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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3-14 (금) 05:26
분 류 사전2
ㆍ조회: 2091      
[근대] 한국의 근대사회 개관 (한메)
한국의 근대사회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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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회]

완만하게나마 중세적 사회 체제를 내재적으로 극복하면서 근대 사회를 지향해 가고 있던 조선왕조는 개항을 계기로 세계자본주의체제에 강압적으로 편입되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이러한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통치구조를 개편하고 쇄국양이정책(鎖國攘夷政策)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그러나 역사의 대세는 개국통상 쪽으로 기울어, 조선은 열강들과 갖가지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불평등조약체제하에서 이루어진 대외무역은 조선의 사회ㆍ경제를 점차 반식민지적으로 재편하여 갔다. 조선의 사회세력은 미증유의 사회변동에 대처하는 방법을 둘러싸고 크게 세 갈래로 분립하였다.

첫째는 왜양(倭洋)과의 통교를 단절하고 유교적 신분 사회 질서를 고수하려는 위정척사(衛正斥邪)세력이었다. 둘째는 서양의 법률ㆍ제도와 과학ㆍ기술을 일정하게 수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룩하려는 개화세력이었다. 셋째는 조선 후기 이래의 사회개혁론의 전통을 이어받아 토지의 균등분배를 실현하고 신분제도를 타파하려는 농민세력이었다.

위정척사세력은 임오군란(壬午軍亂)과 항일 의병 투쟁을 주도하였고 개화 세력은 갑신정변(甲申政變)과 갑오개혁(甲午改革) 및 독립협회운동을 거쳐 구국계몽운동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반면 농민세력은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 영학당(英學黨)ㆍ활빈당(活貧黨)운동 및 항일의병투쟁에서 주력군으로서 활약하였다. 이러한 사회세력들 사이에는 이해관계의 득실과 시대상황의 변천에 따라 협력과 대립이 착종(錯綜)하였다. 그리고 각 세력이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고 상호협력하여 근대민족국가를 건설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조선은 결국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조선의 개국 후, 일본인 상인들은 곡물과 금의 지금(地金)을 사들였고, 대신 목면과 잡화를 팔았다. 조선에서는 물가가 등귀(騰貴)하여 민중의 생활은 피폐해져 갔다. 유자(儒者)는 위정척사의 입장에서 서양화한 일본을 배격하였고, 일본에 협력한 민씨정부(閔氏政府)를 공격하였다. 그런 시기에 서울에서 병사가 반란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반정부ㆍ반일의 군란이 발생하였다(1882). 이때 일본을 견제하면서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청이 출병하여, 난리를 진압한 동시에 친청보수파정권을 세웠다.

이에 대해 근대적 개혁에 의한 조선의 독립과 부강을 목표로 한 개화파가 일본의 지원 아래 쿠데타를 일으켜 보수파를 누르고 개화파정권을 세웠으나, 청군의 반격에 의해 삼일천하(三日天下)의 단명으로 끝나고 말았다(1884).

<동학농민운동>

서양열강이 점차로 밀려오고, 조선은 열강항쟁의 무대가 되었다. 조선의 식민지화의 위기는 날로 심화되었다. 그럼에도 관료는 혼란에 편승하여 농민에 대한 주구(誅求)를 가중하였다. 이 때 동학의 유대로 맺어진 농민은 반외세ㆍ반봉건의 농민혁명운동을 일으켰다(1894). 농민군은 정부의 토벌군을 타파하면서 탐관오리(貪官汚吏)의 처단, 노비ㆍ천민의 해방, 과중세금의 폐지, 토지의 평균분배, 과부의 재혼 허가, 외적과 내통한 자에 대한 처벌 등을 정부에 요구하였다.

<청ㆍ일전쟁과 갑오경장>

농민군을 자력으로 진압할 수 없었던 정부는 청에 출병을 청하였다. 이를 알아차린 일본도 역시 출병하였다. 일본은 청군을 공격하는 한편 조선정부를 위협하여 민씨정권을 무너뜨리고 개화파정권을 세웠다. 이 정권은 근본적으로, 관료기구의 정비, 화폐ㆍ도량형의 통일, 세금의 금납화, 양반(兩班)과 양인(良人)과의 신분차별 철폐, 노비ㆍ천민의 해방, 과부 재혼의 자유 등의 개혁을 표방했는데 (1894), 여기에는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 중에 제기되었던 요구가 반영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무력시위 아래에서 행해진 것이기 때문에, 민중의 눈에는 침략의 수단으로 비추어졌으며, 개혁의 성과는 없었다. 청ㆍ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획득했다고 여겼으나, 삼국간섭(三國干涉)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고(1895), 조선에서는 삼국간섭을 주도한 러시아가 득세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세불리(勢不利)를 만회하기 위해 일본공사미우라 고로〔三浦梧樓〕는 일본군인ㆍ깡패를 동원하여 왕궁을 습격하고, 반일파였던 명성황후(明成皇后) 를 시해하였다(1895, 을미사변).

<의병>

명성황후 살해는 한국민들을 격분시켰다. 유자(儒者)를 지도자로 하는 의병이 각지에서 들고 일어나, 일본 및 친일관료에게 저항하였다. 의병의 진압을 위해 정부군이 지방으로 출동한 사이 러시아와 결탁한 일파는 국왕을 왕궁에서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겨 놓았다(1896, 아관파천).

이에 따라 개화파정권은 무너지고, 친러파정권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태의 연속선상에서, 철도ㆍ광산ㆍ삼림 등의 이권은 차츰 서양 및 일본에 팔아넘어가 조선의 위기는 한층 심화되었다. 위기에 직면한 급진적 개화파는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이어 독립협회를 결성하였으며(1896), 조선의 민주화에 의한 독립의 달성을 목표로 대중운동을 전개하였다.

1897년 고종은 황제로 즉위하여,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고쳤고, 자주독립국가임을 국내외에 천명하였다. 개화파는 한때 정부를 움직여 의회정치를 발족시키기도 했으나 보수파가 반기를 들고 탄압을 가함에 따라 해산되고 말았다(1898).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대한민국-역사' 항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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