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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11-29 (월)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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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95      
[조선] 북인 (브리)
북인 北人

조선 시대 붕당(朋黨)의 하나.

동인은 선조 말년에 북인과 남인으로 나뉘었다. 남인은 이황(李滉)과 유성룡(柳成龍)을 중심으로 한 경상좌도 사림이었고, 북인은 중앙에서 이산해(李山海)와 이발(李潑), 지방에서 조식(趙植)의 문인인 정인홍(鄭仁弘)을 중심으로 한 경상우도 사림이 주류를 이루었다.

남북 분열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이들은 동인 시절부터 현실인식과 대서인(對西人) 정책의 강도에서 차이가 있었다. 남인계가 온건파라면, 북인계는 서인의 영수인 정철의 효수(梟首)를 주장했을 정도로 서인 비난의 강도가 높았다. 서인의 반격이었던 기축옥사(己丑獄事)에서는 북인계가 큰 피해를 입었다. 그 결과 북인의 서인에 대한 반감은 더욱 굳어졌으며 남북인의 분열이 확고해졌다.

북인은 임진왜란과 광해군 즉위를 계기로 정계의 주도권을 잡았다. 집권층인 서인과 남인은 임진왜란의 발발과 초반 패배에 책임이 있는 반면, 북인은 의병 활동에서 큰 공을 세웠다. 1593년(선조 26) 전국 의병의 반이 경상우도의 병력이었으며, 정인홍ㆍ곽재우(郭再祐)ㆍ김면(金沔) 등은 실전에서도 큰 공을 세웠다.

이를 기반으로 북인은 종전(終戰)과 함께 임진왜란 중의 정책 실패와 왜군과의 화의가 정유재란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들어 유성룡의 남인 정권을 퇴진시키고 정계에 복귀했다. 그러나 경상우도 사림은 중앙 정계에 큰 기반이 없었다. 이후의 북인 정권은 서인이나 남인 중에서 비교적 당색이 약했던 이항복(李恒福)ㆍ이덕형(李德馨)ㆍ이원익(李元翼)을 정승으로 내세우고, 경상우도 사림과 유영경(柳永慶) 같은 왕의 척신(戚臣), 남이공(南以恭)ㆍ김신국(金藎國)ㆍ이이첨(李爾瞻)ㆍ홍여순(洪汝諄) 등과 같이 서인과 반목한 중앙의 여러 인물이 결합한 형태였다.

이런 사정으로 학적ㆍ지역적 순수성이 떨어지고 같은 북인이라도 배경과 현실인식이 달라 분열과 이합집산이 심했다. 1599년 경상우도 사림과 이산해의 문인, 홍여순계와 이이첨, 허균(許筠) 등이 연합한 대북과 남이공ㆍ김신국ㆍ유영경 계열의 소북으로 분열했다. 대북은 1600년에 홍여순의 권력확장을 두고 이산해와 홍여순이 대립했는데, 이산해계를 육북(肉北), 홍여순계를 골북(骨北)이라고 했다.

선조말에는 소북이 다시 남이공계의 청북(淸北 : 또는 南黨)과 유영경계의 탁북(濁北 : 또는 柳黨)으로 나뉘었다. 이때 탁북은 영창대군의 세자 옹립을 지지하며 서인과 결합해 대북을 축출했으나 대북은 광해군의 즉위와 함께 정권을 장악했다. 이들은 유영경을 처형하고, 청북과 유희분(柳希奮) 등 광해군의 척신 세력과 연합하여 광해군 초기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다.

대북이 중심이 된 북인 정권은 지지부진하던 양전(量田)을 실시하고,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는 등 전후 복구 사업을 주도했다. 그러나 서인과 남인의 사회적 기반이 강고함에 따라 정책은 의도대로 잘 진행되지 않았다. 정계에서 청요직(淸要職)과 이조판서, 전랑(銓郞) 등의 관직은 북인이 차지했으나 정승직과 비변사 대신은 끝까지 서인과 남인의 중도파 인사들이 장악했다.

이에 대북은 붕당의 폐해는 군자당과 소인당이 공존하는 데 있으므로, 붕당의 폐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소인당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먼저 유당과 임해군(臨海君)을 처형하고 북인계에 치중한 인사를 계속 단행했다. 1611년(광해군 3)에 정인홍은 이황과 이언적의 문묘 종사를 반대하는 회퇴변척(晦退辨斥) 상소를 올렸고 이어 조식의 시호 추증과 문묘 종사를 건의했다.

이런 과정에서 대북은 서인ㆍ남인뿐만 아니라 소북 및 이항복ㆍ이원익 등의 현임대신들과의 대립도 커졌다. 1613년 서양갑(徐洋甲) 등이 주동한 칠서사건(七庶事件)이 발생하자 대북은 이를 인목대비(仁穆大妃)의 부친인 김제남(金悌男)의 역모 사건으로 확대하여 서인 탄압의 계기로 삼았다. 이어 영창대군 살해, 인목대비 폐위를 단행하고, 이항복 이하 당시까지 정계에 남아 있던 서인들을 제거했다.

이때 북인 내부에서도 유희분ㆍ유몽인(柳夢寅)ㆍ기자헌(奇自憲)ㆍ남이공ㆍ박승종(朴承宗) 등을 중심으로 폐모론의 반대파가 생겼는데, 이를 중북(中北)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기존의 소북계 인물과 함께 정온(鄭蘊)ㆍ이경전(李慶全)ㆍ문경호(文景浩) 등 정인홍의 문인들도 일부 가담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이 성공함으로써 대북 정권은 몰락했다. 이후 북인은 철저히 위축되어 다시는 중앙 정계에 등장하지 못했다.
붕당정치, 동인, 남인, 대북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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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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