작가의 의도에 따라 허구세계가 창출됨으로써 본격적인 소설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발달]

신라 말 고려 초의 ‘전기’, 고려시대의 ‘가전’을 비롯한 서사문학을 계승하고, 밖으로부터 유입된 중국소설문학의 영향을 받고 배태된 ≪금오신화≫ 이후의 한국 한문소설은 20세기 초 개화기 한문장편소설인 〈만강홍 滿江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그 작품들을 몇 개의 유형으로 묶어 발달전개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전기소설(傳奇小說)’의 대표적 작품인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만복사저포기 萬福寺樗蒲記〉·〈이생규장전 李生窺墻傳〉·〈취유부벽정기 醉遊浮碧亭記〉·〈남염부주지 南炎浮洲志〉·〈용궁부연록 龍宮赴宴錄〉 등 다섯 편으로 되어 있다.

작가 김시습은 당대 집권층에 대하여 비판적 자세를 지닌 신흥사류로서 유교이념에 기초하여 불교교리를 파악한 사상가였다. ≪금오신화≫의 5편은 이러한 작가이념과 현실생활과의 갈등이 예술적으로 표현된 작품으로서, 봉건적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참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환령(幻靈)이나 초월적 이계(異界)와 같은 비현실적 신이적 요소는 인간적 욕구가 사회적 모순이나 인생의 유한성 때문에 좌절되기를 거부하는 비극적 정서와, 현실 속에서 쉽게 실현될 수 없는 사회적 이념을 비유적 역설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기능을 하고 있다.

≪금오신화≫의 5편이 공유하고 있는 구조적 특징인 몽유(夢遊)는 이미 전시대의 〈조신〉이나 이규보의 〈몽험기 夢驗記〉 등에서도 나타나며, 후대의 몽유록계통의 소설로 이어진다.

조선 초의 ‘전기소설’은 이 밖에 염불행(念佛行)을 고취한 포교 목적의 보우(普雨)의 〈왕랑반혼전 王郎返魂傳〉이 있다. 소설사적으로는 한문소설이 국문소설로 이행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고려 ‘가전’을 이어 나타난 조선시대의 ‘의인체소설’은, 심성(心性)을 의인화한 천군계 (天君系)소설과 동·식물을 의인화한 다수의 작품이 조선 말기까지 계속 나타났다.

심성을 의인화한 천군계 소설로는 김우옹(金宇裵)의 〈천군전 天君傳〉, 임제(林悌)의 〈수성지〉, 정태제(鄭泰齊)의 〈천군연의 天君演義〉, 정기화 (鄭琦和)의 〈천군본기 天君本紀〉, 유치구(柳致球)의 〈천군실록 天君實錄〉이 있다. 임영(林泳)의 〈의승기 義勝記〉, 이옥(李鈺)의 〈남령전 南靈傳〉 등도 작품의 성격상 포함될 수 있다.

이들 작품은 대체로 천군을 주인공으로 삼고 충신형과 간신형으로 대조되는 인물의 성격이 갈등을 이루는 구성방법을 취하고 있다. 소설사적으로는 유학자들의 소설창작 참여로 말미암아 유학사상과의 거리감이 좁혀지게 되었다.

식물을 의인화한 작품으로는 임제의 〈화사〉, 이이순(李蓬淳)의 〈화왕전 花王傳〉, 정수강(丁壽崗)의 〈포절군전 抱節君傳〉, 이덕무(李德懋)의 〈관자허전 管子虛傳〉 등이 있다.

〈화사〉는 꽃나라의 역사이며 인간 삶의 역사이다. 이 작품이 설총(薛聰)의 〈화왕계 花王戒〉의 영향을 받았다는 근거는 없다. 그러나 기법면에서는 그 지향점이 유사하다. 작품세계는 봉건지배체제와 관료사회의 모순이 심화되고 있던 16세기 전후 조선과 명나라의 역사현실을 풍자, 비판하고 있다. 〈화왕전〉은 〈화사〉를 모방한 것이다.

〈포절군전〉은 작자 자신의 풍자로서 대나무를 의인화한 것이다. 동물을 의인화한 작품으로는 〈서대주전 鼠大州傳〉·〈서옥기 鼠獄記〉·〈와사옥안 蛙蛇獄案〉·〈작오상송 鵲烏相訟〉·〈곽색전 郭索傳〉·〈오원전 烏圓傳〉 등이 있다.

〈서대주전〉은 판관의 그릇된 판결을 통하여 당시 위정자들의 부정·부패를 신랄히 공격하였다. 〈서옥기〉는 창곡(倉穀)을 먹던 쥐가 발각되어 죽음을 당한 뒤로는 창고의 곡식이 없어지지 않았다는 단순한 구성이다. 〈와사옥안〉은 개구리가 올챙이를 살해한 범인으로 뱀을 고소하는 내용이다.

〈작오상송〉은 까치가 까마귀에게 새끼와 둥지를 빼앗겨 이를 호소하자 까마귀가 맞고소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곽색전〉은 게를, 〈오원전〉은 고양이의 움추린 모습을 의인화한 작품이다.

‘의인체소설’은 조선봉건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가치체계와 사대부의식을 사물에 가탁하여 표현하는 상징적 체계와 아울러 관료사회의 인간행위를 재현하는 모사적(模寫的) 수법을 통하여 인간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비판하였다.

‘몽유록계소설’은 서술구조상 ≪금오신화≫와 한문학의 잡기류에 속하는 ‘몽기류(夢記類)’와 관련된다. 그 구조는 ‘입몽(入夢)’과 ‘각몽(覺夢)’이 있다. 그 몽중세계에 ‘토론(討論)’과 ‘시연(詩宴)’이 핵심을 이룬다.

토론은 작품에 따라 이념적 내용과 인물평·호소 등이다. 그 본질적 갈등은 등장인물의 의식과 역사적 사실과의 갈등에 있다. 특히, 시연에서 몽유록의 교술적 성격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상의 제시와 현실비판이라는 강한 윤리의식이 작품내용을 지배하고 있음을 볼 때에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선비들이 몽유자이다.그리고 그들은 작가였을 것이다.

‘몽유록계소설’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임제의 〈원생몽유록 元生夢遊錄〉, 심의 (沈義)의 〈대관재몽유록 大觀齋夢遊錄〉, 윤계선(尹繼善)의 〈달천몽유록 達川夢遊錄〉·〈피생몽유록 皮生夢遊錄〉·〈강도몽유록 江都夢遊錄〉·〈금화사몽유록 金華寺夢遊錄〉·〈사수몽유록 泗水夢遊錄〉·〈부벽몽유록 浮碧夢遊錄〉·〈안빙몽유록 安憑夢遊錄〉 등이 있다.

그리고 영웅소설과 결부된 〈천궁몽유록 天宮夢遊錄〉·〈몽결초한송 夢決楚漢訟〉이 있다. ‘몽자류소설 (夢字類小說)’은 양반사대부의 현실적 이상을 다룬 일군(一群)의 작품들로서 그 구성이 ‘몽유록계소설’과 다르다.

작품으로는 남영로(南永魯)의 〈옥루몽 玉樓夢〉, 이정작(李庭綽)의 〈옥린몽 玉麟夢〉, 탕암(宕菴)의 〈옥선몽 玉仙夢〉, 그리고 〈옥루몽〉의 이본으로 볼 수 있는 〈옥련몽 玉蓮夢〉이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역사적, 또는 허구적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군담류소설 (軍談類小說)’이 나타났다. 역사적으로 실존하였던 역사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군담소설로는 〈임진록 壬辰錄〉·〈임경업전〉·〈최고운전 崔孤雲傳〉 등이 있다. 창작 군담소설로는 〈남홍량전 南洪量傳〉·〈운향전 雲香傳〉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은 양란 이후에 대량으로 나타난 국문 군담소설과 그 맥을 같이한다. 애초에 한문으로 창작되거나, 또는 한글 영웅군담류를 모방하거나 번역한 작품들로서, 국문본을 비롯한 다양한 이본(異本)이 전한다.

남녀애정이라는 주제를 표현한 ‘염정소설(艶情小說)’이 임란 이후 나타났다. ‘애정소설’ 또는 ‘윤리소설’로도 불리는 이들 작품으로는 권필(權億)의 〈주생전 周生傳〉·〈운영전 雲英傳〉·〈상사동기 相思洞記〉·〈숙향전〉·〈홍백화전 紅白花傳〉·〈삼한습유 三韓拾遺〉·〈육미당기 六美堂記〉 등을 들 수 있다.

〈주생전〉은 ≪금오신화≫와 〈홍길동전〉을 이어주는 소설사적 위치를 지닌다. 〈운영전〉과 〈영영전 英英傳〉으로도 불리는 〈상사동기〉는 궁녀와 외부인사와의 애정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숙향전〉과 〈홍백화전〉은 정절을 강조하고 있다. 김소행(金紹行)의 〈삼한습유〉와 서유영(徐有英)의 〈육미당기〉는 염정소설의 대표적 작품이다. 민족설화 내지 민족의식과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윤리 도덕성을 강조하고 있다. 윤리 도덕성을 강조한 작품으로는 조성기(趙聖期)의 〈창선감의록 彰善感義錄〉이 있다.

〈화문충효록 花門忠孝錄〉 등 다양한 이본으로도 전하고 있다. 조선 후기 영정시대의 실학파 문학가인 박지원(朴趾源)은 그의 실학사상인 이용후생학(利用厚生學)을 바탕으로 독특한 한국 한문소설의 경지를 개척하였다.

≪열하일기≫〈옥갑야화 玉匣夜話〉에 수록된 〈허생 許生〉과 〈관내정사 關內程史〉의 〈호질 虎叱〉, ≪방경각외전 放揭閣外傳≫의 〈양반전 兩班傳〉을 비롯한 〈마장전 馬痺傳〉·〈예덕선생전 穢德先生傳〉·〈민옹전 閔翁傳〉·〈김신선전 金神仙傳〉·〈광문자전 廣文者傳〉·〈우상전 虞裳傳〉, 그리고 현재는 그 내용 전모를 알 수 없는 〈역학대도전 易學大盜傳〉·〈봉산학자전 鳳山學者傳〉·≪연상각선본 煙湘閣選本≫의 〈열녀함양박씨전 烈女咸陽朴氏傳〉 등 12편이 그것이다.

≪방경각외전≫의 작품들은 그의 생애의 제 1기인 30대 초반까지의 ‘문장수학기‘의 작품이다. ≪열하일기≫의 작품들은 제 2기인 40대 후반까지의 실학사상이 확립되었던 ‘은둔기’의 작품이다. 〈열녀함양박씨전〉은 안의현감을 지낼 당시인 ‘환로기(宦路期)’의 작품이다.

연암의 한문소설은 작품이 지닌 현실풍자와 비판에 의거하여 ‘풍자소설’로 그 유형이 분류되고 있다. 이들 작품은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당시의 관념적·인습적 질곡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였다.

이용후생을 강조한 것과 민간설화를 소재로 해서 당시 현실적 삶의 문제를 풍자하고자 한 것은 서구의 리얼리즘(realism)과도 상통한다. 〈마장전〉·〈예덕선생전〉 등에서는 서민의 인간성에 대한 긍정과 윤리도덕성이 강조되고 있다.

〈민옹전〉·〈김신선전〉·〈우상전〉 등에서는 현실에서 소외된 ‘시정지식인(市井知識人)’에 대한 연민의 정과 작가의 신선관이 드러나고 있다. 〈양반전〉·〈호질〉·〈허생〉 등에서는 당시의 위정자·지식인 등 상층계층에 대한 현실적 비판과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연암소설은 ‘전(傳)’ 양식과 구별되는 소설양식상의 특성을 갖추고 있다. 이후의 소설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문학의 한 양식인 ‘전’은 조선 후기에 이르게 되면 작가적 성향과 또는 시대적 추이에 의하여 그 본래의 양식적 특성을 어느 정도 견지하면서 소설적 성향을 띤 작품으로 나타나게 된다.

17세기 초에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 惺所覆螺藁≫에 실려 있는 〈남궁선생전 南宮先生傳〉·〈엄처사전 嚴處士傳〉·〈손곡산인전 蓀谷山人傳〉·〈장산인전 張山人傳〉·〈장생전 蔣生傳〉 등 5편은 ‘일사소설(逸士小說 :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사는 선비가 주인공인 소설)’에 속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의 주인공들은 당대 사회에서 소외된 가난한 선비, 중인계층, 천민들로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현실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있는 재사(才士)나 이인 (異人)들이다.

허균의 ‘전’작품들은 한 사람의 일생을 기록한 것이라는 ‘전’ 본래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으면서도 사실의 기록이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일정한 방향으로 인물의 삶을 허구화시키고 재창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 본래의 성격을 벗어나 있다.

따라서 창작적 허구의식이 가미된 독특한 ‘전’으로서 소설로 보아 손색이 없다. 이러한 ‘전’의 소설화한 모습은 박지원의 한문단편소설과도 일정한 연관성을 지닌다.

이옥(李鈺)의 〈심생전 沈生傳〉·〈장복선전 張福先傳〉·〈신아전 申啞傳〉·〈상랑전 尙娘傳〉·〈부목한전 浮穆漢傳〉 등에서는 시정인(市井人)·충효열녀(忠孝烈女)·이인(異人) 등을 주인공으로 하여 인간 존엄성의 긍정적인 수용과 시속의 부도덕성에 대한 고발과 그리고 현실에 대한 자각과 비극적 갈등이 반영되었다.

또한 사대부들의 도덕적 규범을 하층민들이 실천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작품 경향은 김려(金錤)의 〈가수재전 賈秀才傳〉·〈삭낭자전 索囊子傳〉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 밖에도 안정복(安鼎福)의 〈여용국전 女容國傳〉, 신광수의 〈검승전 劍僧傳〉, 채제공(蔡濟恭)의 〈이충백전 李忠伯傳〉, 이덕무의 〈은애전 銀愛傳〉·〈김신부부전 金申夫婦傳〉 등이 ‘전’ 양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서 소설적인 성향을 보여 주고 있다.

18·19세기 조선 후기의 전환기적·역사적 현상을 배경으로 하여 나타난 ‘한문단편(漢文短篇)’이라는 소설 양식은 ‘전’과 ‘민간설화’를 토대로 형성되었다. 이 한문단편은 시정의 이야기를 옮겨놓은 것이다.

그 과정에 기록자의 의식이 개입되었을 것이다. 전기수(傳奇馬)와 같은 직업적 이야기꾼의 이야기 등이 소설에 취미를 지녔던 지식인에 의해 글로 옮겨진 것이다.

작가는 유명작가도 있지만 대부분 무명작가였으며, 그들은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에 따른 도시의 형성과 농촌의 변화, 양반계층의 몰락과 신흥부자들의 대두, 부(富)와 신분의 갈등, 남녀의 본능적 정욕과 사회규범과의 모순 등의 당대의 역사현실을 꾸밈없이 소박하게 한국식 한문으로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이러한 글들은 이희준(李羲準)의 ≪계서야담 溪西野談≫, 이원명(李源命)의 ≪동야휘집 東野彙輯≫, 그리고 ≪청구야담 靑丘野談≫ 등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안석경(安錫儆)의 ≪삽교만록 雷橋漫錄≫에도 ‘인간성의 긍정’·‘치부(致富)’·‘신분갈등’ 등의 내용을 담은 18편의 작품이 전하고 있다.

19세기에는 ‘한문단편’류 외에 심능숙(沈能淑)의 〈옥수기 玉樹記〉와 같은 장편소설이 나타났다. 몰락양반이라는 특정한 집단의 세계관이 영웅의 일생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나타난 것이 군담소설이라면, 이 작품은 상층사대부가 영웅의 일생을 자신들의 세계관의 표현형식으로 수용하여 창작한 것이다.

국문으로도 번역된 이 소설은 ‘가문소설’유형에 포함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특권 사대부계층과 벌열, 세도 집단을 기반으로 성립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19세기에는 양반계층의 호색적인 생활단면을 골계적으로 풍자한, 목태림(睦台林)의 〈종옥전 鍾玉傳〉과 작자미상의 〈오유란전 烏有蘭傳〉 등의 세태풍자소설이 있다.

한국 한문소설은 개화기에도 나타났다. 이종린(李鍾麟)의 〈만강홍 滿江紅〉이 1914년에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신단공안 神斷公案〉이라는 현토(懸吐) 한문소설이 ≪황성신문≫에 1906년에 연재되었다.

〈용함옥 龍含玉〉이 같은 해에 ≪대한일보≫에 연재되었다. 또한 이해조(李海朝)가 ≪소년한반도 少年韓半島≫라는 잡지에 〈잠상태 岑上苔〉를 1906년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들 개화기 한문소설은 한자로 표기되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그 내용이나 구성이 고전 국문소설과 그 성격을 같이한다.

[의의]

한국 한문소설은 한문이라는 표기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사상 몇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형성 초기에는 중국 소설문학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적 규범에서 벗어나 독자적 발전을 모색하여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독자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한문소설은 그 발생 초기부터 당대의 역사적 현실이나 인물을 대상으로 하였다. 그렇지만 조선 후기의 ‘연암소설’이나 ‘한문단편’류에 이르러서는 격변하는 전환기의 역사현실을 살아가는 양반사대부를 비롯하여 최하층 천민에 이르는 당대 사회의 전계층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옮겨놓게 된다.

이러한 내용적 특성은 판소리계 소설 등 몇 작품을 제외한 국문소설의 이상적이고 관념적 성격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이것은 국문소설의 향유층과 한문소설의 향유층의 의식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국문소설이 주로 중국을 무대로 하고 상층가문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사건을 전개하는 데 비하여, 한문소설은 국내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양반사대부는 물론 중인 이하 최하층의 인물들에 대한 관심과 그들이 취하고 있는 역사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문제 삼았다.

이것은 한문소설이 당대의 비판적 지성에 의하여 지어진 것이어서 당대 현실의 모순에 대한 뚜렷한 인식과 개조의 의지가 문학을 통하여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한문소설이 지닌 이러한 특성에서 우리는 역사적 기록문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또다른 민족 정신사적 측면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한 한문소설은 국문소설의 출현과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작품 중에는 국문과 한문 표기의 소설이 공존하는 현상도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한문소설은 작가와 저작시기가 대부분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국문소설과 대비하여 한국소설사의 통시적이고 체계적인 고찰을 위하여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東文選, 大東野乘, 漢文小說의 發達過程(蘇在英, 二友出版社, 1983), 羅末麗初의 傳奇文學(林熒澤, 韓國漢文學硏究 5, 1981), 한국·중국·일본의 小說의 개념(趙東一, 省谷論叢 20, 1989).

<박기석>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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