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24 (수) 19:56
분 류 사전1
ㆍ조회: 3468      
[역사] 중세사회 (두산)
중세사회 中世社會

사진 보기

고대 사회 이후 지속되고 근세 사회에 선행하는 역사적 사회 개념.

원래 중세라는 말은 고대와 근대의 중간 시대란 뜻으로 사용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시대 구분법은 고대·근대의 이분법에서 고대·중세·근대의 삼분법으로 바뀌었다. 서양에서는 그리스·로마 시대가 고대, 게르만 민족 이동 이후 동로마 제국의 멸망까지를 중세, 그 이후를 근대로 보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중세라면 무가치한 시대요, 암흑 시대란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중세를 처음 비판하고 나선 르네상스기의 인문주의자들과 그 이후의 근대주의자들이 신랄하게 중세의 문화와 사회를 비난하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근대 문화와 근대 사회가 가지는 자체 모순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면서 중세가 재평가되기에 이르렀다. 또, 중세라는 시대 구분은 본래 유럽사를 서술하는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동양사에서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중국사뿐만 아니라, 한국사·일본사에서 중세란 어느 때부터 시작되며 어느 때 끝나는가 하는 것은 매우 큰 문젯거리이며, 나아가서는 동양의 역사에 중세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까지 의문시되고 있다.

유럽의 중세사회

중세의 시작은 보통 5세기의 게르만 민족 이동과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보고 있고, 그 끝은 15세기 르네상스로 보는데, 이 1000년간을 다시 전 ·후기로 나누어 10세기까지를 중세 전기, 그 이후를 중세 후기로 나눈다. 일설에 따르면 중세는 르네상스로 끝나지 않고, 18세기의 프랑스 혁명까지 계속된다고 보고 있으며, 또 18세기의 계몽사상, 17세기의 과학 혁명, 16세기의 종교 개혁 등을 중세의 끝,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등 학설이 구구하다. 그러나 대체로 중세의 끝을 17, 18세기로 늦추는 것이 최근의 특징이다.

먼저 중세 전기의 사회를 고찰해 보면, 원시적인 게르만 사회가 로마의 영향을 받아 서서히 봉건사회로 이행하여 가는 과도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경제는 극히 제한된 원거리 무역과 사치품 교역을 제외하면 자급 자족적인 실물 경제 단계에 있었고, 문화적으로도 일부 수도원에 고대 라틴 문화가 계승되었을 뿐 일반 농촌 사회는 암흑 시대와 같았다. 정치적으로도 아직 봉건제도가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여 불안한 중앙 집권 국가(프랑크 왕국)가 성립되었다가 다시 분열되었다.

11세기 이후 유럽의 중세사회는 전환기를 맞게 된다. 상업이 부흥하여 도처에 정기시(定期市)가 설치되어 그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중세도시의 발생은 지중해 무역이 다시 일어나고 상업이 부흥하게 된 이유 이외에도 농업 생산의 증대, 인구의 증가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 때문이었다. 도시는 자치권을 획득하여, 농민이 도망간 뒤 1년만 정착하게 되면 농노 신분에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에 ‘도시의 공기는 사람을 해방시킨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서로 동업 조합을 조직하여 농촌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중세 도시는 점차 확대 발전, 대학을 비롯한 문화시설이 들어서게 되어 근대 도시로 발전하는 기초를 닦아갔다. 도시로부터의 경제적 압력으로 농촌 경제의 구조가 변화하게 되었는데, 장원 제도의 발전이 그 하나이다.

또 다른 하나는 봉건 제도가 발전하였다는 사실이다. 때마침 십자군 운동이 일어나 봉건기사 계급이 성장하는 가운데 유럽의 중세 사회는 고도 봉건 사회의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13세기를 고비로 유럽 중세 사회는 큰 위기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 증상은 흑사병의 유행(1347∼51), 백년전쟁(1337∼1453), 농민 반란(1388) 등 일련의 사건으로 나타났다.

또, 이탈리아에서는 상업 도시가 발달하면서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나 유럽 전역에 이데올로기 위기를 조성하였다. 한편, 지리상의 발견으로 세계관이 바뀌어 전통적인 가톨릭 사상을 부정하는 새 사조를 낳았다. 봉건 체제의 위기가 심화되자 봉건 지배층은 이에 대응되는 절대왕정 체제를 형성하였다. 절대 왕정은 봉건 제도의 증대되는 사회불안을 진압하기 위한 보다 조직적인 관료행정 체제라 할 수 있으나, 결국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시민 혁명이 일어나고, 근대 시민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근대 개혁이 단행되었다.

동유럽 대다수의 나라들과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서도 혁명 대신 개혁이 단행되었다. 역사상 근대혁명이나 개혁이 중세사회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같으나, 혁명이냐 개혁이냐 하는 문제는 그 나라 의회민주정치의 발전여부와 밀접히 관련되는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중세사회

역사를 고대·중세·근대로 구분하는 방법은 유럽 역사의 시대 구분에서 유래하는 것이므로, 이 방법을 그대로 동양사에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러나 그 불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시대구분의 불가피성과, 달리 대안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고대와 근대로 나누는 2분법과 고대·중세·근대로 나누는 3분법이 동양사에서도 활용된다.

중국사에서 앞의 2분법에 따르면 19세기 중엽의 아편 전쟁 이후와 이전을 근대와 고대로 보고 중세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구분은 왕조 중심의 시대 구분보다 합리적이나 고대가 너무 길고 동양 사회의 정체성 이론에 근거를 두는 것이므로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한국사에서도 1876년의 개항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는 시대 구분이 있었으나, 똑같은 모순을 안고 있어 오늘에는 이미 낡은 견해가 되고 있다.

고대·중세·근대의 세 시대로 구분한다고 할 때에도 고대의 끝과 중세의 시작을 어느 때로 잡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라진다. 일본학자들 사이에 당대까지는 고대, 송대부터 청말까지는 중세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춘추 전국 시대에 이미 봉건 제도가 확립되었으므로 전혀 다른 시대구분이 필요하게 된다.

한국사의 경우에도 통일 신라 시대까지를 고대, 고려·조선 시대를 중세로 보는 견해가 강하다. 이와 같은 시대 구분의 불합리성이 지적되어 최근 새로운 시대 구분이 시도되고 있다. 즉, 중국사에서와 같이 중세 사회의 상징적 체제라 할 봉건 제도가 이미 삼국 시대(三國時代)에 확립되었으므로 서양의 시대 구분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의 시작 역시 18세기의 실학사상 운동까지 소급시켜야 한다는 설이 강화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동양의 중세사회는 일본을 제외하면 서양의 봉건제 사회와 전혀 다른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중앙 집권적이며 관료주의적 가부장적 지배 체제인 동양의 중세 사회를 먼저 솔직이 시인하고, 유럽사의 시대 구분을 전혀 의식하지 않아야 바른 시대 구분이 성취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 경제사에 집착하는 시대 구분을 지양하고, 문명 상호간의 접촉을 중시하는 새로운 세계사 서술이 긴요하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윗글 [회화] 북종화 (민족)
아래글 [역사] 한국사의 시대 구분 (민족)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2930 사전1 [회화] 북종화 (민족) 이창호 2002-10-14 3581
2929 사전1 [역사] 중세사회 (두산) 이창호 2002-04-24 3468
2928 사전1 [역사] 한국사의 시대 구분 (민족) 이창호 2002-04-28 3463
2927 사전1 [현대] 한국의 현대 사회 (민족) 이창호 2002-04-28 3458
2926 사전1 [문학] 한문소설 (민족) 이창호 2002-10-24 3453
2925 사전1 [조선] 조선시대의 과거 1 (민족) 이창호 2002-04-24 3431
2924 사전1 [조선] 족보 (민족) 이창호 2002-08-12 3398
2923 사전1 [조선] 조선 개화기의 역사적 성격 (민족) 이창호 2002-06-16 3396
2922 사전1 [조선] 조선 후기의 토지제도 (민족) 이창호 2002-07-01 3377
2921 사전1 [근대] 근대사회 (한메) 이창호 2002-10-23 3374
12345678910,,,30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